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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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개봉 15

거기서 거기 _ 내가 잠들기 전에, 로완 조페 감독

# 0.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예요. '로완 조페' 감독, 『내가 잠들기 전에 :: Before I Go to Sleep』입니다. # 1. 슈퍼스타 캐스팅에 마케팅을 올인합니다. 관객을 혹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극적이지만 너무 난해하지는 않은 직관적인 설정이 작품의 동력이 됩니다. 인물 구도와 상황 전개는 지극히 단조롭지만 불륜과 치정 따위의 통속적 아이템들이 맛있고 몸에 해로운 인공적 매운맛을 더합니다. 마냥 클리셰라 욕하기에는 찝찝하고 클래식이라 합리화하기도 애매한 그 중간 어딘가의 익숙한 플롯입니다. 지나고 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는 개연성 붕괴가 속출하지만 관람하는 동안엔 적당히 자극적인 묘사와 배우진의 열연에 가려 크게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몸값과 인지도 순에 따라 주연과 조연의 ..

Film/Thriller 2022.04.02

그날의 내 기분 _ 의자가 되는 법, 손경화 감독

# 0.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비 오고, 리사이클 의자, 풀 숲, 페이드 아웃, 마천루... 응? 끝이네? '손경화' 감독, 『의자가 되는 법 :: How to Become a Chair』입니다. # 1.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제목은 . 대상의 속성을 면밀히 추적한 후 화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의미를 선별적으로 추출해 사람 사는 방식과 연결 짓는 류의 작품들이 대체로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죠. 예상대로 카메라는 수많은 의자를 담아냅니다. 다른 모양과 다른 목적과 다른 시점과 다른 가치와 다른 사연과 다른 해석을 추적합니다. 의자를 쓰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자가 놓인 다양한 공간들과, 의자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들과, 의자에 부여하는 다양한 견해..

홉스의 영화적 증명 _ 갓즈 포켓, 존 슬래터리 감독

# 0.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를 볼 마지막 기회" - The Telegraph, 영화 홍보 카피 중에서- '존 슬래터리' 감독, 『갓즈 포켓 :: God's Pocket』입니다. # 1. 영화의 제목은 갓즈 포켓, 신의 호주머니입니다. 호주머니에는 보통 볼품없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잡동사니라 불리는 것들이죠. 각각의 용도나 정체성을 주목하지 않는 잡다한 것들의 무리. 값지지 않아 이리저리 구르고 깨져도 걱정이 없는 것들을 뜻합니다. 호주머니 속 잡동사니들은 걸음에 따라 뒤엉킵니다. 어느 조각이 위에 오르기도 하고 어떤 조각은 아래에 깔리기도 하지만 이는 걷는 사람의 의도가 아닌 운에 따를 뿐입니다. 무언가가 부서졌다거나 부서지지 않았다면 그 역시 조금 운이 나쁘거나 운이 좋았을 뿐이죠. 잡동..

Film/Drama 2021.11.18

Gorgeous _ 은발의 패셔니스타, 리나 플리오플라이트 감독

# 0. "뉴욕은 잘 차려입은 여성들에게 가장 좋은 도시예요. 왜냐하면 뉴욕의 대로와 길거리는 런웨이가 될 수 있거든요. 이분들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무색하게 해요.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만족하며 항상 가장 멋지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외출을 하죠." '리나 플리오플라이트' 감독, 『은발의 패셔니스타 :: Advanced Style』입니다. # 1. 멋지게 뉴욕을 가로지르는 고령 여성들을 촬영하는 작가 '아서 세스 코헨'과, 모델이 되어준 여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때론 Gorgeous 하게, 때론 Fancy 하게, 때론 Sexy하게 담아냅니다. 관객은 그녀들의 반짝이는 눈에 비친 강렬한 에너지를 통해 삶의 특정한 시점을 규범화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가를 점..

설명충이 반전물을 만들면 _ 대최면술사, 진정도 감독

# 0. 엄청 극단적인 영화입니다. 진짜 괜찮은 시나리오인데 진짜 못 만들었거든요. 반전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들기엔 감독이 너~~무 소심하고 너~~무 순박하고 너~~무 착합니다. 진정도 감독, 『대최면술사 :: 催眠大師』입니다. # 1. 캐릭터 괴랄합니다. 디렉팅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랑 환자가 상담하는 영환데 톤은 무협물에 맞춰져 있습니다. 논리와 호소로 대화하고 소통해도 모자랄 판에 주인공 둘이서 몸만 안 썼다 뿐 영화 내내 싸우고 있죠. 연기, 과장되고 어색합니다. 볼살 빵빵한 동안의 계란 머리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센 척을 하는데 이렇게 말해 미안하지만 그냥 웃기기만 합니다. 책상에 다리 올리고 신문 펴 보는 등장 씬은 감독의 부실한 연출 역량을 가늠케 하기 충분하죠. 그나마..

Film/Thriller 2021.05.04

큰 잘못을 했나 보다 _ 무비 43, 엘리자베스 뱅크스 외 감독

# 0. 어느새 왓챠 피디아에 등록한 영화의 수가 네 자리를 훌쩍 넘어가네요. 확실히 일정 숫자 이상의 평점을 등록하면, 나름 신뢰할만한 추천 시스템이 갖춰진다는 게 왓챠의 최대 장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장르 편식을 유도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긴 하지만요. , .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10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치고 빠질 수 있는 옴니버스식 코미디 영화라는 기준에선 썩 나쁘지 않은 추천입니다. 늦은 저녁 시계를 힐끗 쳐다본 후, 기분 좋게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다섯 개 만원 하던 편의점 맥주를 한 캔 꺼내 들었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이 반성했죠. 내가 왓챠에 뭔가 큰 잘못을 했나 보다. 최근에 넷플릭스나 구글 무비를 자주 찾은 바람에 화가 난 건가. 돈도 얼마 안 ..

Film/Comedy 2021.03.12

스물 일곱 _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감독

# 0. 청춘 영화입니다. 청춘을 위한 영화입니다. 나이 어린 꽃돌이 꽃순이 배우 무더기로 때려 박은 후 미취학 아동마냥 억지로 순진한 표정을 짓도록 시켜 만든 『변산』이나 『청년 경찰』,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이런 작품들이 진짜 청춘들을 위한 영화죠. '노아 바움백' 감독, 『프란시스 하 :: Frances Ha』입니다. # 1. 몇몇 감독들은 아무래도 기성인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 청년상이라는 걸 자랑하지 않으면 뒤지는 병이라도 걸려있나 봅니다. 이를테면 잘생기고 키 크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순결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모범생.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데다 독립심도 강해 지 앞가림 척척하는 자소서식 유학파 글로벌 리더. 의협심과 모험심을 양 손에 무장하고 온데 일을 ..

Film/Drama 2020.06.21

천우희느님 _ 출중한 여자, 윤성호 / 박현진 / 백승빈 / 전효정 감독

# 0. 삶의 여러 단면을 논하는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청년 실업의 자해적 고통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2시간 30분짜리 막장 영화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냉전 시대의 아픔과 인간성의 저력을 관조하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트』. 과학적 메시지를 다루는 방법론에 관한 고찰 『빙하를 따라서』까지. 최근 빈약한 지적 내구력의 한계를 시험케 하는 어렵고 복잡한 영화들을 연이어본 결과 결국 방전되고 말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달래줄 뇌의 전원을 내리고 볼 수 있는. 아니면 말고식 가벼운 웹드라마나 하나 찾아봐야겠네요. '윤성호', '박현진', '백승빈', '전효정' 감독, 『출중한 여자 :: Prominent Woman』입니다. # 1. 웹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단단한 ..

Series/Romance 2020.06.19

46년간의 겨울 ⅱ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 morgosound.tistory.com # 10. 아빠곰은 사탕을 팝니다. 엄마곰은 이빨을 팔죠.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자식에겐 절대 권하지 않을 쾌락을 판매하고 그 비용을 다시 판매하는 비윤리적 짓거리를 저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창고에 숨어든 '어네스트'가 경찰에 잡혀가는 순간 아빠곰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아이에겐 절대 먹지 못하게 할 사탕을 다른 어린아이들을 홀려 팔았던 자신 스스로를 정직한 시민이라 칭합니다. 자본가들의 엘리트 의식과 이중성은 저녁 식..

Film/Animation 2020.06.17

46년간의 겨울 ⅰ _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0. 신기한 영화입니다. 대단히 편안하고 친절한 동화이긴 한데 어린이용 동화로만 보기엔 무지막지하게 많은 코드가 동시에 읽히거든요. 겨우 8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 안에 이렇게나 많은 은유를 녹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말이죠. 그림쟁이 쥐와 음악가 곰의 사랑스러운 동화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글로 풀어놓을 필요가 없을 만큼 안정적이기에 생략하구요. 이 글에선 제 나름대로 이해한 코드들에 대한 생각들을 조악하게나마 풀어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영화를 공산주의 진영(쥐)과 자본주의 진영(곰) 간의 냉전 시대 갈등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우화로 읽었습니다. '뱅상 파타', '스테판 오비에', '벵자맹 레네' 감독,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Ernest et Céles..

Film/Animation 2020.06.17

깔-끔 _ 자니 익스프레스, 우경민 감독

# 0.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깔끔한 코미디입니다. 어쩜 이렇게 풍부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을 수 있을까요. '우경민' 감독, 『자니 익스프레스 :: Johnny express』입니다. # 1. 유쾌하고 명쾌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 아래 연상할 수 있는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소집합니다. 관객에게 코미디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줘야 하는 순간을 판단하고 좁은 공간 안에 배치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코미디가 작동하는 순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연출을 동원해 호흡을 조율하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반복된 연출을 통해 리듬감을 만들어 내야 하는 순간에 대한 판단과 템포 역시 너무도 적절합니다. 재난 영화들의 클리셰를 가져와 볼륨에 걸맞지 않은 안정감을 꾀하면서도, 그것을 변주해야 할 땐 과감히 비틀어 지루..

Film/Animation 2020.04.23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_ 무드 인디고, 미셸 공드리 감독

# 0. 독특한 스타일과 파격적 상징과 직설적 은유가 쏟아집니다만 감흥은 없습니다. 영화와 대화하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합니다. 스타일만 널브러져 있는 걸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나름의 정서가 있긴 합니다만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법이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메시지만큼 공허한 것도 없으니까요.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를 리드할 선명한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작품이 나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 『무드 인디고 :: Mood Indigo』입니다. # 1. 미친 것 같습니다. 미친 듯이 피곤합니다. 피아노를 치며 칵테일을 만드는 순간까지, 기껏해야 영화 시작 5분여 정도만 오호라? 하고 솔깃한 뿐입니다. 이후부터는 넘쳐나는 과잉에 체력이 쭉쭉 빨려나가는 느낌..

Film/Romance 2019.12.07

어쨋든 파비아나는 이쁩니다 _ 히든 페이스, 안드레 바이즈 감독

# 0. 관객의 감상 따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직설적이고 투박한 질감, 무신경한 인물 묘사, 거친 대사가 이어집니다. 왠지 남부 유럽 아니면 프랑스 영화겠거니 싶었는데요. 찾아보니 여지없이 스페인 영화였군요. '안드레 바이즈' 감독, 『히든 페이스 :: La cara oculta』입니다. # 1. 학부생 졸작에서나 볼법한 물결치는 제목이 지나기 무섭게 여친에게 차인 주인공 '아드리안'은 위스키 한잔 땡기러 술집을 향합니다. 누가 봐도 실연당한 표정으로 술을 홀짝이던 아드리안. 난데없이 웬 남자에게 어깨빵을 놓고 지가 먼저 시비 건 주제에 주먹질까지 날리더니 찐따처럼 역관광을 당합니다. 또 다른 주인공 '파비아나'는 평소 이상형이 찐따였던 건지 생전 처음 본 찐따의 대리기사를 자처합니다. 겁도..

Film/Thriller 2019.08.06

단편영화를 권하는 이유 _ 민우씨 오는 날, 강제규 감독

# 0. 아직도 나는 당신의 모습 보지 못하고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내 집 문 앞을 지나시는 당신의 조용한 발걸음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강제규' 감독, 『민우씨 오는 날 :: Awaiting』 입니다. # 1. 쉽지 않네요. 리뷰마다 없는 글재주 짜내느라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평소의 그것보다 조금 더 힘든 느낌입니다. 단편영화들은 아무래도 간결한 이야기 속에 선명한 메시지를 담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생각나는 얘기를 함부로 했다가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과 이 이야기에 얽힌 삶을 사시는 분들께 폐가 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죠.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가급적 글을 읽지 마시고 영화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는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보아도 아깝지 않은 완..

Film/Drama 2019.02.08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삽니다. 선제시 _ 그녀, 스파이크 존즈 감독

# 0. 변태 감독이 부리부리한 눈이 매력적인 배우를 불러다 찐따 같은 헤어스타일에 콧수염을 붙인 다음 컴퓨터 프로그램과 폰섹스를 하게 만들고 까이게 만들어 0 고백 1 차임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주소록에 여자번호라곤 엄마밖에 없는 우리 모태솔로들도 기술적 특이점까지만 버티면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를 한 여친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도 주는 작품이죠. 한 작품으로 인싸에겐 빅엿을 먹이고 아싸에겐 정신승리를 안기다니. 역시 아카데미 각본상은 아무나 타는 게 아닙니다. 잠시 애인이 있다는 상상을 해봅시다. 아, 진정하시구요. 상상 정도는 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꼼냥 거리는 상상 연애는 각자 많이들 해 보셨을 테니 과감히 생략하고 있지도 않은 애인이 바람이 난 단계로 넘어갑시다..

Film/SF & Fantasy 2019.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