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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국민 여동생의 위엄 _ 어린 신부, 김호준 감독

그냥_ 2020. 3.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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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송강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티켓파워와 팬덤을 가진 배우 중 한 명입니다. 대체적으로는 작품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며 함께하는 크루들과의 호흡을 중요시하는 연기 스타일의 배우입니다만 『변호인』의 클라이맥스 법정 씬이나 『사도』에서 아들의 죽음 이후 마지막 장면, 『마약왕』의 파멸직전 저택에서의 최후와 같이 혼자서 영화를 끌고 나가야 할 때엔 주저 없이 파괴력을 보여주는 배우죠. '이병헌' 역시 영화팬들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입니다. 『남한산성』과 『밀정』, 『내부자들』, 『광해』, 『악마를 보았다』, 『달콤한 인생』 등과 같이 선명하고 스타일리쉬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지배해 나갈 때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되는 훌륭한 배우죠. 명실상부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황제 '최민식'이나, 장르를 불문하는 어마어마한 감성과 범용성을 자랑하는 믿고 보는 배우 '황정민', 역동성과 감수성을 동시에 겸비한 독보적 존재감의 칸의 여왕 '전도연', 드넓은 스펙트럼 속에서도 매번 다양한 캐릭터들과의 압도적인 밀착감을 보증하는 '김윤석', 배우가 보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카리스마를 연기력으로 뿜어내는 '김혜수' 등 모두 대단한 캐리 능력을 가진 멋진 배우들입니다.

 

하지만 송강호고 이병헌이고 전도연이고 최민식이고 김혜수고 황정민이고 나발이고 간에. 이 분의 존함 앞에선 초라할 뿐입니다. 단언컨대 역대 한국 영화 사상 가장 강력한 원톱의 영화를 꼽아야 한다면 누구나 이 작품을 첫 손에 꼽으리라 확신합니다.

 

 

 

 

 

 

 

 

'김호준' 감독,

『어린 신부 :: My Little Bride』입니다.

 

 

 

 

 

# 1.

 

영화가 개봉하던 2000년대 초중반 영화판은 크게 4가지 종류의 작품군으로 기억됩니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으로 대표되는 소위 '김기영' 키즈들이 만드는 한국형 미장센 스릴러의 태동기. 『조폭마누라』 시리즈, 『공공의 적』 시리즈, 『가문의 영광』 시리즈, 『두사부일체』 시리즈 등으로 대변되는 경찰-조폭 시리즈물의 최전성기. 『엽기적인 그녀』의 대흥행에 영감을 받은 인터넷 소설식 뉴밀레니엄 갬성 로맨틱 코미디물들의 양적 팽창과, 그 외의 여백을 메우는 『황산벌』, 『라디오스타』와 같은 범작과 수작 사이의 무난한 코미디 드라마들이 그것이죠. 이 영화는 그중에서 세 번째.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캐미와 스타성에 흥행을 전적으로 올인한, 인터넷 소설류 싼마이 퀄리티의 막장성 짙은 양산형 로맨틱 코미디 라인업에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영화입니다.

 

 

 

 

 

 

# 2.

 

네. 솔직히 이 영화...

쓰레기거든요.

 

말도 안되는 설정과 막개그로 점철된, 공장에서 찍어내듯 양산되던 쓰레기 로코물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막장성을 자랑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막장성은 『클라멘타인』과 『멘데이트』라는 고전 역작에서 『리얼』과 『자전차왕 엄복동』으로 이어지는 우리 쓰레기 영화의 위대한 계보에 한자리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딱히 문제가 없는 수준이죠.

 

일단 포스터부터 보세요. 빨리, 자자아~, 결혼만 하면 할 줄 알았다? 아니, 씨X. 얘 16살이라며!! 이제 고1!! 이 로리콘 쉐X야!!!

 

 

 

 

 

 

# 3.

 

바람둥이 '상민'이 16살 미성년자 '보은'의 몸매를 보기 좋다 말하는 장면과, 뽕브라를 선물하며 입혀줄까라며 껄떡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솔직하긴 하네요. 로리콘 페티시즘 영화답게 '문근영'은 영화 내내 정신 사나울 정도로 츄리닝, 잠옷, 교복, 신부 드레스, 사복, 찜질방복, 한복 등의 온갖 종류의 코스튬을 갈아입습니다. 이 나이 때 여자아이가 부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애교와, 이 나이대 아이를 활용해 부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섹스어필이 집착적으로 쏟아집니다. 와중에 만에 하나 '문근영' 만으론 성에 안 차는 관객이 있을까 봐 '김래원'을 동생 친구인 16살짜리 '신세경' 위에 눕히는 짓도 잊지 않는 가운데, 소외된 여자 관객들을 위한 눈요기용으로 '김래원'을 웃통이고 바지고 벗겨재끼는 것 역시 잊지 않습니다.

 

'로리콘' 코드에 영화를 갈아 넣는 가운데 나머지 공백은 클리셰란 클리셰를 모조리 끌어다 때워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는 언제나 인기 많은 야구부 에이스 오빠가 있고, 그 오빠는 언제나 여주인공과 연애를 합니다. 야구부 오빠를 좋아하는 일진 언니들은 언제나 3인조고, 그중에 짱은 미모의 긴 생머리, 나머지 겉절이 둘은 왠지 모르겠지만 밴드를 십자 모양으로 얼굴에 붙이고 있는 파마머리죠. 일진 언니야들에게 구박을 받는 순간엔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해 공주님을 구해주시구요. 야구장에 응원을 가노라면 꼭 하필 그 사람이 중계 화면에 잡히고, 그 모습은 언제나 맥주를 마시고 있는 들켜선 안 되는 누군가에게 언제나처럼 정확히 들킵니다.

 

잘생긴 교생 선생님은 껄떡대는 노처녀 여선생의 반에 배정되고, 그런 배역엔 언제나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취급의 코미디언이 캐스팅되죠. 유일하게 면회 왔던 사람이 첫사랑이었다 말하는 대목은 '보은'이라고 광고하는 거라 봐야 하구요. 영화의 피날레는 언제나 이유 모를 무대 위에서 치러지는 일장연설을 곁들인 사랑고백 이벤트로 마무리되며, 그 순간엔 언제나 왜 때문인지 모를 주변 사람들이 생판 남의 사랑 놀음판 주변에 모여 스스로 들러리를 자처합니다. 위대한 '더 빠워 오브 러브'에 감화된 일진과 노처녀는 삐쭉이는 입과 함께 못내 박수를 치는 가운데 영화의 대표 ost가 흘러나오며 영화는 마무리되죠.

 

 

 

 

 

 

# 4.

 

개막장 클리셰들을 얽기 설기 엮는 동안, 개연성을 포함한 시나리오의 퀄리티는 머나먼 우주를 향해 날아갑니다. 노망난 노인네가 친구와의 약속이랍시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을 조혼의 구렁텅이에 처박아 넣는 걸 관객더러 믿으랍니다. 부모는 이를 막는 게 아니라,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며 설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웃으라 말합니다. 남자 애 부모는 지 자식 앞길을 막기 위해 차를 때려 부수고, 노인네는 가짜로 죽은 시늉을 하며 자해공갈을 하는 동안, 16살 난 딸의 결혼하는 게 무섭다는 말에 엄마라는 년은 철이 없다고 한숨을 쉽니다.

 

여고생을 결혼에 떠밀어 넣은 부모는 무슨 서른 넘은 자식 결혼시킨 부모처럼 호젓하게 양육의 소회를 풀고 자빠집니다. 남편 '상민'의 같이 자자라는 말에 '보은'은 미쳤다 말하는데요.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에서 도망 나와 번듯한 신혼집에서 등하교하기 전까지는, 이 상황이 미쳤다는 걸 못 느꼈다는 건가요? 네? 밑도 끝도 없이 동료 교사가 주소록을 뒤져 막무가내로 집을 찾아온다구요? 응? 아파트 문이 열려있어?! 무슨 시골 나무문이야?!?!

 

 

 

 

 

 

# 5.

 

연출은 없습니다. '대사를 치는 배우를 카메라로 찍는다'가 전부입니다. 그 왜 친구들끼리 여행 가서 폰카로 대충 촬영할 때들 있잖아요? 본능적으로 누가 말하면 말하는 애 찍고, 그 다음 그거 듣는 애 찍고, 누가 무슨 소리 내면 다시 뭔가 싶어 소리 나는 쪽 찍고 하는. 영화의 영상은 그 수준이라 보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당시의 영상 연출이란 게 대부분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 모든 걸 이 영화에 뒤집어 씌우는 건 조금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군요.

 

종합적으로 보자면 잘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를 떠나 그냥 쓰레기라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로리콘 코드와 클리셰 범벅을 쉴새 없이 오갈 때마다 설정이나 대사 하나하나가 튀어 나올 때마다 토가 올라올 만큼 역겨운 영화인 게 분명 맞습니다.

 

문제는...

 

 

 

 

 

 

# 6.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하도 떠들썩 하기에 보기는 봤는 데, 막상 보고 나니 별로더라"라는 식의 관객수와는 반비례한 세평을 받곤하던 JK식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흥행과 더불어 남녀노소 불문 관객들로부터 제법 만족스러운 평을 받습니다. 다들 뭐에 홀린 듯 '문근영'님을 영접하기 위해 영화관에 좀비처럼 몰려갔다가, 성은을 가득 받고서 넋나간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서던 모습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 나는군요.

 

당시 우리 관객들이 수준이 낮아서 그랬을까. 글쎄요, 신파에 좀 약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나름 단호할 땐 칼 같은 게 우리 관객들이거든요. 천하의 '송강호'도 『나랏말싸미』 같은 거 찍으면서 세종대왕님 잘못 건들면 얄짤없이 망하거든요. '이병헌'이 '칸의 여왕'님과 함께 한다 한들 『협녀』 이런 거 찍으면 작살 나거든요. '최민식'도 『천문』, 『특별시민』, 『대호』 이런 거 찍으면 개 털리고, '황정민'도 『군함도』 같은 논란작 앞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당장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이 『어린 신부』가 '문근영' 이 아니라 '파격성' 덕에 성공했다고 판단한 멍청이들이 이듬 해 같은 감독을 데려다 『제니, 주노』라는 되지도 않는 개막장 영화를 또 꺼내 들었다가 한강 다리에서 정모를 열기도 했죠.

 

 

 

 

 

 

# 7.

 

당시의 '문근영'은 이 폐급 로리콘 영화를 설득하다 못해 흥행까지 시키십니다. 만세.

 

이 시기 '문근영'의 티켓 파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80년대 말 가수 '이지연'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난 사랑을 아직 몰라>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대히트를 친 건 어디까지나 그 노래를 부른 게 '문근영'이었기 때문이었죠. 3~4월의 개학시즌만 되면 미세먼지와 함께 들려오는 벚꽃 연금처럼, 번화가 어디를 가더라도 죄다 문근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기억이 납니다.

 

범국민적 사랑과 응원을 받는 그야말로 전 국민의 여동생이라 보시면 무리가 없을 겁니다. 30대 중반의 아재가 기억하기에 이 정도 파괴력은 비단 배우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탈탈 긁어 모아도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기껏해야 '김연아'? 아니면 '아이유' 정도 될까요? 둘도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유재석'의 인기면 어떠냐구요? 어림도 없죠. 유느님이 로리콘 영화를 찍어도 살아남을까요? 아마 은퇴각 세게 잡힐걸요?

 

 

 

 

 

 

# 8.

 

더 놀라운 건, 아니 놀랍다기보다 어처구니없는 건 지금 2020년에 이 영화를 다시 봐도 이때의 '문근영'은 어느 정도 설득이 된다는 점입니다.

 

어지간히 개연성에 예민하고 시니컬한 사람조차 몇 분 지나지 않아 '문근영'의 맑은 마스크를 헤벌레 쳐다보게 됩니다. 도시락 싸들고 월급 때려 부어 가며 조카뻘 아이돌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삼촌팬들의 마음이라는 게 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뭐 이딴 영화가 다 있나 싶은데 그러게요. 그 시절엔 긍정적인 부분에서도 또 부정적인 부분에서도 이딴 말도 안 되는 영화가 다 있었습니다.

 

2000년 『가을 동화』로 급부상한 후, 2003년 『장화, 홍련』에서 출발해 2004년 『어린 신부』, 2005년 『댄서의 순정』으로 이어지는 배우 '문근영' 필모그래피의 첫 번째 황금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납득'하실걸요? '김호준' 감독 『어린 신부』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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