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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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개봉 7

고작 8분 _ 싱크 앤 라이즈, 봉준호 감독

# 0. 고작 8분. 봉준호 감독, 『싱크 앤 라이즈 :: Sink & Rise』입니다. # 1. 거칠고 위태로운 인물의 카리스마. 모험 혹은 도박.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봐". 허구적 풍요. 삶은 달걀. 매혹적인 롱테이크. 시선과 호기심을 지배하는 샷 전환. 평범한 공간을 구분해 미학적으로 재해석하는 고유의 시선. 입체감을 조작하는 카메라 워크. 압도적인 개방감으로 정의되는 한강이라는 환경. 프레임 인 앤 아웃의 능수능란한 활용. 천 원의 함의. 뜬금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내 딸 너 준다". 콤플렉스를 다루는 방식과 풍부한 감정 변화. 돈 주고 산 달걀을 한강에 내버리는 아이러니. 특수 계란과 "아빠 안 믿지"의 페이소스. 다친 다리의 디테일. "우린 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여"라는 공격적 ..

Film/Drama 2022.07.18

뉴비 판독기 _ 더 로드,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 / 패브리스 카네파 감독

# 0. 우연한 기회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어디 볼만한 영화가 없을까 하던 차에 적당한 런타임의 공포영화를 하나 골랐습니다. 미리 준비한 편의점 팝콘과 맥주 한 캔씩을 손에 들고 영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82분간 펼쳐지는 죽음의 드라이브가 끝나고. '노력은 인정하지만 좀 심심하다' 생각하던 차에, 응? 옆에 앉은 친구가 극찬을 쏟아냅니다. "와~ 진짜 재밌다!!" '장 밥티스트 안드레아', '패브리스 카네파' 감독, 『더 로드 :: Dead End』입니다. # 1. 저는 얼추 일주일에 여덟에서 열 편 정도의 영화를 소비합니다. 그리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영화 보는 게 취미입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셈이죠. 반면 친구는 영화를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

Film/Horror 2021.05.30

컨템퍼러리 타임즈 _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감독

# 0.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감독의 이름과 매일 두 잔씩은 꼬박꼬박 마시는 커피, 한동안 인생을 좀먹었던 담배와 긴장을 부르는 강렬한 흑백의 화면, 집중을 낚아채는 좁은 테이블의 공간과 왠지 아우슈비츠를 속속들이 알 것만 같은 배우의 등장이 의자를 스크린 가까이 당겨 앉게 합니다. '짐 자무쉬' 감독, 『커피와 담배 :: Coffee and Cigarettes』입니다. # 1.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데요... 어째 점점 현타가 몰려옵니다. '열심히 본다'는 행위 그 자체에 강한 회의감이 듭니다. 이렇게 보는 영화가 아닌 것만 같은 위화감입니다. 가까이 다가간 몸을 다시 뒤로 뉘어 엉덩이를 뺀 채 마치 염세주의자들의 그것과 같은 무심함으로 영화를 봐야 할 것만 같다는 압박이 느껴집니다. 신기한..

Film/Drama 2021.04.24

냉동 고추 바사삭 _ 11:14, 그렉 마크스 감독

# 0. 우연과 필연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스릴 넘치면서 유쾌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 '그렉 마크스' 감독, 『11:14』입니다. # 1. 본 영화도 몇 편 안 되는 주제에 구미를 당기는 작품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온종일 영화 목록을 뒤지는 건 바로 이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일 겁니다. 대작의 화려함이나 걸작의 유려함은 없지만 대신 세상 잃을 것 없는 놈들의 자유분방함과 창의적인 발상, 도발적인 전개로 함께 놀아보자 덤비는 이런 영화들 말이죠. # 2. 이게 바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입니다. 제작비만 오지게 때려 박았을 뿐 이야기는 클리셰 대충 비벼 만들어 놓고선 "영화는 영화일 뿐이잖아?" 라거나, "킬링 타임용 영화가 이만하면 됐지!" 라 말하는 감독들의 엉덩이를 시원하게 걷어 차는 것만 같은..

Film/Comedy 2021.03.03

길가의 고양이 _ 고양이의 보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 0. 사거리 혹은 오거리 정도 여러 갈래 길이 겹쳐 드는, 자동차보다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북유럽풍 카페거리 느낌의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어느 노천카페 허름한 테이블의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길고양이 몇 마리를 곁눈질로 힐긋 보며, 문득 든 상상을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조립해 놓은 영화입니다. 후~ 숨차라.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고양이의 보은 :: 猫の恩返し』입니다. # 1. 심드렁하게 드러누운 늘어진 뱃살의 '무타'처럼 늦은 휴일 오후를 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거친 질감의 싸구려 공책에 손이 가는 대로 쓰고 그리던 상상을 자유롭게 빚어낸 느낌의 영화입니다. 하울의 성처럼 다양한 길고양이들을 파편적으로 수집한 후, 그 모습들을 자유..

Film/Animation 2020.03.14

선함을 충전하고 싶을 때 _ 브루스 올마이티, 톰 새디악 감독

# 0. 최종 집계 17만 57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희대의 망작 의 광풍에 휩쓸린 관객의 수죠. 이렇게 빨리 VOD로 넘어갈 줄 알았더라면 영화관에 가서 보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드는군요.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상이 심각합니다. 영화를 보며 얻은 내상, 리뷰하며 곱씹어 보느라 다시 얻은 내상, 그렇게 쓴 엄복동 리뷰가 제 모든 포스팅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거뒀다는 사실이 준 내상이라는 개노답 3형제의 크리티컬 한 다단 히트의 여파는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하... 저는 지금껏 무엇 때문에 영화들을 리뷰를 했던 걸까요. 엄복동의 억지 눈웃음과 정석원의 탄탄한 엉덩이에 가위가 눌리는 나날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멍청이들의 다큐멘터리와, 이세계 로맨스물 팝콘무비,..

Film/Drama 2019.03.18

성인용 인사이드 아웃 _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0. 이란 영화를 아시나요? 2015년 혜성같이 나타나 다 죽어가던 픽사를 구해낸 2010년대 애니메이션사를 돌아볼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될 명작이죠. 주제의식과 아이디어, 이를 구축하는 이야기의 풍부함과 치밀함, 표현의 창의력과 유려함에 있어서 호평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만 뭐 이건 평론가들이 하는 얘기구요. 어느새 예비군도 끝난 찌들대로 찌들어 버린 아저씨에겐 장르 자체에서부터 심심하지 않을 도리는 없는 영화였죠. 아이디어는 신선하고 재밌는데... 이런 인사이드 아웃 비슷한 느낌의 매운 맛 영화는 어디 없을까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펀치 드렁크 러브 :: PUNCH-DRUNK LOVE』 입니다. # 1. 그 영화 여기 있습니다. 뒤집어 까놓은 양말 같은 영화입니다. 주인공 머릿속에..

Film/Comedy 201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