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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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71

부러우면 지는건가 _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0.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술잔과 안주로 곁들여진 환상의 밤거리가 스크린을 수놓습니다. 몇 모금 삼키다 보면 언제부턴가 술이 술을 마시는 것마냥 잔이 절로 넘어가듯, 영화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호로록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응큼한 변태에게 펀치를 날리는 순간,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선배의 자취방을 건너 야속하게 오르는 스탭롤을 보게 되실 겁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입니다. # 1. 능글맞은 변태에게 얻어먹는 술과, 화려한 등불의 축제 거리와, 삼삼한 인생을 조미하는 궤변과, 힘차게 내딛는 달리기와,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우리를 묶어줄 헌책의 바다와, 한눈에 반한 사랑이 담긴 사과로 내리는 비..

Film/Romance 2019.08.23

봄날의 수채화 _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

# 0. 섬세한 이야기꾼의 습작입니다. 날씨 좋은 날의 한가한 오후. 소소한 약속이 있어 찾은 카페. 작은 눈과 덥수룩한 머리의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작가. 한가로이 사람들을 구경하며 무심하게 눈앞에 놓인 테이블과 음료 두어 잔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를 낡은 재킷 주머니에 걸어둔 만년필을 꺼내 냅킨에 쓱쓱 써 내려간듯한 영화입니다. '김종관' 감독, 『더 테이블 :: The Table』 입니다. # 1. 유명 배우 '유진'과 전 남자 친구 '창석'의 대화는 다른 입장으로 인한 거리감을 다룹니다. 창석은 셀러브리티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진은 평범한 직장인의 마인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수차례 건네는 '변했다'란 말은 '이해할 수 없다'의 완곡한 표현이죠. 둘은 다른 이유에서..

Film/Romance 2019.04.24

개콘식 공감물 _ 어쩌다 로맨스,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 감독

# 0. 원래 계획은 를 리뷰하려 했습니다. 근데 관뒀어요. 창밖 미세먼지를 보자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었기 때문이죠.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편서풍대라고 대놓고 서해안 쪽에다 온갖 공단에 쓰레기 소각장까지 몽땅 몰아다 지어놓고 우리더러 국내 요인이나 찾아보라 말하는 중국의 뻔뻔함에 없던 암까지 생길 것 같습니다. 안 되겠네요. 오늘은 중국과 미세먼지가 없는 이세계물이나 하나 봐야겠습니다.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 감독, 『어쩌다 로맨스 :: Isn't It Romantic』입니다. # 1. 인기 없는 건축가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로코 히로인?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극혐 하는 뚱실한 건축가 주인공이 훤칠한 소매치기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명치에 꽂힌 팔콘 펀치와 중요부위 어퍼컷을 맞교..

Film/Comedy 2019.03.08

빌 머레이의 옥중일기 _ 사랑의 블랙홀, 해럴드 래미스 감독

# 0. 한국어 제목은 대체 누가 지은 걸까요? 어느 분이신지는 몰라도 영화의 개봉 연도를 생각하면 연배가 제법 되실 것 같긴 합니다만,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보건대 선생님은 좀 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사랑의 블랙홀이라니.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야! '해럴드 래미스' 감독, 『사랑의 블랙홀 :: Groundhod Day』 입니다. # 1. 원제는 입니다. 우리에겐 성촉절이라 번역되는 기념일이죠. 북미산 마멋의 다른 이름인 그라운드 호그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동굴에서 나오다 자신의 그림자를 뒤돌아보면 겨울이 6주 더 이어지고 그냥 나오면 봄이 온다는, 뭐 그런 설화의 날입니다. 어쨌든 겨울과 봄의 경계 즈음에 있는 날이니까 우리로 치면 '경칩' 정도 되겠네요. Groundhog day..

Film/Comedy 2019.01.24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삽니다. 선제시 _ 그녀, 스파이크 존즈 감독

# 0. 변태 감독이 부리부리한 눈이 매력적인 배우를 불러다 찐따 같은 헤어스타일에 콧수염을 붙인 다음 컴퓨터 프로그램과 폰섹스를 하게 만들고 까이게 만들어 0 고백 1 차임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주소록에 여자번호라곤 엄마밖에 없는 우리 모태솔로들도 기술적 특이점까지만 버티면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를 한 여친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도 주는 작품이죠. 한 작품으로 인싸에겐 빅엿을 먹이고 아싸에겐 정신승리를 안기다니. 역시 아카데미 각본상은 아무나 타는 게 아닙니다. 잠시 애인이 있다는 상상을 해봅시다. 아, 진정하시구요. 상상 정도는 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꼼냥 거리는 상상 연애는 각자 많이들 해 보셨을 테니 과감히 생략하고 있지도 않은 애인이 바람이 난 단계로 넘어갑시다..

Film/SF & Fantasy 2019.01.10

다시보기만 50번째 _ 첫 키스만 50번째, 피터 시걸 감독

# 0. 특별한 영화는 아닙니다. 꼭 봐야 할 명작도 흥행에 성공한 대작도 영화사에 남을 걸작도 아니죠. 매년 대여섯 편씩은 나오는 흔해빠진 할리우드식 가족형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아역 출신 배우 드류 베리모어 최고의 영화도, 미국식 코미디 드라마의 대가 아담 샌들러 최고의 영화도 아니죠. 국내 관객은 겨우 22만. 이 정도면 적어도 한국에선 망했다고 봐야겠죠.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글의 제목처럼 이 영화를 셀 수 없을 만큼 보고 또 봤습니다. 좋아하니까요. '피터 시걸' 감독, 『첫 키스만 50번째 :: 50 First Kisses』입니다. # 1. [주인공]은 [저주]에 걸려 있습니다. 저주는 금기와 의식 따위로 연결됩니다. 저주는 본인의 과오로 인해 생긴 ..

Film/Comedy 2018.12.15

언젠가 4월이었을 당신에게 _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 감독

# 0. 일본 영화 좋아하시나요? 일본 영화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애니메 말구요. 아뇨, 빌어먹을 코스프레 특촬물 말구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혹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같은 영화들 말이죠. 글쎄요. 저는 말보다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약간은 게슴츠레하게 뜬 눈을 슬쩍 사선으로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회상하는 사람. 피식 웃는 입꼬리는 한쪽만 가볍게 올라가고, 마음속 깊이 쌓인 무언가를 숨에 담아 긴 호흡에 내보내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언제든 자리를 뜰 수 있다는 듯 어설피 걸터앉은 엉덩이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한가로운 오후 하늘을 올려..

Film/Drama 2018.12.13

섹시한 가영씨 _ 밤치기, 정가영 감독

# 0. 영화를 좋아합니다. 좋은 감독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고작 두어시간 동안만에 수십년의 인생을 덤으로 사는 느낌이 든 달까요. 문지방을 넘는 데만 성공하면 수백명의 사람들이 수백억의 돈과 수년여의 시간을 들여 만든 온전한 세계를 단돈 만원에 접할 수 있습니다. 엘프와 드워프가 오크 머릿수를 세는 헬름 협곡을 지나, 수다스러운 조지 클루니와 함께하는 우주를 건너, 시가를 비스듬히 문 제이미 폭스의 묵음 D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거 될 수 있는 환상적인 취미죠. 매주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기 무섭게 영화관을 찾는 건 아직 영화보다 더 남는 장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보다 영화관이란 공간을 조금 더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커플들과 사랑하려는 사람들, 외로운 솔로들과 자녀 ..

Film/Romance 2018.11.15

물이 반이나 있네 _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 감독

# 0. 약쟁이 록스타 남편이 마누라 키워놓고 승천하자 마누라가 이제 다신 사랑 안 해 하는 영화입니다. 1937년 처음 시작한 뮤지컬 영화의 4번째 작이라고는 하는데요. 제일 최신작이 1976년 작이라는군요.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 처음 만들어서 박정희 총 맞기 3년 전에 리메이크하고 이번에 새로 만들었단 거네요.... 이 정도면 사실상 새 영화라 봐야겠죠. 브래들리 쿠퍼 감독, 『스타 이즈 본 :: Star is born』입니다. # 1. 감독은 섹시가이 브래들리 쿠퍼입니다. 돈이 썩어 나는 배우가 포커페이스 누나 데리고 영화 찍었습니다. 결과물은 뭐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합니다. 본인이 스타라 그런지 화려한 셀럽의 삶과 이면의 어둠을 섬세하게 표현하기는 하는데 연출에서의 장점은 딱 그거밖엔 없..

Film/Drama 2018.10.27

욕망의 항아리 _ 아이 엠 러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 0. 캐스팅만으로 영화가 예상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김명민이 아빠랍니다. 재난 터지고 가족 구하러 발버둥 치겠죠. 류승룡이 주연입니다. 약자를 바보로 묘사하다 얻어터지면서 눈물 짜내는 영화겠군요. 강하늘, 박서준 같은 배우들은 감독이 강요하는 '건강한 젊은이'를 기계적으로 연기할 겁니다. 조진웅은 바바리에 올백머리로 등장할 테고, 김윤석은 면도 안 하고 2시간 내내 뛰어다니겠죠. 임원희는 얼굴개그를 할 테고, 박철민은 말장난을 할 테고, 김정태는 누군가를 때리다가 마지막엔 역관광 당할 테고, 뭐가 됐든 고창석은 그 옆에서 귀엽게 웃고 있을 겁니다. 갑수 옹은 돌아가실 타이밍을 재고 있을 테고, 이경영은 두 상영관에 동시 출현 중일 테고, 김민교와 정상훈은 굳이 스크린에서까지 SNL을 찍고 있겠죠. ..

Film/Drama 2018.09.03

7000원에 영화 세편 _ 델마, 요아킴 트리에 감독

# 0. 영화의 서사는 간결합니다. 초능력 가진 짱짱녀 딸이 각성 전에 사고를 치고, 딸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엄마 아빠가 딸을 담그려 하지만 역관광 당하고, 마침내 능력을 각성한 딸이 여자 친구와 뽀뽀한다는 영화죠. 네. 이 영화는 백하ㅂ... 간결한 서사임에도 관객의 머릴 아프게 만드는 건 116분의 런타임 내내 쏟아지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 때문입니다. 그것도 적당히 아는 놈 알고 모르는 놈 몰라란 식으로 숨겨두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쏟아냅니다. 눈앞에다 흔들면서 '야! 이거 암시야, 암시! 뭐게! 맞춰봐!' 라 합니다. 관객들은 놀란만으로도 충분히 벅찹니다. 왜 북유럽 갬성 형님들까지 이러시는 건가요. '요하킴 트리에' 감독, 『델마 :: Thelma』입니다. # 1. 엄마는 하반신 불구입니다. 아빠..

Film/Thriller 2018.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