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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아요 _ 애수, 머빈 르로이 감독

그냥_ 2020. 10.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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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1940년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 구조를 가져와 세계 대전 전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변주한 후 '비비안 리'의 미모와 '로버트 테일러'의 잘생김을 끼얹고 워털루 브릿지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 쓸쓸한 서정성으로 마무리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머빈 르로이' 감독,

『애수 :: Waterloo Bridge』입니다.

 

 

 

 

 

# 1.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선남선녀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은, 앙숙인 몬테규-캐퓰렛 가문 간의 갈등이나, 영독 전쟁 따위의 저항하기 버거운 외부 요인에 의해 방해받게 됩니다. 달빛 창가에서의 세레나데나, 비 오는 날의 청혼과 같은, 짧지만 아름다운 데이트와 약속을 나눕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결투나 전쟁 따위의 문제적 사건들이 두 사람이 이루어지는 걸 가로막습니다. 상대가 목숨을 잃은 것이라 오해한 주인공은 스스로 자기 파멸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은 다시 한번 또 다른 비극적 선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네. 이 작품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실상 같은 결의 작품이라 할 수 있죠.

 

 

 

 

 

 

# 2.

 

다만 분위기나 뉘앙스에 있어서는 『애수』가 조금 더 처연하고 차분한 작품이긴 합니다. 세계대전을 계기로 유럽 전역에 걸쳐 현타가 세게 온 상태로 만든 여타의 허무주의적 작품들처럼 말이죠.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가문 간의 갈등이라는 개인 간인 문제를 다루는 탓에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통속적이라 한다면.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가르는 대상은 국가라는 추상적 존재들 간의 압도적인 전쟁이기에, 보다 절대적인 운명론적 비극의 성격이 강합니다. 결말에서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쨌든 가문 간의 화해라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귀결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한 명의 주인공을 살려둠으로써 절망적인 비애감을 더욱 가미합니다.

 

 

 

 

 

 

# 3.

 

영화에서는 '행운'이라는 관념을 직설적 해석과 역설적 해석의 중첩으로 활용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과 '비극'이 끊임없이 엇갈리는 까닭에 어느 쪽에 '행운'의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기 때문이죠. '마이러'와 '로이'가 주고받는 '행운의 마스코트'가 의미하는 방향성이나, '키티'가 두 사람을 엮으며 "내가 '좋은 일'을 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라 말하는 대사를 비롯한 각 지점마다의 긍정의 어휘들 모두가 그러합니다.

 

 

 

 

 

 

# 4.

 

'사랑'과 '생명'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이 만드는 절망감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 감정을 느끼는 주체의 존재보다 더욱 위대한 감수성으로 승화된 사랑의 숭고함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다 열렬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을 그리는 희극적 로맨스와 대조적인. 가히 사랑 그 이상의 사랑을 그리는 유서 깊은 비극적 로맨스의 고전古典이라 할 법하죠. 

 

 

 

 

 

 

# 5.

 

'비비안 리'의 발레 공연곡 『백조의 호수』, 두 사람이 추는 『작별의 왈츠』는 완벽한 남녀가 나누는 완벽한 데이트입니다. 달빛 발코니 앞에서 나눈 '로미오'와 '줄리엣'의 맹세가 부럽지 않은 아름다운 장면들이죠. 촛불 꺼진 무도회장의 키스신에서 실루엣으로 두 사람을 담아내는 연출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심미적일 뿐 아니라 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랑이 열렬하고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름답고 순수하며 고결한 사랑이라는 걸 멋지게 은유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듯한 두 사람의 완벽한 데이트가 결국 눈 앞에서 완성되지 못하고 말았다는 모순된 결말은, 관객을 웃으며 눈물짓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 6.

 

무자비하게 잘생긴 '로버트 테일러'도 물론 대단하지만. '비비안 리'의 미모와, 미모 그 이상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녀만큼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미모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타임즈』의 논평을 기꺼이 동의하게 합니다.

 

'마이러'의, 발레리나에서 백수를 지나 거리의 여자가 되는 동안의 표정과, 눈빛과, 억양과, 자세와, 걸음걸이가 너무도 명확한 메시지 하에 구분되어 표현됩니다. 각 경제적 상황마다 주변 인물을 대할 때와, '키티'를 대할 때와, '로이'를 대할 때의 정서적 간격을 정확히 묘사합니다. 특히나 워털루 역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로이'를 바라보는 동안의 표정과 눈빛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녀의 미모와 연기력은 80년의 시간을 넘어 2020년의 관객까지 가볍게 압도합니다. 

 

 

 

 

 

 

# 7.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군인이 결혼을 하려면 상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나, 법적으로 오후 3시 이후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대목 등은 지금의 시선에서 제법 신선합니다. 통속극의 장르적 변주를 80년의 엇갈린 시대성이 충족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되는군요. 신선한 복고풍이란 의미의 뉴트로를 영화적으로 목격하는 감각이랄까요.

 

 

 

 

 

 

# 8.

 

애초에 80년도 더 전에 개봉한 고전 영화인 데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하더라도 고전적인 플롯의, 신뢰도 높은 안정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선남선녀의 열렬한 사랑과 엇갈린 운명을 다룬 비극적 로맨스에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경험의 스탠더드를 제공하는 작품입니다. 여름 내내 고생한 선풍기를 집어넣을 즈음의 선선함과 서늘함의 중간 어딘가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 이런 오래된 영화, 나쁘지 않죠. '머빈 르로이' 감독, 『애수』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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