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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_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그냥_ 2021. 3.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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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넷플릭스의 <레베카>를 보려 했습니다. 'DELING' 님 댓글 덕에 뮤지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살펴봤더니 리메이크 작이더군요. 원작은 무려 1940년 작, 그것도 히치콕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기에 까흠짝 놀랬더랬죠. 더 놀라운 건 그 마저 1939년에 출간한 '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시 무식하면 놀랄 일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80년 전 책을 찾아보기엔 너무 게으르고 뮤지컬은 볼 방법이 없다는 핑계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영화 두 편 연이어 보는 것으로 적당히 갈음하려 합니다. 기대되는군요. 오래전 명곡을 리메이크 버전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듯 영화 역시 같은 서사를 다루는 두 창작자의 시각을 적절히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니까요.

 

우선은... 1940년 작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레베카 :: Rebecca』입니다.

 

 

 

 

 

# 1.

 

'히치콕스러운' 영화는 아닙니다. 꺼무위키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의 입김이 강하게 끼친 작품이라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 거의 손도 못댔다 기록하고 있는데요. 정확한 내용인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감독의 영향력은 완성도에서만 강하게 확인될 뿐입니다. 특유의 색채는 분명 유수의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옅습니다.

 

서스펜스로 관객의 심정을 조였다 풀었다 반복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예상하신다면 의외의 접근에 감독 이름을 다시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서사와 관계를 조립하는 플롯 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죠.

 

영화를 유독 제 멋대로 보는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작품을 보는 내내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기생충이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하더라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작품 전반에 깔린 계급의식이라거나, 극의 분위기를 통제하는 강렬한 공간 특히 '저택'의 활용법. 서사와 공간과 심리 상태 모두를 지배하는 강한 수직성과, 호화스러운 집과 대조적이게도 음습하게 침전되는 지하실과 낡은 별장. 긴장감이 작동하는 순간 폭발력을 과시하는 가정부 '문광'과 '댄버스 부인'의 유사성, 주연이 부재한 상황에서 조연들만으로 극이 끝까지 흘러가는 서사의 전개 방식과, 이야기를 지탱하던 시스템이 장렬하게 무너져 내리는 파격적 결말 등.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이 '드라마'에서 출발해 '블랙 코미디'를 지나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주되듯, 이 영화 역시 '로맨스'에서 출발해 '호러'를 지나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주되고 있기도 하구요.

 

 

 

 

 

 

# 2.

 

영화는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세 단편이 접붙여진 옴니버스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극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장르적 변주를 선보입니다.

 

첫 번째 파트는 전형적인 백마 탄 왕자님 식의 고전적 로맨스를 따라갑니다.

 

감독 스스로도 이후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 된 '나'를 신데렐라라 부르며 고백할 정도죠. 선망의 대상인 '드 윈터'가 우악스러운 '디드스 반 하퍼' 부인의 비서라는 상대적으로 미천한 신분의 여주인공에게 한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는 서사니까요.

 

로맨스로서의 장르적 재미는 썩 흥미롭지만 이야기 구조상 다음 장으로의 전개를 위한 단서 쌓기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않습니다. 이후 '맥심'이라 불리게 될 '드 윈터'와 주인공 '나'의 만남, 사별한 전처 '레베카'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 '드 윈터'가 가진 전처에 대한 비밀과 트라우마, '반 하퍼' 부인의 대사를 통한 비극적 전개에 대한 암시 같은 것들 말이죠. 그 외에 '반 하퍼' 부인의 자뻑 개그를 소소하게 엮어 관객이 편안하게 영화에 안착하게끔 돕는 친절함도 엿볼 수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사실 썩 재미있는 파트는 아녔습니다. 뭐랄까요, 감독마저 크게 애착이 느껴지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파트였달까요.

 

로맨스 파트를 지배하는 공간은 당연히도 몬테 카를로의 호텔입니다. 대표하는 씬을 하나 꼽아야 한다면 옷을 갈아입으며 '뉴욕과 맨들리 중 어디가 더 좋냐' 묻는 청혼 장면이라 할 수 있겠죠. 이 이야기를 구태여 짚는 이유는 각 장르를 대표하는 '공간'과 '씬'에 대한 연출이 주요 서사와 주제 의식으로 소집되기 때문입니다.

 

 

 

 

 

 

# 3.

 

갑자기 추워집니다. 장대비까지 쏟아집니다. 저택 맨들리군요. 비에 홀딱 젖어 움츠러든 '나'를 맞이하는 엄숙한 검은 옷의 하인들과 그들을 대표해 화면을 고압적으로 짓누르는 '댄버스 부인'입니다. 두 번째 파트, 호러의 시작이죠.

 

확연히 로맨스보다는 호러나 스릴러 쪽 연출이 더 편안합니다. 감독은 이전까지의 무난한 연출과는 달리 조금 더 자유로움을 뽐냅니다. 영화의 화자인 '나'가 느끼는 고립감을 화려하지만 텅 빈 듯한 특유의 공간 연출 & 조명 연출, 인물의 배치를 통해 묘사합니다. '나'의 공포감은 그녀의 뒤를 끊임없이 쫓으며 화면과 공간을 빼앗듯이 차지해 나가는 '댄버스' 부인의 동선과 표정을 통해 묘사합니다. '나'의 열등감은 '레베카'를 의미하는 'R'이 새겨진 몇몇의 오브제들을 활용한 미장센을 통해 묘사하죠.

 

특별한 서사적 전개 대신 '나'가 느낀 저택의 분위기와 심리 묘사로 가득한 파트이기에, 맨들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장무도회의 장면까지는 서사에 소비할 집중력을 과감히 연출해 투자해 작품을 탐미하듯 꼭꼭 씹어 삼킬 수 있었습니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군요.

 

 

 

 

 

 

# 4.

 

남편 '맥심'과 '댄버스' 부인으로 대표된 귀족 문화 속에서의 규율 공포, 자신을 공간을 끊임없이 빼앗기며 내몰리는 관계 공포, 스스로 생산한 압도적 존재와의 끊임없는 비교로 인해 무너져내리는 내면의 자존 공포라는 각기 다른 세 층위의 공포가 분리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서서히 질식할 듯 옥죄는 연출이 대단합니다. 전반부를 모조리 로맨스에 투자했지만 거장에게 공포감을 만드는 덴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증명합니다.

 

가장무도회에서 '댄버스' 부인의 술책에 낚여 '캐롤라인 부인'의 코스튬을 했다가 남편에게 호된 꾸중을 듣고 만 주인공. '레베카'의 방에서 오열하다 은연중에 창 밖으로 뛰어내릴 것을 종용당하는 순간의 장면. '나'가 느낀 공포의 성격이란 것이 물리적인 공포가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만 같은 내면의 공포라는 것을 선명히 하는 대목이자, 이 영화의 두 번째 장르 호러를 대표하는 씬입니다. 당연하게도 대표하는 공간은 역시나 '맨들리', 그중에서도 '레베카'가 쓰던 바다가 보이는 서쪽 침실이 되겠군요.

 

아참, 특히나 이 대목에서 '나'를 몰아붙이는 '댄버스' 부인 역의 '주디스 앤더슨'의 차가운 표정과 나긋한 말투의 위화감은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탁월합니다. '저 장면의 저 연기 하나를 보기 위해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거구나' 라는 느낌이 직관적으로 전달된달까요.

 

 

 

 

 

 

# 5.

 

후반부는 정신병자 '벤'과 부둣가에 방치된 별장입니다. 감독은 '맥심'으로 하여금 '레베카'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사연을 모조리 실토하게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레베카'라는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열등감을 "내가 레베카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믿었소? 난 그녀를 증오하오!" 라는 대사를 통해 일거에 해갈해 버립니다. 공포는 여기까지. 마지막 파트,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거죠.

 

종반부에서는 감독이 의도한 대로 감수성에 충만하던 뇌를 잠시 쉬게 하고 이성과 논리를 쫓는 뇌를 활성화하게 됩니다. 저택과 '레베카'에 얽힌 미스터리를 흥미진진하게 쫓게 되죠. 이 파트를 대표하는 장면이자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의심의 여지없이 보이지 않는 '레베카'의 움직임을 관객의 상상 속에 집어넣는 카메라 워크일 겁니다. 공간은 당연히 별장일 테구요.

 

 

 

 

 

 

# 6.

 

보트에 남겨진 '레베카'의 시신을 둘러싼 재판이 전개되는 가운데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진 '레베카'에 대한 욕망과 이해관계가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미스터리가 정리되며 영화 역시 자연스럽게 막을 내리죠. 지금까지 짚은 각 장르를 대표하는 공간을 엮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몬테 카를로의 호텔'에서 '맨들리'로 내려온 후

'맨들리'에서 다시 '낡은 별장'으로 내려가는 이야기

 

 

# 7.

 

누군가 제게 작품의 주제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라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듯 합니다. "레베카는 없다."

 

'레베카'. 누가 그녀를 보고 있는가, 누가 어떤 것을 알고 있는가, 누가 어떻게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누가 어떻게 그녀를 기억하는가에 따라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레베카'와 무수히 많은 '맨들리'가 등장합니다. 누군가에겐 욕망이, 누군가에겐 공포가, 누군가에겐 사랑이, 누군가에겐 질투가, 누군가에겐 복수가, 누군가에겐 허구가 되기도 하죠. 영화의 제목은 <레베카>이며, 작중에는 무수히 많은 각자 나름의 '레베카'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내내 '레베카'는 단 한순간도 등장하지 않고 관객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온전한 '레베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 8.

 

비단 '레베카'만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에는 사실 아무도 없죠.

 

로맨스가 벌어지는 동안 '맥심'은 범죄의 불안감으로부터의 도피처를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랑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공포가 벌어지는 동안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와 텅 빈 공간으로부터 공허한 술래잡기를 했을 뿐이죠. 사건을 해결해야 할 '줄리안' 대령은 끝까지 사건을 실체를 알지 못하고, '베이커' 박사는 환자의 진짜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며, '파벨'은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동안, '댄버스' 부인은 수년 전 죽어 사라진 사랑을 억지로 붙잡다 불에 타버리고 맙니다. 모두의 허상으로 존재하던 '레베카'라는 인물은 허상이 벗겨지고 그 실체가 드러나자 역으로 허상으로 돌아갑니다. 이를 물리적으로 표현한 것이 작품의 마지막. 불에 타 무너져 내리는 '맨들리'라 할 수 있겠죠.

 

# 9.

 

... 화자인 '나'와 함께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서너 가지 장르로 대변되는 각기 다른 '레베카'를 여행하는 작품입니다. 필연적으로 작품의 성공은 한 작품 안에서 최대한 많은 장르를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라 할 수 있으며, 히치콕은 그 목표를 완벽히 수행합니다.

 

솔직히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내심 이어 볼 리메이크작이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 사실 리메이크가 너무 불리한 조건이긴 하거든요. 원작이 워낙 대단한 거장의 영화인데다 시대성이 혹 있었을지도 모를 아쉬운 점을 가려준 데 반해 리메이크작은 그런 쉴드도 없이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다 까발려진 상태에서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불필요한 선입견 없이 기대를 가지고 봐야겠죠? 다음은 '벤 휘틀리' 감독의 <레베카>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레베카>였습니다.

 

 

탐정놀이의 목적 _ 레베카, 벤 휘틀리 감독

# 0.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리뷰 말미에 말씀드린 대로, 불필요한 선입견 없이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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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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