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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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개봉 13

김치피자탕수육 _ 유로파 리스트,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 0. 파운드 푸티지 베이스에 아마겟돈식 영웅 서사랑 크리쳐 앤딩을 비비면?!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유로파 리스트 :: Europa Report』입니다. # 1. 이상하겠죠. 실제 이상한데요. 그런데 생각보다는 또 볼만합니다. 명작은커녕 수작도 조금 버겁습니다만 컬트적인 재미가 없다 말하는 것은 그것대로 가혹합니다. 세상 건조하고 차가운 파운드 푸티지에 동료애 넘치는 뜨뜻한 갬성 서사를 더하고, 고증이 핵심인 우주 탐사 SF와 개 뜬금 판타지 크리쳐물을 비벼놨는데 덜컹거리긴 해도 어찌어찌 돌아는 갑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함으로 인한 불가분의 장단점이 매우 뚜렷합니다. 극단적인 퓨전 요리인 탓에 빈말로라도 대중적이라 말할 순 없지만 동시에 좋아하시는 분들은 맛있게 드시기도 하는 김피탕 같은 영화..

Film/SF & Fantasy 2022.12.04

Skip _ 투 마더스, 안느 퐁텐 감독

# 0. 두 절친 아줌마가 서로의 아들을 바꿔 연애하는 영화, 즉 불륜물입니다. 관객에 따라선 작품을 보기도 전부터 소재의 파격만으로 혀를 찰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훈정' 감독의 『V.I.P.』 리뷰에서도 말씀드렸듯 영화의 소재가 그 자체로 문제시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궁금해하고 즐겨야 할 건 소재의 파격성이 아니라 소재로부터 감독이 무엇을 발견하고 있는가여야 하는 거겠죠. '안느 퐁텐' 감독, 『투 마더스 :: ADORE』입니다. # 1. 전반부는 이들의 관계를 최대한 긍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위 판을 까는 작업이죠. 아들들은 키 크고 잘생긴 몸짱 출신 서핑 중독자들입니다. 엄마들은 해녀보다 더 자주 물질을 하는 수영의, 보다 정확히는 '수영복'의 화신들이죠. ..

Film/Romance 2021.12.10

그대가 원하면 _ 언어의 정원, 신카이 마코토 감독

# 0.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さしくもり あめもふらぬか きみをとどめむ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ふらずとも わはとどまらむ いもしとどめば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니 드리운 구름에 비라도 오려나. 당신을 붙드네. 하늘에 천둥이 여리게 울리고 비님이 안 와도 이 몸은 있겠네. 그대가 원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언어의 정원 :: 言の葉の庭』입니다. # 1. 스타일이나 장르와 무관하게 일정 궤도 이상에 오른 감독 대부분은 상당한 수준의 치밀함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때론 중2병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감성적인 작품을 하는 신카이 마코토 역시 예외는 아니죠. 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논리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감히, 엄격한 형식논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분법적 구조라 정의한다 ..

Film/Animation 2021.06.05

습작의 정석 _ 쇼트피스, 모리모토 코지 감독 외 4인

# 0. 한 마디로 깔끔하게 소개할 수 있을 작품입니다. 그림 즐기는 영화. 며칠 전 에서 메시지고 나발이고 연기를 즐기시라 말씀드렸는데요. 이 작품은 메시지고 나발이고 영상미를 즐기시라 말씀드려야겠네요. '모리모토 코지' 감독 외 4인, 『쇼트피스 :: ショート・ピース』입니다. # 1. '모리모토 코지' 감독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오프닝입니다. 신사 앞에 엎드린 소녀가 토깽이 따라가더니 신시사이저 음악에 맞춰 옷 갈아입습니다. 언제나처럼 뭔 의미인지는 쥐뿔 모르겠습니다만 언제나처럼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겠죠. 특유의 가슴 뛰게 하는 분위기와 이미지,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어 '모리타 슈헤이' 감독의 ,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 '안도 히로아키' 감독의 , '카토키 하지메' 감독의 의 네 ..

Film/Animation 2021.05.06

마취제 _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0. 차갑고 무심한 데다 자기중심적인 고양이. 훈련할 수 없는 게으른 털 뭉치. 과연 그럴까요? BBC 다큐멘터리, 고양이의 은밀한 사생활 :: The Secret Life of the Cat 입니다. # 1. "인간에게 강아지만큼이나 친숙한 고양이의 매력을 파헤친다! 전문가의 협조 아래, 고양이 열 마리의 목에 카메라와 GPS를 설치해 이들의 은밀한 일상을 추적한다!!" 라고는 합니다만 뭐 언제나처럼 딱히 은밀하지도 개인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무난~한 고양이 영화예요. 조목조목 살펴보면 하자가 넘쳐나는 대단히 편의적이고 게으른 구성입니다. 세상 귀여운 고양이들이 잔뜩 나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양이는 쥐뿔 관심 없고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너'의 만족만을 위한 다큐멘터리거든요. 나름 ..

대환장파티 _ 디스 이즈 디 엔드, 에반 골드버그 / 세스 로건 감독

# 0.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순서대로 자리합니다. 앞사람이 말한 단어의 마지막 글자로 시작하는 새로운 낱말을 늘어놓아야 합니다. 단어의 길이에 제약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두 글자면 두 글자, 세 글자면 세 글자 글자 수를 맞춰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두음법칙은 적용 가능합니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도 허용되곤 하지만 재미를 위해 썩 권장되지는 않습니다. 외래어나 외국어, 고유명사나 인명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느냐, 그러지 않느냐를 놓고 변주를 줄 수도 있죠. '에반 골드버그', '세스 로건' 감독, 『디스 이즈 디 엔드 :: This Is the End』입니다. # 1. 플레이어 간에 합의된 룰에만 부합한다면 모든 어휘는 허용됩니다. 다음에 왜 가 나오는지, 죄 없는 은 왜 매번 에..

Film/Comedy 2021.04.07

회화의 역습 _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 0. 모티브가 되는 작가의 작품들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의 경험까지 통째로 이식해 온 듯한 영화입니다. 아니 어쩌면 반격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압도적 상업성으로 무장한 현대 영화라는 막강한 대중예술에 폐퇴한 근대 회화 미술의 역습이랄까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셜리에 관한 모든 것 :: Shirley: Visions of Reality』입니다. # 1.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의 작품 13점을 가져다 13개의 씬으로 재구성한 후 이어 붙여 만든 영화입니다. 때문에 모티브가 되는 고독의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구태여 분리해 다룰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제 얕은 지식으로 작가의 미술 철학에 대해 논하는 게 가당치 않다는 걸..

Film/Drama 2020.06.02

Less is More _ 시저는 죽어야 한다, 타비아니 형제 감독

# 0. 재소자들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무엇을 발견하고 있었던 걸까. 감독은 연기하는 재소자들로부터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관객은 이들의 극을 보는 동안 무엇을 목도하고 있었던 걸까.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형제 감독, 『시저는 죽어야 한다 :: Cesare deve morire』입니다. # 1. 타비아니, 워쇼스키, 샤프디, 코엔 등 대체로 무슨무슨 형제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퀄리티 이전에 무지막지하게 어려울 가능성이 높거든요. 이 영화 역시 그러합니다. 각각이 요소들은 여타 형이상학적 예술 영화들에 비해 이례적일 정도로 단순하고 명쾌한 편이긴 하지만, 그 단순한 것들이 조립되는 과정 속에 숨겨진 함의의 깊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재소자입니다. 동시에 배우죠. ..

Film/Drama 2020.05.14

총과 피의 테마파크 _ 장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언제나처럼 환상적인 오프닝입니다. 지금부터 보게 될 작품이 165분에 달하는 런타임에 걸맞은 긴 호흡의 영화라는 것과, 그 긴 호흡 동안의 모든 서사가 결국 이 잘생긴 노예 한 명을 둘러싼 간결한 이야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선언이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풍부한 음장의 멋들어진 ost Django (by Luis Bacalov) 가 끝남과 동시에 감각을 제한하는 한밤의 숲으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멋들어진 장총을 보며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찰나. 이빨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치과의사가 의도된 방심을 연출합니다. 잠깐의 위트를 발판 삼아 다시 무자비하게 집중을 끌어올린 감독은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What's your name?" '쿠엔틴 타..

Film/Action 2020.04.15

신발 튀김 _ 콩나물, 윤가은 감독

# 0. 화면은 정갈하니 좋습니다만 이야기의 완성도는 글쎄요. 솔직히 별로입니다. 아이의 모험에 자연스러움이라곤 없습니다. 발로 뛰어 아이들의 하루를 취재하고 관찰한 것을 엮었다기보다는, 어른인 감독이 테이블에 앉아 상상한 후 무신경하게 이어 놓은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인과는 완전히 박살 나있고 모든 상황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가며 감독의 의도에 편리하게 복무하고 있죠. 앞뒤가 맞는 대목이 없다 보니 인물의 설득력 역시 망가집니다. 관객은 아이를 보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아이의 하루를 상상한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요. '윤가은' 감독, 『콩나물 :: Sprout』 입니다. # 1. 영화가 시작되기 위해 아이는 심부름을 나섭니다. 모험 같아 보이기 위해 오토바이가 한대 지나갑..

Film/Drama 2019.12.08

소년의 앞날에 축복을 _ 창 너머 춤을, 랄프 마치오 감독

# 0.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는 창 너머의 댄서를 봅니다. 댄서의 유려한 자태를 동경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움직임을 사랑합니다. 보지 못하는 날이면 슬픔에 잠깁니다. 슬퍼할 때면 함께 가슴 아파합니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눈빛을 보고 싶어 합니다. 댄서와의 춤을 꿈꾸며 좁은 방 음악도 없이 홀로 춤을 춥니다. 댄서를 보고 난 후 아이는 그 전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사랑과 동경과 질투와 슬픔과 분노와 호기심과 꿈. 이 모든 정서들의 총합을 한마디로 정의하라 한다면 '성장'이라 할 수 있겠죠. 네. 이 영화는 부모의 그늘에서 보살핌 받던 아이가 소년으로 성장하는 영화입니다. '랄프 마치오' 감독, 『창 너머 춤을 :: Across Grace Alley』 입니다. # 1. 곁눈질로 엿볼..

Film/Drama 2019.08.17

완벽 ⅱ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완벽 ⅰ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 0. 천재 감독이 인생 역작을 만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 Gravity』입니다. # 1. 관객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예술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동 morgosound.tistory.com # 7.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스톤 박사와 코왈스키의 눈앞에 우주정거장 ISS가 보입니다. 버틸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산소와 연료가 긴장감을 더하죠. 중력을 잃고 표류한다는 건 위태롭고 숨 막히는 일입니다. 충분하지 못한 연료 탓에 안정적으로 ISS에 닿지 못한 두 사람. 우주 공간으로 튕겨나가려는 찰나 가까스로 박사의 발에 끈이 걸립니다만 헐거운 끈은 두 사람의 체중에 부합하는 운동량을 버텨내지 못합니다. 이대로..

Film/SF & Fantasy 2019.02.22

완벽 ⅰ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 0. 천재 감독이 인생 역작을 만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 Gravity』입니다. # 1. 관객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예술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동원해 시각과 청각을 흔들 수 있는 방법을 이상적인 형태로 총집합시켜놓은 듯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600km 상공에선 생명이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상투적인 문구와 함께 시작합니다. 사실 일련의 문구들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관객이 스크린을 가까이에 있는 평면으로 받아들이게끔 하기위해 동원된 문장에 불과하죠. 관객의 등을 의자에서 떼어 내 스크린 앞으로 끌어당긴 감독은 연이어 600km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구를 압도적인 스케일로 보여줍니다. 눈 앞에 있던 평면에 어마어마한 깊이감이 생깁니다...

Film/SF & Fantasy 201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