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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Social

분풀이 _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칼 힌드마치 감독

그냥_ 2022. 7.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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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축구도 좋아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구요, 아주 아주 아주 라이트 한 팬이죠. 팀은 영국에 위치한 병기창 축구 클럽이라는 곳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구단주는 스탠 크랑키라는 인물인데요. 이 인물이 슈퍼 리그라는 축구의 종말(?)을 불러올 뻔 한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이라 다큐를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주워들은 바는 있었습니다. 물론 마니아분들이 아시는 것만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요.

 

 

 

 

 

 

 

 

칼 힌드마치 감독,

슈퍼 리그, 축구의 종말 :: Super Greed, The Fight for Football』입니다.

 

 

 

 

 

# 1.

 

레알 회장 페레즈의 주도 하에 15개 메가 클럽 구단주들이 모여

"자잘한 팀들 재끼고 대륙 통합 리그를 만들어 우리끼리 다 해 먹어보자!!!"

라는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 2.

 

강등이 없기에 생존을 위한 낭비적 치킨런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클럽이든 적당 기간 탱킹을 거치면 우승도 노릴 수 있기에 절대적 강자가 나오지 않아 영속성도 개선될 테죠. 우월한 경쟁력의 프랜차이즈로만 구성된 리그는 ott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과의 연계도 수월할 겁니다. 공급처 단일화는 시장 확보에 있어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각 클럽의 지역 기반은 다소 희생되겠습니다만 글로벌 프랜차이즈화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성 향상을 보장할 겁니다. 똑똑한 미국인 엉아들이 다~ 계산기 두드려 보고 하는 짓일 테니까요.

 

유럽식 스포츠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식 스포츠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썩 자연스러운 모델입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대륙 단위 메가 클럽들의 모임으로 리그를 만들어 모든 경기를 빅매치화 해 최대한의 경제적 수익 모델을 구현해 보자. 쉽게 말해 축구 버전의 MLB, NBA, NFL화인 것이죠. 중간중간 슈퍼 스타들의 공연도 끼워 팔아먹고, 다큐도 만들어 팔아먹고, 굿즈도 만들어 팔아먹고 하면 아이 좋아. 얼마나 달달하겠어요.

 

 

 

 

 

 

# 3.

 

슈퍼리그 프로젝트의 명분은 기술 발전에 따른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놓인 축구 산업의 총체적 위기에서부터 얻습니다.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를 보면 컬러 tv의 보급에 맞물려 불안해하는 영화 산업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데요. 그와 비슷한 성격의 위기의식이라 할 수 있겠죠.

 

주적은 게임입니다. 강력한 접근성과 효율성, 높은 자극을 겸비한 게임 산업의 어린 고객층 독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젠 음악과 영화 등의 경제 규모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성과를 얻고 있는 게임이죠. 게임은 순식간에 스포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됩니다. e-Sports죠. Boxer와 Moon과 Faker를 보유한 한국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새삼스럽기는 하지만요. 여하튼 이-스포츠는 유튜브와 트위치 등의 스트리밍 플랫폼과 최고의 궁합을 보여주며 새로운 고객층과 부를 동시에 쓸어 담고 있습니다. 축구가 연계하고 있는 tv나 신문과 같은 올드미디어와 대조적이죠.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옥자>의 넷플릭스 상영을 놓고 극장에 걸지 않으면 영화가 아니라는 둥 투덜거리던 영화판 네임드 영감들이 언제부턴가 입 꾹~ 다물고 있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 음악 등의 콘텐츠 사업보다 물리적 제약을 더 크게 받는 스포츠가 느끼는 위협,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포'는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비단 축구뿐 아니라 야구나 럭비, 농구 등 기성 스포츠 전반에 걸쳐 평생 고객이 되어줄 어린 관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죠. 하다못해 미식축구에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cg로 얹는 시대니까요. 여하튼 매년 영입 시장마다 수천억을 소비하고 이듬해에 수천억을 벌어들이는 식의 규모의 경제로 돌아가는 메가 클럽들은 더욱 큰 위협을 느꼈을 겁니다. 캐시 카우로서 기능하고 있는 리딩 클럽의 위기는 곧 산업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것이 자명합니다.

 

 

 

 

 

 

# 4.

 

여기에 UEFA의 돈에 환장한 듯한 탐욕적 운영과, 무지성 경기수 늘리기와, 권력층 부패 따위가 명분을 더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챔스의 권위에 힘입은 유에파로부터 헤게모니를 되찾고 싶은 FIFA의 야망도 얽혀 있구요. 융통성도 공정성도 떨어지는 각국 FA의 태만한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도 함께 올라탑니다. 돈 벌 각이 날카롭게 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플랫폼 사업자들이 군침을 흘리며 프로젝트의 경제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막타는 근년 간 만악의 근원이었던 코로나가 치게 됩니다. 팬더믹은 프로젝트 기획자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후 오판으로 결론 나게 되지만 어쨌든) 자신감으로 발현되기도 했습니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작동원리가 유사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출범이라는 성공 모델에 대한 분석도 자신감에 한몫했을 테죠.

 

 

 

 

 

 

# 5.

 

반면,

 

각각의 클럽들은 100년이 가뿐히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만큼 지역에 뿌리내린 팬층이 작게는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에 이르게 되는데요. 그들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클럽이 배신하는 것과 같은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방식이 갑작스럽고 또 폭력적이었던 것도 정서적 동요에 불을 질렀을 테죠. 박탈감의 정도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K-리그의 몇몇 연고지 이전 사태에 대한 팬들의 격앙된 반응만 보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에버튼, 레스터, 발렌시아, 비야레알, 샬케 등 슈퍼리그에 포함되지 않은 각국 1부 클럽들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슈퍼리그에 가입된 클럽들은 강등되지 않는다'라는 조항은 역으로 다른 팀들은 합류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으니까요. 영원히 2등 리그, 군소 리그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부리그의 상황은 더욱 처참할 겁니다. 사실상 낙수효과로 유지되고 있는 피라미드 체계에서 가장 위에서 물을 받는 빅클럽이 물동이를 지고 탈주하는 상황이란 곧 3부 이하 군소 리그들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을 겁니다. 풀뿌리가 말라버릴 것이라는 예측은 축구 산업 전반을 위해서라는 슈퍼 리그 발촉의 명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죠. 유럽 축구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은 허울일 뿐 '그들'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비판은 분명 설득력을 가집니다.

 

협회 입장에서도 헤게모니를 잃게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여기는 정말 존폐의 위기와 다를 바가 없었을 테죠. 여론은 생각보다 더 협회 측에 우호적으로 흘러갑니다. 플레이에 개입하지 않는 중립적 관리 기구가 있는 것과 달리, 각 클럽이 플레이어 겸 관리 주체로 그 권한을 독점하는 것은 일반으로부터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각국 정부 입장에서도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자국 대기업이 해외로 도주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클럽의 이탈을 지켜볼 수 없는 상황 + 한창 진행되던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한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누적되던 상황에서 외부의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했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이례적으로, 사실상 슈퍼리그를 감행할 시 구단을 폭파(당시 흘러나온 발언이나 제재의 수위를 보면 과장이 아니었죠.)시켜버릴 것이라는 강경한 협박이 일사불란하게 전개됩니다. 이게 결정적이었죠.

 

 

 

 

 

 

# 6.

 

슈퍼리그 붕괴의 원인엔 유럽 축구라는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프로젝트라는 데 있습니다. 지역 팬들은 구단의 비윤리적 선택에 분노합니다. 버려진 팀들은 상대적 박탈에 절망합니다. 약소 리그들은 운영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대적 빈곤에 처해지겠죠. FA나 유에파는 물론이거니와 각국의 정부 차원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의 런은 심각한 손실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연합니다.

 

여론과 정부 기관, 관련 전문가들의 힘을 한껏 업은 언론의 속보와 난타가 쏟아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단들, 특히 반발과 제제의 정도가 가장 심했던 PL 빅 6가 성명서라는 이름의 항복 선언을 던지게 되며 쿠데타는 3일 천하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이 사단의 주인공인 페레즈가 회장으로 있는 레알의 정도가 조금 더 버티며 배짱을 부려보았지만 결국 무산되며 일련의 프로젝트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죠.

 

... 여기까지가 아주 라이트 한 팬이 대충 기억하는 슈퍼리그의 전개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자세한 건 꺼무위키를 찾아보시구요. 여하튼 이런 일이 벌어지고 몇 년 후 공개된 다큐멘터리가 지금 이 작품입니다. 그것도 '축구의 종말'이라는 이를 아득바득 갈고 만든 듯한 분노 섞인 부제와 함께 말이죠.

 

 

 

 

 

 

# 7.

 

당연히 이 작품은 승자들이 기록한 승리의 역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죽은 슈퍼리그의 시체 위에 올라 트리플 악셀을 도는 것과 같죠. 오프닝에서부터 그 목적은 명백합니다. 라리가 회장 '하비에르 테바스'의 첫마디죠.

 

"악당들도 인터뷰했나요? 플로렌티노 페레스나 아나스 라그라리요."

 

하지만 축구 팬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흥미로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감정적인 분풀이를 넘어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다큐멘터리로까지 확장되려면 필연적인 내용들. 이를테면 슈퍼리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유에파와 피파를 비롯한 각국 사무국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승자들에겐 뉴비 유입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축구가 새로운 시대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있는가. 라는 등의 문제를 논할 수 있을까라는 점입니다.

 

 

 

 

 

 

# 8.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실망스럽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승강제 피라미드의 가치로 대변되는 기성의 유럽식 스포츠 모델의 당위를 동어반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대했던 '그래서 대안은?' 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품은 회피합니다. 당시에도 페레즈의 '방법'이 틀렸다는 말은 자신 있게 전개하지만 그의 '진단'이 틀렸다는 것은 증명하는 데 실패했었는데요. 몇 년이 지난 후의 이번 다큐멘터리에서까지 그러합니다. 슈퍼리그 무산과 별개로 유에파는 책임기구로서 대안을 제시해야 했으나 결국 그런 것도 없이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것은 치명적인 한계라는 생각입니다.

 

# 9.

 

유럽 다큐 특유의 째깍째깍 넘어가는 시계 따위가 어우러져 매우 장르적으로 연출됩니다. 매우 감정적이구요. 격앙된 수사가 난무합니다. 크뢴케나 글레이저 등의 구단주를 묘사하는 장면에선 (그들의 행보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연출적인 면에서부터 폭력적이기까지 하죠. 검은 양복과 표독스러운 표정을 가진 '악마'들의 작전을 막기 위한 각계각층의 '슈퍼히어로'들이 어벤저스 소회하는 듯한 구성이랄까요.

 

슈퍼리그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 지역 연고 팬들의 위대한 승리에 대한 자위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당시의 쏟아지던 속보를 실시간으로 팔로우한 팬이시라면 딱히 새로울만한 내용이 없구요. 슈퍼리그라는 것이 일어났다는 것도 모를 팬이라면 어차피 관심이 없을 작품입니다. 현지 팬들의, 현지 팬들을 위한, 현지 팬들에 의한 분풀이이자 전리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죠. 신뢰할 수 있는 내부자 증언에 따라 타임 라인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이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라 할 수 있겠네요.

천박한 미국 자본의 침공으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지켜낸 영국이라는 구도 탓에 치사량을 아득히 초과하는 영국 뽕도 미리 대비하셔야 할 듯합니다. 감정적이고 장르적인 화면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깊이를 갖추지 못한 다큐멘터리란 역시 시시합니다. 칼 힌드마치 감독, <슈퍼 리그 : 축구의 종말>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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