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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Art

정의란 무엇인가 _ 오버 데어, 장민승 감독

그냥_ 2020. 8.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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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아시나요. 저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 책과 『완벽에 대한 반론』에, 왠지 제목이 비슷한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까지 한꺼번에 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세 권 모두 절반정도 읽다 덮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책장에 꽂아두면 제법 폼이 나는 책들이라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까운 친구들은 아니니까요. 두껍고 묵직한 덕에 북앤드로도 쏠쏠합니다.

 

하지만 이글에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의는 '센델' 교수의 Justice가 아닙니다. Definition이죠. 지금 낚시하는 거냐구요? 맞는데요? 너 이자식 이과냐구요? 그것도 맞는데요?

 

 

 

 

 

 

 

 

'장민승' 감독,

『오버 데어 :: over there』입니다.

 

 

 

 

 

# 1.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네요. '장민승' 사진작가가 무려 천일에 걸쳐 촬영한 제주의 풍경에, '정재일'의 음악을 더한 시네마토그래피입니다.

 

감독이 선보이는 제주는 장엄하고 역동적이며 고요하고 이질적입니다. 우리가 흔히 예상하고 기대하고 때론 실망하기도 하는 스탠더드 한 제주스러움과는 거리가 매우, 매우 멀죠. over there.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가까이의 제주보단 훨씬 더 멀리 있는 '저 너머'의 제주가 담겨 있습니다.

 

 

 

 

 

 

# 2.

 

가장 먼저 이게 제주가 맞나?라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런 류의 영상을 왜 굳이 제주에서 찍은 거지? 라는 의문으로 이어지게 되죠. 다시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그래서 감독이 포착한 전달하고자 한 제주의 모습이란 무엇인 걸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구요. 머지않아 누군가가 정의하는 제주라는 것이 본질적이긴 한 건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고찰을 건너, 무언가를 자의적으로 정의하는 행위 그 자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 3.

 

우리가 경험하고 사용하는 제주라는 것이 대단히 지엽적인 것이었음을 강렬한 시청각적 경험으로 자백하게 됩니다. 이내, 구태여 제주뿐 아니라 우리가 영위하는 혹은 영위하지 않는 모든 공간들 역시, 편의적으로 선택한 방식 이상의 무궁무진한 이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고 곧이어, 공간뿐 아니라 모든 존재들에 대한 단정적 정의의 허무함에까지 생각이 닿고 나면. 화려한 영상 위로 사유의 바다가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 4.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심지어 생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조차 끊임없이 순환하는 生과 死가 존재함을 목격하게 됩니다. 운동과 변화와 안정이라는 형이상학적 가치들의 정의를 재고하게 됩니다. 그위로 순리에 따르지 못한 삶에 대한 반성과, 투쟁적 삶에 대한 허무함과,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한 짙은 회상과, 앞으로 바뀌어져 나갈 시간에 대한 기대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끝을 순차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 5.

 

물론 여러분은 저보다 훨씬 깊은 혹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의 사유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만, 어쨋든 위와 같은 어지럽고 어쩌면 쓸데없을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쳐 놓을 수 있는 건 작품의 품이 그만큼 넓기 때문일 겁니다. 장엄한 대자연 속 엄숙히 흐르는 강과 구름과 안개와 빗방울과 호흡과 시간이 펼쳐놓는 끝없는 캔버스 위로, 서사도 대사도 자막도 없이 비워진 여백을 산책하듯 거니는 심심한 맛이 일품인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을 만나며 수동적으로 감독이 떠먹여주는 것만 받아먹으려 했다간 허망하게 빈 입맛만 다시게 되죠.

 

 

 

 

 

 

# 6.

 

수백 년 된 나무를 잘라 공들여 만든 빈 공책과 같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들인 공은 구체적으로 소개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지만 그럼에도 그 노력은 드넓은 제주만큼이나 넓은 '공터'를 만들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감독이 만든 큰 여백 위에 관객 스스로 차분하고 처연한 사유를 여유롭게 펼쳐놓는 영화입니다.

 

일전에 '탐타 가브리치제' 감독의 『조지아의 상인』을 보고서 이와 비슷한 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요. '장민승' 감독의 작품은 그보다 조금 더 극단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조지아의 상인』도 매우 좋은 영화입니다.)

 

 

 

 

 

 

# 7.

 

평들을 찾아보면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다'는 얘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다른 보통의 영화들은 중간에 관객이 잠에 들었다면 '실패한 영화'라 해야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영화에 만큼은 문제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공책을 산다는 건 무언가를 '쓸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어야지 '써야 한다'는 부담이 되어선 곤란할 테니까요.

 

44분의 런타임 안에서 마음껏 사유의 자유를 누리시고 남는 동안은 '정재일'의 환상적인 음악들을 들으며 한숨 편안히 주무신다 해도 전혀 나쁠 게 없는 영화입니다. 빈 발우에다 각자에게 알맞은 양의 음식을 소담이 담고서 깨끗이 비우기만 해도 그저 충분합니다. '장민승'감독, 『오버 데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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