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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호수를 나는 새 _ 내 이름은 졸자야, 곽동철 감독

그냥_ 2022. 6.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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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당연히 외국 다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한국 감독의 작품이더군요. 왜 하필 타국, 그것도 생소한 몽골의 흐미 가수에게 카메라를 들이민 것일까. 제가 이 다큐멘터리에 흥미가 동한 것은 바로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왜 굳이 이 아이템으로 작품을 만든걸까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곽동철 감독,

『내 이름은 졸자야 :: My Name is Zolzaya』입니다.

 

 

 

 

 

# 1.

 

안개 낀 숲, 고요한 사막, 푸른 호수 위로 잔잔하게 들이치는 파도입니다. 자연의 웅장함을 담아내는 넓은 화각은 자유로움을 은유합니다. 다채로운 풍경은 다양성과 가능성 등을 상징하죠. 사막과 호수의 접경은 역사의 도도한 변화를,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는 파도는 평화로운 방법론과 거스를 수 없는 운명 따위를 시각화합니다. 일련의 화면 위로 신비로운 흐미ᠬᠥᠭᠡᠮᠡᠢ 가 흘러나옵니다. 길게 땋은 검은 머리 소녀가 게르ᠭᠡᠷ 안으로 들어서자 고압적인 구도로 둘러싼 어른들이 보입니다.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합니다.

 

"흐미 가수가 될 거야!"

 

# 2.

 

이어 2018년 세계흐미대회 우승자이자 홉드 아이막 최초의 여성 흐미 가수라는 소개와 함께 주인공 '담바 졸자야'가 등장합니다. 오프닝 어린아이의 첫 등장과 연결되는 뒷모습의 입장이죠. 어른들의 굳은 표정과 대조되는 관중의 박수소리가 들리고 비로소 제목입니다. MY NAME IS ZOLZAYA. 화면 한 가운데를 점유하는 단호한 힘이 느껴지는 대문자 폰트가 인상적이군요. 몽골의 대자연으로 상징되는 자유로움과 다양성과 변화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통할하는 소리, 흐미. 작품은 흐미 가수가 될 거라 말하던 당찬 소녀가 꿈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이후 1시간 여의 런타임은 오프닝 1분의 각주에 불과하죠.

 

 

 

 

 

 

# 3.

 

졸자야의 이름은 <예쁜 여인>이라는 책의 주인공에서 따왔다 합니다. 그녀는 내용이 궁금해 찾고 있지만 찾지 못했다 말하죠. 감독은 본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이름의 의미를 제목으로 선택합니다. 감독이 바라보는 그녀의 삶이란 자기 이름의 의미를 찾는 예쁜 여인의 여정인 것이죠. 곧이어 홉드 예술극장 관장이 졸자야의 입지를 설명합니다. 후배 가수 역시 동경하는 언니를 자랑합니다. 희망적인 뉘앙스의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와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합니다.

 

게르라는 공간을 선점한 사람들에게 소녀 졸자야가 홀로 들어가던 구성은, 극장을 선점한 졸자야를 향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구성으로 대칭됩니다. 감독은 객석에 앉은 관객의 모습을 생략할 뿐 아니라 박수소리까지 의도적으로 제한합니다. 사회자의 소개 멘트가 끝나고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녀가 들려줄 음악은 처음으로 졸자야라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만나게 될 다큐멘터리 관객인 저와 여러분을 위한 노래입니다. <우주의 지배자>라는, 게르를 박차고 들어가던 소녀의 그것다운 당돌찬 제목의 곡이죠.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성입니다. 감독은 사이사이 현장 관객의 감상을 인서트해 위화감을 완화하지만 녹록지 않죠.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문 밖에서부터 끌고 들어와 관객석 한가운데 고정합니다. 다큐를 끝까지 보고 난 후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중 속으로 관객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 목표입니다.

 

 

 

 

 

 

# 4.

 

스승 '어드수렝' 교수입니다. 언어의 기원이자 노래의 기원이자 악기의 기원이라는 흐미의 의의와 함께 졸자야의 성장을 증언합니다. 두 가지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흐미에 대한 호기심을 신비로운 뉘앙스의 사이키델릭 브금으로 돋웁니다. 졸자야는 새 앨범을 계약합니다. 친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의 그것입니다. 이동합니다. 계약이 진행되는 회의실에서 평범한 거리를 지나 불이 꺼진 어두운 집으로 들어옵니다. 가수에서 친구에서 개인으로의 시점 전환을 공간으로 묘사합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테이블에 혼자 앉아 늘어놓는 진솔한 자기 고백입니다.

 

쉬어가는 동안 새로운 연주가 시작됩니다. 전통 현악기 이킬Икил로 연주한 <찬드마니 찬가>입니다. 이후의 시퀀스는 마치 로드무비처럼 진행됩니다. 몽골의 자연이 주는 황홀한 시각적 경험과, 음악을 연주하고 부르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통해 흐미라는 음악을 설득하는 과정이랄까요. 같은 장르의 음악임에도 공연장에서 듣는 것과 초원에서 듣는 것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라는 경험은 인상적입니다.

 

졸자야를 반기는 가족입니다. 오프닝의 단호한 표정과 대조되는 모습이죠. 이어 초등학교 선생님 '뱜바'의 인터뷰입니다. 앞서 어드수렝 교수의 인터뷰와 연결되어 어린 가능성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교육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부드럽게 환기합니다. 게르에 들어서던 어린아이의 뒷모습을 멋진 가수가 된 졸자야의 앞모습으로 연결합니다. 가족들만을 위한 근사한 공연이 끝난 후 당찬 표정의 주인공을 과감한 로우 앵글로 담아냅니다. 자칫 관객을 내려다보는 인상을 줄 수 있어 다큐멘터리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앵글임에도 이전까지 정서적 밀착감을 충실히 쌓은 덕에 인상적인 효과를 구현합니다.

 

 

 

 

 

 

# 5.

 

익숙한 컨트리 음악 위로 양젖 짜는 아이들입니다. 잠시 관객에게 쉬어갈 수 있는 여지를 준 후 시간을 되돌립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군요. 마을 면장과 수의사를 겸했던 아버지는 졸자야의 꿈을 지지해주던 세상의 전부였다 합니다. 학교로 달려가는 딸과, 배웅이라기엔 어색하게 멀리 멈춰 서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상실에 대한 복선이라 할 수 있겠죠. 끝이 보이지 않는 두르곤 호수와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를 보며 부녀는 다시 오자 약속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어린 졸자야가 겪었을 당시의 충격이 묘사됩니다. 눈에 걸친 두 줄의 그림자라는 눈물의 은유를 지나 길을 잃고 달리는 소녀의 뒷모습과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어른이 된 졸자야가 연속적으로 연출됩니다. 아버지의 등은 몽골의 대자연과 연결됩니다. 오토바이에 올라탄 부녀와 뒤를 따르는 새 한 마리의 미장센은 근사합니다. 어린 졸자야가 성인이 된 졸자야와 맞서 천천히 다가와 끌어안는 장면은 작품의 백미입니다. 기하학적이면서 미니멀한 풍경을 플랫하게 활용해 마치 시간의 강을 건너 분리된 자아가 만나 듯 연출합니다.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인 미학적 완성도군요.

 

기도를 올립니다. 아빠와, 아빠에 투영된 과거의 자신과 시간과 정서들에 대한 정석적인 인사입니다.

 

 

 

 

 

 

# 6.

 

다시 공항입니다. 새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비행기에 연결하는 영리한 연출입니다. 졸자야의 눈앞에 펼쳐진 공항은 아빠와 함께 오기로 약속했던 두르곤 호수와 갈매기입니다. 물론 아빠도 마음 속에 함께 있습니다. 전통 의상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졸자야는 야탁으로 연주한 <알타이 찬가>를 끝인사로 전합니다. 가만히 멈춰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람들. 흐미는 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소리와 이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를 함께 품고 있습니다. 한 명 한 명씩 평화롭고 여유롭게 웃습니다. 흐미의 양가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가치를 영상 미학으로 재현하는 근사한 앤딩입니다. 서두에 왜 굳이 졸자야를 찾아간 걸까? 라는 의문이 든다 말씀드렸는데요. 제 나름으로 얻어 낸 대답은 졸자야라는 인물이 가진 두터운 입체성입니다.

 

# 7.

 

전반적으로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훌륭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입니다. 타국의 문화와 개인의 서사를 충실하게 담아내면서도 플롯을 효과적으로 조작해 이미지로 구현하는 데 능하다는 인상입니다. 재미있네요. 다만, 딱하나 불만스러운 것은 마지막 '아버지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이었습니다. 사족이 이야기를 평평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주인공의 입체성을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는 딸'로 격하하는 방식이니까요. 마치 두 소리가 함께 들려 매력적인 흐미에서 이 소리가 진짜 소리고 저 소리는 가짜 소리다 구분 짓는 것처럼 보였달까요. 곽동철 감독, <내 이름은 졸자야>였습니다.

 

# +8. 영화든 다큐든 쓸데 없는 사족을 달아서 좋은 꼴을 단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자막들을 다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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