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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_ 리틀 걸,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그냥_ 2024. 4.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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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샤는 오랫동안 여자라고 느껴... 아뇨, 느낀 게 아니라 사샤는 여자예요. 남자로 태어난 여자요."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리틀 걸 :: Petite Fille』입니다.

 

 

 

 

 

# 1.

 

<리틀 걸>의 소재는 제법 독특한데요.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10글자 넘어가는 괴랄한 소수자성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사샤'는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평범한 트랜스젠더일 뿐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나중에 커서 여자가 되고 싶다 말하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아주 어린 친구라는 것이죠.

 

퀴어 다큐멘터리도 소주제에 따라 풀어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그 끝은 두 가지 목표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의 소수자성에 대한 내적 탐구, 그 과정에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사회적 투쟁인데요. 작품에는 주인공의 정체성 탐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당사자부터가 아직 일련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감독은 주인공을 인터뷰하는 대신 건조한 관찰자적 시점에 위치하려 노력합니다. 상당 시간을 사샤가 노니는 모습을 진중하게 지켜보는 시퀀스에 할애하는 이유죠.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몇몇의 편리한 은유를 통해 에둘러 표현됩니다. 오프닝과 앤딩에서 수미상관을 이루는 나비의 은유는 대표적입니다. 신중하게 머리띠를 고르는 사샤와, 집 안에 장식된 나비를 연결함으로써 그녀를 '애벌레 고치에 갇힌 나비'에 비유합니다. 나비의 가능성과 아름다움, 애벌레 고치의 무력함과 투박함, 필연적 변태로 응원하는 온건한 희망은 정석적이죠. 발레 학원의 시퀀스는 조금 더 관념적입니다. 하얀 발레복을 입고 우아하게 춤추는 여자아이 옆 나란히 춤추는 사샤의 구도라거나, 하늘색 여성복을 입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홀로 붉은색 남성복을 입고 고립된 사샤의 배치는 그녀의 현실과 고뇌를 명시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 2.

 

정체성 탐구가 생략된 만큼 주인공은 안정적이고 온전한 존재로 규정됩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다른 여자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행동거지와 얼굴은 물론이고 목소리까지 영락없는 소녀인데요. 당연합니다. 2차 성징 전이니까요.

 

여타 퀴어 다큐멘터리와의 차별점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화면에 비치는 것은 평범한 여느 여자아이일 뿐, 사샤가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으로서만 존재합니다. 사샤가 겪는 차별은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외형의 위화감이 아닌 오롯이 '서류상의 이유'일 뿐이라는 것이죠. 영화는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배타하는 것은 당사자의 외형이 아니라, 타인의 규범과 인식이라 폭로하고 있습니다.

 

사샤에 대한 영화이지만 사샤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녀는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지만 어쨌든 스스로 온전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사샤라는 현상을 대하는 주변의 사람들입니다. 여자 같다는 이유로 남자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딸. 유년기를 누리지 못하는 사샤를 생각하는 엄마의 걱정이 진짜 주인공입니다.

 

오프닝에서 엄마는 일반의와 대화하는데요. 옆모습으로 묘사되고 일반의의 얼굴도 화면에 등장합니다. 반면 직후 전문의와의 상담에서는 엄마의 얼굴을 카메라 정면에서 담아 대담하게 합니다. 상담을 진행할 전문의도 당장은 등장하지 않죠. 감독은 관객을 전문의의 의자에 앉힙니다. 당신이 이 엄마를 상대하는 심리 전문가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겠는가라는 질문은 다큐멘터리의 주제의식입니다.

 

 

 

 

 

 

# 3.

 

영화는 사샤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온건한 순으로 가족 < 의사 < 교사로 구분한 후 단계적으로 극복합니다. 우선은 가족입니다. 엄마와 아빠는 자책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이내 책임감을 느끼며 딸을 포용합니다.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전문적인 조언과 조력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우호적이지 않은 학교에서의 담판에 성공합니다.

 

마찬가지로 공간은 가정 < 학교 < 발레학원 순으로 심화됩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비단 한 명 한 명의 사람뿐 아니라 사샤가 누리게 될 물리적, 사회적 영역의 확장입니다. 영화를 학교에서의 승리가 아닌 발레학원에서의 모욕으로 마무리하는 건, 앞으로 살아가며 겪게 될 좌절과 현실이 그만큼 깊고 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투복처럼 느껴지는 가죽재킷,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엄마, 단호한 발걸음의 아빠는 방어적이고 방임적인 학교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데요. 감독은 그 치열했을 과정을 과감히 생략합니다. 발레 학원에서의 갈등 또한 카메라 앞에 세우지 않고 피하고 있죠. 대신 행복한 사샤를 최대한 풍성하게 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 소녀가 불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본질을 묻는 온건한 선택입니다.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자유로운 사샤의 모습과 든든한 언니, 듬직한 오빠, 개구진 동생의 단란함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단단히 떠받칩니다. 감독의 대답이란 결국 '꾸준한 설득'과 '가족의 가치'입니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긴 소녀. 남자아이의 모습이었던 과거를 담담히 소개합니다. 나비의 날개를 달고 발레 하는 소녀는 프린세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작은 소녀, 리틀 걸이면 충분하죠. 세바스티앙 리프쉬츠 감독, <리틀 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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