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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세 번의 문답 _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 김아현 감독

그냥_ 2023. 12. 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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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우리는 이 가수를 불쑥 찾아갔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함께 찍었다.

 

 

 

 

 

 

 

 

권하정 / 김아현 감독,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Notes from the Unknown』입니다.

 

 

 

 

 

# 1.

 

관객이 당장 만나게 되는 영화는 한 편이지만 전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총 세 개의 영상이 존재합니다. <무명성지구인>의 뮤직비디오, <영웅수집가>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다큐멘터리 <듣보인간의 생존신고>가 바로 그것이죠. 각각은 그것이 음악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태도가 되었든, 입장이 되었든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일종의 질문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영상은 그 자체로 온전한 작품임과 동시에 권하정, 김아현, 구은하의 이승윤에 대한 대답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 2.

 

Q. 무명성지구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A. 생존신고를 하자.

 

가장 먼저 이목을 끄는 것은 역시나 제목입니다. 패기로 가득한 젊은 감독들이 스스로를 '듣보인간'이라 자처한다는 것은 썩 흥미로운 것이니까요. 듣보라 함은 평범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구요, 자조적 감정일 수도, 역으로 스스로 듣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의 단단한 자존감일 수도, 이 모든 것들의 합집합일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던 곡명 '무명성지구인'을 조금 더 친숙한 표현으로 끌고 들어온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때마침 음악 역시 싱어게인으로 인지도를 쌓지 전 소위 '듣보'였던 시기에 만든 그 시절의 성찰을 녹여내고 있는 곡이라는 면에서 세 감독의 처지와 닿아있는 맛이 있죠.

 

사실 듣보인간이라는 말보다 조금 더 흥미로운 것은 일련의 과정에 '생존신고'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점입니다. 아티스트와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을 부각할 수도 있었을 테고, 뮤직비디오라는 핵심 소재와 관련된 명명을 할 수도 있었을 테고, 작품을 관통하는 도전의식을 강조할 수도 있었을 테고, 그 외 창작자의 자의식을 투사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담백하다면 담백하게 생존신고라 이름 짓고 있으니까요. 이후 어떤 상황을 거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지와 무관하게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 가치란 결국 생존의 증명입니다. 음악 <무명성지구인>을 들은 팬으로서의 대답이라 이해할 수 있겠죠.

 

 

 

 

 

 

# 3.

 

Q. 영웅수집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상관없어졌다.

 

이러나저러나 다큐의 중심은 음악 <영웅수집가>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승윤은 정규 2집 <꿈의 거처>에서 해당 곡에 대해 "누군가를 함부로 영웅으로 만들고 함부로 상징으로 삼고 함부로 찬양하다가 함부로 내치는 일들에 관한 곡이다. 우린 그저 앵무새처럼 내가 원하는 말을 해줄 누군가가 등장하길 바랐던 것뿐이면서 말이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사 속 대중과 영웅의 관계는, 팬과 스타의 관계로 제한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영웅을 수집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기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라 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존재 자체로 딜레마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내(감독)가 원하는 영웅으로서의 이승윤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투사되는 순간, 결과물인 뮤직비디오는 그 자체로 감독이 바라는 이승윤을 프레임에 집어넣어 박제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초기 콘티를 짜는 단계에서 영웅을 옷에 비유하는 장면이 있는 데요. 촬영을 앞두고 아티스트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장면과 연결 짓노라면 분명 서늘한 맛이 있습니다.

 

이는 이승윤이 (스스로 자각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스쳐 지나듯 하는 말을 통해 에둘러 경고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무런 영상 없이 글로만 프러포즈했다면 심드렁하게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말하는 대목이죠. 말뿐이라는 것은 프로젝트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바 없이 이승윤에게 종속된다는 뜻이고 그 결과물은 어떤 퀄리티인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이승윤을 '수집'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곡 <영웅수집가>의 창작자에겐 시니컬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는 것이죠.

 

해당 딜레마에 대한 아하하 세 사람의 대답은 결말을 통해 당당히 선언됩니다. 언제부턴가 이승윤의 존재는 상관이 없어졌다 말하는 대목이죠. 그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 영웅수집가의 창작자에게 큰 보상이 되었음에 분명합니다. 조촐한 시사회가 끝난 후 아티스트가 보낸 편지는 단편적 의미에서의 노고에 대한 치하를 넘어, 자신의 메시지와 오롯이 교감한 인격에 대한 존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4.

 

Q. 당신은 이승윤을 얼마나 좋아하나. A. 보고 있는 대로.

Q. 왜 좋아하냐. A. 나도 모르겠다. 그냥?

 

무명성지구인으로 시작해 영웅수집가로 끝나는 영상의 본론은 두 작품을 만드는 세 감독의 치열한 도전으로 채워집니다. 감독들은 날 것 그대로의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합니다. 일례로 아무리 영세한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내레이션쯤을 맡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럼에도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사투리에 담긴 진심 가득한 목소리로 작품을 끌고 나가고 있죠. 이후의 구성 역시 최대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이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불쑥 꺼내들 수 있는 액정 깨진 스마트폰으로 상징됩니다.

 

연출에 앞서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진심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다큐를 구성하는 세 개의 영상들. 감독들이 직접 찍은 스마트폰 영상, 스톱모션을 활용해 촬영한 무명성지구인의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빌려 각 잡고 촬영한 영웅수집가 뮤직비디오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상당하지만 그럼에도 세 작품을 관통하는 가치는 연속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정, 아현, 은하 세 사람의 우정도 좋구요, 유쾌하면서도 치열한 도전정신과 창작욕이어도 좋습니다. 불안과 긴장과 오기와 그 끝에 도달하는 환희의 서사여도 좋구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느슨한 다정함도 좋습니다. 이들 모두는 작게는 프로젝트의 주제의식, 크게는 감독들의 직업 철학이라 할 수 있겠죠.

 

작품이 흘러가는 동안 혼란스러운 것은 왜 이 짓을 이렇게까지 하는지 누구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공명심을 기대하기에는 당시의 이승윤은 운이 좋게도(?) 무명이었으니까요. 괜히 win-win이 아니라 자신만 대승할 것 같다 걱정한 게 아니죠. 거창한 사랑인가 하면 또 그런 감정과도 거리는 있어 보입니다. 팬으로서의 소유욕이라기엔 이승윤이 배제되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혼란스럽죠. 아무리 탐구해도 결론은 '그냥 좋으니까''하고 싶으니까'가 전부이고, 이는 앤딩의 소담한 인터뷰를 통해 확인됩니다. 그냥 좋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부족한 부분은 밤잠과 발품으로 메우는 사람들의 치열함과 그 끝에 배신 없이 곱절로 돌려주는 크나큰 성취감이란 메시지는 언제나처럼 강력합니다.

 

 

 

 

 

 

# 5.

 

감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썩 심심하긴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멋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처음에는 잘 풀리나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리며 위기에 봉착하지만, 결국 모두가 힘을 모아 극복한다는 류의 지루한 청춘 서사니까요. 더군다나 이미 성공이 보장된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고 보는 입장에서 감동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결국 작품의 동력은 성공이 보장된 픽션이 아닌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논픽션이라는 점과, 결과물의 퀄리티로 증명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결과물은 빚내가며 만들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처음 만든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뽑힌 듯 보입니다. 이리저리 발품 팔아 준비한 소품들과 아이디어들이 빛나는 순간은 뭉클함에 반갑기까지 하죠.

 

... 무명성지구인이라는 곡에 대한 대답으로서 존재의 가치를 답합니다. 영웅수집가에 대한 대답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묻는 질문은 다큐멘터리 그 자체를 통해 증명합니다. 단순하게 프로젝트에 본질이 있고 다큐멘터리는 그 프로젝트의 고단함을 빼곡하게 증명하는 결제 장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서 온전하다는 점에서 능글맞은 세 사람의 웃음과 대비되는 여우 같은 탁월함이 숨어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군요. 권하정 / 김아현 감독,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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