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Documentary/Humanism

그날의 내 기분 _ 의자가 되는 법, 손경화 감독

그냥_ 2021. 11. 20. 06:30
728x90

 

 

# 0.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비 오고, 리사이클 의자, 풀 숲, 페이드 아웃, 마천루... 응? 끝이네?

 

 

 

 

 

 

 

 

'손경화' 감독,

『의자가 되는 법 :: How to Become a Chair입니다.

 

 

 

 

 

# 1.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제목은 <의자가 되는 법>. 대상의 속성을 면밀히 추적한 후 화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의미를 선별적으로 추출해 사람 사는 방식과 연결 짓는 류의 작품들이 대체로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죠.

 

예상대로 카메라는 수많은 의자를 담아냅니다. 다른 모양과 다른 목적과 다른 시점과 다른 가치와 다른 사연과 다른 해석을 추적합니다. 의자를 쓰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자가 놓인 다양한 공간들과, 의자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들과, 의자에 부여하는 다양한 견해들을 수집합니다. 만...

 

 

 

 

 

 

# 2.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나무 의자 나왔다가, 커스텀 스툴 나왔다가, 책상 의자 나왔다가, 식탁 의자 나왔다가, 플라스틱 의자 나왔다가, 의자 아닌 의자도 나왔다가, 사진 모델이 된 의자 나왔다가, 폐기된 의자 나왔다가, 망가지기 직전의 의자 나왔다가, 망가진 의자 나왔다가, 망가트린 의자 나왔다가, 고친 의자 나오는 걸로 끝나는 데 다양성 이외의 메시지는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누군지 모를 일본인 부부 만났다가, 디자이너랑 배달 요리 먹고 배송 한탕 뛰었다가, 노인들에게 쓰레기 투기해 놓고 안 써준다고 삐진 사진작가 만났다가, 무례하게 들이미는 카메라 앞에 억지로 열등감을 토해내야 되는 불쌍한 디자인 학과 학생들 찍었다가, 회사 때려치우고 공방 차려 의자 고치는 아저씨 만났다가, 빈민촌에 거주 중인 듯한 동네 마실 나온 할머니 몇 분이랑 대화하고, 폐품 수거하는 아저씨 도촬 하며 끝나는데 역시나 다양성 이외의 메시지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 3.

 

추상적 이미지들이 나열됩니다. 호흡은 감상이 힘들 정도로 느린데 그마저도 반복이라 무지막지하게 지루합니다. 계획하에 배치된 유의미한 시퀀스도 읽히지 않을뿐더러, 그전에 씬의 의미, 아니 쇼트의 의미조차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카메라 속 수집된 것들은 거의 구축되지 못합니다. 의자에 대한 감독 고유의 시선을 그리는 영화라기엔 너무 얕거나 정서적이구요, 의자를 통해 인생의 답을 구하는 여정을 다룬 영화라기엔 너무 게으릅니다. 일정한 목적에 따른 인과도, 정서도, 메시지도 희미해 런타임 내내 다큐는 그저 뿌옇게 흐리기만 합니다.

 

그나마 억지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몇몇 인터뷰에 담긴 '버려진다는 것의 의미' 정도일 텐데요. 그 마저도 남이 가진 철학의 나열에 불과할 뿐 카메라를 든 이의 통찰로 승화되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의자의 수명과 인간의 생애 주기를 연결 짓는 정도가 편집의 손길이 묻어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그 마저도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야?'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의자에서 시작해 의자로 끝나는 작품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존재 의의. 의자여야 하는 이유조차 설득하지 못합니다. 의자가 아니라 모자면? 외투면? 안경이면? 구두면 안 돼? 라는 기초적인 질문 앞에서도 다큐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이 정도면 주제의 실패 이전에 기본기의 실패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죠.

 

 

 

 

 

 

# 4.

 

물론 억지로 최선을 다해 문장을 만들려 한다면 말을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공들여 만들어졌던 처음의 순간, 사람들과 어우러져 동화되었던 기억, 쉽게 버려지고 교체되는 허무한 끝. 말없이 버려진 것들의 쓸쓸함 그리고 씁쓸함, 버려진 공간에서 버려진 모습으로 허무하지만 분명하게 흘러갈 기나긴 시간. 의자가 건너온 여정 속에서 再발견하는 生의 의미."

 

... 라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쯤 되면 이건 다큐가 만들어 들려준 메시지가 아니라 관객인 제가 억지로 이리저리 엮어 만든 메시지라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발전시킨 개념도 아닐뿐더러, 다른 관객이 전혀 다른 메시지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 5.

 

그래요, 여기까지만 했다면 그저 '흐릿하고 지루한 다큐구나' 하고 지나갔을 텐데요. 구태여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괴기한 연출 하나가 심기를 크게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의자를 집어던져 부수는 연출이죠.

 

중반 즈음 의자를 집어던지는 연출이 등장합니다. 의자가 추락하는 연출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낡은 의자들이 창 밖으로 던져지고 계단 아래로 던져집니다. 장렬한 최후라도 담아내는 듯 한껏 슬로를 걸어 부서지는 모습을 공들여 담아냅니다. 망가진 의자들의 시체는 과격하게 전시되는 데, 이 순간의 망가짐은 이전까지의 사용자들에 의한 망가짐이 아닌 오롯이 다큐멘터리에 의한 파괴죠.

 

의자와 같은 눈높이에 카메라를 놓는 것이 정체성인 다큐멘터리라면 절대 등장할 수 없는 연출입니다. 일방적으로 버려지는 것들의 쓸쓸함에 대한 정서적 교감 따위를 다룬 작품에서 역시 절대 등장할 수 없는 연출입니다. 이건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영화적 표현에 훨씬 가깝습니다. 관찰자가 아닌 '창작자'의 표현이죠. 그래서 확신했습니다.

 

아~ 감독은 자기 이야기를 찍고 싶었던 거구나!

 

 

 

 

 

 

# 6.

 

이 작품은 의자가 되는 법이 아닙니다. <의자가 되고 싶었던 그날의 내 기분>이죠.

 

의자를 작품 중심에 놓고 보면 한없이 뿌옇기만 하던 영화가, 의자가 되고 싶었던 '감독'을 중심에 놓는 순간 급격히 선명해집니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의자 따위 밀어내고 '무슨 이유에서건 심각한 현타가 와 문뜩 의자가 되고 싶다 생각했던 어떤 순간의 누군가'를 주체로 세운 후, 그런 사람이 만난 사람들과 공간과 물건으로 바라봐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작품이라는 거죠.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전달되지 않았던 건 그들 모두 피해의식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자에 대한 배려도, 관객 경험에 대한 고려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 건 다큐의 목적이 다름 아닌 감독 본인이었기 때문이죠. 카메라가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어설프게 심취한 듯한 예술가 지망생 느낌이 묻어났던 이유이기도 하구요. 낡은 것, 불안한 것, 가난한 것, 서비스하는 것 등의 '불쌍한 것들'에 카메라를 들이밀어 주는 자의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된 듯한 느낌 역시 군데군데 묻어났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이런 기분에 빠졌던 당시의 사연에 대해 이야기했더라면 그나마 솔직한 맛이라도 있었을 겁니다. 차라리 스스로 화면 앞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의자를 집어던졌더라면 이렇게까지 비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손경화' 감독, <의자가 되는 법>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