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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Social

포스트 트루스 _ 씨스피라시, 알리 타브리지 감독

그냥_ 2021. 4.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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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어릴 적부터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무분별한 살생은 일어나선 안될 일이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나름대로 모기나 날파리를 잡지 않는 등의 노력을 해 왔습니다만 어느 순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매 순간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사람들의 비참한 죽음을 추적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1년 안에 '사과'를 먹은 적이 있다는 사실 말이죠. 놀라운 일입니다. 취재해 본 바에 따르면 제가 사는 마을에서 발생한 58명의 사망자 중에 57명은 1년 안에 사과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머지 한 명 역시 3년 안에 사과를 먹은 적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죠. 이로서 사과를 먹으면 100% 확률로 죽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저는 취재를 위해 동료와 함께 사과가게를 찾아갔습니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물건을 파는 위험한 사람들이니만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큰 식칼 한 자루를 챙겨 방어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과일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가게 주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혼비백산합니다. 역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내 어떻게 안 것인지 경찰이 득달같이 나타나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저를 강압적인 태도로 몰아냅니다. 이렇게 사과 산업에는 공권력까지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멈출 수 없습니다. 사과를 양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살인의 도시 '영천'으로 내려갑니다. 역시나 자연 상태에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모습으로 사과나무가 줄지어 키워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담을 넘어 사과를 몇개 수집하자 과수원이라는 시설의 두목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소리를 지릅니다. 살인의 중요한 증거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급박함이 느껴지는 행동이군요.

 

여러 경로로 취재가 가로막혀 답답해 하던 중 제 동료가 의외의 방향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는 데 성공합니다. 사실 영천에는 '장례식장'이라는 시설이 있었다는 거죠. 장례식장은 무려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시설이라고 합니다. 이미 사과를 통한 살인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경제 권력화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반 인륜적 시설이 설립되려면 보나 마나 마피아의 개입은 필수적일 겁니다. 시장과 지역 공무원 역시 한통속일 가능성이 높죠.

 

 

 

 

 

 

 

 

'알리 타브리지' 감독,

『씨스피라시 :: Seaspiracy』입니다.

 

 

 

 

 

# 1.

 

개소리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이야기하려는 이 영화 <씨스피라시>의 논리 전개 방식이 정확히 위와 같습니다. 글쎄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가타부타 이전에 이 작품을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는 것인가부터 잘 모르겠습니다. 

 

서두에 제가 대충 지어낸 것 중 의외로 대충 맞는 말들도 많습니다. 생명은 당연히 소중하구요. 살인은 일어나선 안될 일이죠. 사망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뭐 죽기 전에 언젠가 사과를 한 번쯤은 먹었을 겁니다. 식칼 들고 사과 가게 찾아가면 당연히 쫓겨날 테구요. 경찰도 출동하겠죠. 과수원 담을 넘어도 마찬가지일 테구요. 모르긴 몰라도 영천에 장례식장 하나쯤은 있을 테고, 허가받고 사업하는 걸 테니 지방정부에도 등록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위의 명제가 모두 사실이라고 해서 사과를 먹으면 사람들이 죽고 사람을 죽여 장례식장으로 돈을 벌기 위해 공권력과 마피아와 결탁해 있다가 논리적으로 성립되는 건 아니죠.

 

 

 

 

 

 

# 2.

 

분명히 하고 넘어갑니다.

 

포경은 하면 안 되는 게 맞습니다. 실제 대부분의 고래들은 멸종 위기 보호종이 맞구요. 국제 협약으로 포획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 이 양아치들이 쌩까고 있는 것도 맞죠. 바다, 살려야 됩니다. 어종을 불문하고 생태계를 위협할 정도로 남획하면 안 되구요. 플라스틱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해양 쓰레기를 줄여야 되는 거 맞습니다. 바다에 마구잡이로 버려선 안되고 버려진 쓰레기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 역시 맞죠. 분명 알려져 있는 것보다 체감하는 것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도 맞고, 그런 심각한 상황을 방치하거나 심화시키는 데에는 손쉽게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이기심과 음모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맞아요. 백번 맞습니다. 맞는데,

 

결론이 맞다고 해서 논리 구조가 제 멋대로여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 3.

 

감독은 검문을 자신의 정의 집행에 대한 카르텔의 저항이라 편리하게 주장합니다. 여느 바닷가에나 있을 경계 경비 중인 해경은, 자신들을 감시하기 위한 반 지구적 세력의 박해라 판단하는 식이죠.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기 위한 중립 증거를 내미는 대신 확신에 확신을 더해줄 이름 모를 시민운동가라는 사람들의 증언이 마구잡이로 동원됩니다.

 

불쾌할 정도로 감정에 대한 호소가 범람합니다. 너무 노골적이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공포 마케팅과 불안감 조장이 범람합니다. 영화 내내 야쿠자, 우익, 도청이라는 코드를 반복적으로 관객의 뇌리에 새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수산 시장에 다랑어와 상어가 잡혀 있는 걸 보여주더니 갑자기 또 다른 환경운동가가 나타나 마피아를 운운하면 대체 어쩌자는 건가 싶죠. 플라스틱 문제로 시작된 영화가 갑자기 동물원 돌고래의 동물 복지로 마구잡이 널을 뛰는 건 관객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자극하겠다는 비열한 속셈입니다.

 

 

 

 

 

 

# 4.

 

상어에 다리를 잃은 사람이 상어를 살리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포경에는 마피아가 개입하고 있다라는 그 사람의 주장도 너는 믿어야 한다. 라는 말을 너무 쉽게 펼쳐 놓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플라스틱 문제에서 출발해 일본 포경을 넘어 동물 복지를 찍먹한 다음 아시아 문화권 전반에 걸친 폄훼로 뻗어나가는데 고작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무려 21세기에 사람들이 어류를 소비하는 이유가 상어가 무서워서 없애려고(...) 라는 주장이 거침없이 전개됩니다. "바다가 살아 있게 하려면 돌고래, 고래 못지않게 상어도 중요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라는 뻔뻔한 결론에 정줄을 놓게 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수치에는 검증된 전문가의 증언이나 통계 데이터, 연구 논문 등의 레퍼런스가 전무합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의 반론권 따위는 개나 줘버리죠. 나는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고 그곳을 가로막는 사람들의 얼굴은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데 그 와중에 유독 역겨운 건 힘없는 개인 상인들 얼굴은 무자비하게 공개하면서 혹시나 소송당할지도 모를 회사 관계자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한다는 점입니다. 진짜 양아치세요?

 

 

 

 

 

 

# 5.

 

엽기적일 정도로 감독이 많이 그것도 멋들어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엽기적일 정도로 감독이 많이 말합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감독의 강한 자의식이 전달됩니다. "나는 정의의 사도이기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고 들여다볼 수 있다. 나의 카메라가 닿을 수 없는 곳은 없고 내 카메라를 막는다면 너는 지금 뭔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라는 터무니없는 도덕적 우월감이 영화 전반을 지배합니다. 네. 이 영화의 감독은 뭔가 건강하지 않습니다.

 

# 6.

 

아이러니하게도 믿고 싶다면 언제든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는 포스트 트루스 Post-Truth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입니다. 몇 년 전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라는 음모론자들에 대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리뷰한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는 드디어 그 주체들이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증명하는 듯 하군요.

 

메시지의 정합성을 검토하는 게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설득이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 영화부터가 아니니까요. 바다에는 온통 음모로 가득하다라는 결론을 진즉 내린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신념에 확신을 더하기 위한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자, 짐작 하나 해 볼까요? 이 영화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공격적이고 원리주의적인 베지테리언들과 PC주의자들이 대단히 열광하고 있을 걸요?

 

 

 

 

 

 

# 7.

 

표방하고 있는 방향성이나 표면적인 아이템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Social 카테고리에 분류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 짓는 것보다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만 중요할 뿐 믿게만 할 수 있다면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적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 탈진실의 시대와 그 리스크에 대해 묻는다면 보여주고 싶을 자해적 다큐멘... 아니 '창작물'이군요. '알리 타브리지' 감독, <씨스피라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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