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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Social

쓰레기를 태우는 불 _ 14개의 사과, 미디 지 감독

그냥_ 2022. 2.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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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불면증에 시달리는 만달레이의 사업가 왕 신홍에게 한 점쟁이가 수도원에서 14일을 보내라고 조언한다. 자동차와 불룩한 지갑을 뒤로하고 그는 하루에 사과 한 알 만을 먹는 수도승의 삶을 살게 된다. 이는 현재 미얀마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시골의 수도원에 도착한 왕 신홍은 머리를 깎고 붉은 수도복을 입는다.

 

- 2018년 제15회 EBS 국제 다큐영화제

 

 

 

 

 

 

 

 

'미디 지' 감독,

『14개의 사과 :: 14 Apples』입니다.

 

 

 

 

 

# 1.

 

자동차 안에서 시작됩니다. 차 안은 말끔한데 반해 밖은 먼지가 자욱한 시장통입니다. 분리된 두 공간입니다. 멀쑥한 양복에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쓴 남자입니다. 차에서 내려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삽니다. 사과의 원산지를 살핍니다. 필요한 14개만 사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흥정도 하는 모습입니다. 사업가군요.

 

옆에는 동냥 중인 소년이 보입니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사과를 맛보게 합니다. 가게 주인이 과일을 다루던 칼을 사겠노라 말합니다. 이해관계에 밝지만 불편함을 적당한 돈과 교환하는 것이 익숙한 것을 보아하니 재력가인 듯 보입니다. 카메라는 조수석에 앉아 진득하게 남자의 모습을 담습니다. 이 남자를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길가의 인부와 아낙입니다. 아웅다 마을로 가는 길을 묻습니다. 느린 호흡의 롱테이크가 이어집니다. 차에서 내려 강 앞에 서서 다시 길을 묻습니다. 남자는 어딘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동안 평범한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포장도로는 비포장도로로 변합니다. 방향성입니다. 세속에서 자연으로의 회귀입니다.

 

강을 건너다 모래사장에 차가 빠지고 맙니다. 익숙하다는 듯 마을의 아이들이 둘러쌉니다. 적당한 대가를 주고 도움을 받습니다. 타이어 아래 짚단을 길게 늘어놓고 빠져나옵니다. 상징적인 시퀀스가 이어집니다.

 

 

 

 

 

 

# 2.

 

수도원에서 도착했습니다. 남자는 머리를 밉니다.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한다는 의미로도, 세속으로부터 달아난다는 의미로도, 잠 못 들게 만드는 고민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의미로도, 앞서의 짚단과 연결되는 이미지로도 이해될 수 있어 보입니다. 머리를 미는 동안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수도승이 된 남자가 항아리를 들고 천 위를 걷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준비한 것들을 시주합니다. 시주받은 물건들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대신 옮겨 담습니다. 불상과 같은 자세로 정좌한 남자와, 그 옆에서 '수금'한 것들을 세는 속물들, 담배를 태우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수도승의 모습이 대조를 이룹니다.

 

남자는 칼과 사과를 들고 걸어갑니다. 움막을 지나 그 뒤에 숨듯 쪼그려 앉아 사과를 먹습니다. 부끄러움인 걸까요. 다시 걷는 남자를 아이가 앞서 걸으며 "시주하세요." 소리칩니다. 뒤는 동자승이 항아리를 들고 따라갑니다. 이곳 미얀마에서의 승복과 토착 종교의 본질이란 이런 것임을 인물의 배치로 상징합니다.

 

기복을 빌기 위해 수도원을 찾은 모녀입니다. 시주를 받은 수도승은 식기에 글귀를 적어줍니다. 영화는 어느덧 35분을 지나고 있지만 아직 명상이나 정진은 없습니다. 그저 기복과 시주뿐이죠.

 

 

 

 

 

 

# 3.

 

설교입니다. 남자는 운이 좋고 여자는 운이 덜하다는 둥, 여자의 옷을 만지지 마라 특히 동자승은 만져선 안된다는 둥의 마초적이고 미신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이들에게 싸우지 마라, 조용히 해라 타이르면서도 그 이유가 수도승인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라는 천박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게 설교냐'라는 말이 절로 나오죠. 남자는 옆자리에 앉아 묵묵히 듣고 있습니다.

 

'운이 덜하다'는 아낙들이 줄지어 물을 긷습니다.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얹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모습이 썩 능숙합니다. 앞서서의 나태하고 천박한 설교와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카메라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를 것만 같은 투박한 길을 10분에 달하는 긴 시간을 들여 온전히 따라갑니다. 아낙들은 떠온 물을 우물에 조용히 들이붓습니다.

 

움집 뒤에 쪼그려 앉아있던 남자는 나무집 뒤 의자에 앉아 사과를 먹습니다. 승복을 널어놓고 편안하게 또 거침없이 세신을 합니다. 남자가 세신 하는 동안 아낙들은 수도승을 위한 상을 봅니다.

 

 

 

 

 

 

# 4.

 

런타임 53분. 처음으로 인터뷰라 할만한 대화가 등장합니다.

 

남자와 마을 여자 둘의 대화입니다. 여자 둘은 중국에 일하러 가는 미얀마 사람 일반을 대변합니다. 자국 내 경제적 기반이 무너져 있어 중국에 가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천진난만하게 소개됩니다. 법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 계약서의 유무나 노동 시간과 같은 상식적인 협상조차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둘은 사업가인 남자가 건네는 거의 모든 질문에 아는 대책이 없습니다. 착취당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착취당하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미래를 꿈꾸는 모습이 전개됩니다. 중국인들의 무례하고 모욕적인 행동들을 말하면서도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중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대답을 끝으로 대화는 정리됩니다.

 

쪼그려 앉아 사과를 먹던 남자는, 의자에 앉아 사과를 먹던 남자는, 늦은 저녁 길을 걸으며 사과를 먹습니다. 생각이 많은 표정입니다.

 

 

 

 

 

 

# 5.

 

늦은 밤 사람들에게 명상을 지도하던 수도승은 이튿날 낮, 모여 복권을 놓고 말다툼을 벌입니다. 부탄에서의 축제에 페이가 부족하다며 가기를 마다합니다. 10,000 차트. 30,000 차트. 45,000 차트. 칼같이 계산되는 세속적 숫자들의 나열이 앞서 두 여인의 인터뷰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불쾌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해외에 일하러 가면 시주가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표정이 전개됩니다. 남자가 사업을 한다 고백하자 수도승은 눈을 번뜩이며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이 부자라고 으스대는 거냐며 서로 다툽니다. 남자는 갈등을 정리하며 한가운데를 가로지릅니다. 멀리 석양을 보며 서서 마지막 사과를 먹습니다. 한참을 걸어 쓰레기를 태우는 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불을 직접 보지 말고 눈을 감으라 말한 후 돌아서 걷는 것을 끝으로 다큐멘터리는 막을 내립니다.

 

 

 

 

 

 

# 6.

 

전반적으로 모호합니다. 느린 호흡과 절제된 대사와 긴 테이크가 작품에 최대한 넓은 여백을 부여합니다. 개입 이전에 감독의 의도조차 쉬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 읽어도 그만이라는 듯한 태도랄까요. 좋습니다. 적당히 자유롭게 때론 과격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잠시 나눠보도록 하죠.

 

 

하루에 사과를 하나씩 먹는다는 것은 금욕을 뜻합니다. 욕망과 단절하고 정진하는 것을 은유합니다. 롱테이크의 화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참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시퀀스를 단호하게 나눠 명확한 단계를 밟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등의 부수적인 효과도 있어 보이는군요. 주인공과 함께 관객 역시 사과를 먹는 작품입니다. 길게 늘어선 화면을 따라가는 동안 주인공과 함께 관객 역시 각자의 불면증을 치유하기 위한 14개의 사과를 먹게 됩니다.

 

불면증은 잠을 자지 못하는 병입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번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쟁이의 소개라는 설정은 운명론적인 뉘앙스를 더합니다. 14일 간 14개의 사과를 건너고 나면 남자는 필연적으로 불면증을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아웅다 마을의 수도원은 참선에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수도승들은 잠 못 이루는 남자보다도 훨씬 세속적이고 탐욕적이고 마초적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잠 못 이루는 남자보다 훨씬 가혹하고 간절하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먹지 않는 수도승'과 '사과를 먹을 여유가 없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사과를 먹어야 하는 사업가'의 아이러니입니다.

 

 

 

 

 

 

# 7.

 

남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괴리된 존재라는 점뿐입니다. 고급스러운 차량 안에서 먼지 구덩이 시장을 보는 사람. 팔지 않는 칼을 사려는 사람. 가난한 미얀마의 재력가. 모순된 사회 위에 서 있는 사업가. 엎드린 마을 사람들에게 절을 받는 불면증 환자죠. 남자는 마지막으로 "불을 직접 눈으로 보지 말고 눈을 감으라" 말합니다. '쓰레기를 태우는 불'을 눈 감지 않고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프기 때문이죠.

 

작품은 끝내 남자의 고민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14일 이후 남자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또한 묘사하지 않습니다. 열다섯 번째 사과를 먹는 수도자가 되었을 수도 있을 테구요. 중국에 일하러 가는 미얀마 사람들을 위한 일을 찾아 나설지도 모르죠. 물론 본래의 사업가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관객은 은연중 자신의 관점을 투영해 남자의 고뇌를 짐작하고 그 기준에서 따라 사람들을 관찰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혹자는 타락한 종교에 집중할 테구요. 혹자는 전근대적 성역할에 집중할 수도 있을 테고, 혹자는 국외 노동자의 고통에 집중할 수도 있을 테죠. 그렇게 천천히 들판을 걷는 남자의 걸음을 따라가는 동안 자신의 잠 못 이루는 고뇌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수도원에서 밑바닥 현실을 목격하고 난 이후의 남자는 14개의 사과를 먹기 전의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 더 이상 잠 못 들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독은, 머리를 밀고 천천히 걸으며 사과를 씹던 남자를 지켜보던 관객들에게 당신은 어떤 이유로 잠에 들지 못하는 가, 이젠 잠에 들 수 있을까 묻습니다. '미디 지' 감독, <14개의 사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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