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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옮겨 담았을 뿐 _ 밤쉘, 알렉산드라 딘 감독

그냥_ 2023. 7.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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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배우라는 인형'에서 '피해자라는 박제'로 옮겨 담았을 뿐.

 

 

 

 

 

 

 

 

알렉산드라 딘 감독,

『밤쉘 :: 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입니다.

 

 

 

 

 

# 1.

 

오스트리아 출신 고전 할리우드 배우 '헤디 라마'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인기와 미모와 기행과 논란으로만 알려져 있던 그녀의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재조명하면서, 동시에 그런 재능이 알려질 수 없었던 시스템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본론에 앞서 갈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지는 느낌은 있습니다. 인물이 되었든 사건이 되었든, 탐사의 결과가 아니라 원하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그 결론을 향해 관객의 등을 밀어대는 다큐멘터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인상 말이죠. 포스트 트루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한 바 있는 씨스피라시도 그러했고요. 법적분쟁을 위한 여론몰이 목적이 노골적이었던 밥 로스 : 배신과 탐욕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비판했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닌데요. 이번 작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군요.

 

# 2.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작품은 애초에 헤디 라마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인물의 입체성에 주목할 의지조차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발명가는 인정받지 못한 정체성이었지만 그조차도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는 발명가를 '올바른' 정체성으로, 그 외의 소녀, 배우, 미인, 아내, 연인, 엄마, 유대인 등은 올바른 정체성이 발현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틀린' 정체성으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 모든 문제는 추악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통해 게걸스럽게 소비한 대중 탓이라 힐난한 후, 관객의 부채의식을 최대한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품은 귀결되고 있죠.

 

인물의 입체성에 주목하는 대신 피해자라 폭압적으로 규정합니다. 발명가로서의 면모가 과거에는 '무시'되었다면, 이번에는 '도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례함의 정도는 별반 다르지 않죠. 1940년대가 원하던 미모로 소비되던 사람이 2010년대의 페미니즘을 대리하는 인형으로 소비되는 모습은 다소 서글픕니다. '그녀가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그녀는 페미니스트임에 틀림없다'라는 딸의 인터뷰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목적을 가장 잘 증명하는 꼴이 되고 말았죠.

 

 

 

 

 

 

# 3.

 

오히려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헤디 라마는 사용성에 밝은 사람이라는, 훨씬 폭이 넓은 주체적인 인물입니다. 비단 발명의 대상이 되었던 통신 기술뿐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 조건, 자산, 명망, 인기, 인맥, 상황, 도구 등 모든 것들에 있어 그러한 태도로 살아낸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지적인 아이디어를 시스템의 모순으로 인해 제한받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못지않게 시스템을 사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일련의 성향은 인물의 밝은 면에서도 어두운 면에서도 동시에 드러납니다. 결코 '피해자' 따위의 낙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이죠.

 

미모의 심벌로 소비된 것도 사실이나 미모를 자각하고 활용하고 싶었던 것도 자신입니다. 이미지에 갇힌 것도 사실이나 배우로서 그런 이미지를 쌓아나간 것도 자신이죠. 노년에 오스트리아의 영화를 찍고 싶다 말하는 대목은 영화와 배우라는 것이 마냥 자신을 도구적으로만 소비하던 피해의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도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감독은 MGM의 루이스 버트 메이어에게 독일에서 도망친 배우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힐난합니다만, 동시에 노르망디 호를 타고 수영복과 드레스의 미모를 과시해 계약금을 높이는 헤디는 칭찬합니다. 자기 목적을 위해 미모를 사용하면 진취적인 거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 미모를 소비하면 억울한 거야?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만 작품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감독은 40년대 고전 할리우드 전성기의 가혹한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고 이는 정당합니다만, 그건 헤디 라마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남녀 불문 여타 배우들 뿐 아니라 일반 스텝들까지 같은 시스템 안에서 혹사되긴 매한가지였으니까요. 해당 부분은 당대 영화 산업 구조의 문제를 개인을 향한 폭력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죠.

 

 

 

 

 

 

# 4.

 

중반부는 발명가로서의 작업 과정을 묘사합니다. 주파수 도약(Frequency Hopping)과 관련된 내용이죠. 2차 대전 한가운데를 살아온 인물로서 전쟁의 종식을 위해 어뢰의 적중률을 높이고 싶어 했고, 그것이 주파수 도약이라는 아이디어의 발명으로 발전했다는 내용은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과정에서 작곡가 조지 앤타일과의 관계도 적절히 설명하고 있고요. 일반에게 다소 난해할 수도 있을 기술적 설명을 직관적인 그래픽의 도움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은 몇 없는 장점 중 하나라 할 수 있겠죠.

 

반면, 비전문가의 전문성은 의심받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다큐는 그것을 여배우 헤디 라마의 피해로 왜곡합니다. 당장 배우도 아니고 미모도 없었고 여자도 아니었던 조지 앤타일도 같이 무시되었다는 점은 손쉽게 간과하고 있죠. 퇴짜를 맞은 후 그녀는 채권 판매에 기여하게 되는데요. 3억 4300만 달러를 모았으니 대단하다는 주장과, 그녀의 최선을 단정지은 것이라며 분개하는 말을 동시에 하는 것이 우스꽝스럽습니다만, 채권을 모아 전비를 충당하는 건 덜 귀한 일이라는 인식은 그보다 더 천박합니다. 앞서 발명가는 옳은 정체성으로, 그 외는 틀린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작품이라 말씀드린 이유죠. 정작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에 기여하고 싶었을 뿐임에도 작품이 그녀의 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전개도 인물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에 철저히 복무합니다. 감독에게 헤디 라마는 발명가 이전에 비참한 피해자로만 규정됩니다. 모든 결혼 문제는 상대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대차게 말아먹으며 전재산 날리자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건 타인을 도구로 본다는 면에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작품은 무시합니다. 아스펜 리조트는 남편 돈으로 만들어 놓고 이혼하면서 왜 또 자기 거라고 억울해하는지 알 수 없지만, 작품은 이 역시 그녀의 피해라 규정합니다. 아들 제임스의 파양도 피해의 결과라 합리화합니다. 각성제 중독도 피해의 결과라 합리화합니다. 필로폰에 중독되어 자식 뺨을 때리는 데 딸 데리고 나와 '자신을 유명하게 해 준 시스템의 피해자니까'라며 합리화하고 지나갑니다. 도벽 문제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풀 데가 있어야 하지 않냐(...) 우기는 지경까지 가고 나면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성형 중독도 다 매스컴의 탓입니다.

 

결말부는 다시 주파수 도약에 대한 동어반복으로 마무리하는데요. 그러니까 ⑴성장 > ⑵배우 > ⑶발명 > ⑷사건/사고의 합리화 > ⑸발명의 순으로 플롯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죠. 발명의 동어반복으로 사건/사고의 합리화를 감싸안는 일련의 구조는 합리화가 마치 과학적인 정합성을 가진 것으로 오인하게끔 유도합니다. 이건 너무 비열하죠.

 

 

 

 

 

 

# 5.

 

100세 예술가 편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드린 바 있는데요. 이 같은 다큐멘터리의 문제는 작품 평가와 인물 평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작품을 박하게 평가하는 것이 인물을 공격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거나, 역으로 해당 다큐를 동의함으로써 인물에 대한 자신의 도덕성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작품 평가와 인물 평가는 전혀 별개의 영역임에 분명합니다. 헤디 라마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이 작품은 인물을 올바르게 대우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평입니다. 작중 할리우드는 배우를 성녀나 창녀로만 메이킹한다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주인공을 1940년대의 창녀라 규정한 후 2010년대의 성녀로 옮겼을 뿐이라는 면에서 그렇게 힐난하던 MGM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헤디 라마 발명가로서의 탁월함을 제대로 대우하고 싶었다면, 그녀의 스케치들을 제대로 가져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발명가로서의 면모에 집중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편이 주인공을 훨씬 위한 길이었을 겁니다. 물론 감독이 진정으로 헤디 라마를 존중하고자 했다면 말이죠. 알렉산드라 딘 감독, <밤쉘>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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