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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Social

피터 싱어의 논증 _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그냥_ 2023. 8.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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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Life is a "Comedy" when seen in long-shot, but a "Tragedy" in close-up.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카우 :: Cow』입니다.

 

 

 

 

 

# 1.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상함을 느끼셨을까요. 서두의 영문장은 채플린이 말했다 알려진 명언인데요. 사실 순서를 반대로 적어둔 문장입니다. 원본은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비극(tragedy)을 먼저 말한 후에 희극(comedy)으로 매듭짓는 구조였죠.

 

해당 명언이 대구를 이루는 터라 짐짓 순서를 바꾼다 하더라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실 수도 있을 텐데요. 엄정하게 말하자면 뉘앙스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구절이라 하더라도 문장을 마무리 짓는 곳에 배치된 어구가 조금이나마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채플린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위대한 영화인이자 희극인이었고, 그가 생각하는 희극이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자 했기에 비극을 먼저 말한 후 코미디를 배치한 것이라 이해하면 무난합니다.

 

안드레아 아놀드의 <카우>는 마치 채플린의 명언을 뒤집어놓은 것만 같은 인상입니다. 1129번을 달고 태어난 목장의 젖소 '루마'와 갓 태어난 아기 젖소의 일생을 극단적인 close-up으로 따라가는 작품인 데요. 까마득히 멀리서 희극으로 바라보던 존재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그 안에 담긴 비극을 담담하면서도 육중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 2.

 

얘기 나온 김에 화면 연출을 먼저 짚고 지나갈까요. 젖소를 정면에서 주시하는 오프닝은 도발적이고 압도적입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카메라가 직시하는 피사체와 소통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하는 방식이죠. 이내 화면은 클로즈업을 넘어 익스트림 클로즈업에 가까울 정도로 다가갑니다. 노골적인 화면은 특히 젖소의 '눈'을 직접 마주할 것을 요구하는데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을 오래 마주치면 대상의 위상을 격상시키기 마련입니다. 사물에 눈이 있다 생각하는 순간 마치 생물인 것처럼 대한다거나, 오래도록 눈을 맞춰 온 동물에게 친구나 가족 따위의 인간적 관계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죠.

 

젖소를 마주 보게 만들어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게끔 유도한 것처럼, 영화는 내내 젖소의 내면과 교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새끼 찾는 울음소리, 두려움과 긴장의 숨소리,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 따위가 공들여 담겨 있는 것처럼 말이죠. 특히 몇몇의 롱 테이크는 피사체의 불안과 교감할 영화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일련의 불행에 일상성과 보편성을 투사하기도 합니다. 그 위로 거친 핸드헬드까지 곁들여지면 강력한 현장감까지 복합적으로 전달받게 되죠.

 

클로즈업과 헨드헬드만큼이나 중요한 영상 요소는 앵글입니다. 영화는 90여 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사람 허리에서 가슴 높이 정도에 위치한, 즉 소의 눈높이에 카메라를 놓고 있는데요. 때문에 작품을 보노라면 젖소 루마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어느 순간부턴 1129번 다음, 1130번 소의 시선을 체험한 것 같은 착각마저 느끼게 됩니다.

 

 

 

 

 

 

# 3.

 

영화가 정의하는 젖소는 '동물'이 아닌 '가축'입니다. 때론 비슷한 의미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두 개념 사이에는 인간의 필요가 부여한 목적성 유무라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출산에서부터 사람 손을 탄다거나, 엉덩이에 새겨진 큼지막한 번호 따위는 그 자체로 존재에 낙인찍힌 정체성을 증언합니다.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젖소와의 소통을 요구한 상황에서, 무심하게도 정해진 동선을 따라 소를 옮긴 후 기계적으로 젖을 짜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미처 정리되지 못해 주렁주렁 매달린 탯줄과 태반은 대단히 자극적이죠. 일련의 시퀀스는 경제 논리에 입각한 시스템을 외면해 오던 인류를 윤리적으로 타격합니다. 생태 다큐멘터리가 아닌 가축과 관련된 윤리학적 논쟁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음은 오프닝에서부터 선명하게 확인됩니다.

 

그런 면에서 갓 태어난 새끼 소의 귀에 걸린 번호표는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름표의 번호는 그 번호를 달고 숨 쉬는 소의 생명보다 '비싸'니까요. 소에게 번호가 달린 것이 아니라 번호에 소가 매달려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죠. 이와 같은 윤리적 맥락을 잡는 순간부터 젖소의 울음소리는 가혹한 환경에서 키워지는 소의 절규뿐 아니라, 시스템을 지적하고 비윤리를 경고하는 사이렌처럼 들리기 시작합니다.

 

# 4.

 

젖소의 불행을 근거로 목축 시스템을 윤리적으로 타격한다. 큰 틀에서 동물권 논쟁을 제안하는 다큐멘터리라는 건데요. 그 논거로 소수 인간의 느슨한 즐거움과 다수 젖소가 느낄 압도적 불행의 총량을 대조한다는 면에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냄새도 일부 나고 있구요, 젖소가 느낄 불행의 성격과 이에 이입한 관객이 느낄 불행의 성격을 분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전제한다는 면에서 종차별주의(Speciesism)에 대한 비판도 발견되는데요. 이쯤 되면 그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죠. 피터 싱어(Peter Singer)입니다. 영화적 체험을 근거로 윤리적 채식주의(Ethical Vegetarianism) 담론을 다뤄낸 작품이라는 것이죠.

 

 

 

 

 

 

# 5.

 

영화 속 사운드를 정의하자면 세 가지가 있고, 한 가지가 없다 말씀드릴 수 있는 데요. 있는 것 하나는 축산업자들의 대화입니다. 자신들이 마련한 시스템을 소가 좋아한다 말한다거나,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위선적인 good girl, 통제된 영역 안에 풀어놓으며 자유 운운하는 순간 따위는 강한 단절감을 부여합니다. 둘은 소의 울음소리입니다. 앞서서도 이야기드렸듯 젖소란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신경계가 발달한 존재라는 것을 감정적으로 증명합니다. 셋은 음악 소리입니다. 목장의 라디오 같기도 하고 감독이 후에 입힌 것 같기도 한데요. 어느 쪽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몰입을 깨는 강렬한 위화감만큼은 명확하죠.

 

축산업자의 대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편의적 이기심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소의 울음소리는 윤리를 외면하던 냉소적이고 비겁한 태도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음악 소리는 젖소와의 과도한 교감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관객은 세 가지 소리의 반복적인 교차를 통해 목축업자와 젖소 사이에 선 중간자적 위치를 찾아가도록 유도되는데요. '체험하는 젖소'와 '소비하는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윤리적인 인간'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아, 한 가지 소리가 없다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내레이션입니다. 세 가지 소리로 관객을 포위하고 밀어낸(척력) 끝에 중간자적 결론에 도달하는 작품이기에 인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내레이션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있겠네요.

 

# 6.

 

관객 경험의 입장에서 보자면 종 차별주의에 대한 동의여부가 관건이 될 듯한데요.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은 그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손쉽게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피터 싱어조차 한계가 명확한 논쟁적 인물이기도 하니까요. 여하튼 종 차별주의에 동의하는 관객은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감동의 시간이 되었을 듯하구요. 역으로 동의하지 않는 관객층에겐 영화가 젖소가 아닌 자신을 가학하고 있다 불쾌하겨 여길 수도 있어 보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미니멀리즘적인 연출 방식만큼은 훌륭하다 평해야 할 듯합니다. 명확한 목적의식을 특유의 단순화와 간접성으로 표현함으로써 연설적인 프로파간다라는 의심으로부터 해방되게 만드는 방법론은 특기할만하죠.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카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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