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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몽마르트 파파'즈 썬 _ 몽마르트 파파, 민병우 감독

그냥_ 2020. 11.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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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아버지는 소싯적 낚시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보통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면 가정생활이 순탄치 않다고들 합니다만 다행스럽게도 저희 어머니는 텐트 안에서 과일 도시락을 까먹으며 라디오를 듣거나 선선한 바람 맞으며 천천히 바닷가 거니는 걸 즐기시는 분이셨기에 갈등은 없었죠. 유별난 아버지 덕분에 저의 유년기를 담은 사진과 영상들은 대부분 멀리 수평선과 방파제, 부둣가에 떠내려온 불가사리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었습니다.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도 가족들이 모일 때면 가끔 찾아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희 집 홈비디오를 생판 남인 여러분이 보셔도 재미있을까요?!

 

 

 

 

 

 

 

 

'민병우' 감독,

『몽마르트 파파 :: Montmartre de Papa』입니다.

 

 

 

 

 

# 1.

 

가장으로서 선생님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걸어온 중년의 남자. 새로운 삶을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여정을 떠난 백발의 소년. 前 미술 선생님 現 화가 민형식씨의 눈부신 도전을 함께 짚어보며 소통하는 다큐멘터리.

 

를 기대했습니다만 이게 웬걸. 남의 집 홈비디오를 강제로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의 작품입니다. 아직 서먹한 사이에 막무가내로 떼써가며 집에 초대해 놓고선 딱히 궁금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홈 비디오를 함께 보자고 보채는 걸 들으며 어정쩡한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는 것만 같달까요.

 

확신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민형식씨보다 아들인 민병우 감독이 이 작품을 찍어놓고 훨씬 신났을 거라는 걸 말이죠. 훌륭한 우리 아빠의 모습에 관객이 감탄할 걸 상상하며 으쓱해지는 어깨와, 아빠의 꿈을 멋지게 이뤄드렸다는 뽕과, 그 틈바구니 사이사이에 꾸역꾸역 밀어 넣은 센스 넘치는 (걸로 혼자 착각한) 위트를 되뇌이느라 잠 못 이뤘을 거라 확신합니다.

 

 

 

 

 

 

# 2.

 

적어도 지금껏 본 다큐멘터리 중에선 단연 최악입니다. 오로지 연출의 문제로 말이죠. 화면도 구리고 구성도 구립니다. 전환은 그보다 더 구리고 편집은 그보다 더더욱 구립니다만,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내레이션입니다.

 

대체 왜 이렇게 수다스러운 건지 모르겠어요. 작품의 제목도 파파고 주인공도 파파면, 파파의 목소리와 그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충실히 담았어야 합니다만, 감독이 먼저 들떠 유재석 빙의해 주절주절 떠들어 댑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직접 말해야 할 내용들과 관객이 스스로 생각해야 할 대목들을 모조리 내레이션으로 쏟아내는 걸 듣고 있자니 답답하다 못해 짜증이 치밀어 오릅니다. 되도 않은 발연기까지 더해지노라면 눈앞이 아득해지죠. 이 정도 퀄리티면 연출자의 기술적 역량 이전에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부터 의심하게 됩니다.

 

엽기적일 정도로 감독의 과잉된 자의식이 흘러넘칩니다. 이 영화의 '홈비디오'스러움은 연출자가 자기 통제에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초반부 아빠의 생애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자신이 아빠의 꿈을 이뤄드리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효심을 발휘했는가를 자랑하는 장면이 등장하면 뭐, 궁디 팡팡이라도 해 드려야 되는 건가요. 지하철 소매치기를 당한 장면을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장황한 애니메이션으로 꾸며내면 아이고, 우리 아들 만화도 잘 만드네! 하면서 용돈이라도 드려야 하는 건가요. 아니 이게 무슨 몽마르트 파파야, 몽마르트 파파'즈 썬이지.

 

 

 

 

 

 

# 3.

 

영화의 빈곤한 연출력이 더욱 도드라지는 건 역설적으로 소재가 너무도 근사하기 때문입니다. 교육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과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라는 꿈. 은퇴 시기에 다다른 베이비부머 세대와 그들의 가족이 공유하는 헌신, 감사, 부채, 허무, 불안, 회한 따위의 보편적 정서들의 다각적 충돌과 조화. 꿈꾸는 아빠와 응원하는 아들과 걱정하는 아내 사이의 균형. 그 속에 녹여낼 흘러간 시간과 남은 삶과 가족의 의미와 같은 메시지로 아버님과 대화를 나누기에 너무 멋진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가진 소년의 심장과 중년의 이성을 동시에 담아내야 했을 감독이, 자연인 민형식씨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과 카지노에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동안의 공허함 따위를 진중하게 포착해야 했을 감독이. 자신의 공로 자랑이나 하고 자빠져 있는 있는 바람에 아빠는 그저 연금 믿고 도박에 돈 날리는 철부지가 되고 맙니다.

 

수십 년에 달하는 긴 시간이 만든 무시 못할 삶의 관성과 이리저리 얽힌 숫자들이 만드는 현실의 걱정과 꿈을 향해 내달리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로서의 심정과 그럼에도의 사랑을 포착해야 했을 감독이. 되지도 않은 말장난과 잡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탓에 엄마는 그저 집에서 주식하면서 가족 구박만 하는 투덜이가 되고 맙니다. 이 무슨 무신경함이며 이 무슨 결례인가요.

 

 

 

 

 

 

# 4.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인싸 아들이 찍어 부모님과 돌려보며 즐기는 홈비디오라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내 새끼' 포지션에서 마음껏 잔망을 떨어도 됩니다. 어차피 볼 사람은 가족뿐이고 부모님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일 테니까요. 소중한 부모님 정정하신 모습도 담았고 고생하신 아빠 은퇴식 장면도 멋들어지게 담았고 해외여행 보내드리면서 효도하는 김에 어깨도 한번 으쓱하고 등록금 꼬라박아 배운 영상 기술 부모님께 멋들어지게 보여드리고 나중에 시간 지나 부모님이 돌려보실 때 즐거워하실 수 있을 아들의 재롱도 가득하고, 다 좋죠. 문제는,

 

이 작품이 홈비디오가 아니라 극장에 걸려 사람들에게 팔려나갈 상품이라는 점입니다. 감독은 이 작품을 찍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생판 남인 관객의 눈에 '우리 엄마아빠'가 아닌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민형식'씨와 '이운숙'씨를 어떻게 비춰낼 것인가를 연출자로서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합니다만 이 영화엔 그 고민이 전무합니다. 여러모로 너무나 아까운 다큐멘터리입니다. 부부의 삶도 위트도 모두. 이런 연출에 이렇게 허비되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민병우 감독, <몽마르트 파파>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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