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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Social

검은색 거울 _ 가버려라 2020년, 앨 캠벨 / 앨리스 머사이어스 감독

그냥_ 2021. 1.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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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2020년 한 해 이슈를 망라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블랙 코미디 쇼입니다.

 

만, 코끼리 냉장고 넣기도 아니고 8760시간이 1시간 남짓의 런타임 안에 정리될 리가 없죠. 미리 말씀드리자면 특별한 의미나 깊이 있는 풍자는 기대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저 빌어먹을 2020년을 힘겹게 지나왔을 사람들이 편하게 남 욕하고 놀리는 재미나 누리고 치우는 딱 그 정도 느낌의 킬링 타임 콘텐츠라 이해하시는 편이 적당합니다.

 

 

 

 

 

 

 

 

'앨 캠벨, '앨리스 머사이어스' 감독,

『가버려라, 2020년 :: Death to 2020』입니다.

 

 

 

 

 

# 1.

 

'신정원' 감독의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리뷰에서도 말씀드렸듯 코미디야 말로 가장 스포일러에 민감한 장르이기에 최대한 개그 코드에 대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애초에 해석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내용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아니구요.

 

왜 혼자만 나이를 먹지 않는 건지 알 수 없는 '마더퍼커 장인'이나, 안 무서운 어른들만 골라 그 앞에서만 재수 없는 얘기를 쏟아내는 '그레타 툰베리', 파란 눈물 흘리기 보여주고 돈을 쓸어 담은 '빌리 아일리시'와 같은 이름들이 도입에서부터 등장하지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몰라도 돼요.

 

코알라와 캥거루의 눈물로도 끌 수 없었던 '호주 화재'나, 가난한 나라에서 벌어진 탓에 눈요기거리 밖에 되지 못했던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 아직도 해가 떠 있는 줄만 아는 영국의 '브렉시트'나, 신인 잉글리시 코미디언 '보리스 존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할머니의 '고부갈등'과 같은 이슈들을 알고 계신다면 영화를 조금 더 편안하게 즐기실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얘네들 역시 모른다 하더라도 다큐를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 2.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Black Lives Matter>, <2020 미국 대선>은 나름 주요한 아이템이기에 최소한의 사전 지식이 요구됩니다. 미국인이라면 저 세 이슈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부차적 설명 없이도 원활하게 감상이 가능했겠습니다만. 냉정히 말해서 우리에게 코로나 정도를 제외하면 <BLM>이나 <미 대선>은 남의 집 불구경일 뿐이죠. 우리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바다 건너 천조국에 뭔 일이 일어난들 알게 뭔가요. 만약, 두 이슈에 대해 기본적 정보가 없으시다면 구태여 이 다큐를 보실 이유는 없습니다. 용암 건너기 게임쇼 같은 훨씬 재미있는 거 보는 편이 낫죠.

 

# 3.

 

여하튼, 내용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말씀드렸으니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무수히 쏟아지는 나름의 블랙 코미디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결론은?" 아니 그 이전에, "그래서 테마는?"이라는 질문에조차 아무런 대답이 없는 휘발성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아무리 페이크 다큐라지만 기본적인 주제의식이 부재해 있다는 건 단점이죠.

 

제작진은 2020년 동안의 이슈를 나름대로 망라해 이리저리 풍자한 블랙 코미디를 만들고 싶어 한 듯 하지만, 주제의식이 부재하기에 풍자들은 조직되지 못한 채 파편화되고 마는데요. 풍자가 조직되지 못하고 바스러지다 보니, 역으로 풍자를 전개하는 대상의 시각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맙니다.

 

 

 

 

 

 

# 4.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 시점에서의 미국 내 활동 중인 온건 진보 성향 아티스트들의 시각과 관심사>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감독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가장 풍자된 대상은 소셜 미디어도, 인종 차별주의자도,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도, 영국의 덜떨어진 수상도, 가장 오래된 신상 조 바이든도 아닌 감독 자신이 되고 말았죠.

 

대문짝 만하게 지구본을 들이밀며 2020년을 까겠다고 덤비지만, 이 작품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콘텐츠에 불과합니다. 마치 서울 촌놈들이 대한민국을 서울 - 시골 - 귤로 삼등분하듯, 이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의 세계관 역시 미국 - 영국 - 그 외로 삼등분되죠. 사람들 역시 미국인과 그 외로 분류되고, 미국인들은 다시 사악한 백인과 불쌍한 흑인으로 구분됩니다. 풍자극을 블랙 코미디라 부른 게 천만다행이지, 만약 화이트 코미디라고 불렀다간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도 못했을는지 모르죠.

 

 

 

 

 

 

# 5.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약간 시니컬한 성향의 염세주의적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을 이성적인 중도주의자로 포장하고 싶어 합니다. "나는 감성으로부터 완벽히 독립된 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지적 존재이며, 그런 내가 사회 전반에 걸친 형이상학적 가치를 십분 고려한 이성적 판단을 내렸더니 이런 진보적 결과가 나왔을 뿐이야. 그러니 나를 '진보주의자'라는 어딘가 치우친 것만 같은 느낌의 언어로 부르는 건 무례해!"라는 인식이 그것인데요. 이런 특유의 사고방식이 작품 내내 너무 짙게 묻어납니다.

 

제작진은 대부분의 아이템들에 대해 강박적일 정도로 양비론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영화의 콘텐츠 전체를 통틀어 단 하나의 성역이 있으니, 바로 <Black Lives Matter> 캠페인입니다. 코로나 이슈나 미 대선과는 달리 이 이슈만큼은 예외적 취급을 받습니다. 저 캠페인에 얽힌 부정적인 면들, 폭력적으로 변질된 시위로 인해 피해를 본 상인들의 고통이나, 한쪽에서는 BLM을 상징하는 무릎 꿇기가 벌어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코로나를 이유로 무차별한 동양인에 대한 폭력적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들 따위는 가볍게 무시되거나 외면되죠.

 

 

 

 

 

 

# 6.

 

몇 보 양보해 BLM에 대한 나름의 가치판단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그 이슈가 현시점에서 미국 내에서만 2400만 명이 걸리고, 40만 명 이상 죽어나간 코로나 이슈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엘리트 아티스트들 특유의 현실적 위협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가치 중심의 고상한 인식의 한계가 엿보인 달까요. 감독은 나름 '톰 행크스'의 코로나 양성 판정과 관련해 평범한 사람의 현실을 외면한 채 돈 되는 유명인에게만 달라붙는 메스미디어를 풍자하지만. 감독 자신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우스꽝스럽긴 하군요.

 

# 7.

 

하지만 그래 봐야 BLM은 추상적인 도덕적 어젠다에 불과합니다.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집 안 산책로에서 한가하게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BLM은 일종의 '도덕 선생님 놀이'라는 사회적 유희에 불과하죠. 하지만 할리우드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미 대선> 결과는 실리가 엮여 있는 문제입니다. 2400만 명의 고통과 40만 명의 목숨보다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희생된 1명의 목숨이 더 소중하지만, 그 1명의 목숨 따위보다는 (영화 스스로가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트럼프'와 '바이든'의 <노인 철권>이 훨씬 중요합니다.

 

 

 

 

 

 

# 8.

 

영화는 클라이맥스 일체를 미 대선 과정에 과감히 투자합니다. 무신경하게 보고 있으면 대선에 얽힌 모두를 맹렬히 까는 듯 하지만, 사실 '바이든'에 대한 비판은 나이가 많다는 것 하나뿐, 나머지는 모조리 '트럼프'를 조롱하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도 욕먹어도 할 말 없는 인간의 욕먹어 마땅한 행동들이라 판단하기에 불만은커녕 썩 즐겁게 키득대며 보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너무 노골적으로 바이든의 손을 드는 모양새를 보는 건 조금 민망하긴 하군요. 더군다나, 2020년의 시작에 만든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대선 다 끝나고 대통령 갈린 다음 나온 다큐멘터리에서 이러면 좀 많이 없어 보이잖아요. 광복하고 나서 독립 만세 외치는 거랑 뭐가 달라?

 

# 9.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레타 툰베리'를 오프닝에서 풍자하는 장면까지 고깝게 보일 지경입니다. 그녀를 조롱함으로써 스스로의 성향을 중립적인 양 변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진보 성향의 엘리트 특유의 선민의식과, 잘난 나보다 이유 없이 더 잘 나가는 것만 같은 꼬꼬마에 대한 질투심도 슬쩍 엿보이고요. 감독은 나름 세상을 유쾌하게 비추는 검은색 거울을 만들고 싶었을 듯합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울엔 발가 벗겨진 자기 몸뚱이만이 가득하군요. 어머나 부끄러워라. '앨 캠벨, '앨리스 머사이어스' 감독, <가버려라, 2020년>이었습니다.

 

# 10+. 사실 조금 더 흥미로운 점은 글을 쓴 저부터가 "어떤 단어로 정의되길 원하지 않는 시니컬한 성격의 염세주의적 진보주의자"라는 점입니다. 누구보다 정확히 요런 인간들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그런 성격마저 매우 싫어하는 변태이기에 가능한 글이랄까요. 이 글의 제목인 <셀프 디스>는 사실 제가 저에게 하는 셀프 디스이기도 한 셈입니다.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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