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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Humanism

나의 의미 _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에드 퍼킨스 감독

그냥_ 2020. 11.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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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알렉스'. 쌍둥이 형제의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마커스'.

 

알렉스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어 합니다. 마커스는 잊고 싶은 기억을 덮어두고 싶어 합니다. 오래도록 미뤄왔던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숨겨진 유년기를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사건의 실체를 알고 보면 감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반전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글을 읽기 앞서 영화를 먼저 보실 것을 권합니다.

 

 

 

 

 

 

 

 

'에드 퍼킨스' 감독,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 Tell Me Who I Am』입니다.

 

 

 

 

 

# 1.

 

당사자에겐 외람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모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시합니다.

 

설마 하니 알렉스 마커스 형제 부모의 비도덕성을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부부가 자기 핏줄에게 저지른 반인륜적 학대에 대한 분노나, 알렉스의 막막함과 허무함, 마커스의 두려움과 혐오감에 대한 인본주의적 위로의 가치가 얕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그건 작품을 보는 동안 관객 스스로 느끼셔야 할 감수성의 영역이지 리뷰에서 글로 늘어놓는 성격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 2.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쌍둥이 동생에게 묻는 것으로 편리하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작품을 보고 나면 제목에서 지칭하는 '나'란 누구를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더 깊이 있는 사유를 불러일으킵니다. 시간과 입장에 따라 대단히 다양한 층위의 알렉스 루이스가 등장하기 때문이죠.

 

1.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던 유년기의 '알렉스'

2. 사고로 인해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잊은 '알렉스'

3. '마커스'로부터 들은 자신의 과거가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신이라 믿는 동안의 '알렉스'

4. '마커스'로부터 들은 조언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알렉스'를 본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알렉스'

5. '마커스'로부터 들은 자신의 과거가 형제의 주관에 의해 편집된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된 '알렉스'

6. 홀로 남은 흔적을 더듬어 자신의 과거를 미루어 유추하는 동안의 '알렉스'

7. '마커스'로부터 과거의 진실을 전해 들어 알게 된 '알렉스'

8. '알렉스'의 분신으로서의 '마커스'

 

이 가운데 누가 진정한 의미에서 '알렉스 루이스'를 대변하는가. 혹은 어떤 게 '알렉스 루이스'라는 존재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가 라는 고찰은 분명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알렉스 본인은 일곱 번째, 마커스로부터 과거의 진실을 전해 들어 알게 된 알렉스가 가장 자신다운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형제의 판단과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반드시 나의 과거를 알아야겠다 말하죠.

 

 

 

 

 

 

# 3.

 

각 층위의 알렉스는 '주체', '기억', '감정', '해석'이라는 네 가지 가치 중 어떤 것을 확보하거나 상실하는가에 의해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불우하지만 온전한 알렉스입니다. 두 번째 알렉스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과 해석이 모두 상실된 알렉스죠. 세 번째는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알렉스고, 다섯 번째는 해석만을 가지고 있는 알렉스입니다. 네 번째는 기억과 해석을 바탕으로 연기되었을 뿐 주체적인 알렉스는 아닙니다. 여섯 번째는 파편적 흔적과 해석을 가진 알렉스, 일곱 번째는 온전한 정보와 해석을 가지게 된 알렉스이며, 여덟 번째는 기억과 감정과 해석을 모두 완벽히 갖추고 있지만 결코 될 수 없는 가상의 알렉스라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실체를 말하는 마커스의 모습과 이를 듣는 알렉스의 모습은 대단히 대조적입니다. 마커스는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알렉스는 그저 슬퍼하죠. 알렉스는 마커스로부터 기억을 전달받을 수 있고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그 순간의 끔찍한 감정까지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알렉스가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말하는 마커스와, 그럼에도 자신의 과거를 알아야겠다 단호하게 말하는 알렉스의 간극은 여기. 감정의 격차에서 발생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판단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불행한 과거의 '기억'보단 무겁지만, 불행한 과거의 '기억'과 '감정'의 총합보다는 가볍습니다. 딜레마죠.

 

 

 

 

 

 

# 4.

 

알렉스가 주장하고 요구하는대로 '일곱 번째의 알렉스'는 알렉스의 최선이지만 마커스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는 면에서 그럼에도 불완전한 알렉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인터뷰장을 떠나가는 알렉스가 이 작업을 통해 간절히 원하던 자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겠다라는 비극적인 생각도 드는군요.

 

두 번의 큰 불행입니다만 마커스의 모습을 보노라면 두 번째 불행은 첫 번째 불행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것만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동시에 알렉스의 뒷모습에서 고통에서 해방되는 대가로 결코 온전히 자기 자신을 쥘 수 없는 허무함을 돌려받은 것만 같다는 절망적인 생각도 들죠.

 

어지러운 잡념의 늪을 지나 문득 나는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심마저 들게 됩니다. 기억상실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을 겪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억이 왜곡되거나 감정이 상실되거나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내가 지나온 나의 삶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반성 아닌 반성까지 하게 되는군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가지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계신가요. '에드 퍼킨스' 감독,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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