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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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163

폭주하는 자기애 _ 필름시대사랑, 장률 감독

# 0. 확실히 해이해진 요즘입니다. 며칠 연이어 편하게 떠먹여 주는 영화들만 골라봤다 싶죠. 조수석에 앉아 감독이 직접 말하는 대화만 따라가면 되는 . 타란티노 옆에서 미녀의 발가락이나 빨면 되는 . 세상 친절한 옴니버스 음식 영화 까지. 이쯤되면 슬슬 스스로의 기강을 잡을 때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리스트에 묵혀뒀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겠군요. '장률' 감독, 『필름시대사랑 :: Love and...』입니다. # 1. 제목부터 피곤합니다. 각기 따로 노는 어휘뿐 아니라 특히 혼란스러운 건 조사助詞가 없기 때문이겠죠. 필름 시대의 사랑인 건지, 필름과 시대와 사랑인 건지 아니면 필름으로 담은 시대적 사랑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요. 영화가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이 직접 내건 제목을 만나게..

Film/Drama 2021.11.14

소녀는 엄마는 친구 _ 좋은날, 황슬기 감독

# 0. 단편 옴니버스 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황슬기' 감독, 『좋은날 :: A Good Day』입니다. # 1. 진수성찬입니다. 이전 두 편의 음식과는 결이 많이 다르군요. 장소도 휴양지에 있을 것만 같은 호젓한 한정식집입니다. 네 명의 여사님들이 등장합니다. 진한 사투리를 쓰고 있습니다. 흔히 그 나이대 여자들이 모여 나눌 법한 이야기와, 생길 수도 있을 법한 갈등이 전개됩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발견되는 키워드는 친구와 엄마입니다. 친구는 상황이 성립되기 위한 관계를 만들고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돕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감독은 엄마의 정체성을 진수성찬으로 정의합니다. 풍요롭고 화려하고 든든하지만, 때론 지루하고 까다로우며 불편하기도 합니다. # 2. 서울입니다. 유독 티격태격하던..

Film/Drama 2021.11.10

숙주와 라임. 고수는 빼고 _ 나이트 크루징, 김정인 감독

# 0. 단편 옴니버스 의 첫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김정인' 감독, 『나이트 크루징 :: Night Cruising』입니다. # 1. 오르막길의 뒷모습. 누군가를 부축하는. 지나는 차량에 가려진. 물리적으로 홀로 남겨진. 사회적으로 홀로 낙오된. 주인공 '송이'에 대한 감독의 소개입니다. 줄지은 건물들 앞 대로를 가로지르는 차량들과, 언제 밥이나 먹자는 형식적인 인사는 '김정인' 감독의 도시인이죠. 두리번거리는 송이는 미로 같은 골목길이라는 중간지대를 지나 초현실적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차근차근 진행된 공간 변화로 점층 된 기대감은 작은 트럭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 연결되고, 이내 한 그릇의 음식 위에 강하게 집중됩니다. 높은 밀도의 기대감에 부응하듯, 감독은 최대한 가까..

Film/Drama 2021.11.06

추악한 리얼리즘 _ 택시, 자파르 파나히 감독

# 0.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었다. 고민 끝에 택시를 몰아야겠다 생각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 『택시 :: Taxi』입니다. # 1. 첫 번째 손님입니다. 강경한 법 적용을 주장하는 남자와 죄와 벌의 등가성에 대해 주장하는 여자입니다. 대화 내내 남자는 앞 좌석에 여자는 뒷 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남자는 화면의 정중앙에 여자는 귀퉁이에 위치합니다. 남자는 편안한 일상복을 여자는 차도르를 두르고 있습니다. 남자는 대화 내내 앞이나 옆자리 남자 운전사만을 쳐다봅니다. 여자은 돌아보지 않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합니다. 두 사람은 짐짓 같은 주제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듯 하지만 다른 위계에 존재합니다. 여자는 교사입니다. 여자의 직업을 들은 남자는 말합니다. "그럼 그렇지. 현실과 동떨어진 일..

Film/Drama 2021.10.27

완만한 하강곡선 _ 웰다잉, 오누리 감독

# 0. 야, 야. 있잖아. 어떤 남자가 자살을 하려는데 딱 죽기 직전 그때! 하필 똑같이 죽으러 온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거야. 어때?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오누리' 감독, 『웰다잉 :: Well dying』입니다. # 1. 생각해봐. 모든 걸 포기하고 유서까지 써 놓고 낭떠러지를 뛰어내리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하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야. 죽음은 끝이잖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시작이고. 끝과 시작의 중첩. 뭔가 그림 나오지. 벼랑 끝에 선 사람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거침없는 위로. 미련도 뭣도 없는 순간에 선 사람들의 홀가분한 진심. 그런 진심들이 예기치 않게 쌓아나가는 연약하지만 생동감 있는 생生의 이유들과, 그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감동. 뭐 이런 류의 주제의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Film/Drama 2021.10.10

쓰러지지 않는 도미노 _ 산나물 처녀, 김초희 감독

# 0. 아, 부끄러워라. '김초희' 감독, 『산나물 처녀 :: Ladies of the Forest』입니다. # 1. 도미노를 만들 겁니다. 주어진 땅은 좁지만 그래도 알차게 블록들을 모았습니다. 테마도, 밑그림도 그럴싸하게 준비했습니다. 세심한 손길로 줄지어 놓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블록이 서 있는 지금은 의미 없어 보이겠지만 쓰러트리고 나면 멋진 그림이 완성될 겁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블록들이 뉘어지는 순간 뭇사람들이 예상치 못할 의외성과 창의성이 드러나게 될 겁니다. 다시, 하나... 둘... 셋... 드디어 완성입니다. 처음 블록을 놓았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관객도 충분히 모였으니 이제 쓰러트리기만 하면 되는... 데? 어라? 왜 안 쓰러지지? 첫 블록이 쓰러질 듯 쓰러질..

Film/Drama 2021.09.05

힐링은 없어. 그리고 힘냅시다 _ 바다의 뚜껑,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 0.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들이 흘러가는 구름과 바다를 보며 느리게 드라이브를 하는 것만 같은 영화라 한다면, 이 작품은 바다 앞에 차를 세워둔 채 운전석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1시간 넘는 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다가 차의 시동을 탁 걸며 끝나는 것만 같은 이야기랄까요.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바다의 뚜껑 :: 海のふた』입니다. # 1. 거리감이 인상적입니다. 차분한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주요 인물인 '마리'와 '하지메', '오사무' 모두 영화 내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배치되거나, 걷는다 하더라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주변을 배회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빙글빙글 겉도는 자전거와, 오열하는 '하지메'와 지켜보는 '..

Film/Drama 2021.09.01

닿아버렸네요 _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정가영 감독

# 0. 대사 맛있다. '정가영' 감독,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 Love Jo. Right Now.』입니다. # 1. 작품을 관통하는 한마디. 감독과 교감하며 느낀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을 모조리 관통하는 단 한마디의 대사가 목소리가 되어 귀를 파고드는 순간의 전율입니다. 오랜만이네요. 꿈속의 꿈이라는 키워드로 표현되는 이야기 구조라거나, 감독이 일관되게 보여온 형식들과 그 속에서의 소소한 변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인서트의 함의 등에 대해 썰을 풀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닿아버렸네요."라는 한 문장으로 끝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닿았네요 아니고, 닿고 싶었어요도 아니고, 닿았으면 좋겠어요도 아니고, 닿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도 아니고, 닿으면 어떡하죠도 아닌. 닿아 버렸네요..

Film/Drama 2021.08.20

영화에 대한 한숨 _ 낯설고 먼, 트라본 프리 /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

# 0.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 ★★✩✩✩ 이동진, 영화 한줄평 '트라본 프리',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 『낯설고 먼 :: Two Distant Strangers』입니다. # 1. 인종차별, 그중에서도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다룬 영화입니다. 시작부터 등장하는 '제임스 볼드윈'이라는 저명인사의 이름과, 경찰이 주인공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떠올리게 될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이 작품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죠. 유색인종에게만 차별적으로 작동하는 공권력의 폭력적 사례를 모아 루프 속에 갇힌 한 인간에게 소집시켜 극으로 재구성합니다. # 2.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이 본래의 평온한 일상을 은유합니다. 미모의 여성 '페리'와의 하룻밤이 설레는 매일을 상징합니다. 미국의 흑인 작가이..

Film/Drama 2021.08.10

내일도 날씨는 맑음 _ 병훈의 하루, 이희준 감독

# 0. 오염 강박과 공황 장애를 앓고 있는 병훈은 남들에겐 별일 아닌 숙제를 전쟁처럼 치러낸다. 하루의 끝에는 그를 위한 진짜 선물이 있었다. 병훈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선물을 재발견하고 이 순간에 감사를 느낀다. '이희준' 감독, 『병훈의 하루 :: Mad Rush』입니다. # 1. 이희준 감독 작품입니다. 이희준이란 이름은 배우밖에 모르신다구요? 네, 그 사람 맞습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병훈'의 하루입니다. 시나리오 특성상 메시지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묘사의 완성도는 다시 배우의 연기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담당한 배우가 바로! 이희준이죠. 감독도 하고 주연도 하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

Film/Drama 2021.08.04

따뜻한 이미지, 희미한 메시지 _ 종천지모, 최한규 감독

# 0. 종천지모 [終天之慕] 이 세상(世上) 끝날 때까지 계속(繼續)되는 사모(思慕)의 정 '최한규' 감독, 『종천지모 :: 終天之慕』 입니다. # 1. 낡은 괘종시계가 오래된 무언가를 은유합니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늦은 저녁 9시는 누군가의 시간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시계의 옆면에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붓으로 쓴 것이 아니라 조각도로 파 놓았다는 점은 불변성과 정성 등을 상징합니다. 글귀 는 작품의 제목이자 주제의식입니다. 천천히 죽을 쑤는 할아버지입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그 시간을 녹여 더한 공덕입니다. 건더기를 넣지 않은 듯한 맑은 죽은 할아버지의 정성에 순수성의 이미지를 더합니다. 쌓인 약병은 식사하실 분이 많이 아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죠. 낡은 칫솔 두 개가 가지런히 ..

Film/Drama 2021.07.11

누군가의 평범 _ 점보, 조이 위톡 감독

# 0. 사물을 사랑하는 오브젝토필리아 Objectophilia, 그중에서도 특히 기계를 사랑하는 메카노필리아 Mechanophilia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용성이나 수집욕 혹은 지적 욕구 등으로 기기를 즐기는 IT 덕후들이나 애인과의 성적 페티시를 충족하기 위한 기계 소품을 탐닉하는 사람들이 아닌 아예 기계 그 자체를 성적으로 사랑하는 도착증을 말합니다. '조이 위톡' 감독, 『점보 :: Jumbo』입니다. # 1. 기계를 사랑하는 여자 '잔'입니다. A.I. 탑재된 로봇형 기계 아니구요. 그냥 쌩기계(...), 놀이동산 어트랙션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죠. 히치콕 감독은 "드라마란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다. Drama is life with the dull parts cut out." 라 말하는데요..

Film/Drama 2021.07.01

직업병 _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

# 0. 문소리 감독은 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치열한 현실과 페이소스를 묘사합니다. 김윤석 감독은 을 통해 배우의 시선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을 풍부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정진영 감독 역시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 을 통해 배우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정체성 갈등을 전개합니다. 배우, 특히 배테랑 배우가 영화를 만들면 첫 작품에서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정진영' 감독, 『사라진 시간 :: Me and Me』입니다. # 1. 영화 초반 이영은 세 인격에 빙의됩니다. 돌아가신 수혁의 어머니와 코미디언 이주일, 레슬러 역도산이죠. 얼핏 세 인물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백종렬 감독의 처럼 저녁이면 랜덤 하게 찾아오는 각기 다른 인격의 예시인..

Film/Drama 2021.06.23

위령제 _ 후쿠오카, 장률 감독

# 0.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장률' 감독, 『후쿠오카 :: Fukuoka』입니다. # 1. '제문'의 헌책방입니다. 켜켜이 쌓인 헌책은 오랜 시간에 걸친 누적의 산물입니다. 책방은 축적된 기억의 공간이자 관념의 공간입니다. 환청이 들립니다. 이름 모를 남자의 목소리입니다. 모든 정보는 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있지만 남자의 목소리만큼은 순간 휘발되어 사라지는 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문이 전화를 걸어 해효의 소식을 묻는 동안 소담은 책방 깊숙한 곳에 숨겨진 하얀색 을 꺼내 듭니다. 등의 형상은 책방에 있는 것이라기엔 이질적입니다. 밝고 선명하며 장식 없이 둥근 모양입니다. 완전하고 원형적이며 순수합니다. 소담은 묻습니다. "아저씨, 이런 거 좋아해요?" 제문과 소담이 20년 넘게 연락하지 않..

Film/Drama 2021.06.21

1초 _ 내가 어때섷ㅎㅎ, 정가영 감독

# 0. 대화하는 두 사람 뒤로 흐르는 시계 소리 똑. 딱. 똑. 딱. '정가영' 감독, 『내가 어때섷ㅎㅎ :: What's Wrong with Me? KK』입니다. # 1. 일부러 조금 더 반가운 척 말하는 목소리 1초. 수찬의 적당한 핑계에 무안해져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1초.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유진과 얼마나 만났는 지를 떠보는 1초. 일부러 심드렁한 척 한창 좋을 때네 말하는 1초. 5년, 8년, 10년. 27 평생 도합 23년을 연애했노라 말하는 뻔뻔한 1초. 이 남자가 내 나이도 이름도 모른다는 것에 내심 자존심 상하지만 티를 내고 싶지는 않은 1초. 그럼에도 "저 연애 잘해요!" 라 발끈 해 말하는 1초. 개구진 표정으로 "저랑 연애하실래요?" 라 말한 후 잠깐 가만히 멈춰 선 가영의 1..

Film/Drama 2021.06.19

현실은 더 잔인하다 _ 다운, 이우수 감독

# 0. 늦은 나이에 임신한 부부. 기쁨도 잠시 양수 검사 결과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이대로 낳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상황에 부닥친다. '이우수' 감독, 『다운 :: Down Syndrome』입니다. # 1. 현실은 상상보다 더 잔인하고, 잔인한 현실은 예고없이 찾아옵니다. 작품은 중반부 아내가 의사에게 건네는 대사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 거 같으세요?" 이 질문은 감독이 배역의 입을 빌어 스크린 너머 관객 개개인에게 직접 건네는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발견하고 그 속에 놓인 인물의 심리와 시선에 집중한 연출이 섬세합니다. 윤리와 현실과 책임과 각기 다른 책임을 지는 방식들과 특정한 책임을 강요하는 법의 폭력 사이의..

Film/Drama 2021.06.11

이스라엘 캐슬 _ 피아니스트의 비밀, 이타이 탈 감독

# 0. 우리나라가 너희 나라보다 작을 수는 있어도 우리나라 역시 위대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만들고 세계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 김연아와 박지성의 오른발과 왼발이 있는 나라라고.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이타이 탈' 감독, 『피아니스트의 비밀 :: God of the Piano』입니다. # 1. 음악에 인생 갈아 넣은 피아니스트 '아낫'은 네지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은 히나타였습니다. 졸렬잎 마을 호카게들과는 달리 공과 사가 확실한 예술학교 교장 아빠는 끝내 딸을 인정하지 않았죠. 아낫은 한을 풀기 위해 민머리 남편을 낚아 2세를 통한 대리전을 계획합니다. 임신 중에도 피아노를 놓지 않을 정도로 부푼 기대로 아이를 낳았건만, 저런. 아기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군요. 하지만..

Film/Drama 2021.06.09

어린 공주 _ 버터플라이, 필립 뮬 감독

# 0. 《어린 왕자》(프랑스어: Le Petit Prince)는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소설이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자기의 작은 별에서 여러 별들을 거쳐서 드디어 지상에 내려온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결국 소년이 뱀에게 물려 자신의 별로 돌아갈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 순결한 소년과 장미(여성)의 사랑 이야기나 갖가지 지상의 성인을 반영하는 다른 별에서 겪은 체험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일종의 초월적 비판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비판을 담은 시(童心)는 그것이 비판과 분리되지 않고 일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작자의 심정과 윤리가 혼연히 융합되고 표백(表白)되어 있어, 프랑스는 물론 미국·독일 등 각국에서도 비상한 호평으로 환영하였다. - 위키백..

Film/Drama 2021.06.03

불량 성냥과 계급 우화 _ 성냥공장 소녀,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0.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기억되기 마련입니다. 당장 이 작품만 하더라도 후반부 복수 장면이 인상적인 작품이죠. 그럼에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퀀스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전 '오프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니아분들 중 일부는 간혹 극장 시간이 늦어 오프닝 10여분을 놓치게 될 경우, 아예 관람 자체를 미뤄버리기도 하는데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좋은 감독들은 대게 관객과의 첫 만남이, 이후 영화적 경험에 있어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의 나, '봉준호'의 , '쿠엔틴 타란티노'의 같은 영화들은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티켓값을 넉넉히 돌려주는 작품이죠. 그리고 이 영화 역시 그 리스트에 들 법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Film/Drama 2021.05.12

불안한 존재들 _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아녜스 바르다 감독

# 0. 되도록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하고서 글로 옮기려 합니다. 그게 옳으냐 그르냐, 수준이 되느냐 못 미치느냐 와는 별개로 말이죠. 하지만 이번엔 포기해야겠네요. 대단히 간결하고 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을 하나하나 음미하다보면 쉬이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문제는 절대 아니구요,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죠. 수많은 화두와 표현이 가득한 탓에, 며칠에 걸쳐 조곤조곤 읽어야 할 책을 1시간 30분 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느낌입니다. 시간을 두고 곱씹어 봤지만 끝내 정리되지 않아, 나름대로 생각한 몇몇 포인트들을 나열해 두는 것으로 이번 리뷰는 대신해야겠네요. 개인적으론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중 가장 러블리하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

Film/Drama 2021.05.08

Black Bottom _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조지 C. 울프 감독

# 0. 우리나라에서는 의 윤여정 선생이 가장 큰 축하를 받았습니다만 2021 오스카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클로이 자오의 라 해야 하겠죠. 많은 분들의 생각처럼 저 또한 상을 탈만한 영화가 상을 탔다 생각합니다. 진즉 봤음에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미뤄두고 있는데요. 적당한 시기가 되면 노매드 랜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겠죠. 그 외에도 나 , , , , , 등 훌륭한 영화들이 한 해를 빛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미네이트 작 중 네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영화가 뭐냐 물으신다면 전 이 작품의 이름을 가장 먼저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지 C. 울프' 감독,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Ma Rainey's Black Bottom』입니다. # 1.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솔직히...

Film/Drama 2021.05.02

누가 돌봐주고 있어? _ 클레오 & 폴, 스테판 드무스티에 감독

# 0. 쌍둥이 남매 '클레오'와 '폴'이 길을 잃는 영화입니다만 사실 아이들은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부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방황과는 다릅니다. 방황에는 갈등과 번민이 포함되지만 이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쌍둥이 모두 부모의 품이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저 둥둥 떠다니고 있을 뿐이죠. '스테판 드무스티에' 감독, 『클레오 & 폴 :: Allons enfants』입니다. # 1. '클레오'와 '폴'은 부모가 아닌 보모의 아래 있습니다. 보모 '엘사'는 보모로서의 적합한 능력도 책임감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울고 있는 '클레오'를 달래줄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는 행인이고, 처음 손을 맞잡은 사람은 공원에 ..

Film/Drama 2021.05.01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다 _ 바베트의 만찬, 가브리엘 액셀 감독

# 0. 강신주 교수는 라는 책을 통해 무문관(無門關)을 저 같은 똥멍청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따라 48개의 관문을 차근차근 넘는 동안 수많은 화두들을 흥미롭게 즐기고 나면 어느새 서서히 하나의 메시지로 소집됨을 느끼게 되죠. 집착을 벗어던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자. '가브리엘 액셀' 감독, 『바베트의 만찬 :: Babettes gæstebud』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요리 영화입니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과, 브래드 버드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과, 존 파브로 감독의 같은 정줄 놓고 편안하게 남들 밥 차리고 밥 먹는 거 구경하는 먹방 영화들의 조상님 쯤 될법한 영화죠. 동시에 종교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부터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

Film/Drama 2021.04.29

연기의 맛 _ 대학살의 신, 로만 폴란스키 감독

# 0. 연기 구경하는 맛으로 보는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대학살의 신 :: Carnage』입니다. # 1. 찰진 대사빨과 화려한 연기빨로 조지는 소위 말싸움물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좁은 거실에 틀어박혀 펼치는 1시간 19분 동안의 썰전입니다. 다 큰 어른들이 교양과 위선으로 싸우는 동안 리드미컬하게 변모하는 긴장과 갈등, 그 속에 숨겨진 묵직한 농담입니다. 평범하다는 말도 거창해 보일 정도로 소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입니다. 전개라 부를만한 서사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인즉, 연출자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죠. '낸시'가 화려하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나, '햄스터'나 '아프리카' 같은 몇 뇌절성 아이템을 활용한 러프한 완급 조절을 제외..

Film/Drama 2021.04.26

컨템퍼러리 타임즈 _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감독

# 0.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감독의 이름과 매일 두 잔씩은 꼬박꼬박 마시는 커피, 한동안 인생을 좀먹었던 담배와 긴장을 부르는 강렬한 흑백의 화면, 집중을 낚아채는 좁은 테이블의 공간과 왠지 아우슈비츠를 속속들이 알 것만 같은 배우의 등장이 의자를 스크린 가까이 당겨 앉게 합니다. '짐 자무쉬' 감독, 『커피와 담배 :: Coffee and Cigarettes』입니다. # 1.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데요... 어째 점점 현타가 몰려옵니다. '열심히 본다'는 행위 그 자체에 강한 회의감이 듭니다. 이렇게 보는 영화가 아닌 것만 같은 위화감입니다. 가까이 다가간 몸을 다시 뒤로 뉘어 엉덩이를 뺀 채 마치 염세주의자들의 그것과 같은 무심함으로 영화를 봐야 할 것만 같다는 압박이 느껴집니다. 신기한..

Film/Drama 2021.04.24

없다 _ 화이트 라이, 요나 루이스 / 캘빈 토마스 감독

# 0. 거짓말에 관한 영화입니다. 심리 드라마라는 거죠. '요나 루이스', '캘빈 토마스' 감독, 『화이트 라이 :: White Lie』입니다. # 1. 점점 더 깊은 거짓말의 수렁에 빠져드는 주인공 '케이티'의 심리상태를 추적합니다.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주인공의 헐벗은 모습과 특정 장면에서의 인물 배치, 음영의 활용 정도를 제외하면 '극'으로서 조작된 문학적 메타포는 절제되어 있습니다. 살갗이 틀 정도로 건조하고 냉정하게 주인공의 발 뒤를 물듯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언제가 될진 알 수 없지만 머지않아 터질 거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는 시한폭탄. 그 폭탄을 두 손에 꼭 쥔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주인공의 불안과 인지부조화를 직선적으로 쫓아가는 작품이죠. # 2. 심리 드라마의 평가는 대체로 주인공과..

Film/Drama 2021.04.22

철창 안의 새 _ 엘리사와 마르셀라,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 0.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녀들을 싫어한 걸까. 그녀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사랑한 걸까.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엘리사와 마르셀라 :: Elisa y Marcela』입니다. # 1.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멜로보다는 에 더 가까울 영화입니다. '엘리사'와 '마르셀라'의 사랑이 쌓여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두 사람이 시대의 폭력을 피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떠도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더 많이 포착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20세기 초, '다양성의 가치'를 '종교적 미덕'이 폭력적으로 압도하던 시대.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치러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다룹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라는 점입니다. 가 아니라는 점이죠...

Film/Drama 2021.04.11

상황은 당신을 정의할 수 없다 _ 새벽배송, 김현철 감독

# 0. 배송 아르바이트를 하는 '양균'은 지원을 요청합니다. 추가 인력으로 '수진'이 합류하고, 두 사람은 함께 이른 새벽의 배송을 다닙니다. ‘김현철’ 감독, 『새벽 배송』입니다. # 1. '수진'과 '양균'은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수진'의 차량 배터리가 다 떨어지자 '양균'은 선배가 됩니다. 정산 비율을 이야기하는 순간엔 많지 않은 수당을 나눠가져야 하는 경쟁자가 됩니다. 물품을 나눠 전달하는 동안에는 파트너가 되구요, '수진'이 A4 용지를 배송하던 때를 말하는 순간엔 고생스러운 택배기사가, '양균'이 전 여자 친구의 집에 배송 가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엔 전 남자 친구가 됩니다. 취객이 실수로 잘못 오른 차는 '무례의 공간'이 되지만 다시 돌아온 취객을 태워주는 선택과 함께 '선의의 공간'으로..

Film/Drama 2021.03.27

메타포 찾는 퍼즐 놀이 _ 판문점 에어컨, 이태훈 감독

# 0. 판문점에 설치된 고장 난 에어컨을 고치는 수리기사의 이야기입니다. '이태훈' 감독, 『판문점 에어컨 :: Air Conditioner in PANMUNJEOM』입니다. # 1.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 위에 은유가 맛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에 영화가 매몰되어 있다는 점일 겁니다. 런타임 내내 배경이나 등장인물, 대사, 연기, 전개 모두 메세지를 돕는 메타포로서만 기능합니다. 본론에 앞서 분단의 비극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박찬욱 감독 작 를 잠깐 살펴보죠. 박찬욱 감독이 제안하는 영화 속 상황 또한 이 작품 못지 않게 도발적입니다만 적어도 그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 '경필', '수혁', '성식', '우진'의 행동만큼은 각자에게 할당된 설정에 부합하는 합리성을 철저히 따릅니다..

Film/Drama 2021.03.19

가정폭력의 리얼리즘 _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비에르 르그랑 감독

# 0.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고 싶다면 그래서 관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고 싶다면 이 정도 정성은 들여야 합니다. 그게 메시지의 당사자들과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죠. 제44회 세자르 영화제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수상작. 제7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 미래의 사자상 수상작입니다. '자비에르 르그랑' 감독, 『아직 끝나지 않았다 :: Jusqu'à la garde』입니다. # 1. 사실 이 작품을 본지는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얼추... 한 3년쯤 된 것 같네요. 가뭄에 콩 나듯 있던 예기치 않은 주중의 휴일, 우연히 들렀던 영화의 전당에서 봤었더랬죠. 운 좋게도 당시 해당 관에는 저를 제외한 관객이 아무도 없었고 운 나쁘게도 이 영화는 넓은 영화관에서 홀로 보기에 ..

Film/Drama 202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