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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Black Bottom _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조지 C. 울프 감독

그냥_ 2021. 5.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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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우리나라에서는 <미나리>의 윤여정 선생이 가장 큰 축하를 받았습니다만 2021 오스카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 랜드>라 해야 하겠죠. 많은 분들의 생각처럼 저 또한 상을 탈만한 영화가 상을 탔다 생각합니다. 진즉 봤음에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미뤄두고 있는데요. 적당한 시기가 되면 노매드 랜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겠죠.

 

그 외에도 <맹크>나 <더 파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사운드 오브 메탈>, <프라미싱 영 우먼>, <소울> 등 훌륭한 영화들이 한 해를 빛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미네이트 작 중 네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영화가 뭐냐 물으신다면 전 이 작품의 이름을 가장 먼저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지 C. 울프' 감독,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Ma Rainey's Black Bottom』입니다.

 

 

 

 

 

# 1.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솔직히... 너무합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그냥 내버려 둬도 되는 거잖아요. 왜 굳이 제목을 저딴 식으로 바꿔 멀쩡한 작품에 엿을 먹이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마 레이니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블루스 인생에 대한 영화는 더더욱 아니구요. 어이없는 개명에 허망하게 날아가버린 Black Bottom. 검은 밑바닥에 대한 영화입니다. 홍철 없는 홍철팀도 아니고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이 미친 자들아!

 

# 2.

 

영화는 세 층위의 Black Bottom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바깥의 표면은 역시나 원제와 동명인 마 레이니의 명곡 <Ma Rainey's Black Bottom>이라는 소재가 될 테구요. 그다음 껍질은 지하실에 내리깔린 흑인 세션들의 이야기라는 구체적 구성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겠죠. 이 두 껍질로 감싸 둔 주제의식이 바로 세 번째 Black Bottom, 인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담긴 1920년대의 차별적 사회상과 핍박과 멸시 아래서도 살아 쉼 쉬던 밑바닥 흑인 문화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3.

 

이름 모를 누군가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둡고 무서운 숲을 달려 공연장에 도착합니다. 마 레이니. 그녀의 음악은 절망적인 현실 속 흑인들의 영혼을 달래던 어머니의 품과 같았음을 은유합니다. 곧이어 스크린 밖 관객까지 단숨에 휘어잡는 <Deep Moaning Blues ver.2>가 흘러나옵니다. 가공의 인물 레비 그린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 특성상 마 레이니는 일정 정도 자리를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영화 내내 그녀의 모습을 최대한 공들여 묘사하고 그녀의 음악을 최대한 공들여 담아냈던 건 위대한 아티스트에 대한 감독 나름의 예의라 할 수 있겠죠.

 

덕분에 영화는 당대 흑인 문화에 대한 교감이라는 주제의식을 배제하고 <음악 영화>라는 기준 만으로도 제법 훌륭한 퀄리티를 확보합니다. 장르적인 면에서 좋은 음악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안정적으로 받쳐내는 영리한 구성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다우트>의 밀러 부인 혹은 미드 <How to Get Away with Murder>의 애널리스 키딩으로 익숙하실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의 내면 연기 역시 인상적이구요.

 

 

 

 

 

 

# 4.

 

그럼에도 이 영화는 지하 연습실에 모인 Black Bottom 들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네 명의 자칭 '니거'들의 수다와 논쟁을 중심으로 굴러갑니다. 채드윅 보즈먼의 레비 그린, 글린 터먼의 털리도, 콜맨 도밍고의 커틀러, 마이클 포츠의 슬로 드래그가 바로 그들이죠. 그 외에 테일러 페이지의 듀시 메이와 더산 브라운의 실베스터도 등장은 합니다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주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 스스로 큰 의미를 확보한 역할이라 말하긴 힘듭니다.

 

네 주인공은 마 레이니의 음악을 녹음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무심하게 수다를 나누게 되는데요. 그동안 그들이 가진 가치관과 그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던 결정적 경험들을 털어놓게 됩니다. 이를테면 가장 주요한 캐릭터인 레비의 경우 마을의 백인 9명에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당했던 엄마와 그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실행했던 아빠에 대한 과거를 가진 인물이죠. 그 결과 그는 현실을 잔혹하고 폭력적인 힘의 관계사람은 힘을 얻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만 판단하는 위선과 기만의 관계로 인식한 채 성장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하늘 위 신'보다는 내가 돈 들여 산 '발 아래 신발'이 훨씬 중요하다 여기는 인물이죠. 마찬가지로 종교로 인해 아내와 결별한 사연이나, 폭력을 면하기 위해 밤새 춤을 춰야 했다는 목사에 대한 이야기 등 모두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 5.

 

이처럼 네 주인공은 모두 구체적으로는 무대 위 슈퍼스타의 뒤를 받치는 세션이자 동시에 당대 흑인 문화의 이면에 가려진 상처를 대변하는 관념적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각 주인공은 흑인이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과 폭력, 그 과정에서 형성된 성격과 가치관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가치관은 소위 Bottom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다시 연결되죠.

 

투쟁. 연대. 경쟁. 신앙.

 

각 방법론에 담긴 이상주의와 급진주의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적 견해의 충돌이 1920년대 흑인 사회 저변에 깔려 있던 다각적 시대정신을 구조적으로 묘사합니다. 각각의 개념들이 구체적 인물들로 분화되어 있는 덕에 당대에 대한 이해를 쉽게함과 동시에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들은 없는 것인가 편안하게 진단하게끔 돕습니다.

 

 

 

 

 

 

# 6.

 

대화 외에 주인공 레비의 동선 역시 유심히 살펴볼 가치가 있는데요. 영화의 시작에서 레비는 억지로 힘을 줘 [문]을 열려하지만 문은 잠겨있습니다. 동료들의 만류로 문을 여는 걸 멈추고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선택하게 되죠. 레비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기는 역시나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는 마 레이니의 명성을 이용해 자신이 편곡한 음악으로 성공을 쟁취하려 했고, 두 번째는 자신의 곡을 녹음해 스스로 스타가 되려 했죠.

 

하지만 첫 번째 기대는 해고 통보로 좌절되고 남은 두 번째 기대 역시 헐값에 팔려나가고 맙니다.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활용하려던 자신이 되려 수단으로 쓰인 후 버려진 것이죠. 순간 깊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레비는 처음의 문을 억지로 열어젖히지만 탈출구라 생각했던 그곳엔 도무지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절벽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문]과 [계단]을 통해 영화의 서사 전체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뜻이죠.

 

백인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품은 그의 칼은 끝내 그간 함께 호흡을 맞추던 동료 흑인을 향하고 맙니다. 폭력 당한 과거와 그 피해를 근거로 정당화 해 자신을 잃고 괴물이 되어버린 자의 급진적 방법론은 원하는 것은커녕 꿈꿔왔던 자신의 밴드를 가질 기회조차 앗아가고 맙니다.

 

일련의 결말은 재능과 열정을 모두 가진 개인의 비극입니다만 동시에 당시의 시대상을 단순한 선악의 관계, 피해와 가해의 구도에 처박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대한 가치중립적 고찰에 닿게 합니다. 작품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결말인 것이죠.

 

 

 

 

 

 

# 7.

 

흥미로운 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주검이 되어버린 동료를 바라보는 지하실엔 좌절만이 가득한데 반해 아이러니하게도 마 레이니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 녹음실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사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화 내내 마 레이니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나가는 방식을 보면 세션 네 명이 대변하던 가치들을 그녀는 진즉부터 모조리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과,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과감한 투쟁. 내 사람들을 품어내는 연대와, 결과적으로 타협하고 인정해야 할 것들은 받아들일 줄 아는 현명함까지 말이죠.

 

관점에 따라선 이 영화를 마 레이니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나가는 방식을 해체해 지하실의 세션팀으로 구체화 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채드윅 보즈먼 등의 열연으로 만들어진 메시지가 결국 작중 주인공의 자리를 양보해야 했던 마 레이니에게로 회귀한다는 측면에서 인상적인 메시지 구조의 작품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네요.

 

 

 

 

 

 

# 8.

 

마지막으로 조금 더 디테일한 표현과 형식의 측면을 살짝 짚어 볼까요. 영화로 재해석하기보다는 연극으로서의 원작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유지해 이식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손쉽게 회상 장면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풍부한 방백의 활용, 무지막지한 밀도의 대사를 통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구성이 이 작품만의 희소한 영역을 확보합니다. 실제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보고 난 후 돌이켜 보면 전개라곤 <슈퍼스타 마 레이니가 녹음실에 나타나 콜라 먹고 꼬장 부리다가 노래 한곡 녹음하고 갔다.>가 전부라는 걸 알 수 있죠.

 

특유의 갈색 빛 색감도 영화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지배합니다. 몇 되지 않음에도 공간 연출 역시 인상적입니다. 연기는 뭐 두말할 필요가 없고, 음악은 한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감성적인 표현이 가득하면서 동시에 대단히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제 의식도 인상적이거니와 그 이전에 독특학 영화적 경험만으로도 작품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다만, 특유의 연극적 구성에 대한 호불호만큼은 감안하셔야겠네요. 조지 C. 울프 감독, <마 제이니, 그녀가 블루스>였습니다.

 

# Rest in Peace. the Black Panther Forever

Chadwick Aaron Boseman (1976~2020)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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