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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불안한 존재들 _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아녜스 바르다 감독

그냥_ 2021. 5.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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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되도록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하고서 글로 옮기려 합니다. 그게 옳으냐 그르냐, 수준이 되느냐 못 미치느냐 와는 별개로 말이죠. 하지만 이번엔 포기해야겠네요. 대단히 간결하고 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을 하나하나 음미하다보면 쉬이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문제는 절대 아니구요,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죠.

 

수많은 화두와 표현이 가득한 탓에, 며칠에 걸쳐 조곤조곤 읽어야 할 책을 1시간 30분 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느낌입니다. 시간을 두고 곱씹어 봤지만 끝내 정리되지 않아, 나름대로 생각한 몇몇 포인트들을 나열해 두는 것으로 이번 리뷰는 대신해야겠네요. 개인적으론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중 가장 러블리하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 Cleo De 5 A 7』입니다.

 

 

 

 

 

# 1.

 

흑백의 영화입니다만, "왜 감독은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을까?" 라는 질문은 썩 정확한 질문이 아닐 겁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하필 타로점을 보는 순간만큼은 컬러로 찍었을까?"라는 질문이죠. '타비아니 형제'는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서 감옥 안의 연기 연습을 모두 흑백으로 촬영한 후 결말의 연극 무대 위와 연극이 끝난 후 '코시모 레가'가 독방으로 돌아온 후의 순간을 콕 집어 컬러로 표현하는데요. 일련의 연출은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군" 이라는 마지막 대사와 어우러져 영화의 핵심 주제 의식을 단숨에 표현합니다.

 

같은 기준에서라면, 이 영화 역시 '아녜스 바르다'가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은 영화의 시작, 타로점을 보는 순간에 달려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타로를 보는 순간 우연이란 이름의 악마가 만들어낸 <불확실성>과, 불확실성이 낳은 필연적 <불안감>, 불안감을 강화하는 <인식>이, 이후 전개되는 동안 주인공 '클레오'의 여정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볼 수 있겠죠.

 

 

 

 

 

 

# 2.

 

영화의 제목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입니다. 대체로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표현은, 시간을 '시작'과 '끝' 안에 가둬둔다는 뜻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암' 등을 생각할 때, 이때의 시작과 끝은 <탄생>과 <죽음>으로 이해하는 게 썩 자연스러울 겁니다. 말인즉, 영화 제목 속 행간은 <'클레오'의 인생> 쯤 된다 할 수 있겠죠. 2시간을 잘개 쪼개 챕터별로 갈라둔 것 역시, 2시간 동안의 여정을 관객 각자가 자기 인생의 특정한 단계와 연결 지어 생각하길 바랬기 때문일 겁니다.

 

이와 같은 견해 하에서,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타로를 보는 장면을 '클레오'라는 인간의 탄생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건 마치 고약한 점성술사가 타로점을 치는 것처럼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일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감을 가지고 태어난, '저주받은' 존재죠.

 

 

 

 

 

 

# 3.

 

'클레오'의 불안에는 사실 실체가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병에 걸린 것이라 확신하지만, 영화 내내 병에 걸렸다는 증거는 고작 타로에 불과하죠.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가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병에 걸리지 않았을 거라 끊임없이 말하고. 심지어 영화의 말미에 의사가 나타나 두어 달 성실히 치료만 받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 확인하기까지 합니다.

 

그녀의 불안은 실체보다는 <인식>이 결정합니다. 실제 영화 역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클레오'가 느끼는 인식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복해 등장하는 <거울>과, 거울 및 유리창에 비친 <상像>, 기호품과 예술에 대한 코드들은 이 영화가 실제 병에 걸린 사람의 현실에 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병에 걸렸다 '인식'하는 사람에 대한 작품임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할 수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친구와 함께 감상한 단막극은 이 영화가 인식에 대한 영화임을 보다 선명히 합니다. 커피는 누군가에겐 진정제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흥분제가 될 수도 있 듯 말이죠.

 

# 4.

 

'클레오'는 파리를 걷습니다. <걷는다>는 행위는 영화의 시퀀스를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인과관계로 표현하고자 했음을 유추하게 합니다. 우리에게야 특별한 공간이지만, 프랑스 감독에게 있어 파리는 그저 내가 사는 도시에 불과합니다. 파리를 걸으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난다는 것은, 그녀의 행보를 도시를 살고 있는 이름 모를 군중들에 연결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습니다.

 

'클레오'는 '코린 마르샹'이 연기한 고유명사이자, 동시에 모든 인간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는 그들이 연인과 싸우고 있든, 장난을 치고 있든, 개구리를 삼키고 있든 가릴 것 없이 나름의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들.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 불안하다 인식하는 사람들입니다.

 

 

 

 

 

 

# 5.

 

영화는 주인공 '클레오'의, 불안을 지우기 위한 헛된 발버둥들과 마지막 불안을 극복하는 결말로 구성됩니다.

 

가정부는 "화요일에 새 옷을 입는 건 불길하다"는 둥, "택시의 번호판이 불길하다"는 둥의 징크스와 미신을 이야기하며, 클레오의 익숙한 불안을 해소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집에 도착해 스트레칭도 해 보고, 침대에도 누워보고 사랑하는 연인과 키스도 나눠보지만, 불안함은 여전하죠. 동료 음악가들은 시종일관 그녀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고, 그녀의 불안감은 누구에게도 전혀 이해받지 못합니다. 결국 그녀는 홀로 집을 나서는데요. 이 부분에서 역시나 인상적인 지점은 검은색 복장이라 해야겠죠. 그녀는 불안에 떠는 대신 불안을 받아들이고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친구를 만나 드라이브를 하고, 영화를 즐기며 불안을 인정하고 덮어보려 노력하지만, 끝내 불안은 깨진 거울처럼 가시지 않죠. 

 

# 6.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남자와 만나게 됩니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달리 속마음을 이야기하며 끝내 그녀는 인간적인 소통과 인류애적 사랑을 통해 불안을 극복합니다. 이 지점이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감독은, 인간의 운명론적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통>과 <사랑>이라 말합니다. 감독의 예술가로서의 천부적 감각이 가득 묻어나는 파리의 전경은, 당신이 설령 지금 불안 속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 말하는 감독의 순수성이 빛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죠. 

 

 

 

 

 

 

# 7.

 

“추함이야 말로 죽음을 뜻하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한 난 살아있는 거야.”

 

영화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적인 대사들이 즐비한데요. 일련의 표현들과 영화의 중반부, 모델 친구의 등장과 이후의 씬들은 천상 예술가였던 감독이 삶 속에서의 <예술>에 대한 가치평가를 엿보게 합니다. 예술은 까탈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인간을 불안과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도구일 때 비로소 숭고해 집니다.

 

# 8.

 

... 여기까지가 최근 며칠간 영화를 곱씹으며 짬짬이 생각한 제 최선이었습니다. 다시 읽어 보니 새삼... 민망하고 바스라지며 빈곤하네요. ;; 여러분은 '클레오'의 두 시간을 어떻게 즐기셨나요. :) '아녜스 바르다' 감독,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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