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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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183

약속된 유토피아 _ 장난꾸러기 동맹,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

# 0. 원래부터 유서깊은 아이템이였습니다만, 갓세돌이 알파고로부터 1승을 따냇던 이후 더더욱 우후죽순 생겨난 AI 시대 절망편을 그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두 번째 단편입니다.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 『장난꾸러기 동맹 :: いたずら同盟』입니다. # 1. 오프닝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듯, 감시사회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따라다니며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것뿐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고 교정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른, 고성능 AI 시스템이군요. 대체로 이와 같은 아이템을 다루는 작품의 경우, 불특정 다수의 구성원으로서 번잡한 도시인을 감시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보편적입니다만,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은 그 대상을 학교를 다니는 어린아이들..

Film/Drama 2021.01.28

에피타이저 _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 0. 을 보고 난 후 뜬금없이 옴니버스 영화에 뽐이 왔네요. 적당한 영화가 어디 없을까 하며 OTT를 뒤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플랜 75 :: Plan 75』입니다. # 1.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에는 [찬성] 다른 하나에는 [반대]라는 글귀가 적혀있군요. 감독은 처음엔 반대의 의자에 앉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 관객을 설득합니다. 그런가 싶어 의자에 앉았더니 다시 찬성의 의자에 앉는 것이 옳지 않겠냐며 설득합니다. 갸우뚱하며 의자를 바꿔 앉았더니 감독은 다시금 반대의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합니다. 관객은 짧은 런타임 안에서 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

Film/Drama 2021.01.24

우희에게 _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임오정 감독

# 0. 연락 드럽게 안 하는 우희가 개 구하러 담 넘는 영화입니다.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중 세 번째 단편, 입니다. '임오정' 감독,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 Call If You Need Me』입니다. # 1. 세 단편 중 가장 이질적입니다. 강동완 감독의 이 연극, 김한라 감독의 이 동화라 한다면 임오정 감독의 영화는 에세이 쪽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작가의 통제하에 있는 조직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한 두 작품에 비해 이 영화는 훨씬 일상성이 강조된 구체적인 서사와 표현으로 전개됩니다. 앞선 두 편에서의 피크닉은 각각 캠핑장과 울릉도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려집니다만, 이 작품에선 독특하게도 그 역할을 [인물]이 대신합니다. 영신이죠. 그녀는 그녀가 가진 풍부한..

Film/Drama 2021.01.15

동네 영화 _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 0. 핀란드의 갈매기는 뚱뚱하다. 비대한 몸으로 항구를 뒤뚱뒤뚱 걷는 꼴을 보면 초등학교 때 키우던 나나오가 생각난다. 나나오는 10.2킬로나 되는 거대 얼룩 고양이였다. 독불장군에다 툭하면 다른 고양이에게 폭력을 휘둘러 모두가 싫어했다. 하지만 왠지 나한테만은 만져도 화내지 않고 기분 좋은 듯 가르릉 거리기도 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엄마 몰래 먹을 걸 잔뜩 주었더니, 점점 살이 쪄서 결국 죽었다. 나나오가 죽은 다음 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엄마를 정말 사랑했지만 어쩐지 나나오 때보다 덜 울었던 것 같다. 그건 무술가인 아버지가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말라고 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난 살찐 동물에게 약하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 엄마는 말라깽이였다. '오기가미 나오코..

Film/Drama 2021.01.14

오그리 토그리 _ 대풍감, 김한라 감독

# 0.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나온 모솔 남자가 '여고 생활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면... 이런 비슷한 게 나오지 않을까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중 두 번째 단편, 입니다.       '김한라' 감독,『대풍감 :: The Silver Lining』입니다.     # 1.  내러티브를 이해하는 게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대풍감이라는 지역 명소에 얽힌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곳을 찾아가는 밝고 건강한 청년들의 여행기라는 이미지를 엮은 후, 순풍 불면 쭉쭉 나아갈 수 있다 뭐 이런 류의 응원 메시지라는 뼈대 위에, 굳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설정의 집 나간 아빠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열린 문으로 나가는 벌레 등의 메타포를 집어넣어 요리조리 적당히 만들면 아이 ..

Film/Drama 2021.01.13

전봇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 _ 돌아오는 길엔, 강동완 감독

# 0.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처음엔 세편을 묶어 하나의 글로 써볼까 했습니다만 '일상을 벗어나 관계와 삶을 돌아본다'는 느슨한 테마만 공유할 뿐 각 작품이 추구하는 바와 결이 전혀 다르다 느꼈기에 따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나눠 쓰게 되었네요. '강동완' 감독, 『돌아오는 길엔 :: On the Way Back』입니다. # 1. 앞만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입니다. 네 사람은 영화 시작부터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어느 누구의 것 하나 원만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가족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외면하는 가운데, 자신의 말이 전달되지 않는 것에는 또 상처 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키워드는 단절입니다. 캠핑장에 도착한 ..

Film/Drama 2021.01.12

티타임 ⅲ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morgosound.tistory.com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 morgosound.tistory.com # 30. 은 교황과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작동하는 '논리의 공간'입니다. 은 자연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심리적 공간'..

Film/Drama 2021.01.03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morgosound.tistory.com # 17. 차의 맛과 향이 충분히 우러나왔다면 이젠 마실 때입니다. 두 교황의 상반된 자기 철학에 대한 강경한 주장과 역설적인 입장이 충돌하는, '본론'이 이어집니다.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교황은 '베르골료' 추기경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철학적 대척점에서 자신을 비판한다 생각되는 '베르골료' 추기경에 대해, 교황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교황은 권위의 힘을 빌어 쏘아붙이듯 질문하고, 추기경은 ..

Film/Drama 2021.01.02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두툼한 머그잔에 우려낸 후, 입이 델라 조심스레 홀짝이며 마시고 또 마시는 것만 한 소확행도 없죠. 이 영화는 마치 한잔의 차와 같은 작품입니다.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며 정갈한 영화입니다만, 동시에 손이 데일 듯 뜨거운 에너지가 담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감상하는 동안에도 충분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만, 다 마시고 나면 입안을 가득 메우는 향기처럼 길고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새겨진 아름다운 찻잔 속에서 논리의 창과 철학의 방패가 번득입니..

Film/Drama 2021.01.01

난해한 것의 이유 _ 피부, 에두아르도 카사노바 감독

# 0. 장애우 라는 말을 아시나요? 학문의 전당에서 취업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 중인 대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건전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수신료만 받아쳐 먹... 아니, 땀 흘려 일하는 기자님들까지 거침없이 레퍼런스로 인용하곤 하는 민족의 지혜 주머니 킹무위키는 장애우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딴엔 중립적인 단어를 만들어 보겠다고 억지로 밀어붙였지만 끝은 참담했던 사어死語 ... (중략) ... 장애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장애우란 말은 "너는 불쌍하게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니 너무나도 착한 내가 불쌍한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와 같은 뉘앙스를 지니기에, 실제 장애인 중에는 병신이라는 말보다 장애우라는 말이 더 듣기 싫다는 사람이 많다. '에두아르도 카사노바' 감독, 『피부 :: Piele..

Film/Drama 2020.11.26

샤프디의 시선 _ GOLDMAN v SILVERMAN, 사프디 형제 감독

# 0. Rod Goldman and Al Silverman are street performers who work the tourist scene of Times Square. Goldman gets no respect and Silverman is the first one to make sure of that. '베니 샤프디', '조쉬 샤프디' 감독, 『GOLDMAN v SILVERMAN』입니다. # 1. 도시의 밤은 낮보다 밝습니다. 밝은 빛은 대부분 무언가의 광고입니다. 몇몇은 웃고 있지만 보통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삐 지나갑니다. 자기 눈으로 무언가를 보기보단 스마트폰 카메라를 거쳐 보는 게 익숙합니다. 간혹 공연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공연보다는 조롱이, 조롱보다는 갈등이 조금 더 이목을 끕니다. ..

Film/Drama 2020.11.12

시인이 만든 영화 _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방성준 감독

# 0.  엄마 정숙은 요절한 아들 도원의 언덕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릅니다. 언젠가 아들이 올랐을 언덕에 올라 아들이 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흘러가는 석양처럼 아들에 대한 기억도 아들이 지나온 시간도 아들을 그리워하는 동안의 슬픔도 그렇게 넘어서려 합니다.        '방성준' 감독『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 Passing over the Hill』입니다.     # 1.  짧은 시 한 편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일전에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의 를 리뷰하며 화가가 만든 영화 같다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는 꼭 시인이 만든 영화 같다는 생각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엄마 정숙이 글을 배워서까지 아들 도원의 시집을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하며 아들을 마..

Film/Drama 2020.10.10

엉성 _ 어멍, 고훈 감독

# 0. 뭘 하고 싶은 영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암에 걸린 엄마가 등장하긴 합니다. 대립관계의 아들도 등장합니다. 제주 문화도 등장은 하죠. 하지만 평생 물질하며 가정을 건사한 제주 해녀의 생애를 진중하게 조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구요. 엄마와 아들의 갈등과 교감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를 만든 것도 아닙니다. 눈 딱 감고 화끈하게 제주 홍보물을 만든 것도 아니죠. '고훈' 감독, 『어멍 :: Eomung』입니다. # 1. 이 영화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숙자'뿐이죠. 나머지 모두는 그녀의 설정을 보강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아들 '율'은 한심해 보이기 위한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수집해 기워놓은 인물입니다. 이 인물의 인격과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가운데 마치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불효자와 같은 방식..

Film/Drama 2020.09.21

언더도그마 _ 헬로, 신후승 감독

# 0. "거, 여자화장실에서 여장쯤 할 수도 있지. 왜 난리들이야! 난 썩은 세상에 박해받는 소수자인데!!" '신후승' 감독, 『헬로 :: HELLO』입니다. # 1. 오랜만에 불쾌한 영화입니다. 이 6분짜리 짧은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단 하나 언더도그마 Underdogma입니다.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망상장애에, 피해자의 운명을 타고 난 자신은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 비해 절대적인 도덕적 우위를 가진다는 언더도그마를 뒤섞어 만든 영상물입니다. 화장실에 강림한 도덕성의 여포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자극적인 표현들로 인한 감정적 동요를 가라앉히고 찬찬히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 주인공 '태훈'을 제외하고선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설령 성적 다..

Film/Drama 2020.08.19

마리옹 꼬띠아르 _ 라비앙 로즈, 올리비에 다한 감독

# 0.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들어 에디트 피아프보다 더 에디트 피아프 같은 마리옹 코티아르라 평했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론 50줄이 넘은 '이 평론가'가 태어나기도 전인 63년에 사망한 사람이 원래 어떠했는지를 피차 알 턱이 없는 마당에 저 평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만, '올리비에 다한' 감독, 『라비앙 로즈 :: La Vie en Rose (La Môme)』입니다. # 1. 영화를 보고 난 후 너무도 적절한 평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은 아마도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에디트 피아프'였을 것이다를 넘어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은 분명 '마리옹 꼬띠아르'의 '에디트 피아프' 였어야 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관객 스스로 부..

Film/Drama 2020.08.13

いただきます _ 심야식당 극장판, 마츠오카 조지 감독

# 0. "하루가 저물고 모두 귀가할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업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사람들은 가게를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돼지 된장 정식, 맥주, 사케, 소주. 메뉴는 이게 전부. 무슨 음식이든 주문이 들어오면 가능한 건 만드는 게 영업방침이다. 손님이 있냐고? 생각보다 많다." '마츠오카 조지' 감독, 『심야식당 극장판 :: 映画 深夜食堂』입니다. # 1.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밤이 편안한 사람들과 낮이 불편한 사람들이 각자의 입맛에 맞춰 소담한 식사를 합니다. 정갈한 음식들 위로 손님마다의 사연과 마스터의 담담한 눈빛과 다른 손님들의 오지랖과 넘쳐나는 시간이 찬으로 올라옵니다. 적당히 취하지 않을 만큼의 술 한잔이 곁들여지면 완벽하죠. 늦은..

Film/Drama 2020.08.03

첫 타석 2루타 _ 미성년, 김윤석 감독

# 0. 강렬한 카리스마와 몰입도를 보여주는 '배우 김윤석'과는 대조적으로, '감독 김윤석'은 예술적 미감과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 듯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 긴 시간 동안 족발 들고 4885나 쫓아다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김윤석 감독, 『미성년 :: Another Child』입니다. # 1. 사람은 여섯. 아니, 일곱. '안영주', '김미희', '권주리', '김윤아', '권대원', '박서방'. 그리고 '못난이' 주요 인물 중 단 두명만이 미성년자이지만 일곱의 인격은 모두 각자 다른 이유에서 미숙합니다. 일방적인 가족의 해체와 폭력적인 재조립 과정 속에서 각 인물들은 자신의 미숙함을 외면하기도, 발견하기도, 인정하기도, 부정하기도, 변명하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치열한 정서적 교환 끝에 나름의..

Film/Drama 2020.07.18

날개 없이 추락하는 자들을 위한 _ 레퀴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 0. 레퀴엠 [ requiem] 위령 미사 때 드리는 음악. 정식명은 이지만 가사의 첫마디가 "requiem (안식을...)"으로 시작하는 데서 이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진혼곡, 장송 또는 진혼미사곡 등으로 번역되어 쓰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퀴엠 [requiem] (두산백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레퀴엠 :: Requiem for a Dream』입니다. # 1. 고차원적인 철학적 사유나, 다양한 층위에서의 감정적 낙차, 치밀하게 조립된 서사를 즐기는 영화는 아닙니다. 충격적인 연출에 힘입은 전율이 일 정도의 육중한 감수성입니다. 글의 제목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계곡 아래로 날개 없이 추락하는 자들의 비장한 마지막을 달래는 진혼곡입니다. 서사의 완성도를 짚는 건 부..

Film/Drama 2020.07.14

몰라, 알 수가 없어 _ 문영, 김소연 감독

# 0. 일단 드라마는 절대 아니구요. 차라리 미스터리 영화라고 보는 게 정확해 보입니다. 중간중간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만한 훈훈한 코미디 장면들도 몇 등장은 합니다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물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너무너무너무 많기 때문이죠. '김소연' 감독, 『문영 :: Moon young』입니다. # 1. 첫 번째 미스터리. 감독은 아는 욕이 씨발년아 밖에 없는 것인가? 두 번째 미스터리. '문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지, 못 듣는 건지,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를 감독은 대체 언제쯤 명확히 알려줄 생각이었을까? 세 번째 미스터리. 남자 친구에게 차이고 미친 듯이 절규하며 소리 지르던 모습을 생판 처음 보는 애한테 몰카로까지 찍힌..

Film/Drama 2020.06.25

스물 일곱 _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감독

# 0. 청춘 영화입니다. 청춘을 위한 영화입니다. 나이 어린 꽃돌이 꽃순이 배우 무더기로 때려 박은 후 미취학 아동마냥 억지로 순진한 표정을 짓도록 시켜 만든 『변산』이나 『청년 경찰』,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이런 작품들이 진짜 청춘들을 위한 영화죠. '노아 바움백' 감독, 『프란시스 하 :: Frances Ha』입니다. # 1. 몇몇 감독들은 아무래도 기성인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 청년상이라는 걸 자랑하지 않으면 뒤지는 병이라도 걸려있나 봅니다. 이를테면 잘생기고 키 크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순결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모범생.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데다 독립심도 강해 지 앞가림 척척하는 자소서식 유학파 글로벌 리더. 의협심과 모험심을 양 손에 무장하고 온데 일을 ..

Film/Drama 2020.06.21

회화의 역습 _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

# 0.  모티브가 되는 작가의 작품들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의 경험까지 통째로 이식해 온 듯한 영화입니다. 아니 어쩌면 반격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압도적 상업성으로 무장한 현대 영화라는 막강한 대중예술에 폐퇴한 근대 회화 미술의 역습이랄까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셜리에 관한 모든 것 :: Shirley: Visions of Reality』입니다.     # 1.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의 작품 13점을 가져다 13개의 씬으로 재구성한 후 이어 붙여 만든 영화입니다. 때문에 모티브가 되는 고독의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구태여 분리해 다룰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제 얕은 지식으로 작가의 미술 철학에 대해 논하는..

Film/Drama 2020.06.02

Less is More _ 시저는 죽어야 한다, 타비아니 형제 감독

# 0.  재소자들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무엇을 발견하고 있었던 걸까. 감독은 연기하는 재소자들로부터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관객은 이들의 극을 보는 동안 무엇을 목도하고 있었던 걸까.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형제 감독,『시저는 죽어야 한다 :: Cesare deve morire』입니다.     # 1.  타비아니, 워쇼스키, 샤프디, 코엔 등 무슨무슨 형제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퀄리티 이전에 무지막지하게 어려울 가능성이 높거든요. 각각이 요소들은 여타 형이상학적 예술 영화들에 비해 이례적일 정도로 단순하고 명쾌한 편이긴 하지만, 그 단순한 것들이 조립되는 과정 속에 숨겨진 함의의 깊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재소자입니다. 동시에 배우죠. 재소자의 역..

Film/Drama 2020.05.14

두번 보세요 _ 스트레인저, 김유준 감독

# 0. '두 번 이상 봐도 좋은 환상적인 영화'라기보다는 '두 번 봐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영화'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론 어차피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독립영화를 만들 요량이었다면, 차라리 그냥 똑같은 13분짜리 영상을 연달아 붙여 26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마저 합니다. 반전 영화에서 반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썰을 풀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혹시 이 영화를 반전 없이 보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이후의 글을 읽지 않고 페이지를 나가시기를 권합니다. '김유준' 감독, 『스트레인저 :: Stranger』입니다. # 1. 어린 소녀가 되어버린 할머니를 아들 내외가 찾는 이야기입니다. 치매 가정에 대한 영화라는 거죠. 감독은 기억을 잃어 소녀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눈에 비친 왜곡된 세상..

Film/Drama 2020.05.07

공장제 드라마 _ 와인을 딸 시간, 프렌티스 페니 감독

# 0. 신박한 은유와 리드미컬한 라임의 말장난으로 점철된 수다스러운 흑인 힙합 문화를 가져다 온건한 가족주의라는 주제 의식에 때려 박아 만든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공산품 드라마 영화입니다. 물론 이때의 '흑인스러움'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주류 사회가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한 흑인 문화의 솔직함과 유쾌함만을 의미합니다. '프렌티스 페니' 감독, 『와인을 딸 시간 :: Uncorked』입니다. # 1. 영화가 어떻게 굴러갈지를 이해하는 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인물과 배경 세팅이 끝나는 10여분이면 이후 전개가 어떻게 될지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 훤하게 드러나거든요. 소믈리에를 꿈꾸는 아들과, 막 암이 나았지만 차마 가발을 버리지는 못하는 엄마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가업..

Film/Drama 2020.04.13

단편 몰아보기 두번째 _ 통일전야 / 무단조퇴 / 연애가 고달픈 남자 / 상담

# 0. 오랜만이네요. 단편 몰아보기, 두 번째입니다. '김성윤' 감독, 『통일 전야 : 어느 저녁식사』입니다. # 1. 통일을 하루 앞둔 밤. 간첩 출신 남파 공작원 가장을 둔 어느 가족의 저녁식사입니다. '송중기'와 '수지' 등 엔터테인먼트 셀러브리티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격의 상업화. 성형 수술로 대변되는 외모 지상주의적 세태. 유행어와 밈과 일베 드립 따위의 북한과 차별화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등의 '남한' 코드들과, 몰래 보는 남한 드라마로 대변되는 사회 통제력의 한계. 상류층에겐 암암리에 개방되어 있는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모순적 계급성. 가족에게까지 가차 없이 적용되는 즉결처분의 잔혹함과, 이념과 정체성의 폭력적 합치. 북한 김 씨 3대의 액자 사진으로 대변되는 신앙적 숭배와, 극..

Film/Drama 2020.04.05

악녀를 보았다 ⅱ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 morgosound.tistory.com # 6. 돌아온 보리스와 함께 코르셋은 다시 채워지지만, 지금의 코르셋은 이전의 코르셋과는 다르고 지금의 캐서린 역시 이전의 캐서린과 다릅니다. 시아버지와 단둘이 나누는 늦은 저녁의 식사. 테이블의 방향으로 조명이 강하게 집중된 공간을 달그닥 소리를 내며 밀고 들어오는 캐서린. 화면의 중앙을 지배한 캐서린은 이전과 다른 자신을 가감 없이 표출합니다. 전에 볼 수 없던 시원한 웃음과 함께 자유롭게 식당을 가로지르는 동..

Film/Drama 2020.04.03

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는 남자. 발가벗겨진 소녀를 덩그러니 세워둔 채 돌아 눕는 남편. 이를 담아내는 고전적이고 고정적인 오브제들과, 정제된 채도의 색감과, 이질적인 정도로 옆으로 길게 벌어진 화면. 통상의 긴 화면비는 개방감, 안정감, 수평적 운동성, 평등, 균일감 따위를 의미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수평성의 강조'라기보다는 '수직성의 통제', 즉 위아래로 잘려나간 화면이 인물을 짓누르며 지배하고 있는 공간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명령'과 '규율'과 '제약'과 이를 둘러싼 '균열'과 '파괴'의 서사임을 유추..

Film/Drama 2020.04.01

명콤비의 커튼콜 _ 라디오 스타, 이준익 감독

# 0. 2006년에 소환된 1990년대 영화입니다.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 설계와, 무던하고 진중한 관계 설정, 상황을 풀어나가는 단단하고 온건한 방식, 보수적 가치 위에 세워진 관계 중심의 주제 의식과, 다소 연극적 색채가 묻어나는 표현 등 영화 전반에 걸쳐 , , 과 같은 90년대 명작 드라마 영화들의 분위기와 냄새가 짙게 묻어나기 때문이죠.        '이준익' 감독,『라디오 스타 :: Radio Star』입니다.     # 1. 공식적으로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기에 이를 존중해 리뷰의 카테고리 역시 드라마로 잡긴 했습니다만, 플롯만 보자면 버디무비라기보다는 로맨스에 더 가깝습니다. 삯바느질하는 조강지처(안성기)와 헛바람 든 철없는 남편(박중훈), 지고지순한 내조 끝에 남편이 성공한 후, 바람이 날..

Film/Drama 2020.03.30

느낌적인 느낌 _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 0. 눈. 일본. 달. 편지. 엄마. 딸. 사진. 여행. 고양이. 담배. 바텐더. 사랑. 이별. 처연하고 창백한 톤으로 서정성을 한껏 강조해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을 감성적이고 감각적이고 문학적인 묘사와 함께 관객과 교감하고 나누는 멜로드라마 영화. 코로나와 함께하는 차분하고 고요한 주말 오후의 오갱끼데쓰까군요. '임대형' 감독, 『윤희에게 :: Moonlit Winter』입니다. # 1. 보험을 깔고 갈까요. 영화 최고의 장점, 김희애가 나옵니다. 주연 배우가 다양한 상황에서의 구분된 정서를 섬세하게 다듬어 표현합니다. 막말로 티켓값은 배우 표정만으로도 거의 대부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김소혜, 성유빈의 싱그러움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게 합니다. 역시 젊은 게 좋아요. 주제도 선합니다. 시대적 아..

Film/Drama 2020.03.22

캔디드 캔디드 샷 _ 캔디드 샷, 강민지 감독

# 0. 강렬한 영화입니다. 과감한 영화입니다. 비단 사진뿐 아니라 사회적인 무언가를 관찰하고 다루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필연적으로 거쳐갈 수밖에 없을, 자신과 창작물의 존재 가치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일말의 은유 없이 직설적인 방법으로 다룹니다. 곧게 뻗어나가는 활시위처럼 감독은 과감하고 솔직하고 단호하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작품을 보는가. '강민지' 감독, 『캔디드 샷 :: Candid Shot』입니다. # 1. 캔디드 샷 [Candid Shot] 피사被寫의 인물이 포즈pose를 취하지 않거나 본인이 사진을 찍힌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한 사진. # 2. 이 영화는 사진작가가 피사체를 찍는 캔디드 샷이자, 캔디드 샷을 찍는 사진작가에 대한 캔디..

Film/Drama 2020.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