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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숙주와 라임. 고수는 빼고 _ 나이트 크루징, 김정인 감독

그냥_ 2021. 11.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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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단편 옴니버스 <맛있는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김정인' 감독,

『나이트 크루징 :: Night Cruising』입니다.

 

 

 

 

 

# 1.

 

오르막길의 뒷모습. 누군가를 부축하는. 지나는 차량에 가려진. 물리적으로 홀로 남겨진. 사회적으로 홀로 낙오된. 주인공 '송이'에 대한 감독의 소개입니다. 줄지은 건물들 앞 대로를 가로지르는 차량들과, 언제 밥이나 먹자는 형식적인 인사는 '김정인' 감독의 도시인이죠.

 

두리번거리는 송이는 미로 같은 골목길이라는 중간지대를 지나 초현실적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차근차근 진행된 공간 변화로 점층 된 기대감은 작은 트럭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 연결되고, 이내 한 그릇의 음식 위에 강하게 집중됩니다. 높은 밀도의 기대감에 부응하듯, 감독은 최대한 가까이서 정성스레 쌀국수 한 그릇을 담습니다.

 

이 영화는 지친 송이가 쌀국수를 찾아가는 이야기군요.

 

 

 

 

 

 

# 2.

 

푸른빛과 노란빛입니다. 두 개의 방이 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서늘한 푸른 방은 비어있고, 연약한 노란 방엔 '송이'가 누워있습니다. 푸른빛이 새어 나오는 냉장고엔 상한 음식과 실망이 가득하고, 그 뒤 멀리 깊은 석양이 스며들어 대조를 이룹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선 거리에서도 송이는 창백한 푸른 간판에서 따뜻한 노란 가로등 쪽으로 걸어갑니다. 송이는 푸른 곳에 지쳐 노란 곳을 찾는 사람. 송이가 찾아가게 될 쌀국수는 노란빛. 온기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종縱으로 움직이던 송이의 앞을 횡橫으로 움직이는 자전거가 가로막습니다. 다른 궤도의 충돌. 사고입니다. 마치 과거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려는 사람인 듯, 교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가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어릴 적 친구 '훈이'군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서먹한 안부를 보낸 후, 왠지 푸른빛일 것만 같은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넵니다. "언제 밥이나 먹자." 훈이는 답합니다. "그냥 지금 먹을래?"

 

예감이 맞았습니다. 그는 사고입니다.

 

 

 

 

 

 

# 3.

 

둘은 컵라면을 먹습니다. 연기에 미숙했던 소년은 눈물을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훈이는 사탕을 건넵니다. 누가 봐도 <메트릭스>의 패러디죠. 언제나처럼 파란색은 허구, 빨간색은 진실입니다. 송이는 빨간색을 고릅니다.

 

송이는 자신만 늙은 것 같고 훈이는 그대로인 것만 같다 말합니다. 훈이가 뿜어내는 콜라가 '정신 차려라' 질책하는 것만 같죠. 콜라를 뒤집어쓴 송이는 문득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말합니다. 방금 먹은 컵라면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에 불과합니다. 송이가 진짜 고픈 건, 진실의 빨간약을 선택한 송이가 찾아 나서야 할 건 쌀국수죠.

 

자전거 위에 올라 도시의 밤을 항해航海합니다. 극은 판타지로 변주됩니다. 모노드라마를 선보이는 듯한 만두 아줌마와, 아크로바틱 한 춤이 인상적인 취객을 지나, 행운을 빌어주는 경찰관에게서 보물섬의 힌트를 얻습니다. 

 

 

 

 

 

 

# 4.

 

영화 내내 힘겹게 오르기만 하던 송이는 내리막길을 쏟아지듯 내려옵니다. 표정은 더없이 상쾌합니다. 시원하게 뚫린 서울의 밤을 달리는 차량들 아래로 두 사람은 더욱 시원스럽게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오르다 보면 언젠가 내리막길도 만나게 되는 법입니다. 다소 심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석적인 위로죠.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아직 트럭을 찾지 못했건만 첫차는 야속하게 지나갑니다. 실망한 송이에게 훈이는 정신승리를 제안합니다. 처연하고 서글픕니다. 송이의 쓸쓸함을 자위해줄 거짓의 파란 약을 한 젓가락 크게 뜨려는 순간. 어디선가 냄새를 맡은 훈이가 젓가락질을 멈춰 세웁니다. 쌀국수. 쌀국수의 냄새입니다. 온기는 눈이 아니라 코로 찾아야 하는 걸까요.

 

# 5.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식사시간. 곱게 담은 쌀국수엔 꿈꾸던 것처럼 숙주와 고수와 라임이 넉넉히 곁들여져 있습니다. 경찰복을 입은 요정의 조언에 따른다면, 면을 끊지 않고 먹어야 운이 좋습니다. 두 사람은 면을 끊지 않고 쌀국수를 맛있게 먹습니다.

 

다음날의 해가 뜨고 처음의 갈림길에서 송이는 같은 표현에 전혀 다른 감정을 담아 "우리 다음에 또 밥 먹자." 말합니다. 훈이는 "전화하라고. 언제든지." 답합니다. 경찰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나 봅니다. 쌀국수를 끊어 먹지 않은 송이는 운이 좋습니다.

 

 

 

 

 

 

# 6.

 

쌀국수는 진하게 우려낸 육수를 면에 부어 먹는 음식이지만, 담백하고 산뜻한 맛도 함께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음식입니다. 요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숙주와 고수, 라임과 같은 고명 덕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영화의 맛 또한 든든하면서도 담백한 쌀국수와 비슷합니다.

 

따뜻하면서 섬세한 주제의식을 밑이 넓은 단단하고 안전한 이야기로 조립합니다. 관객과의 호흡을 돕는 친절한 구도와, 심미적이면서 논리적인 표현이 26분의 단편 답지 않은 두터운 볼륨을 만듭니다. 오르막과 내리막, 푸른 빛과 노란 빛, 컵라면과 쌀국수, 시각과 후각, 밤과 낮, 현실과 꿈 등. 각각 긍부정의 관념을 담은 메타포들을 대칭적으로 배열해 작품의 메시지에 일관된 방향성과 미학적 색감을 더합니다.

 

연기 역시 인상적입니다. 특히 송이 역의 배우 '정연주'의 연기는 매우 안정적입니다. 서정적이고 동화적인 작품임에도, 배역의 감정선에 취한 듯한 느끼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은 작품에 담백함을 잡아주는 듯합니다. 배우 '조현철'은 송이의 리액션을 이끌어 내기 위한 사건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제한적인 배역을 맡은 탓에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아 인상적인 점은 잘 발견되지 않습니다.

 

# 7.

 

다만, 안정성과 별개로 이야기가 심심하다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두 사람이 자전거에 딱 오르는 순간, 이후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상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죠. 작품의 동력을 마지막 쌀국수가 모조리 빨어먹고 난 이후라 갈림길 위 결말의 폭발력이 떨어진다는 것 역시 다소 아쉽다 할 수 있을 겁니다. 마무리가 낮이어야 했던 이유와 갈림길이라는 공간의 선택, 주고 받는 대사 등 마지막 시퀀스의 의미가 이해는 됩니다만, 이성적인 이해와 정서적인 감동은 별개의 문제죠.

 

뭐랄까요. 전반적으로... 든든한 육수에 찰진 국수면, 넉넉한 숙주와 라임까지 곁들여진 맛있는 쌀국수 한그릇이었습니다만 특유의 향을 살려줄 '고수'가 빠진 것만 같은 영화였네요. 승부수가 되어 줄 셰프의 '킥'이 있었더라면 더욱 맛있었을 텐데요. '김정인' 감독, <나이트 크루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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