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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힐링은 없어. 그리고 힘냅시다 _ 바다의 뚜껑,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그냥_ 2021. 9.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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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들이 흘러가는 구름과 바다를 보며 느리게 드라이브를 하는 것만 같은 영화라 한다면, 이 작품은 바다 앞에 차를 세워둔 채 운전석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1시간 넘는 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다가 차의 시동을 탁 걸며 끝나는 것만 같은 이야기랄까요.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바다의 뚜껑 :: 海のふた입니다.

 

 

 

 

 

# 1.

 

거리감이 인상적입니다. 차분한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주요 인물인 '마리'와 '하지메', '오사무' 모두 영화 내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배치되거나, 걷는다 하더라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주변을 배회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빙글빙글 겉도는 자전거와, 오열하는 '하지메'와 지켜보는 '마리'를 양 끝에 밀어둔 건 노골적이죠.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관계의 거리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메'의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해체된 가족은 유산으로 다투고 있습니다. 고향에 내려온 '마리'는 혼자서 가게를 꾸리고 있고 소꿉친구이자 전 남자 친구인 '오사무'와도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모두는 개인입니다.

 

 

 

 

 

 

# 2.

 

온전히 맞닿는 순간은 물에 처음 발을 딛는 '하지메'를 '마리'가 부축하는 장면과, '오사무'를 떠나보낸 후 오열하는 '마리'를 '하지메'가 끌어안아주는 장면 뿐인데요. 두 장면 모두 내면의 상처와 두려움을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처와 두려움은 다시 바다의 이미지로 연결됩니다.

 

발작처럼 울음이 터져버린 '하지메'가 "그렇게 울어버리고 나면 운 것조차 잊을 만큼 후련하다."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다의 뚜껑을 닫는 데 성공한 '하지메'는 해파리에 쏘였음에도 상쾌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파편화된 사람들은 각자의 두려움을 후련하게 토해내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 상처와 두려움을 딛고 새로운 걸음을 나섭니다.

 

 

 

 

 

 

# 3.

 

사람이 북적이던 고향의 바다 마을은 없습니다. 전 남자 친구와의 화기애애한 나날들 역시 바다 마을엔 없습니다. 당밀 맛 빙수와 귤 맛 빙수만 팔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게나, 인근에 비슷한 콘셉트의 가게가 우후죽순 생기지 않으리라는 순진한 믿음도 현실엔 없습니다. 현실적 문제들을 손쉽게 지워주는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감독은 '마리'의 아비지가 만석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애써 숨기지 않습니다. 돈 필요 없다는 팔자 좋은 얘기나 하는, 손쉽게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니냐 말하는 전 여자 친구를 '오사무'의 입을 빌어 통렬히 질타합니다.

 

 

 

 

 

 

# 4. 

 

바다의 뚜껑을 닫은 '하지메'는 (바다와 대칭되는) 남자 친구가 기다리는 초원의 아프리카로 나아갑니다. 제목은 바다의 뚜껑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뚜껑이 열린 바다는 부정됩니다. 작품은 바다의 뚜껑을 닫는 이야기입니다.

 

배에 오른 '하지메'는 '마리'에게 온몸을 다한 뜨거운 안녕을 보냅니다. 함께 멋들어진 빙수가게를 꾸려나가는 소울메이트의 영화가 아닙니다. 안녕을 이야기하는 영화이자, 상처와 슬픔과 이별과 극복을 이야기하는 영화죠. 잔잔한 분위기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도피성 힐링 예찬에 대한 시니컬한 비평인 셈입니다.

 

 

 

 

 

 

# 5.

 

영화는 도심 속 마리의 얼굴로 시작해 가게 앞 마리의 얼굴로 막을 내립니다. 도입의 차갑고 건조한 표정이 풍부한 기지개로 변모하는 과정은 내면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성장의 근거는 바다 마을의 전원생활의 여유도, '하지메'나 '오사무'와의 이별도 아닙니다. 마음에도 없던 빨간색 빙수, 딸기맛 빙수를 팔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딸기맛 빙수도 당밀 맛 빙수나 귤 맛 빙수만큼이나 맛있다는 걸,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타협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 말이죠.

 

여타의 힐링 영화였더라면 <'마리'가 진심을 담아 만든 특제 당밀 맛 빙수!!>의 진가에 감화된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빙수를 나눠 먹는 모습과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막을 내렸을 겁니다. 확실히 이질적인 결론이죠.

 

 

 

 

 

 

# 6.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영화 <바다의 뚜껑>은 통상의 일본식 힐링 영화를 부정합니다. 가상의 초현실적 유토피아를 거니는 2시간여의 최면으로는 '오사무'의 좌절과 '하지메'의 흉터와 '마리'의 고독이 위로받지도 가려지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려 합니다. 이례적일 정도의 낮은 채도가 감독의 비판적 주제의식을 더욱 강화합니다. 그러니 포스터만 보고 힐링 영화이겠거니 하고 접근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 밖에요.

 

얼핏 해피엔딩인 듯 보이지만, 결국 '마리'의 곁엔 누구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마리'는 남은 걸까요, 남겨진 걸까요. '마리'의 바다는 뚜껑이 열려 있는 걸까요, 닫혀있는 걸까요. 글쎄요. 저는 '열려 있다는 걸 발견하고 닫으려 노력하는 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여운으로 가져가겠습니다.

 

 

 

 

 

 

# 7.

 

템포가 비정상으로 느리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작품입니다. 특유의 시니컬함이 느린 템포, 칙칙한 색감과 어우러져 작품을 지루하게 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을 테죠. 보는 동안에도 보고난 이후에도 호불호를 심하게 타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이런 지독한 고요함에 담은 단호함이 위로가 되는 시대에 다가가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토요시마 케이스케' 감독, <바다의 뚜껑>이었습니다.

 

# +8. "여름의 끝자락 바다에서 헤엄을 치네. 누가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나왔나. 마지막에 나온 사람이 바다의 뚜껑을 닫지도 않고 돌아가 버렸네. 그 이후로 쭈욱 바다의 뚜껑은 열린 채로 있구나."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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