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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쓰러지지 않는 도미노 _ 산나물 처녀, 김초희 감독

그냥_ 2021. 9. 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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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아, 부끄러워라.

 

 

 

 

 

 

 

 

'김초희' 감독,

『산나물 처녀 :: Ladies of the Forest』입니다.

 

 

 

 

 

# 1.

 

도미노를 만들 겁니다. 주어진 땅은 좁지만 그래도 알차게 블록들을 모았습니다. 테마도, 밑그림도 그럴싸하게 준비했습니다. 세심한 손길로 줄지어 놓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블록이 서 있는 지금은 의미 없어 보이겠지만 쓰러트리고 나면 멋진 그림이 완성될 겁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블록들이 뉘어지는 순간 뭇사람들이 예상치 못할 의외성과 창의성이 드러나게 될 겁니다. 다시, 하나... 둘... 셋...

 

드디어 완성입니다. 처음 블록을 놓았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관객도 충분히 모였으니 이제 쓰러트리기만 하면 되는... 데? 어라? 왜 안 쓰러지지? 첫 블록이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 블록은 야속하다는 듯 멀뚱이 서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고개를 숙여 블록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쓰러지지 않는 도미노의 첫 번째 조각 옆에 적힌 글씨가 보입니다. 어디 보자...

 

코 미 디 ...?

 

 

 

 

 

 

# 2.

 

코미디가 터지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웃음이 안 터지면 이렇게 됩니다.

 

아이템들은 분명 쏠쏠합니다. 코미디만 터졌더라면 영화 속 갈색 깔맞춤 사슴 따위의 괴랄한 설정들도 병맛 코드가 되었을 겁니다. 손발 오그라드는 유치함 들도 아기자기한 귀여움이 되었을 겁니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선남과 나물꾼'으로 비튼 재해석도 지금의 것보다는 더 탄력을 받았을 테고, 홍재천과 스카이모텔과 바나나맛 우유 등의 농담마다에 담긴 웃픈 해학도 지금의 것보다는 더 힘을 얻었을 겁니다. 윤여정, 정유미, 안재홍 등 걸출한 배우들의 의도된 발연기 역시 작품 고유의 기믹이 되었을 테죠.

 

<다음 영화>에서는 이 작품의 장르를 '드라마'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작품의 실패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의심의 여지없이 코미디 여야 했을 시나리오가 누군가에겐 '드라마'로 전달된 순간 꼬이는 건 기정사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배 째는 코미디를 즐기고 났더니 이러저러한 풍자와 해학이 여운으로 남는 영화였어야 할 작품은, 애매한 코미디 탓에 오그라드는 민망함 끝에 뻘 연기로 고생한 배우들에 대한 연민과 국민체조만이 남게 되고 맙니다.

 

 

 

 

 

 

# 3.

 

전반적으로 아쉬운 작품이라 혹평이 많아 보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 있는 성취까지 폄하하는 것은 또 정당하지 않은 거겠죠. 이를테면 넘어지지 못한 두 번째, 세 번째 블록의 가치가 눈에 밟힌달까요. 나름 도전적인 고전에 대한 재해석과 과감한 앵글의 활용. 제한적 여건 하에서 의미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눈과 이를 담아내는 깔끔한 구도. 덜컥거리는 대사들 사이에 녹여둔 메시지와, 이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있는 말랑말랑한 손길과 따뜻한 온기는 발견됩니다.

 

그래서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첫 블록. 코미디가 더욱 아쉽습니다. '남자 꼬시기 위해 우주에서 내려온 일흔 넘은 할머니'라는 괴랄한 아이템을, 도도하고 지루하게 콘크리트 파이프를 거슬러 지나오는 모습보다는 더 흥미롭게 연출했더라면. '순심'과 '달래'의 첫 만남에서 관객을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흥미로움을 살려, 어처구니없는 사슴의 등장과, 빈곤한 체력의 사냥꾼과, 단아한 자태의 선남들의 모습 등을 징검다리 삼아 작품의 메시지에 도달하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 흥미로운 아이템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론 '오스카 위너의 배역과 시나리오를 가리지 않는 작품 열정에 대한 역설적 증명' 정도의 의의만 남고 말았군요. '김초희' 감독, <산나물 처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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