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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누군가의 평범 _ 점보, 조이 위톡 감독

그냥_ 2021. 7.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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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물을 사랑하는 오브젝토필리아 Objectophilia, 그중에서도 특히 기계를 사랑하는 메카노필리아 Mechanophilia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용성이나 수집욕 혹은 지적 욕구 등으로 기기를 즐기는 IT 덕후들이나 애인과의 성적 페티시를 충족하기 위한 기계 소품을 탐닉하는 사람들이 아닌 아예 기계 그 자체를 성적으로 사랑하는 도착증을 말합니다.

 

 

 

 

 

 

 

 

'조이 위톡' 감독,

『점보 :: Jumbo입니다.

 

 

 

 

 

# 1.

 

기계를 사랑하는 여자 '잔'입니다. A.I. 탑재된 로봇형 기계 아니구요. 그냥 쌩기계(...), 놀이동산 어트랙션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죠.

 

히치콕 감독은 "드라마란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다. Drama is life with the dull parts cut out." 라 말하는데요. 그의 정의에 따른다면 이 역시 누군가의 인생일 것이기에 드라마라 부르는 것이 정당할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입이라는 일반적 감상법의 기준에서 세부 장르로서 드라마라 부르는 게 맞나 물으신다면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죠.

 

소수자성을 주제로 한 영화의 경우 그 목적은 보편성의 증명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군가의 사랑, 우정, 동경, 연민, 욕망, 희생 따위가 그들의 성향과 무관한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증명함으로써 차별적 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 기준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인가를 증명하는 작품들이라는 거죠.

 

자연히 대부분 퀴어 작품의 성패 역시 평범한 이성애자들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성과 다른 사랑을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 라이트>나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훌륭한 예라 할 수 있겠네요.

 

 

 

 

 

 

# 2.

 

보편성의 증명이라는 기준에서라면 이 작품은 분명 낙제라 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영화라 하더라도 같은 메카노필리아가 아닌 이상 잔의 사랑을 공감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죠. 다른 것도 적당히 달라야지 놀이기구를 성적으로 사랑하라는 건 일반에게 있어 너무 어려운 미션일 테니까요. 감독과 배우의 노력 여하와는 별개로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서 메카노필리아를 공감하라는 건 '매움'을 학습하라는 말이나 '차가움'을 논쟁하라는 것만큼 허황되게 느껴질 겁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여타 퀴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공감을 위한 드라마가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 발짝 떨어져 있어도 좋으니 논리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이런 류의 인간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보자! 라는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를 되짚어보면서 역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합니다. 이질적인 누군가의 평범을 통해 나의 평범성을 확대하는 영화랄까요.

 

 

 

 

 

 

# 3.

 

다양성 코드들 가운데 그나마 무난한 성소수자나 BDSM이 아니라 왜 하필 메카노필리아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를 질문해야 합니다. 잔의 사랑을 존재론적이고 이상론적인 교감에 근거하는 것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구태여 노골적인 성도착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걸까? 라는 질문을 발견해야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의 평점은 완성도와 별개로 무조건 낮겠다. 라는 것이었는데요. 그 낮은 평점이야말로 영화의 의도 그 자체라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 많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겁니다. '왜 불편하세요?' 라는 질문에 '그냥... 보기 거북해.' 라는 것 외에 합리적인 대답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는 게 문제죠.

 

 

 

 

 

 

# 4.

 

좋습니다. 감독의 장단에 맞춰 놀아봅시다.

 

우선 사디즘이나 마조히즘과 같은 다른 성도착증들에 비해 우리는 왜 오브젝토필리아들에게 더 큰 위화감을 느끼는 가를 질문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의지가 없는 대상이기 때문인 걸까요? 그렇다기엔 이 영화에서 그리는 점보는 소통이 가능한 준-인격체로 묘사된단 말이죠. 붉은빛과 초록빛으로 제한되나마 스스로의 움직임으로 명확히 의사를 표현하는 점보임에도 우리는 나체의 여자가 놀이기구에 매달려 흐느끼는 모습에 여전히 강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점보의 기계 구조가 인간형이었다면 관객이 느낄 위화감은 또 조금 다를지도 모르죠. 그럼 존재의 성격 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와 사랑받아선 안될 존재를 구분케 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통상 영화에는 별의별 캐릭터들이 다 등장합니다. 연쇄살인마든 학살자든 제 아무리 폭력적이고 가학적 존재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존재를 시나리오 속에서 기능하는 가상의 배역으로 명확히 인지하죠. 하지만 유독 퀴어 장르에서만큼은 존재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고 가혹합니다. 분명 똑같은 가상의 캐릭터인데 말이죠. <세븐>의 '존 도'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와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인정하다 못해 사랑하기까지 하는 관객들이 '잔'은 왜 가상의 캐릭터로서도 인정하지 못한 채 그토록 미워하는 가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배타성 역시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 5.

 

마크가 놀이기구를 처분해 잔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후련함이 일부 느껴지기도 합니다. 점보에게 경제성이 없다는 지표가 그런 일방적 판단을 합리화시켜주는 것만 같아 편안함이 느껴지기까지 하죠. 하지만 그런 편안함과 동시에 불편함도 발견됩니다. 자신의 배타성과 폭력성이 폭로되는 느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죠. 마크가 잔을 최우수 직원으로 지명한 후 점보의 처분을 무대 위에서 듣게 만드는 장면에는 두 가지 이율배반적 정서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잔이라는 인물의 존재에게서 위화감을 느끼는 걸까요. 마크가 점보를 없앤 건 정말 돈 때문인 걸까요. 이후 집으로 찾아온 것 마크의 말처럼 정말 그녀를 위해서 였던 걸까요. 어쩌면 그 누구보다 마크 스스로를 위한 건 아니였을까요. 잔은 점보에 오르는 동안 오르가즘을 느꼈다 말합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남자와 이런 걸 느끼길 원했던 거잖아요." 라 소리쳐 말하죠. 그녀는 이질적이지만 분명 온전히 사랑을 느낍니다. 자, 아직까지도 정말 그녀를 위하는 게 맞다 말할 수 있을까요. 엄마와 마크와 관객을 위한 건 아녔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잔과 점보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 타인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다는 걸까요.

 

 

 

 

 

 

# 6.

 

영화는 파격적인 아이템을 통해 위와 같은 문제의식과 화두를 제시합니다. 섬세한 표현과 진중한 호흡이, 관객이 화두와 노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몰입감과 진지함을 제공합니다. 특히 배우 '노에미 메랑'의 치열하고 처절한 연기는 관객이 가벼운 조소로 타인의 삶에 대한 질문을 다루지 않게끔 효과적으로 통제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이야기의 측면에서 부실하다는 점까지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이긴 합니다. 영화가 스스로 발견한 메시지는 얕고 마무리는 특히 안일하죠. 영화의 볼륨은 특유의 색감과 판타지, 노골적 표현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구요. 전반적으로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아이템과 훌륭한 연기, 심미적 표현의 매력까지는 살아있으나 이야기가 충분히 뒷받침했노라 말씀드리게엔 부족해 보인다 해야겠군요. '조이 위톡' 감독, <점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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