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Drama

연기의 맛 _ 대학살의 신, 로만 폴란스키 감독

그냥_ 2021. 4. 26. 06:30
728x90

 

 

# 0.

 

연기 구경하는 맛으로 보는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대학살의 신 :: Carnage』입니다.

 

 

 

 

 

# 1.

 

찰진 대사빨과 화려한 연기빨로 조지는 소위 말싸움물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좁은 거실에 틀어박혀 펼치는 1시간 19분 동안의 썰전입니다. 다 큰 어른들이 교양과 위선으로 싸우는 동안 리드미컬하게 변모하는 긴장과 갈등, 그 속에 숨겨진 묵직한 농담입니다.

 

평범하다는 말도 거창해 보일 정도로 소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입니다. 전개라 부를만한 서사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인즉, 연출자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죠. '낸시'가 화려하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나, '햄스터'나 '아프리카' 같은 몇 뇌절성 아이템을 활용한 러프한 완급 조절을 제외하면 감독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곤 오밀조밀하게 매만진 대사가 전부입니다. 대학살의 신에 대한 이야기와 스탭 롤이 오르는 동안의 연출 정도가 '교양'과 위선의 간극에 관련된 풍자적 주제의식이라는 걸 간신히 지탱하고 있을 뿐이죠.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애초에 '로만 폴란스키'는 특별히 이 영화를 연출로 쥐고 흔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 2.

 

나머지는 배우들이 몽땅 알아서 해야 합니다. 자세, 동세, 동선, 시선, 표정, 발성, 음색, 톤, 호흡, 리듬으로 관객이 원하는 장르적 재미를 모조리 해결해야 합니다. '롱스트릿' 부부의 집과 잠깐 동안의 복도 안에 갇혀 뻔히 보일 수밖에 없는 결말을 향한 80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데, 배우들의 개인 기량이 그게 가능함을 증명합니다. 골 때리는 작품이죠.

 

영화를 즐기는 방식은 절대적으로 관객 개개인의 몫이라, 이렇게 봐라 저렇게 봐라 말씀드리는 게 난센스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네요.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이야기고 나발이고 무조건 연기를 보셔야 합니다.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한 명 한 명의 표현을 씹고 뜯고 맛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생겨먹은 영화니까요.

 

 

 

 

 

 

# 3.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전 0.5초 정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시선을 한번 찍고 뒤돌아 전화를 받는 '크리스토퍼 왈츠'의 디테일을 즐기는 영화입니다. 절규하는 순간 핏대 올라오는 표정 이면에 숨겨진 자기 확신과 모순과 불안을 연기하는 '조디 포스터'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즐기는 영화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말하면서도 내면의 스트레스와 회의감이 차곡차곡 적층 됨을 표현하는 '존 크리스토퍼 라일리'의 섬세한 톤 변화를 즐기는 영화이며. 토를 하거나 휴대폰을 물에 담그는 과격한 장면이 아니라, 남편의 전화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케이트 윈슬렛'의 미묘하게 돌아선 자세와 몸 쓰는 방식을 즐기는 영화입니다.

 

# 4.

 

관객 스스로 연기 디테일을 추적하지 못한다면 자칫 한없이 밋밋하고 산만하고 지루할 수도 있을 작품입니다. 저를 비롯해 적지 않은 관객이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셨으리라 확신합니다만, 그럼에도 특유의 연극적 분위기와 더해져 선뜻 추천하기 주저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5.

 

사실 고백하자면, 지금 이 글은 다시 쓰는 글입니다. 처음엔,

 

  1. 집단을 구축하기 위해 '교양'을 연기하기로 한 인간의 선택.
  2. '법'과 '도덕'과 '성향'의 위계 분류. 각 캐릭터가 대변하는 현대인의 특성.
  3. 요구되는 교양이 늘어남에 따라 한계까지 누적된 도시인의 스트레스.
  4. 구도가 변모하는 동안에도 유지되는 역학적 - 도덕적 균형의 관성.
  5. 술의 힘을 빌어 위선적 교양이 해체되는 순간 관객이 느낄 카타르시스의 성질.
  6. 살아있는 햄스터와 화해한 아이들의 결말과,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위선에 대한 풍자적 메시지.

 

따위에 대해 이런저런 조잡한 이야기를 썼습니다만... 세상 부질없다 싶어 초고를 싹 밀어버렸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잡생각 할 시간에 '크리스토퍼 왈츠'의 재수 없음이나 한 번 더 감상하시는 편이 백번 낫습니다.

 

 

 

 

 

 

# 6.

 

다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도 조금 궁금한 것은 세상 쫄깃쫄깃한 이 영화의 특정한 지점에서 느껴졌던 불쾌감의 실체가 무엇이었을까라는 점이었습니다. 주인공의 교양이 유지되고 있는 영화 초반을 감상하는 동안에도 편안하고, 술을 진탕 마신 후 교양이 해체된 상황에서도 상쾌한데, 유독 <교양이 아슬아슬하게 파괴되는 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확 느껴졌기 때문이죠. 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라 하던가요. 인간과 어설프게 닮은 대상에 대한 이질적인 불편함이, 어쩌면 가공의 물리적 존재뿐 아니라 사회적 개념에도 적용될 수도 있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물론 이 역시 앞선 단락에서 늘어놓은 것과 같은 잡생각이긴 매한가지입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 감상은 덤으로 가져가도 괜찮은 거겠죠. :) '로만 폴란스키' 감독, <대학살의 신>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