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대화하는 두 사람 뒤로 흐르는 시계 소리
똑. 딱. 똑. 딱.
'정가영' 감독,
『내가 어때섷ㅎㅎ :: What's Wrong with Me? KK』입니다.
# 1.
일부러 조금 더 반가운 척 말하는 목소리 1초.
수찬의 적당한 핑계에 무안해져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1초.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유진과 얼마나 만났는 지를 떠보는 1초.
일부러 심드렁한 척 한창 좋을 때네 말하는 1초.
5년, 8년, 10년. 27 평생 도합 23년을 연애했노라 말하는 뻔뻔한 1초.
이 남자가 내 나이도 이름도 모른다는 것에 내심 자존심 상하지만 티를 내고 싶지는 않은 1초.
그럼에도 "저 연애 잘해요!" 라 발끈 해 말하는 1초.
개구진 표정으로 "저랑 연애하실래요?" 라 말한 후 잠깐 가만히 멈춰 선 가영의 1초.
# 2.
"가영 씨 같은 여자 많이 봤다"는 말에 자존심 상해 굳는 표정의 1초.
자기도 모르게 짧은 치마에 드러난 허벅지를 괜스레 쓰다듬는 동안의 1초.
얼른 나가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눈은 마주치지 못하는 1초.
이런 식이면 안 넘어오는 사람은 없다 말하는 동안 지긋이 바라보는 눈빛의 1초.
소파 건너 전등 넘어 옆에 앉으러 움직이기 직전 마음먹는 순간의 1초.
가까이 "네!'라 답하는 애교에도 호응이 없자 잠시 스쳐 지나는 시무룩한 1초.
수찬이 말하는 동안 남은 술을 단숨에 마시며 한 발짝 더 다가가겠노라 다짐하는 1초.
면전에서 듣는 매몰찬 이야기에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물러서고 싶지 않은 여자의 1초.
# 3.
정확히 1분 후에 키스할 거라 지른 후 긴장을 지우려 활짝 웃는 입모양의 1초.
입술에 립밤을 바르는 동안의 두근거림 1초.
입술에 발라주려는 립밤을 못 이긴 척 피하지 않는 수찬을 보는 기대의 1초.
약 올리듯 끝내 고개를 돌리는 수찬에 상처 받은 옆모습의 1초.
한마디 더 꺼내려는 순간 자리를 일어서는 남자와 홀로 남은 여자의 비참한 1초.
볼 수 없었던 뾰로통한 표정의 1초.
'너 따위가 저런 괜찮은 사람을?'이라 말하는 순간 스쳐 지나는 질투심의 1초.
마음 없이 시켜서 한 짓이라 스스로를 변명하는 퉁명스러운 말투의 1초.
놀러 나가고 싶지 않은, 놀러 나가고 싶지 않아져 버린 마음의 1초.
다시 한껏 뾰로통한 표정의 1초.
2초. 3초. 4초. 5초. ...
# 4.
내가 어때서 라는 속마음 뒤를 물고 늘어지는 ㅎㅎㅎ에 담긴, 어이없음과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과 비참함과 부러움과 질투심과 현실 부정과 자기 합리화와 분함과 외로움과 쓸쓸함와 두근거림의 1초. 그 모든 1초들을 발견하는 섬세함. 그 모든 1초들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자신감.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는 찌질함. 특별한 시간 속 존재들의 사랑스러움.
내 것인 동안엔 느낄 수 없었던 누군가의 사랑스러움이 보이게 되어버린 나의 서글픔. 모든 1초가 숨 쉬듯 당연했던 순간들과, 흘러가버린 1초들이 당연한 것이 아녔음을 알게 되어버린 지금. 780개의 1초가 차곡차곡 쌓인 초고밀도 단편. 정가영 감독, <내가 어때섷ㅎㅎ>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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