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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영화에 대한 한숨 _ 낯설고 먼, 트라본 프리 /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

그냥_ 2021. 8.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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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
★★✩✩✩

 

이동진, 영화 <귀향> 한줄평

 

 

 

 

 



 

'트라본 프리',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

『낯설고 먼 :: Two Distant Strangers』입니다.

 

 

 

 

 

# 1.

 

인종차별, 그중에서도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다룬 영화입니다. 시작부터 등장하는 '제임스 볼드윈'이라는 저명인사의 이름과, 경찰이 주인공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떠올리게 될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이 작품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죠. 유색인종에게만 차별적으로 작동하는 공권력의 폭력적 사례를 모아 루프 속에 갇힌 한 인간에게 소집시켜 극으로 재구성합니다.

 

# 2.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이 본래의 평온한 일상을 은유합니다. 미모의 여성 '페리'와의 하룻밤이 설레는 매일을 상징합니다. 미국의 흑인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제임스 볼드윈'은 오래 묵은 차별의 역사를, 강아지 '지터'의 이름을 따온 '데릭 지터'라는 양키스의 슈퍼스타는 인종을 극복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인식을 엿보게 합니다. 원격으로 반려견과 소통하고 간식을 주는 장면은 미래지향적인 사회상을 보여줌으로써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과거 폭력으로서의 인종차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 봐야겠죠.

 

사회라는 집단의 가치는 '집'의 이미지와 연결합니다. 경찰로 대변되는 공권력은 구성원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의합니다. 직전까지 집을 데려다주던 사람이 언제고 총을 꺼내 들 수 있다는 일상의 불안과 위험을 묘사합니다. 피를 뒤집어쓴 마크의 모습에서 이 모든 현상이 거시적 관점에서 자해적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무수히 많은 억울한 죽음들과 그럼에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 3.

 

메시지는 너무 단순합니다. 구도는 '피해와 가해의 관계'가 아닌 '존재론적 선악'을 기준으로 짜여있습니다. 캐릭터는 과장되어 있고 표현은 노골적입니다. 루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의 상상력은 나태합니다. "흑인들이 그럴만한 잘못을 했던 거 아냐?"라는 식의 심드렁한 염세적 태도를 비판하고 싶었다면, '카터'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올바른 시민 행동을 취하는 과정을 보다 풍부하게 묘사해야 했을 텐데요. 비슷한 화면 몇개 말아 전환하는 식의 게으른 편집으로 시나리오의 부실함이 가려질리 만무하죠.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들은 영화의 내용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경찰차 안에서의 대화로 소화하는 데, 그마저도 상황에 녹여내지 못한 채 일장연설을 곁들인 백분토론식으로 전개됩니다. 와중에 은근슬쩍 성별이나 남편-아내 등의 보수적 가족 구성에 대한 대사를 엮어 다양성 코드를 끼워 넣는데요. 이걸 주요 아이템인 인종차별과 제멋대로 묶는 건 졸렬한 짓이죠.

 

# 4.

 

"사실 경찰 '마크'도 루프를 인지하고 있었다" 는 게 감독이 준비한 나름의 반전일 텐데요. 범사회적 문제의식이란 메시지를 개인의 광기로 격하한다는 측면에서 무척 어리석은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한번 마크가 카터를 보내 준 후 다른 경찰에게 죽는 장면이나, 마약신고로 인해 집안에 들이닥쳤다가 죽임을 당하는 씬 등에서, 카터의 위협을 집단의 폭력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고작 30분 남짓의 이 짧은 영화에서조차 일관성이 없으면 대체 어떡하자는 건가요.

 

영화의 마지막 집으로 돌아가는 101번째 시도를 하는 '카터'가 자신이 더 빠르고 더 똑똑하다 말하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돈도 더 많다 말하는 대목은 뭐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가 명분이 아니라 상대를 조롱하는 식의 힘싸움으로 전락했던 건가요. 그럼 경찰이 돈 더 많으면 유색인종 폭력해도 되는 거냐?

 

# 5.

 

음향 활용도 (후진 건 둘째 치고) 너무 과잉이구요. 루프물이라는 장르의 잠재력에 대한 해석도 없다시피 합니다. 100번에 걸쳐 같은 날, 같은 사람에게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멘탈리티에 대한 묘사는 한없이 빈곤합니다. 루프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은 게으릅니다.

 

작품의 톤 역시 일관성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식의 정갈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연쇄를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과 관련된 경건한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고발적인 맥락에서의 엄중함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죠. 하나같이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인물의 스트레스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트레스를 발견한 감독 자신의 대견함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입니다.

 

 

 

 

 

 

# 6.

 

네,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사회운동 영화입니다.

 

시의적인 특정 메시지를 먼저 결정한 후, 이를 이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열광할 수 있는 선전물을 제공하는 것에 노골적으로 집중한 작품들 말이죠.

 

물론 인종차별은 일어나선 안됩니다. 인종차별 폭력 사례의 잔혹함과 당사자의 슬픔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겠죠. 하지만, 그 메시지의 당위가 영화의 만듦새를 정당화하는 것 또한 난센스라는 생각입니다. 글의 서두에 이동진 평론가의 귀향 평을 옮겨뒀는데요. 당시 논란이 조금 있었더랬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회고하며 평론가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평론가의 견해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 해도 꼭 봐야만 하는 영화는 없다. 너무 숭고한 가치를 다루고 있어서 별점을 줄 수 없는 영화도 없다. 어떤 영화를 좋게 만드는 건 그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무엇인가, 주려고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메시지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메시지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체국에 달려가 전보를 쳐라."라 말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메시지를 쥐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귀향은 분명 가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주제가 영화의 조악함을 가리지는 못한다."

 

 

 

 

 

 

# 7.

 

그리고 이 영화는 오스카를 먹습니다. 93회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수상작이었죠.

...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받은 상은 영화로서의 상이 아니라 메시지에 대한 상이었을 거라 추측합니다. Black Lives Matter로 대표되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미국 사회 전역을 휩쓴 직후의 시상식이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씁쓸합니다. P.C주의와 결탁한 문화예술계의 자기부정이 대체 어디까지 흘러갈지 걱정되는군요.

 

모순적인 이야기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문득 차라리 이 영화가 메시지로 상을 받은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만약 2020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들 가운데 이 영화가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건 그것대로 매우 슬플 것 같거든요. '트라본 프리',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 <낯설고 먼>이었습니다.

 

# +8. 살다살다 감독이 자기 승질에 못이겨 독립투사 빙의해 캐릭터를 막 비난하는 꼴을 다 보네요. 참나...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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