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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위령제 _ 후쿠오카, 장률 감독

그냥_ 2021. 6.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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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장률' 감독,

『후쿠오카 :: Fukuoka입니다.

 

 

 

 

 

# 1.

 

'제문'의 헌책방입니다.

 

켜켜이 쌓인 헌책은 오랜 시간에 걸친 누적의 산물입니다. 책방은 축적된 기억의 공간이자 관념의 공간입니다. 환청이 들립니다. 이름 모를 남자의 목소리입니다. 모든 정보는 <책>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있지만 남자의 목소리만큼은 순간 휘발되어 사라지는 <소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문이 전화를 걸어 해효의 소식을 묻는 동안 소담은 책방 깊숙한 곳에 숨겨진 하얀색 <등>을 꺼내 듭니다. 등의 형상은 책방에 있는 것이라기엔 이질적입니다. 밝고 선명하며 장식 없이 둥근 모양입니다. 완전하고 원형적이며 순수합니다. 소담은 묻습니다. "아저씨, 이런 거 좋아해요?"

 

제문과 소담이 20년 넘게 연락하지 않던 해효라는 기억과, 등의 형상으로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방에 살고 있는 제문은 소담의 제안에 이끌려 후쿠오카로 길을 나섭니다. 두 사람은 어두운 땅 속에서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하필 책방이 지하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하입니다.

 

 

 

 

 

 

# 2.

 

'해효'는 후쿠오카에서 수십 년째 술집을 하고 있습니다.

 

술집엔 아주 오래전에나 들을 수 있었을 법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이 인물 역시 과거 특정한 지점에 멈춰 선 인물이군요. 술집엔 시가 한 수 적혀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입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의 주제의식은 자기 성찰입니다. 해효가 수십 년 간 자신의 가게에 자화상을 걸어두고 있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인물이 외딴 우물 속 한 사나이를 들여다보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단골손님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해효는 농아聾啞라 소개합니다. 소담은 말을 그것도 한국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소담의 감이 맞았습니다. 해 질 녘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손님은 과거 여자 문제로 인해 10년간 말을 하지 않기로 했었노라 고백합니다. 그 역시 과거의 미련에 발 묶인 인격입니다. 해효의 앞에선 수년간 말하지 못하던 손님이 하필 소담이 나타난 날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손님은 시를 한 편 읊습니다. 윤동주가 순이에게 바치는 시. <사랑의 찬가>입니다.

 

 

 

 

 

 

# 3.

 

책방의 제문과 술집의 해효를 비롯한 인물 대부분은 자신만의 공간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특정한 관계 특정한 역할에 붙잡혀 있는 인물들이라는 뜻이죠. 영화 내내 인물들은 각자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지만 소통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언어는 세속의 규칙입니다. 언어가 소통을 가로막지 못함은 이 인물들이 세속의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뜻합니다. 제문과 해효 모두 틈으로 소개하는 연출은 제의적 이미지에 확신을 더합니다. 혹시나 못 알아들을까 싶어 '귀신'이라는 대사가 많이도 등장합니다. 정전이 된 날의 촛불 끄기는 특히 노골적이군요.

 

인물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거나 이어지지 않는 대화와 연결되지 않는 행동들로 인한 개연성 붕괴의 이물감은, 이들을 '인간'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판단하기에 발생되는 문제들입니다. 위화감 대부분은 이들을 '귀신'이라 상정하면 편안하게 해소됩니다.

 

 

 

 

 

 

# 4.

 

하지만 일련의 규칙에서 독립되어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소담'이죠. 그녀는 불우한 과거에도 초연하며 공간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영화의 핵심은 다른 모두와 분리된 존재, 소담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할 수 있습니다. 소담은 제문에게 후쿠오카로의 여행을 먼저 제안한 인물입니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합니다. 후쿠오카에서 묵게 될 숙소의 열쇠 역시 이미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는 영화 내내 원하면 언제든 자유롭게 등장하고 사라지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초월적이죠.

 

"너 귀신이냐?"는 제문의 질문에 소담은 "어차피 다 귀신 될 텐데 뭐."라 답합니다. 이 말은 그녀는 귀신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귀신이 아닌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해효는 보다 단도직입적입니다. "넌 어떤 사람이냐" 묻습니다.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웃고." 역시 인간의 행동 양식입니다. 그녀는 사람임엔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끔 헷갈린다 말합니다. 귀신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말하죠. 그녀는 귀신은 아니지만 귀신에 닿아있는 사람입니다.

 

소담은 후쿠오카의 모든 존재들에게 호의를 보입니다. 후쿠오카의 모든 존재들 역시 소담에게 마음을 열게 되죠. 그녀는 깊숙이 숨겨져 있던 전등을 끄집어내는 사람입니다. 가슴속 품고 있던 하루키의 책을 건네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유키와 입 맞출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갈등을 해소하고 연결하며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존재입니다. 제문과 해효 뿐 아니라 다른 상처 받고 좌절한 인격들을 위로하고 구원합니다.

 

 

 

 

 

 

# 5.

 

저는 '소담'을 혼을 달래는 사람,

무속인으로 이해합니다.

 

 

영화 내내 태우는 담배는 제단에 올려진 향처럼 보입니다. 그녀가 두고 갔다는 인형 역시 작품 전반에 깔린 몽환적 분위기와 오컬트적 성격을 한층 강화합니다. 그녀는 인형을 들고 앞장 서 길을 안내합니다. 연극이라는 의식을 제안하고 또 관장합니다. 순이의 인격에 빙의해 제문과 해효라는 이름의 귀신들 마음속 한을 덜어냅니다. 그래요. 어려서부터 신기가 있었던 딸과 아버지는 평생 30분 이상 대화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죠.

 

등장인물 각각은 죽어서도 떨쳐내지 못할 집착, 한국적 정서로 표현한다면 한恨의 구체화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소담을 통해 한이 서린 넋을 달래는 여정을 전개합니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죽어서도 잊지 못할 한이 자신의 내면에 쌓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게 됩니다. 집착과 한을 발견한 관객은 소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위로받게 됩니다. 물리적인 표현만 본다면 영화의 서사는 공간에 발 묶인 존재들이 소담을 만나 자유롭게 걷고 대화하는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만약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속 후쿠오카를 함께 걸을 수 있었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인 거겠죠.

 

# 6.

 

세계관에 얽힌 맥락을 얼마나 빨리 읽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오프닝 헌책방에서 제의적이고 관념적인 이미지를 읽어내지 못한 채, <자연인 제문과 자연인 소담의 일본 후쿠오카 현 여행기>로 접근한다면 미친듯한 애로사항이 꽃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독은 철저하게 후쿠오카를 초월적 공간으로 규정한 채 연출하고 또 편집하고 있기 때문이죠.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제문과 해효를 둘러싼 대화가 조직되지 못하고 건조하게 바스러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 요구됩니다. 여러 모습의 한이라는 정서의 구체화로서 술에 취해 풀어놓는 혼백의 넋두리를 들으며 토닥이는 감각에 대한 몰입이 강요됩니다. 특별한 전개 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시시한 인생들의 술주정을 듣기란 쉬운 게 아니듯 이 영화 역시 관객의 이해심이 대단히 많이 필요한 영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군요. '장률' 감독, <후쿠오카>였습니다.

 

# +7. 글을 써 놓고 영화를 다시보면서 새삼 확신하게 됩니다. '박소담'은 정말 좋은 연기자입니다.

# +8. 왜 하필 '후쿠오카' 였을까라는 점도 흥미롭긴 합니다. 후쿠오카의 한자어 복福 자가 힌트가 될 수 있을까요?

# +9. 사실 '소담'은 혼자 걸어다녔을 지도 모릅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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