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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메타포 찾는 퍼즐 놀이 _ 판문점 에어컨, 이태훈 감독

그냥_ 2021. 3. 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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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판문점에 설치된 고장 난 에어컨을 고치는 수리기사의 이야기입니다.

 

 

 

 

 

 

 

 

'이태훈' 감독,

『판문점 에어컨 :: Air Conditioner in PANMUNJEOM』입니다.

 

 

 

 

 

# 1.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 위에 은유가 맛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에 영화가 매몰되어 있다는 점일 겁니다. 런타임 내내 배경이나 등장인물, 대사, 연기, 전개 모두 메세지를 돕는 메타포로서만 기능합니다.

 

본론에 앞서 분단의 비극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박찬욱 감독 작 <공동경비구역 J.S.A.>를 잠깐 살펴보죠. 박찬욱 감독이 제안하는 영화 속 상황 또한 이 작품 못지 않게 도발적입니다만 적어도 그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 '경필', '수혁', '성식', '우진'의 행동만큼은 각자에게 할당된 설정에 부합하는 합리성을 철저히 따릅니다.

 

인물들의 합리적인 액션과 리액션은 밀도 높은 시나리오와 시너지를 일으켜 관객이 다른 생각할 여유 없이 구체적 서사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막이 내리고 나면 1차적으로 누구나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의 감동을 즐기게 되죠. 극장을 나서며 영화를 곱씹는 순간 2차적으로 각 인물들과 관계에 은유된 역사적 비극을 반추하며 고차원적 감동을 재차 보상받게 될 겁니다. 정석적이죠.

 

# 2.

 

반면 이 영화는 작품의 중심에 이야기를 놓고 그 주변을 주제 의식에 부합하는 함의로 감싸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와 함의들을 잔뜩 수집해 놓고 요리조리 조립하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설정이나 인물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메인 서사 역시 전혀 탄력을 받지 못하죠.

 

물론 소규모 독립영화를 <공동경비구역 J.S.A>에 비교하는 것은 가혹할 뿐더러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가벼운 톤의 코미디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코미디 영화라 해서 서사가 부실해도 된다 말하는 건 역으로 코미디에 대한 비하적 선입견이라 할 수 있죠. 몰입할만한 서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코미디는 파편적인 꽁트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구요.

 

소재가 메타포로서만 활용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옮겨 볼까요?

 

 

 

 

 

 

# 3.

 

2010년대 대한민국 군인들은 민간인 그것도 예비군이나 민방위 아저씨에게 강압적인 언동을 하지 못합니다. 하필 무례한 장교가 판문점에 배치되어 있었다 치더라도 자칫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선 오히려 안심시키기 위해 없는 친절이라도 모조리 짜내기 마련이죠. 훈련소 사격장 아시잖아요. 갑자기 조교며 장교며 세상 친절한 천사가 되는 거.

 

각 잡고 폼 잡으면서 "회담은 했지만 여전히 여긴 위험지역입니다!!"라 할게 아니라 "tv에서 회담하는 거 보셨죠? 걱정하지 마시고 에어컨 수리만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저희한테 말씀 주시면 다~ 해결해 드릴 테니까 긴장 안 하셔도 돼요~" 라면서 생글생글 웃는 '척' 하는 가운데 그래도 북한군을 눈 앞에서 본다는 생각에 수리기사는 땀 흘리며 긴장하는 이여야 몰입이 될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가지 않고 손쉽게 애먼 배우가 억지 엄포를 놓았을까. 해당 장면들이 분단 상황의 갈등과 긴장이라는 '배경'을 축약해 묘사하기만을 바랬기 때문이죠.

 

# 4.

 

아무리 남북이 대립하고 있기로 서니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있지 않고서야 '공동 사용 시설의 기계 설비 수리 문제' 같은 걸 두고 갈등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눈곱만큼이라도 해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는 대로 대외적 관계와 비용이 함께 발생하는 이런 문제는 실무에 앞서 필요한 절차를 모조리 행정적으로 주고받은 이후에 엔지니어를 부르게 되리라는 건 상식이거든요. 피차 수리기사 한 명 와서 에어컨 고칠 거고, 고치다 보면 실외기니 뭐니 살펴볼 거고, 적당히 고치고 나면 돌아갈 거라는 걸, 기사가 오기 한참 전에 충분히 합의해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죠.

 

따라서 이 상황에선 국군과 북한군 모두 서로만 예의 주시할 뿐 수리기사는 소 닭 보듯 내버려 둬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며 애써 무시하려던 양측 군인들이 어영부영 휘말린다! 뭐 이렇게 가야 몰입이 된다는 거죠. 반면 영화에선 시작부터 수리기사가 무슨 양측의 인질인 양 갈등의 씨앗처럼 그려집니다. 왜? 가깝지만 너무도 먼 두 국가 사이의 날 선 긴장과 갈등. 그 가운데서 위험에 노출된 민간인 이라는 '구도'를 축약해 묘사하기 바빳거든요.

 

 

 

 

 

 

# 5.

 

자기들이 필요해 사람 불러놓고 "기사님이 있는 곳은 이미 북한 땅이지만 우리가 잠시 점유하고 있을 뿐이니 각별한 주의 부탁드립니다!"라 말하는 아무 짝에 의미 없는 미친 소리는 사실 관객 들으라고 한 소리입니다. 고작 실외기 찾는 기사한테 그렇게나 삼엄한 곳에서 쉴새없이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 것 역시 마찬가지구요. 모두 주인공인 수리기사에 감정이 이입된 관객에게 의도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입하기 위함입니다.

 

낡은 에어컨과 녹슨 실외기는 오래도록 방치된 갈등의 이미지로 편리하게 활용된 메타포일 거구요. 허리춤에 줄 매고 줄다리기하는 바보짓은 팽팽한 긴장감을 물리적으로 은유하기 위함일 겁니다. 관심이 덜한 산골짜기 전방도 아니고 코 앞에 적군이 있는 판문점에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농후한 세상 껄렁대는 북한군 장교가 배치될 리가 없지만 그런 건 적당히 모른척해 주시구요. 대신 북한군 장교의 눈가에 새겨놓은 깊은 칼자국 같은 지루한 클리셰나 한번 보고 지나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에어컨 수리 부품 하나 굴렀다고 접경지에서 총 뽑아 드는 급발진을. 그것도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다분한 판문점에서 쥐뿔 없는 일선 병사들이 상부의 지시도 없이 저지를 리가 없습니다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여기 담긴 남북간의 대립에 대한 묘사만 전달되면 된거죠. 원래 남북 뭐 이런 걸로 영화 만들면 총 한 번씩 뽑아 드는 건 다들 하는 거잖아요?

 

# 6.

 

고장 나서 작동하지 않아 수리기사를 부른 에어컨의, 심지어 수리하기 위해 전원도 제거했을, 심지어 펜이 낡아서 돌아가지도 않는 실외기가 왜 갑자기 터지는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장르적 포인트를 하나 찍고 넘어가기 위해 적당히 터지는 걸로 퉁칩니다. 불 끄다 말고 물 싸대기 맞더니 계곡에서 물놀이까지 하는 건 15년 전 송강호가 이병헌이랑 초코파이 나눠먹던 느낌적인 느낌을 흉내 내고 싶었다 라는 것 말고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죠.

 

서로 상대의 땅에 서서 뒤엉킨 장면과 새로 산 에어컨을 맞드는 모습은 누구나 예측하신 대로의 최종 메시지. "위 아 더 월드" 하는 거라 보시면 적당할 겁니다.

 

 

 

 

 

 

# 7.

 

연출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되려 구도나 색감, 소품 모두 이쁘게 잘 뽑았다 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그저 지배적인 플롯 하나 없이 시나리오가 흘러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관객이 서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문제죠. 특히나 진짜 심각한 건 산만해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메타포 찾기라는 퍼즐 놀이>를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아, 저 캐릭터는 누구를 의미하는 거겠구나. 쟤는 다른 누구고. 무더운 날씨는 갈등을 의미하는 거겠네. 에어컨은 식히는 걸 뜻할 거고, 낡은 에어컨에 녹이 슨 건 방치된 갈등을 은유하는 거겠지. 그래 그렇지, 이쯤에서 한 번 싸워야지. 그렇지, 화해해야지. 결말은 그거겠구만.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 흘러가네. 착착착착."

 

# 8.

 

중반도 채 지나기 전 '에어컨'과 '수리 기사'와 '국군'과 '북한군'이라는 주요 재료가 테이블에 세팅되는 순간 이후 전개에서 실외기가 터져 불이 나던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나던 옥류관 냉면 손에 든 김정은이 빨간 빤스 입고 하늘에서 나타나 슈퍼맨 놀이를 하던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지 하등 상관없이, "어찌저찌 무더운 열을 식히고 남과 북 우리는 하나예요. 피스!" 라는 작품의 결말과 메시지를 완벽히 짐작하게 됩니다. 관객 개개인이 가진 평화에 대한 소망을 제외한다면 영화 고유의 힘으로 감동을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죠.

 

평화라는 절대적 지휘를 가진 선량한 당위와 에어컨 기사 역 배우의 눈물 나는 몸개그가 작품의 의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아예 한국의 분단 상황과 판문점이라는 공간을 전혀 모르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살고 있을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요정도 내러티브로 감동을 느끼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분단은 너무 무겁고 또 너무 친숙합니다. 이태훈 감독, <판문점 에어컨>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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