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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소녀는 엄마는 친구 _ 좋은날, 황슬기 감독

그냥_ 2021. 11.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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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단편 옴니버스 <맛있는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황슬기' 감독,

『좋은날 :: A Good Day』입니다.

 

 

 

 

 

# 1.

 

진수성찬입니다. 이전 두 편의 음식과는 결이 많이 다르군요. 장소도 휴양지에 있을 것만 같은 호젓한 한정식집입니다. 네 명의 여사님들이 등장합니다. 진한 사투리를 쓰고 있습니다. 흔히 그 나이대 여자들이 모여 나눌 법한 이야기와, 생길 수도 있을 법한 갈등이 전개됩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발견되는 키워드는 친구엄마입니다. 친구는 상황이 성립되기 위한 관계를 만들고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돕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감독은 엄마의 정체성을 진수성찬으로 정의합니다. 풍요롭고 화려하고 든든하지만, 때론 지루하고 까다로우며 불편하기도 합니다.

 

 

 

 

 

 

# 2.

 

서울입니다. 유독 티격태격하던 '미금'과 '정아'가 함께군요. 두 사람은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오릅니다. 또 오릅니다.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오르막 길. 엄마라는 건 참 힘겨운 일입니다.

 

저런. 미금이 딸 자랑을 거짓으로 지어냈나 봅니다. 정아가 따라나선 건 오랜 친구의 거짓말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인 듯하군요. 친구의 거짓말을 놀려먹기 위해 아득바득 따라온 친구도 얄밉지만, 깐족거리는 정아랑 팔짱 끼고 시시덕거리는 딸내미가 더 얄밉습니다.

 

거짓말이 탄로 나자 미금은 아이처럼 달아납니다. 중년 여성의 치열한 달음박질이 우스꽝스러운 콩트로 승화됩니다. 코미디에는 역시 작던 크던 페이소스가 있어야 합니다. 정아와의 숨바꼭질에서 결국 잡히고만 미금. 왜 도망가냐는 친구의 물음에 답합니다. "쪽팔리스. 윤아가 아이고, 내가 쪽팔리스..." 미금은 스스로가 쪽팔린 엄마, 서툰 엄마입니다.

 

 

 

 

 

 

# 3.

 

버스정류장입니다. 미금과 정아가 손을 맞잡는 모습 앞으로 교복 입은 소녀가 둘 서있습니다. 정차한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버스에 올라탄 순간부터는 엄마 미금과, 엄마 정아의 시간이 아닌 소녀의 시간입니다. 친절하네요.

 

딸과 한강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한 미금은 정아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합니다. 딸과 발레를 보러 가기로 한 정아는 미금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앞서 전반부 진수성찬은 엄마라 말씀드렸습니다. 진수성찬은 이름에 걸맞게 정갈해야 하고 구색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구색을 갖추지 못한 진수성찬은 쪽팔린 것이죠. 엄마도 그러합니다. 반면, 은박 접시에 담긴 라면은 소녀의 음식입니다. 구색을 갖출 필요도 능숙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강에선 처음 라면을 끓여 먹어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장성한 딸이 있어도 여전히 라면을 좋아한다. 그게 중요합니다.

 

 

 

 

 

 

# 4.

 

김치를 꺼냅니다. 미금이 딸 먹이려 싸온 김치군요. 영화의 에너지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라면만 먹었다면 이 영화는 그저 엄마가 소녀로 돌아간 짧은 일탈에 불과했을 겁니다. 삼단 도시락을 가득 채운 김치, 김치, 김치를 늘어놓은 덕에 두 인물의 정체성에 두터운 입체감이 생깁니다. 진수성찬은 엄마의 책임과 부담을 의미하지만, 김치는 엄마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미금은 엄마의 부담으로 거짓된 딸 자랑을 했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정아는 영탁을 좋아하는 소녀라는 걸 알아주길 바랬지만 역시 실패합니다. 하나만으론 불완전합니다. 소녀이면서 동시에 엄마여야 하죠. 둘은 지는 석양을 앞에 두고 웃으며 성장합니다.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친구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승질 좀 덜 부릴 수 없는 두 사람의 날씨는 진짜 좋습니다. 느지막이 저무는 석양이 두 사람이 지나는 시간인 것만 같죠. 노을이 울적하다는 건 선입견입니다. 노을 진 날씨도 친구와 함께라면 진~~~ 짜 좋을 수 있습니다.

 

 

 

 

 

 

# 5.

 

영화는 갑작스레 마무리됩니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크레디트를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역시 이 이상의 '사건'은 사족이었겠다 싶습니다. 한강 라면은 깔끔한 맛에 먹는 음식이니까요. 소녀와 엄마와 친구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각각 음식과 설정, 사건으로 구체화한 후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성장으로 귀결되는 서사를 만드는데 감독에게 17분이면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합니다.

 

옴니버스에서 모든 작품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만, 이번 영화는 특별히 만족스러웠네요. 조만간 배민을 통해 쌀국수와 떡볶이와 라면을 시켜 먹어야겠다 생각 중입니다. 물주에게 하는 감사 인사 중에 돈보다 좋은 것도 없을 테니까요. 영화 <맛있는 영화> 마지막 에피소드, '황슬기' 감독, <좋은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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