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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컨템퍼러리 타임즈 _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감독

그냥_ 2021. 4.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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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감독의 이름과 매일 두 잔씩은 꼬박꼬박 마시는 커피, 한동안 인생을 좀먹었던 담배와 긴장을 부르는 강렬한 흑백의 화면, 집중을 낚아채는 좁은 테이블의 공간과 왠지 아우슈비츠를 속속들이 알 것만 같은 배우의 등장이 의자를 스크린 가까이 당겨 앉게 합니다.

 

 

 

 

 

 

 

 

'짐 자무쉬' 감독,

『커피와 담배 :: Coffee and Cigarettes』입니다.

 

 

 

 

 

# 1.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데요... 어째 점점 현타가 몰려옵니다. '열심히 본다'는 행위 그 자체에 강한 회의감이 듭니다. 이렇게 보는 영화가 아닌 것만 같은 위화감입니다. 가까이 다가간 몸을 다시 뒤로 뉘어 엉덩이를 뺀 채 마치 염세주의자들의 그것과 같은 무심함으로 영화를 봐야 할 것만 같다는 압박이 느껴집니다. 신기한 일이죠.

 

분명 퀄리티 때문은 아닙니다. 되려 기억에 남을 만큼 뛰어난 완성도입니다. 11개씩이나 되는 에피소드를 대화로만 풀어가는 실험적 구성. 자유로운 대화들과 논리적인 컷 전환의 대조. 상징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배치와 미장센. 각 에피소드의 메시지와 구도를 축약해 놓은 듯한 테이블 세팅. 부재한 내러티브의 공백을 차고 넘칠 듯 채워내는 찰진 말맛과 코미디.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테마 모두 인상적인 작품임에 분명합니다만 이를 열정적으로 즐기겠노라는 '나의 마인드 세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느낌에 가까웠죠. 왜 이런 기분이 든걸까요.

 

 

 

 

 

 

# 2.

 

영화에는 '관계'의 본질을 파고들어 잠식해버린 '긴장'과 '대결'이 가득합니다. '개성'으로 오해된 '몰개성'을 묘사합니다. '소통'을 가로막는 '단절'과 '냉소', '화합'을 대신하는 '소비', '기계적 질서'와 '불확실성'의 공존입니다. '각성'입니다. '중독'이구요. '가십'이자 '무지'이며 '무례'입니다. '과잉', '허영', '이미지', '자본', '비교', '질투', '거짓' 이며. '욕망', '거래', '모순', '폭력', '회피', '계급' 입니다.

 

각각의 관념들이 마치 테이블의 무늬 위 체스 말처럼 논리적으로 배치됩니다. 감독은 차곡차곡 배치된 이미지를 커피와 담배라는 현대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기호품에 빠짐없이 귀속시킵니다. 커피와 담배는 누군가에겐 몸에 좋고 누군가에겐 해롭지만, 적어도 손이 떨릴 정도로 중독적이라는 것만큼은 동일합니다.

 

제한된 환경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배우들의 화려한 개인기와 시종일관 키득거리게 만드는 코미디 이면에 담긴 현대인과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지적이고 통렬한 풍자 그리고 냉소입니다. 쓴맛의 커피를 들이켜고 나면 그 끝에 남는 황홀한 커피의 향처럼, 한 모금 깊게 빨아 넘긴 후 남는 허무한 담배 연기처럼 말이죠.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혼란을 풍자한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 빗댄다면 이 영화는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개인성과, 여전한 수단으로써의 인간성, 습관이 되어버린 대결적 관계를 조롱하는 <컨템퍼러리 타임스>라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 3.

 

만약 감독이 표현하고자 한 바가 제가 이해한 대로 현대 문명과 인간이라면,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의 염세적 태도와 보고 난 후 남겨진 허무함은 영화의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사회의 것, 그 중에서도 평균적 현대인으로서의 '나'의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죠. 이미 나인데 열심히 나를 보려 노력하는 것만 같은 위화감이 들 수밖에요. 중요하지 않은 걸 혹시 중요할까 싶어 보는 느낌이 들 수밖에요. 이미 차갑다는 걸 알고 있는 얼음을 들고 뜨겁다 호들갑 떠는 꼴이니 현타가 올 수밖에요.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접붙여진 옴니버스들은 보통 작품 전반의 에피소드들을 '진단'으로 마지막 에피소드를 '판단'으로 활용하곤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0년>도 그랬고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도 그랬죠.

 

마지막 에피소드 <샴페인>은 여타 에피소드들에 비해 훨씬 감정적일 뿐 아니라 커피와 담배를 밀어내고서 '샴페인'이라는 다른 무언가를 찾는 유일한 에피소드입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정말 전하고 싶었던 건 무수히 많은 커피와 담배로 엮어낸 농담이 아니라, 1920년의 파리에 두고 온 '샴페인'이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죠. 96분간의 유의미를 풀어낸 무의미함을 거쳐 감독은 관객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이렇게나 매혹적인 '커피'와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샴페인'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짐 자무쉬' 감독, <커피와 담배>였습니다.

 

# +4. 어두운 방을 둘러보니 글을 쓰는 지금도 노트북 옆에 커피가 놓여 있군요. 이젠 서글프지도 않아져 버린 내가 서글픈 밤입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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