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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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70

여름바다라는 풍경화 _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조혜린 감독

# 0. 겨울바다 사진이 여름바다 그림 속으로 풍덩 조혜린 감독,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입니다. # 1. 퀴어 코드의 로맨스 영화입니다. 대체로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주인공이 정체성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인정하거나 표현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도입에 등장하는 전 애인 수영의 청첩장과 같은 코드를 생각한다면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다만 보다 보면 뭐랄까요. 퀴어는 그냥 소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영화에서의 퀴어란 두려움에 못 이겨 마음속 깊이 끌어안고 침전해 있는 무언가로 대체되어도 별 지장이 없거든요. 심지어 사랑이라는 정서조차 그렇게까지 본질..

Film/Romance 2022.10.30

모놀로그 _ Departure, 양익준 감독

# 0. 다쒼 나가튼 사~람 만나쥐 마요~ 양익준 감독, 『Departure』입니다. # 1. 이별의 상처를 잊기 위해 일본을 향했던 그녀가 3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금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 2.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플래시백을 제외하면 등장인물은 류현경이 연기하는 '그녀', 한 명뿐이죠. 인물의 정체는 물론이거니와 이별의 이유와 일본에서의 생활, 돌아가는 계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제시되지 않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자유롭고 싶고 평화롭다 싶다 말하며 사랑과 헤어졌지만 그것은 도망에 불과했다. 라는 것을 절박하게 자백하는 한 인간의 감수성이면 충분합니다. 한마디 대화 없이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데요. 여자가 헤어진 남자에게 전하는 방식을..

Film/Drama 2022.09.24

헤어졌어 _ 연기, 김경래 감독

# 0. 헤어졌어. 갑자기? 왜 헤어져요? 김경래 감독, 『연기 :: While you play』입니다. # 1. 무수히 많은 연습으로 이뤄진 이별, 무수히 많은 이별로 도달한 사랑입니다. 이별을 연기하는 동안 시간도, 환경도, 성격도, 상황도, 해석도, 심지어 입장까지도 계속해서 뒤바뀝니다. 테이크를 굳이 숨기지 않는 등 오롯이 타인을 연기하는 가상의 행위임을 명확히 합니다. 하지만 그런 표피적인 것들과 무관하게 정서는 단일한 방향으로 깊어만 갑니다. 사랑이죠. 절정부 포차를 나선 후, 헤어지자 말하는 순간의 상대와 키스하는 순간의 상대는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고, 그 말을 하는 남자 역시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입니다. 입맞춤에 화들짝 놀라는 여자 역시 이별을 원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랑을..

Film/Romance 2022.09.02

폭동 _ 카터, 정병길 감독

# 0. 야한 동영상을 줄여서 '야동'이라 부르던가요. 그럼 폭력 동영상은 '폭동'이라 불러야겠군요. 정병길 감독, 『카터 :: Carter』입니다. # 1. 멜로와 포르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가장 큰 것은 의도의 차이라 해야 할 겁니다. 멜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부신 순간들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정서의 입체성을 관찰하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성애性愛는 결실을 표현하는 다양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죠. 성애를 적극적으로 연출하는 몇몇 작품들 조차 중요한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어루만지는 손길에 담긴 감정의 표현에 있습니다. 파격적인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던 같은 작품들만 하더라도 각각의 베드신마다 각기 다른 정서를 구분 지어 표현하는 미학적 성취가 뛰어난 작품이었죠. 반면, 포르노에서..

Film/Action 2022.08.12

가장 낮은 층의 붕괴 _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

# 0. 뒤집어진 건 영화였구요.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 :: Emergency Declaration』입니다. # 1. 씨발, ㅈ됐다. 어떡하냐. # 2. 천박하게 말하자면 재난 영화는 위의 두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의 '씨발, ㅈ됐다'는 재난의 심각성을 의미할 테구요, '어떡하냐'는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의미한다 할 수 있겠죠. 영화는 전후반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를 받는 양상인데요. 전반부는 씨발 ㅈ됐다를 열심히 잘 만들어 칭찬받고 있는 것이고, 후반부는 어떡하지를 기만하면서 욕먹고 있는 것이라 이해하면 무난할 겁니다. 끝맺음으로 논란에 놓인 작품을 이야기하는 중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긴 합니다만, 재난 영화의 결말은 생각보다 자유롭습니다. 어찌어찌 노력한 끝에 다 살아도 좋습..

Film/Drama 2022.08.10

사과해 _ 사람 냄새 이효리, 구교환 / 이옥섭 감독

# 0. 유튜브 지박령이 또 희한한 영상에 얻어걸렸습니다. 구교환 / 이옥섭 감독, 『사람 냄새 이효리 :: Super Star LeeHyori』입니다. # 1. 코피로 혈서 써주며 먹고사는 구교환과 아이들이 돈 많은 이효리 오퍼 받고 신나서 찾아갑니다. 구교환은 트로피에 피 묻히고 이효리는 계단 내려오며 쌍욕 합니다. QR코드 찍어 옛날 테레비 시청하고 햄스터 80마리 택배로 날아와서 학교도 못 간 김에 노숙자로 전직하게 한 거 사과해. 요가하며 트림하는 이효리가 개 잡아먹은 사람 잡아먹었다고 자수합니다. 글자 겁나 많은 혈서 덕에 구교환은 한몫 땡겼겠네요. 부럽다. # 2. 어찌 되었든 언어유희를 활용한 반전 한 방을 향해 가는 작품이라 해야 할 겁니다.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은 사회-경제적 계급과 도..

Film/Comedy 2022.08.04

애정결핍 _ 외계+인 1부, 최동훈 감독

# 0. 대체 관객인 내가 영화 속 무엇을 좋아하길 바랬던 걸까. 최동훈 감독, 『외계+인 1부 :: Alienoid part.1』입니다. # 1. 영화만큼 장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분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장르라는 게 뭐예요? 라는 질문에 사람마다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텐데요. 문외한인 저는 관객에게 주고 싶은 감동의 유형 정도로 대충 이해하고 있습니다. 관객을 웃게 하고 싶으면 코미디, 감동시키고 싶으면 드라마, 무섭게 하고 싶으면 호러라는 식이죠.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종류의 감동을 줄 것인가라는 세세한 구분이 더해지면 소장르쯤 될 테구요. 다양한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면 퓨전 장르라는 식으로 부를 수 있겠죠. 어찌 되었든 장르물이란 것이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Film/SF & Fantasy 2022.08.02

너는 샐러드바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_ 전우치, 최동훈 감독

# 0. 뷔페 좋아하세요? 최동훈 감독, 『전우치 :: Woochi』입니다. # 1. 뷔페도 식당인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맛이겠습니다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음식의 구성일 겁니다. 손님마다 입맛도 다 다르거니와 어차피 먹을 수 있는 양, 느낄 수 있는 맛은 한정적이니까요. 대부분의 고객들은 맛있고 값비싼 음식을 풍성하게 먹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음식을 조화롭고 편안하게 맛보길 원합니다. 제 아무리 산해진미라 하더라도 계~속 고기, 고기, 고기만 먹다 보면 얼마 못가 물리기 마련이죠. 서울시 중구 충무로 일대에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는 간판의 전문점을 운영해온 사장 최동훈 씨가 뷔페 창업에 도전합니다. 과 , 이후 과 로 이어지는 대박 메뉴를 내리 개발하는 데 성공한 사장님은 자..

Film/Comedy 2022.07.28

고작 8분 _ 싱크 앤 라이즈, 봉준호 감독

# 0. 고작 8분. 봉준호 감독, 『싱크 앤 라이즈 :: Sink & Rise』입니다. # 1. 거칠고 위태로운 인물의 카리스마. 모험 혹은 도박.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봐". 허구적 풍요. 삶은 달걀. 매혹적인 롱테이크. 시선과 호기심을 지배하는 샷 전환. 평범한 공간을 구분해 미학적으로 재해석하는 고유의 시선. 입체감을 조작하는 카메라 워크. 압도적인 개방감으로 정의되는 한강이라는 환경. 프레임 인 앤 아웃의 능수능란한 활용. 천 원의 함의. 뜬금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내 딸 너 준다". 콤플렉스를 다루는 방식과 풍부한 감정 변화. 돈 주고 산 달걀을 한강에 내버리는 아이러니. 특수 계란과 "아빠 안 믿지"의 페이소스. 다친 다리의 디테일. "우린 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여"라는 공격적 ..

Film/Drama 2022.07.18

미결로 완성될 영원의 바다 _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 0.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며 제목 잘 지었다 싶은 작품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JSA는 JSA구요. 올드보이는 원작 제목이었죠. 박쥐나 스토커, 아가씨 모두 완성도와 별개로 특색 있는 제목은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복수는 나의 것이나 친절한 금자씨 정도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창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 봐야 거기까지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창작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저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 Decision to Leave』입니다. # 1. 헤어지면 됩니다. 그냥 헤어지면 됩니다. 헤어지는 데에는 결정決定이면 충분하죠.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헤어질 결심決心.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왜 결심..

Film/Romance 2022.07.12

눈보라빛 향기 _ 플레이온, 고동환 / 송하연 / 강선우 감독

# 0. 그대 모습은 눈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고동환, 송하연, 강선우 감독, 『플레이온 :: PLAY ON』입니다. # 1. 최근 왓챠는 단편에 진심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생존전략이긴 하겠지만요. 여하튼 매주 양질의 단편을 10여 편 이상 꾸준히 추가하고 있는데요. 참 잘했어요. 이번 주에는 10분 안쪽의 애니메이션이 왕창 올라왔네요. 30년 차 게임 폐인의 니즈를 자극하는 작품이 보이길래 즐거운 마음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 2. 균형이 돋보이는 말랑말랑 애니메이션입니다. 직관적인 인상은 라이엇의 롤과 블쟈의 하스, 슈퍼셀의 클래시 시리즈의 중간 어딘가의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실제 그런 게임들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국과 일본 등 동양 애니메이터의 표현보다는 ..

Film/Animation 2022.07.02

호수를 나는 새 _ 내 이름은 졸자야, 곽동철 감독

# 0. 당연히 외국 다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한국 감독의 작품이더군요. 왜 하필 타국, 그것도 생소한 몽골의 흐미 가수에게 카메라를 들이민 것일까. 제가 이 다큐멘터리에 흥미가 동한 것은 바로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왜 굳이 이 아이템으로 작품을 만든걸까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곽동철 감독, 『내 이름은 졸자야 :: My Name is Zolzaya』입니다. # 1. 안개 낀 숲, 고요한 사막, 푸른 호수 위로 잔잔하게 들이치는 파도입니다. 자연의 웅장함을 담아내는 넓은 화각은 자유로움을 은유합니다. 다채로운 풍경은 다양성과 가능성 등을 상징하죠. 사막과 호수의 접경은 역사의 도도한 변화를,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는 파도는 평화로운 방법론과 거스를 수..

결기 _ 매미, 윤대원 감독

# 0. 결말의 한방이 만든 박력으로 승부를 보는 영화라면 이 정도 결기는 있어야 합니다. 윤대원 감독, 『매미 :: Cicada』입니다. # 1. 일정한 리듬의 건조한 사운드가 끊임없이 어디론가 끌려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와 몰입을 연출합니다. 계단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오는 그녀는 갓 땅 위로 올라선 매미. 옆으로 걷는 주인공 뒤의 난간이 정확히 목에 걸리는 그림이 관객을 더욱 불안하게 합니다. 익숙해 보이는 듯한 장소에 자리를 잡습니다. 얼굴 위로 홍등가와 여성성 따위를 의미하는 붉은빛과, 처연함과 남성성 따위를 의미하는 푸른빛이 겹쳐 떨어집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 매춘부군요. 스쳐 지나는 경찰차는 추측에 확신을 더합니다. 운전을 하는 남자입니다. 오른손을 빨대가 꽂힌 음료에 얹어두는 모습은 여자가 사..

Film/Drama 2022.05.28

포트폴리오 _ 하트어택, 이충현 감독

# 0. 그림은 이쁩니다. 이성경은 더 이쁩니다. 진짜 겁나 이쁩니다. '이충현' 감독, 『하트어택 :: HEART ATTACK』입니다. # 1. 사랑하는 사람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100번의 시간을 돌리는 여자의 이야기 # 2. ... 라고 하네요. 루프물입니다. 언제나 이쁜 이성경이 보드 타다 자빠져 코피 흘립니다. 애매하게 잘생긴 외쿡인이 어색한 연기력 뽐내며 농구합니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저런. 외쿡인 형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마비로 승천할 팔자라고 합니다. 시간 능력자인 듯한 여자는 시간을 되돌려 남자를 살리려 하는데요. 100번이나 시도했지만 낭낭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실망한 여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뽀뽀를 하구요. ..

Film/SF & Fantasy 2022.03.29

프리허그 _ 겨울잠, 이진우 감독

# 0. 겨울인데 이상 고온이라고 합니다. 정작 주인공은 내내 춥고 배고픕니다. '이진우' 감독, 『겨울잠 :: Winter sleep』입니다. # 1. 남쪽 끝으로 가면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일이 잘 풀리느냐 그렇지 않으냐 이전에 이상한 말입니다. 남쪽 끝으로 가는 것과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정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고통을 이겨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역시 이상한 말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가 맞지 고통을 겪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식당 주방 한켠에 움츠려 밥을 먹습니다. 거리 한복판에 쪼그려 똥을 쌉니다. 하염없이 남쪽으로 향하던 구병은 대..

Film/Drama 2022.03.16

퀄찍누 _ 일장춘몽, 박찬욱 감독

# 0. 아이폰 13 출시를 기념한 애플과 박찬욱 감독의 컬래버레이션 단편입니다. '박찬욱' 감독, 『일장춘몽 :: Life is But a Dream』입니다. # 1. 아이폰 13 프로. 여기저기 호들갑을 떨어대는 게 맘에 안 들어 심술이 잔뜩 나 있었는데요. 스토어에서 실물을 만져보고 항복하고 말았던 친구죠. 사야지 사야지 했습니다만. 돈이 업쪄... ㅠ 어쩔 수 없이 플립 하나를 쿠팡 핫딜로 주은 후 맥북 에어 깡통을 스벅 입장용 방탄조끼로 들이밀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습니다. 비참하네요. 주워들은 바로는 갤럭시에 비해 AP 깡성능으로 조질 수 있는 고화질 고프레임 실시간 후처리 퀄리티 등의 동영상 촬영과, 특유의 갬성 색감과 근접 디테일 정도가 비교 우위라는 듯 보이구요. 광각, 망원, 야간 가리지..

Film/SF & Fantasy 2022.02.23

고슴도치 딜레마 _ 각자의 입장, 강정인 감독

# 0. 거리 조절이 서툰 고슴도치들의 연약한 속살 '강정인' 감독, 『각자의 입장 :: Each』입니다. # 1. 오프닝입니다. 전화를 하며 길을 걷습니다. 짜증이 잔뜩 묻어납니다. 길 가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힙니다. 더욱 짜증스러운 표정입니다. 그녀는 무언가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보상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합니다. 피해의식도 발견되고 손해보지 않겠다는 보상심리도 발견됩니다. 감독은 그녀를 퇴근길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에 숨겨 넣습니다. 특별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감독 '강정인'의 현대인입니다. # 2. 네 명의 주인공 란희, 싱싱, 기 감독, 선준입니다. 인물들은 얽히고설키는 우위와 열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⑴ 예술적 재능, ⑵ 경제력, ⑶ 도덕성, ⑷ 갑을 관계 등이 그것이죠. ..

Film/Drama 2022.02.09

왓포드 역배 _ 습도 다소 높음, 고봉수 감독

# 0. 무더위의 짜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습도 높음] 정도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작품의 제목은 습도 [다소] 높음.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고봉수' 감독, 『습도 다소 높음 :: The rain comes soon』입니다. # 1. 영화관을 공습하는 빌런들의 영화입니다. 영화판을 사수하는 어벤저스의 영화입니다. 이율배반적인 설정이 캐릭터 쇼에 풍성함을 더합니다. 에어컨도 돌아가지 않는 텅 빈 영화관을 박봉에 홀로 지키는 '찰스'를 모두가 무자비하게 괴롭힘에도, 마냥 불쾌한 것이 아니라 찡하고 짠한 건 본질적으로 이들이 미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각각은 영화 상영이라는 사건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일상, 이를테면 아르바이트라거나 소개팅, 결혼 준비, 무료 음료수 따위를..

Film/Comedy 2022.01.12

잔인한 거짓말 _ 블루해피니스, 이제훈 감독

# 0. 취업 준비 중인 '찬영'이 우연한 기회로 트레이더 친구를 만나 주식에 빠져들면서 생기는 변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제훈' 감독, 『블루 해피니스』입니다. # 1. 찬영은 20대 취준생 일반을 대변합니다. 구체적 개인의 특별한 서사라기보다는 세대 및 경제 계층에 대한 코드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이후 글에선 이름 대신 '남자'라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인물이 처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도시 아래 비어있는 도로는 겉보기엔 화려해 보여도 속은 비어있는 인격의 공허함을 표현합니다. 보닛 너머 훔쳐보는 앵글은 비루한 현실을 은유합니다. 화려한 도시를 지나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차량을 구태여 정면에서 담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제자리에 멈춰서 있는 처지를 상징..

Film/Drama 2022.01.11

초록빛 하루 _ 반디, 최희서 감독

# 0. 인내 끝에 숨어있음을 깨닫는 초록빛 하루 '최희서' 감독, 『반디』입니다. # 1. 공들여 담아낸 반딧불을 연탄불에 연결합니다. '소영'이 연탄불에 데이는 장면은 반딧불에 데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덴다는 것은 고통이자 두려움입니다. 몸을 사리는 이유는 임신, 지키고자 하는 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라지는 것에 데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군요. 사실 영화는 내내 '숨어있음'을 주인공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말하는 반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말하는 아들도 집 안에 숨어 있습니다. 삭막하기만 한 서울의 아파트 단지 뒤엔 푸르른 녹음이 숨어 있습니다. 딸은 아빠가 아빠의 방 곳곳에 숨어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Film/Drama 2022.01.10

관찰과 연구 _ 재방송, 손석구 감독

# 0. 익숙치 않은 듯 불편해 보이는 양복. 물병을 하늘 높이 집어던지는 장난기. 짧게 멘 붉은색 백팩. 무더운 날의 오르막길. 거친 숨소리.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저 왔어요. 이모!" '손석구' 감독, 『재방송』입니다. # 1. Unframed입니다. 드라마 물에서 예상할 수 있는 관습적인 클리셰에 얽매이지 않고자 하는 감독의 의지가 명확히 전달됩니다. 의도적으로 비튼 클리셰 파괴를 위한 클리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극을 쓰는 사람의 편의보다는, 캐릭터의 진짜 모습을 치열하게 관찰하고 연구했음이 스크린을 넘어 전달된다는 뜻이죠. 말하는 사람의 입을 배려한 티가 역력한 대사들입니다. 만지는 사람의 손을 배려한 티가 역력한 소품들입니다. 움직이는 사람의 몸을 배려한 티가 역력한 공간들입니다. 보는..

Film/Drama 2022.01.06

개표인 실종 _ 반장선거, 박정민 감독

# 0. 분명 익숙한 냄새인데 말이죠. 이걸 어디서 맡았더라... '박정민' 감독, 『반장선거』입니다. # 1. 생각났습니다! 조일형 감독 작, #살아있다 의 냄새군요!! 감독 개인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스타일과, 장르와 배경의 이종교배 아이디어에 작품의 성패를 올인하고 그 외 모든 것들은 대충 클리셰로 때워내는 바로 그 냄새입니다. 드론과 인방으로 대표되는 힙한 아이템은, 흑인 음악과 캣우먼식 장면 전환에 대응됩니다. 좀비물을 고스란히 가져와 아파트 단지에 풀어보자는 아이디어는, 범죄 누아르를 고스란히 가져와 초등학교 교실에 풀어보자는 아이디어로 대응되죠. 거실 한복판에 차린 무근본 베이스캠프와 클라이밍 하는 소방관 좀비 등의 작위적 설정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유도하는 머리 때리기를 비롯한 과장된 갈..

Film/Thriller 2022.01.04

같은 개, 다른 목줄 _ 엘 모비미엔토, 벤자민 나이쉬타트 감독

# 0. 1835년, 지도자를 잃은 아르헨티나는 혼돈 그 자체였다. 야심 찬 세뇨르는 고립된 남부 사막 팜파스로 자신의 거점을 옮겨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실험에 착수한다. 질서와 규율로 사람들을 통제하던 세뇨르는 공포의 독재자로 서서히 거듭난다. (제16회 전주 국제영화제) '벤자민 나이쉬타트' 감독, 『엘 모비미엔토 :: El Movimiento』입니다. # 1. 1835년 무정부 상태의 아르헨티나입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다시피 기본적으로 정치적 소재의 작품이죠. El은 영어의 The와 같은 정관사구요, Movimiento는 예상하셨다시피 Movement의 스페인어니까 (정치-사회적) 운동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할 겁니다. 국가 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파편적으로 흩어진 군부 잔당들에 의한 농민..

Film/Drama 2021.12.22

근사한 전개, 이상한 결말 _ 병(病), 이우동 감독

# 0. 선입견 [先入見] (명사)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마음속에 굳어진 견해. '이우동' 감독, 『병(病) :: Sick』입니다. # 1. 선입견은 제법 경제적입니다. 누적된 기억이 만든 직관은 시행착오의 위험을 줄여주죠. 섣부른 예단이 예외적 가능성을 차단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나 논리 검증이 없던 문명 이전에서부터 선입견은 효과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되어 주었음에 분명합니다. 또한 필연적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발전사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미지의 영역으로의 탐험과도 같으니까요. 거창하게 역사 거론하며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영화 속 90년 대 에이즈에 당황하는 병원 직원들을 비웃기에는 2020년 코로나 앞에 보..

Film/Drama 2021.12.15

그날의 내 기분 _ 의자가 되는 법, 손경화 감독

# 0.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의자가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비 오고, 리사이클 의자, 풀 숲, 페이드 아웃, 마천루... 응? 끝이네? '손경화' 감독, 『의자가 되는 법 :: How to Become a Chair』입니다. # 1.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제목은 . 대상의 속성을 면밀히 추적한 후 화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의미를 선별적으로 추출해 사람 사는 방식과 연결 짓는 류의 작품들이 대체로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죠. 예상대로 카메라는 수많은 의자를 담아냅니다. 다른 모양과 다른 목적과 다른 시점과 다른 가치와 다른 사연과 다른 해석을 추적합니다. 의자를 쓰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자가 놓인 다양한 공간들과, 의자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들과, 의자에 부여하는 다양한 견해..

폭주하는 자기애 _ 필름시대사랑, 장률 감독

# 0. 확실히 해이해진 요즘입니다. 며칠 연이어 편하게 떠먹여 주는 영화들만 골라봤다 싶죠. 조수석에 앉아 감독이 직접 말하는 대화만 따라가면 되는 . 타란티노 옆에서 미녀의 발가락이나 빨면 되는 . 세상 친절한 옴니버스 음식 영화 까지. 이쯤되면 슬슬 스스로의 기강을 잡을 때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리스트에 묵혀뒀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겠군요. '장률' 감독, 『필름시대사랑 :: Love and...』입니다. # 1. 제목부터 피곤합니다. 각기 따로 노는 어휘뿐 아니라 특히 혼란스러운 건 조사助詞가 없기 때문이겠죠. 필름 시대의 사랑인 건지, 필름과 시대와 사랑인 건지 아니면 필름으로 담은 시대적 사랑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요. 영화가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이 직접 내건 제목을 만나게..

Film/Drama 2021.11.14

소녀는 엄마는 친구 _ 좋은날, 황슬기 감독

# 0. 단편 옴니버스 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황슬기' 감독, 『좋은날 :: A Good Day』입니다. # 1. 진수성찬입니다. 이전 두 편의 음식과는 결이 많이 다르군요. 장소도 휴양지에 있을 것만 같은 호젓한 한정식집입니다. 네 명의 여사님들이 등장합니다. 진한 사투리를 쓰고 있습니다. 흔히 그 나이대 여자들이 모여 나눌 법한 이야기와, 생길 수도 있을 법한 갈등이 전개됩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발견되는 키워드는 친구와 엄마입니다. 친구는 상황이 성립되기 위한 관계를 만들고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돕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감독은 엄마의 정체성을 진수성찬으로 정의합니다. 풍요롭고 화려하고 든든하지만, 때론 지루하고 까다로우며 불편하기도 합니다. # 2. 서울입니다. 유독 티격태격하던..

Film/Drama 2021.11.10

올해의 단편 _ 맛있는 엔딩, 정소영 감독

# 0. 이번 옴니버스 너무 좋은데요? 단편 옴니버스 두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정소영' 감독, 『맛있는 엔딩 :: Tasty Ending』입니다. # 1. 무수히 많은 신발과 오브젝트는 누적된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특유의 물 빠진 색감과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깊은 한숨이 인물과 공간의 수분을 제거합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대사는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물건을 챙기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손길에 과격하면서도 처연한 정서가 엿보입니다. 서랍장에서 상자를 꺼냅니다. 상자 속에서 다이어리를 꺼냅니다. 1000일. 3년 여가 넘는 긴 시간을 만났다는 것보다, 1000일 이후론 세지도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시콜콜한 잘잘못에 대한 작품이 아닙니다. 여자의 이별은 어떤 사연 어떤 핑계를 댄다 하더라도 결국..

Film/Romance 2021.11.08

숙주와 라임. 고수는 빼고 _ 나이트 크루징, 김정인 감독

# 0. 단편 옴니버스 의 첫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김정인' 감독, 『나이트 크루징 :: Night Cruising』입니다. # 1. 오르막길의 뒷모습. 누군가를 부축하는. 지나는 차량에 가려진. 물리적으로 홀로 남겨진. 사회적으로 홀로 낙오된. 주인공 '송이'에 대한 감독의 소개입니다. 줄지은 건물들 앞 대로를 가로지르는 차량들과, 언제 밥이나 먹자는 형식적인 인사는 '김정인' 감독의 도시인이죠. 두리번거리는 송이는 미로 같은 골목길이라는 중간지대를 지나 초현실적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차근차근 진행된 공간 변화로 점층 된 기대감은 작은 트럭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 연결되고, 이내 한 그릇의 음식 위에 강하게 집중됩니다. 높은 밀도의 기대감에 부응하듯, 감독은 최대한 가까..

Film/Drama 2021.11.06

완만한 하강곡선 _ 웰다잉, 오누리 감독

# 0. 야, 야. 있잖아. 어떤 남자가 자살을 하려는데 딱 죽기 직전 그때! 하필 똑같이 죽으러 온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거야. 어때?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오누리' 감독, 『웰다잉 :: Well dying』입니다. # 1. 생각해봐. 모든 걸 포기하고 유서까지 써 놓고 낭떠러지를 뛰어내리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하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야. 죽음은 끝이잖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시작이고. 끝과 시작의 중첩. 뭔가 그림 나오지. 벼랑 끝에 선 사람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거침없는 위로. 미련도 뭣도 없는 순간에 선 사람들의 홀가분한 진심. 그런 진심들이 예기치 않게 쌓아나가는 연약하지만 생동감 있는 생生의 이유들과, 그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감동. 뭐 이런 류의 주제의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Film/Drama 202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