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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초록빛 하루 _ 반디, 최희서 감독

그냥_ 2022. 1.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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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인내 끝에 숨어있음을 깨닫는 초록빛 하루

 

 

 

 

 

 

 

 

'최희서' 감독,

『반디』입니다.

 

 

 

 

 

# 1.

 

공들여 담아낸 반딧불을 연탄불에 연결합니다. '소영'이 연탄불에 데이는 장면은 반딧불에 데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덴다는 것은 고통이자 두려움입니다. 몸을 사리는 이유는 임신, 지키고자 하는 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라지는 것에 데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군요.

 

사실 영화는 내내 '숨어있음'을 주인공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말하는 반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말하는 아들도 집 안에 숨어 있습니다. 삭막하기만 한 서울의 아파트 단지 뒤엔 푸르른 녹음이 숨어 있습니다. 딸은 아빠가 아빠의 방 곳곳에 숨어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딸의 상처와 성장 역시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 분명 숨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종이비행기에 숨겨뒀을 뿐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슬퍼하는 사이 숨겨진 아이는 숨겨진 아빠와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숨겨진 아빠의 기억들과 선명히 대화하고 있었죠. 잠든 딸에게 다가온 엄마가 "혼자 잘 놀고 있었네."라 말하는 장면은, 숨겨진 남편을 발견하지 못하는 아내와 숨겨진 아빠를 느끼는 딸 사이의 간극을 명징하게 대조합니다.

 

 

 

 

 

 

# 2.

 

영화 초반 원석의 입을 빌린 '인내심'이란 키워드는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숨어있음'이란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인내한 순간 비로소 깨닫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주변을 가득 메운 무수히 많은 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영이 이를 깨닫는 데에는 해가 저물 때까지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익는 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두툼한 고기라 하더라도 열심히 굽다 보면 언젠간 맛있게 익어갈 테고, 그를 위해선 잠자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내죠. 영화 <반디>는 아이가 태권도복과 헤드폰과 침묵과 종이비행기라는 꺼풀을 하나씩 벗어가는 동안, 이를 한 발짝 느린 걸음으로 따라가는 엄마의 성장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인내죠.

 

 

 

 

 

 

# 3.

 

녹음에 들어선 딸은 자유롭게 내달립니다. 조용히 반디를 찾던 딸은 아빠의 망원경으로 엄마를 발견합니다. 딸에게 있어 아름다운 엄마의 옆모습과 엄마의 편지와 엄마의 마음은, 할머니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 뒤에 숨겨진 반딧불이로 기억될 겁니다.

 

딸의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의 얼굴과 딸의 얼굴에서 남편의 얼굴을 발견하는 클라이맥스는 크나큰 성장입니다. 인물의 경계는 공유하는 진심 앞에 무의미합니다. 엄마가 된 순간 고맙다 안아주는 남편처럼, 숨어있는 아빠의 존재를 발견하자 대견하다는 듯 딸이 안아 줍니다. 모녀는 끝내 반디를 발견하지 못하지만 반디가 숨어 있는 초록빛 녹음은 두 사람의 주변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디를 발견해 눈앞에 증명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사람도 동물도 건물도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어, 아니 숨을 테지만 그들의 추억은 흔적으로 남아 푸르른 녹음처럼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을 거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세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했던 소금구이집으로 돌아갑니다. 순환적이죠. 영화의 런타임을 가득 채운 그날의 하루는 아빠가 오래전 회상하던 반딧불과 같습니다. 소금구이집 역시 언젠가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낮의 '소영'과 달리 밤의 '소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을 뿐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녀에게 소금구이집은 또 다른 반디가 될 겁니다. 오프닝에서 손에 든 반딧불이를 연탄불에 연결한 이유입니다. 딸의 존재와 삶의 모든 것들은 소영과 원석의 반디가 될 겁니다. 딸의 이름이 반디인 이유입니다.

 

 

 

 

 

 

# 4.

 

서울 아파트라는 공간은 메시지와 관객의 거리를 좁힙니다. 숨어 있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뜻이죠. 단순한 드라마와 멜로 속 가족의 상실과 극복을 넘어, 관객 저마다 사라졌다 생각하고 있었을 숨겨진 무언가를 편안하게 회상하도록 합니다. 지금은 어디 있을지 모를 장난감, 친구, 학교, 동네, 이웃, 과자, 골목, 놀이터, 날씨, 짝사랑, 첫사랑 등등은 모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반디입니다. 작품의 깊이는 '숲을 아파트 단지 뒤에 놓겠다.'라는 사소해 보이는 아이디어 하나에도 이렇게나 손쉽게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 정갈합니다. 감독이 직접 열연한 만큼 감정적인 작품입니다만 그보다 더 치밀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정서적인 목적의 허무한 연출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논리적인 작위적 연출도 없습니다. 소담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호흡을 비롯해 전반적인 균형이 뛰어납니다. 정서와 메시지를 놓고 감독과 한 글자 한 글자 대화하고 있다는 감각이 탁월합니다. 이야기를 넓게 펼쳐놓을 공간이 있었더라면 어떤 영화를 들려줄지 기대가 될 정도군요. 감독 최희서가 들려줄 장편 영화를 기다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희서 감독, <반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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