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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근사한 전개, 이상한 결말 _ 병(病), 이우동 감독

그냥_ 2021. 12. 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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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선입견 [先入見] (명사)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마음속에 굳어진 견해.

 

 

 

 

 

 

 

 

'이우동' 감독,

병(病) :: Sick』입니다.

 

 

 

 

 

# 1.

 

선입견은 제법 경제적입니다. 누적된 기억이 만든 직관은 시행착오의 위험을 줄여주죠. 섣부른 예단이 예외적 가능성을 차단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나 논리 검증이 없던 문명 이전에서부터 선입견은 효과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되어 주었음에 분명합니다.

 

또한 필연적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발전사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미지의 영역으로의 탐험과도 같으니까요. 거창하게 역사 거론하며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영화 속 90년 대 에이즈에 당황하는 병원 직원들을 비웃기에는 2020년 코로나 앞에 보이고 있는 우리의 무기력함이 더욱 처참하죠. 심지어 지금 아무리 오답노트를 쓰며 선입견을 반성한다 한들, 다음에 이어질 새로운 위기 앞에 인류는 또다시 무기력할 겁니다.

 

경제적이고 필연적임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입견의 대상이 '사람'이 되는 순간 예기치 않은 '정서적 비용'을 함께 지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상한 것 '같은' 포도는 버려도 되지만, 문제인 것 '같은' 사람은 처분할 수 없으니까요. 대상이 사람이 되는 순간, 작동은 이성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비용을 정서적으로 치르게 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올바름에 대한 판단을 방해하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을 야기하게 됩니다.

 

 

 

 

 

 

# 2.

 

 

선입견을 강요하는 무지 앞에

인간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주인공 '우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모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뒤엉킨 옷가지 속에 양말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발아래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디뎌 아파하는 사람이죠. '재구'에게 담배가 더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난리를 칩니다. 에이즈 환자는 폐병 환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구요, 재구의 설명을 들어도 에이즈가 어떤 병인지는 여전히 잘 모릅니다.

 

차량 조수석에 앉아 있는 동안만 하더라도 자신이 아이와 어떤 하루를 겪게 될지 몰랐을 겁니다. 아이와의 첫만남 역시 뒤에서 다가오는 줄 몰라 화들짝 놀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버스가 오지 않는 줄도 모르고 정거장에 앉아 멍청히 기다립니다. 뒤 따르던 아이가 다리에서 미끄러진 것도, 아이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도, 선입견이 하반신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짜장면을 먹을 때만 하더라도. 우연히 만난 저 아이가 심수봉의 노랫말처럼 '짜장면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되리라는 건 꿈에도 몰랐을 테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식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식과 재구 모두 치열하게 건실하게 가족의 삶을 부양하는 가장입니다. 안타까운 사고와 무관하게 '태분'을 위해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했죠. 양심이란 내가 안전할 수 있는 선에서 지켜지는 것이라는 재구의 말에는 분명 그럴만한 명분과 논리가 있습니다. 두 주인공이 최선을 다했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무지에의 공포와 무기력함이 설득될 수 있었습니다.

 

 

 

 

 

 

# 3.

 

이런 류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선입견으로 유혹하는 무지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당연한 질문 앞에 영화는 상당히 모호하고 게으른 포지션을 점합니다. 물론 답을 낼 수 없는 영화라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답을 낼 수 없는 영화라거나 답을 관객에게 맡기는 영화라거나 하다못해 답을 내놓을 능력이 없다면 적어도 무례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제법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불쾌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감독의 의도가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요.

붙잡으려 할수록 돌아오는 건 냉소밖에 없으니까요.

 

 

영화의 결말은 소녀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을 공유할 관객을 조롱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관객을 조롱해선 안된다는 식의 유치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까짓 거 조롱할 수도 있죠. 대신 관객도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이유를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 재구의 말에 분노하던 우식의 자기모순을 폭로했다면 대답도 함께 내놓아야 합니다. 감독은 우식이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건가요. 우식의 마지막 행동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 4.

 

개인의 한계와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마지막 감정씬에서 우식과 관객의 거리를 벌렸어야 합니다. 정면으로 큼지막하게 잡을 게 아니라 카메라를 멀찌감치 떨어트려 뒀어야 하죠. 울다 말고 아이를 들쳐 매는 모습을 통째로 '우화'처럼 보이도록 했더라면, 관객은 우식과 재구의 중간 어딘가에 서서 선입견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반대로 우식의 눈물을 통해 정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거리는 좁히되 괴상한 반전을 잘라냈어야 합니다. 우식의 눈물을 통해 관객 스스로의 선입견을 점검하는 것을 여운으로 가져나갈 수 있도록 작품을 페이드 아웃시켰어야 합니다. 아예 우식의 훌쩍이는 소리와 당황하는 식당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동안 천진난만하게 짜장면을 먹는 딸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는 편도 좋았을 테죠.

 

지금의 방식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계단을 내려오며 분노하던 우식과, 원장실 앞에서 고뇌하던 우식과, 짜장면 먹으며 울먹이는 우식에 복합적으로 조응하던 관객은, 마지막 아이를 들쳐 매는 순간과 함께 "너네도 그래 봐야 똑같은 놈들이다"라는 질타를 당하게 됩니다. 일방적으로 말이죠.

 

 

 

 

 

 

# 5.

 

결말의 아쉬움과 별개로 기술적으로 상당히 능숙한 작품이기는 합니다. 특히 전개하는 동안의 시각적 연출은 노고를 가늠케 하기 충분합니다. 90년대 시골 풍경 묘사는 완성도가 높습니다. 비단 미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어떤 공간을 어떻게 담아야 효과적인지 잘 아는 사람의 작품입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시간과 공간에 편안하게 안착하도록 돕는 소소한 디테일도 훌륭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이 근사하지만, 애벌빨래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그린 공간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연기도 좋습니다. 아역배우 '임은서'는 특별히 좋은 연기를 합니다. 혼자 생활을 꾸려야 하는 아이의 '생존을 위해 훈련된 밝은 모습'과 '숨길 수 없는 본연의 실망감'을 균형 있게 묘사합니다. 감독 겸 배우 '이우동'의 연기는 생동감이 좋습니다. 재국 역의 '이재혁'은 디테일을 잘 표현합니다. 두 주인공의 균형은 곧 작품의 균형이 됩니다. 캐릭터를 두텁게 쌓는 매력은 배우 출신 감독 작품의 큰 장점인데요. 이 영화 역시 그러합니다.

 

# 6.

 

정리하자면 사려깊은 아이템과 도발적인 오프닝, 안정적인 전개, 풍부한 묘사를 이어가다 마지막 몇 초를 망치며 미끄러진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일련의 결말은, 연출하는 자신과 연기하는 자신에 다소 도취된 것은 아니냐는 억울한 평을 듣는다 하더라도 크게 할 말이 없어 보이는 군요.

 

끝으로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배경을 '진한 사투리를 쓰는 지역민'으로 설정하는 건 스스로 모순적이지 않나라는 점입니다.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기계적인 지적을 하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선입견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적어도 그 선입견을 연결하는 대상에 대한 선입견은 반드시 점검했어야 하지 않나라는 것이죠. 막말로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오해되는 태분무식한 것으로 오해되는 촌사람은 뭐가 그렇게 다른 걸까요. '이우동' 감독, <병(病)>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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