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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고슴도치 딜레마 _ 각자의 입장, 강정인 감독

그냥_ 2022. 2.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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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거리 조절이 서툰 고슴도치들의 연약한 속살

 

 

 

 

 

 

 

 

'강정인' 감독,

『각자의 입장 :: Each』입니다.

 

 

 

 

 

# 1.

 

오프닝입니다. 전화를 하며 길을 걷습니다. 짜증이 잔뜩 묻어납니다. 길 가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힙니다. 더욱 짜증스러운 표정입니다. 그녀는 무언가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보상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합니다. 피해의식도 발견되고 손해보지 않겠다는 보상심리도 발견됩니다. 감독은 그녀를 퇴근길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에 숨겨 넣습니다. 특별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감독 '강정인'의 현대인입니다.

 

# 2.

 

네 명의 주인공

란희, 싱싱, 기 감독, 선준입니다.

 

인물들은 얽히고설키는 우위와 열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⑴ 예술적 재능, ⑵ 경제력, ⑶ 도덕성, ⑷ 갑을 관계 등이 그것이죠. 예술적 재능은 란희가 가장 떨어집니다. 영화판에서 실패하고 도주하고 이탈한 사람이죠. 싱싱과 선준은 아직 경쟁에서 버티는 가운데 기 감독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나름 재능이 있습니다. 경제력은 기 감독의 콤플렉스입니다. 일 하고 돈 버는 배우나 작가에 비해 투자처를 얻지 못하면 사재를 털 수밖에 없는 독립 영화감독은 스스로를 '그지'라 폄하하죠. 선준은 민망하게나마 웹소설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싱싱은 부잣집 딸, 란희는 안정적 수입원을 가진 회사원입니다.

 

도덕성은 선준의 약점입니다. 란희의 차를 더럽힌 데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죠. 그런 란희는 다시 싱싱에게 영화를 파투 낸 데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고, 싱싱은 작품마다 남자를 만난 것에 대해 기 감독에게 변명합니다. 도덕성의 기준에선 기 감독이 가장 당당한 사람이군요. 갑을 관계에서는 싱싱이 절대적 열위입니다. 돌아갈 곳이 있는 란희와 어쨌든 사람을 쓸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기 감독, 자기 일을 하는 선준과 달리 싱싱은 쓰임을 당하는 입장이죠. 그녀가 보이는 사교성과 남성편력 등은 부잣집 딸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싶은 자신의 존재 증명과, 일방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불안감을 동시에 투영합니다.

 

 

 

 

 

 

# 3.

 

각자는 스스로의 열위는 과대평가하고 우위는 평가절하합니다. 란희가 스스로를 '영화판에서 도망친 비겁한 회사원 나부랭이'로 평가하는 동안, 기 감독은 스스로를 '상 쪼가리 받아 들어도 실속 하나 없는 그지 새끼'로 평가하는 식이죠. 무너진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겉으로는 각자의 열위를 은폐하고 우위를 과시합니다. 그렇게 과시된 우위는 테이블 건너편 상대가 내면에 숨겨둔 '과대평가된 열위'를 맹렬히 공격하게 되고, 일련의 연쇄적으로 주고받는 갈등과 가속되는 파열을 관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

 

다만, 여기까지는 세팅에 불과합니다. 캐릭터 몇 개 만들어 술판에 던져놓고 카메라로 관음하기만 하는 유사한 방법론의 작품들이 그저 그런 평을 듣는 건, 설정과 관계와 상황이라는 세팅을 전시하는 데서 그치기 때문입니다. 세팅을 넘어 메시지를 가진 유의미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적절한 조작'이 필요하죠.

 

감독이 선택한 조작은 '기 감독의 콤플렉스만 숨겨보면 어떨까?'라는 것입니다. 여타 인물들의 우위와 열위를 충분히 공개하되 기 감독의 열위만 숨기면 관객은 이 구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지켜보자 제안합니다.

 

 

 

 

 

 

# 5.

 

자연스레 관객은 기 감독을 술자리를 망가뜨리는 괴물로 평가하게 되는데요. 시종일관 깐족대던 기 감독의 고백을 듣고 나면 이전까지의 가혹한 평가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묘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돈에 쪼들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기 감독의 절규는, 전체적으로 대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흑백의 작품에서도 특히 대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연출되는데요.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뚜렷한 목적하에 통제하고 있음을 엿보게 하죠.

 

만약 영화의 시작이 돈에 쪼들린 상황, 이를테면 "상 주면 뭐해! 상금도 쥐뿔 없고 그 마저도 아직 안 나오는데... 이번 달 생활비는 어쩌냐..."라는 식의 푸념으로 술자리에 들어서는 기 감독 아니 자연인 '기혜덕'이었다면 관객은 영화를 전혀 다르게 이해했을 겁니다. 맞은편에 앉은 란희가 회사원의 안정적인 수입과 부차적인 보너스, 사대보험 등의 복지나 재테크를 거들먹거렸다면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을 전혀 달리 평가했을 거라 상상해 보는 건 썩 유쾌하죠.

 

# 6.

 

결국 인간에 대한 평가란 편협하고 상대적입니다. 오프닝에서 란희는 길 걷는 사람이 자신의 어깨를 치고 갔노라 승질을 냈지만, 상대 입장에선 전화하느라 정신 팔린 란희가 자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것에 불과합니다.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현대인들의 폭력성과 편엽함의 이면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열등감과 이를 숨기기 위한 왜곡된 과시욕이 담겨 있다는 진단은 흥미롭습니다. 삭막하고 갈등이 가득한 고슴도치들의 사회이지만, 서로를 가시로 찌르는 동안 그 안엔 상처 입은 연약한 속살이 숨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랄까요. 

 

 

 

 

 

 

# 7.

 

연기 이야기를 짧게 해 볼까요.

 

기 감독의 '권오성'은 개 띠껍습니다. 너무 띠꺼워서 단편 영화임에도 끝까지 보기 버거울 정도로 빡치게 만든다는 것을 단점이라 해야 할지 장점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농담입니다.) 선준의 '박성준'은 역시 뛰어난 연기자입니다. 아슬아슬하던 균형에 균열을 내는 과격한 롤임에도 상황에 녹아드는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는 점은 과연 주목할만합니다.

 

란희의 '김해나'는 개성적인 세 빌런의 Action을 받아내는 Reaction에 치중하며 관객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캐릭터답게 안정성에 집중합니다. 다른 세 배우의 호연에는 주인공에게 일정 부분 빚이 있다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싱싱의 '심은우'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을 불어넣는 재능을 눈여겨보던 배우였는데요. 논란이 아쉽군요. 논란의 성격이 워낙 부정적이라 향후 행보를 관객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뭐, 본인이 알아서 하겠죠.

 

# 8.

 

저예산 단편 영화로 이 정도의 볼륨을 만들었다면 흠잡을 데가 없다는 생각입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엔딩의 음악만큼은 별로라 해야겠습니다. 기 감독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며 여운을 느낄 타이밍에 갑자기 일렉 기타 사운드가 과격하게 귀를 때리는 데 불쾌하군요. 차라리 각 인물이 각자의 공간에 서있는 동안의 현장음을 정직하게 들려주며 페이드 아웃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네요. '강정인' 감독, <각자의 입장>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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