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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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70

전봇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 _ 돌아오는 길엔, 강동완 감독

# 0.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처음엔 세편을 묶어 하나의 글로 써볼까 했습니다만 '일상을 벗어나 관계와 삶을 돌아본다'는 느슨한 테마만 공유할 뿐 각 작품이 추구하는 바와 결이 전혀 다르다 느꼈기에 따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나눠 쓰게 되었네요. '강동완' 감독, 『돌아오는 길엔 :: On the Way Back』입니다. # 1. 앞만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입니다. 네 사람은 영화 시작부터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어느 누구의 것 하나 원만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가족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외면하는 가운데, 자신의 말이 전달되지 않는 것에는 또 상처 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키워드는 단절입니다. 캠핑장에 도착한 ..

Film/Drama 2021.01.12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_ 차인표, 김동규 감독

# 0. 자학성 풍자개그와 병맛 코미디를 동시에 잡고자 했습니다만 풍자와 코미디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남은 건 자학하는 병X 뿐이란 의미죠. 저런... '김동규' 감독, 『차인표 :: What Happened to Mr. Cha?』입니다. # 1. 애초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은 아이템입니다. 스스로를 놀림감으로 삼는 풍자물을 만들려면 풍자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의 높은 리얼리티가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데 리얼리티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병맛 코미디를 펼치기엔 되려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병맛 코미디에 무리하게 포커싱을 했다간 자학개그들에 페이소스가 상실되며 풍자가 아닌 가상의 바보연기로 전락하고 말 겁니다. 이 영화가 정확히 그러하죠. 굳이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면 병맛 코미디 보다는 풍..

Film/Comedy 2021.01.08

유망주는 유망주 ⅱ _ 콜, 이충현 감독

유망주는 유망주 ⅰ _ 콜, 이충현 감독 # 0. 연출이 능숙합니다. 포인트마다 연출자의 의도와 대화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감각이 전달됩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이 연상되지 않을 수는 morgosound.tistory.com # 13. 후반부 아쉬운 서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구요. '영숙'을 거론한 김에 배우와 배역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단편 영화 으로 주목받았던 '이충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이목이 집중되긴 했습니다만. 영화에서 활용하는 공간 연출과,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 논란의 결말부와 같이 감독의 존재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이런 류의 영화는 늘 배우의 영화, 특히 '악역'의 영화가 됩니다. 이 작품에선 '전종서'죠..

Film/Thriller 2021.01.07

유망주는 유망주 ⅰ _ 콜, 이충현 감독

# 0. 연출이 능숙합니다. 포인트마다 연출자의 의도와 대화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감각이 전달됩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이 연상되지 않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아이템의 구성과 테마의 차별점 역시 충분히 참신해 보입니다.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음악도 불필요한 이물감 없이 작품에 잘 녹아들고 있으며 배우의 연기 또한 대부분 탁월합니다. 반면, 서사는 아이템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려냈다 할 수 있을 만큼 미려하지는 못합니다. 편의적인 전개 역시 다수 발견됩니다. 적지 않은 아이템들이 작품과 따로 놀고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줘야 할 결말은 다소 실망스러우며 쿠키 영상은 그 실망스러운 결말만큼도 못합니다. 감각은 살아 있지만 보고 싶지 않은 ..

Film/Thriller 2021.01.06

몽마르트 파파'즈 썬 _ 몽마르트 파파, 민병우 감독

# 0. 아버지는 소싯적 낚시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보통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면 가정생활이 순탄치 않다고들 합니다만 다행스럽게도 저희 어머니는 텐트 안에서 과일 도시락을 까먹으며 라디오를 듣거나 선선한 바람 맞으며 천천히 바닷가 거니는 걸 즐기시는 분이셨기에 갈등은 없었죠. 유별난 아버지 덕분에 저의 유년기를 담은 사진과 영상들은 대부분 멀리 수평선과 방파제, 부둣가에 떠내려온 불가사리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었습니다.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도 가족들이 모일 때면 가끔 찾아보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희 집 홈비디오를 생판 남인 여러분이 보셔도 재미있을까요?! '민병우' 감독, 『몽마르트 파파 :: Montmartre de Papa』입니다. # 1. 가장으로서 ..

의식의 흐름 _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감독

# 0. 타고나길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만 수능은 유난히도 거하게 조졌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매년 시월 즈음해서 슬럼프에 허덕이는 빌어먹을 바이오리듬의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는 무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여하튼 그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때나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나 연중에 휴일을 거의 가지지 않다가 시월에 몰아 쓰는 게 버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몽땅 집안에서 태웠습니다만 작년엔 제주를 다녀왔었더랬죠. 자전거를 타고 일주를 했었는데 그거 해보겠답시고 여행도 전부터 운동을 미리 하느라 똥줄 탔던 기억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그때 당시 한창 다니던 피트니스 클럽이 최근에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빵집이 생겼더라구요. 쓱 스쳐 지나가는 길에 소시..

Film/Comedy 2020.11.01

시인이 만든 영화 _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방성준 감독

# 0. 엄마 정숙은 요절한 아들 도원의 언덕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릅니다. 언젠가 아들이 올랐을 언덕에 올라 아들이 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흘러가는 석양처럼 아들에 대한 기억도 아들이 지나온 시간도 아들을 그리워하는 동안의 슬픔도 그렇게 넘어서려 합니다. '방성준' 감독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 Passing over the Hill』입니다. # 1. 짧은 시 한 편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일전에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의 를 리뷰하며 화가가 만든 영화 같다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는 꼭 시인이 만든 영화 같다는 생각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엄마 정숙이 글을 배워서까지 아들 도원의 시집을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하며 아들을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Film/Drama 2020.10.10

캐스팅이 80% _ 시시콜콜한 이야기, 조용익 감독

# 0. 장르물의 성패는 대부분 감독의 역량에 의해 좌우되곤 합니다만, 단 하나. 로맨스물 만큼은 감독보다 배우의 개인기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 좋은 예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네요. '조용익' 감독, 『시시콜콜한 이야기 :: Trivial Matters』입니다. # 1. 분명 이 영화는 어설픕니다. 평범한 젊은 남녀가 썸을 타는 동안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을 다루는 영화인데 정작 두 주인공의 일상성과 균형이 모두 무너져 있거든요. # 2. '엄태구'의 '도환'은 찐따입니다. 오래 전의 내가 겹쳐 보이는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과 민망함이 전달되어야 할 보편적 캐릭터 표현 대신 나와 아무 상관없는 '도환'만의 찌찔함이 묘사됩니다. 인물을 둘러싼 곁가지 설정들 대부분 명확한 계획하에 배치되..

Film/Romance 2020.09.27

엉성 _ 어멍, 고훈 감독

# 0. 뭘 하고 싶은 영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암에 걸린 엄마가 등장하긴 합니다. 대립관계의 아들도 등장합니다. 제주 문화도 등장은 하죠. 하지만 평생 물질하며 가정을 건사한 제주 해녀의 생애를 진중하게 조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구요. 엄마와 아들의 갈등과 교감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를 만든 것도 아닙니다. 눈 딱 감고 화끈하게 제주 홍보물을 만든 것도 아니죠. '고훈' 감독, 『어멍 :: Eomung』입니다. # 1. 이 영화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숙자'뿐이죠. 나머지 모두는 그녀의 설정을 보강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아들 '율'은 한심해 보이기 위한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수집해 기워놓은 인물입니다. 이 인물의 인격과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가운데 마치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불효자와 같은 방식..

Film/Drama 2020.09.21

멀리 _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감독

# 0. 빨리 말고, 먼저 말고, 잘 말고, 그저 멀리. 멀리멀리. 지희 씨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감독,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 Free My Soul, Free My Song』입니다. # 1. 기타리스트 '김지희'씨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기타와 사랑에 빠진 스물넷의 소녀. '정성하'와 '앤디 맥키'를 동경하는 새내기 기타리스트. 아직은 겁도 많지만 엄마의 뒷모습을 마음으로 연주하는 멋진 딸. 늘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무대 위에서라면 강단 있게 곡을 완주하는 아티스트. 열 마디 말 대신 음악과 밝은 웃음으로 소통하는 그녀는 지적 장애인입니다. # 2. 쓸데없이 부자연스러운 비극이나 연출된 희극 없이 담담히 흘러가는 맛이 좋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소 느리기도 하고 때론..

Documentary/Art 2020.09.17

겉멋 올인 -2- _ #살아있다, 조일형 감독

이전글 : 겉멋 올인 -1- [#살아있다, 조일형 감독] # 9. 아기자기한 트랩과 북유럽 감성 자연주의 텐트를 뚝딱 만들어 재끼는 작고 귀엽지만 생존력은 만렙인 똘똘한 여캐 는 인간적으로 너무 식상한 것 아닐까요. 대체 왜 자기 집 거실 한복판에서, 썩어 나는 조명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켜 놓은 채, 담요를 둘둘 감아 만든 아동용 임시 텐트 안에서, 불편하게 대기를 타는 건지 1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무래도 감독님이 영화를 찍을 즈음해서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에 꽂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 한 방울이 아까워 날짜별로 마킹해 한 모금 한 모금 아껴 마셔야 하지만 화분에는 물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갬성충 유빈의 모습은, 감독이 자신이 지금 뭘 만들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Film/Horror 2020.09.10

겉멋 올인 -1- _ #살아있다, 조일형 감독

# 0. 한없이 어색한 디스코드 대화가 등장하는 순간. 좀비가 된 아이가 단아하게 걸어와 "엄마 어딨어"를 내뱉는 순간. 눈 앞에서 딸이 엄마를 물어뜯는 아비규환을 목격했음에도 우리의 주인공이 걸쇠 하나 걸지 않고 문을 열어재끼는 순간. 갑툭튀한 옆집 남자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억지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고 그 남자가 밑도 끝도 없이 화장실을 쓰겠다 말하는데 그걸 냉큼 받아주는 순간. 때 마침 세상 편리하게도 TV 앵커는 정확히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설명충을 자처하고. 배경 설명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옆집 남자가 각기춤을 선보이는 순간. '유아인'이 댄스 장인을 현관문을 향해 밀치자 마치 누가 손잡이를 돌려 잡기라도 한 듯 문이 쉽게 열리는 걸 목격하는 순간. 정확히 10분 만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

Film/Horror 2020.09.09

언더도그마 _ 헬로, 신후승 감독

# 0. "거, 여자화장실에서 여장쯤 할 수도 있지. 왜 난리들이야! 난 썩은 세상에 박해받는 소수자인데!!" '신후승' 감독, 『헬로 :: HELLO』입니다. # 1. 오랜만에 불쾌한 영화입니다. 이 6분짜리 짧은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단 하나 언더도그마 Underdogma입니다.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망상장애에, 피해자의 운명을 타고 난 자신은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 비해 절대적인 도덕적 우위를 가진다는 언더도그마를 뒤섞어 만든 영상물입니다. 화장실에 강림한 도덕성의 여포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자극적인 표현들로 인한 감정적 동요를 가라앉히고 찬찬히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 주인공 '태훈'을 제외하고선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설령 성적 다..

Film/Drama 2020.08.19

정의란 무엇인가 _ 오버 데어, 장민승 감독

# 0.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아시나요. 저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 책과 『완벽에 대한 반론』에, 왠지 제목이 비슷한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까지 한꺼번에 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세 권 모두 절반정도 읽다 덮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책장에 꽂아두면 제법 폼이 나는 책들이라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까운 친구들은 아니니까요. 두껍고 묵직한 덕에 북앤드로도 쏠쏠합니다. 하지만 이글에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의는 '센델' 교수의 Justice가 아닙니다. Definition이죠. 지금 낚시하는 거냐구요? 맞는데요? 너 이자식 이과냐구요? 그것도 맞는데요? '장민승' 감독, 『오버 데어 :: over there』입니다. # 1. 오..

Documentary/Art 2020.08.14

조진웅 쇼 _ 퍼펙트 맨, 용수 감독

# 0. 명확한 증거도 없이 당사자가 부정하는 상황에서 작품에 '표절'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게 그리 보기 좋은 모습 같진 않습니다만, 사실 여하와는 별개로 이 작품이 관객으로 하여금 기시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거겠죠. 굳이 '올리비에르 나카슈', '에릭 톨레다노' 감독의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조폭 코미디물과 JK 식 공장제 영화의 승리 공식에 대한 기시감을 너무 많이 불러일으킵니다. '용수' 감독, 『퍼펙트 맨 :: Man of Men』입니다. # 1. 늘 그렇습니다. 훌륭한 성취를 거둔 외화 두어 편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다행스럽게도 감독은 해당 작품을 일절 알지 못합니다. 어차피 외국에 팔 것도 아니니 ..

Film/Comedy 2020.08.05

드디어 보았노라 _ 무서운집, 양병간 감독

# 0. 대작이 올라왔네요.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죠. 뭐가 되었든 한 분야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작품들은 한 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양병간' 감독, 『무서운집 :: Scary House』입니다. # 1. 여타의 글들은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이나 주제의식 혹은 철학에 대한 생각, 이야기의 구성이나 표현의 방식 따위에 대한 제 개인적인 썰들을 풀어놓곤 했습니다만 이 작품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원테이크로 담아낸 홀로 남은 가정주부의 무료한 일상의 하이퍼 리얼리즘 '공포', '계단' 따위로 재해석된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의 고립감 '귀신'과 여사님 간의 역할 경계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함의 수차례 등장하는 베사메무초와 춤사위에 담긴 제의적 이미지의 의미 따위에 대해 되지도 ..

Film/Horror 2020.08.04

방트키 _ 라바 아일랜드 무비, 안병욱 감독

# 0. 국산 애니메이션 의 스핀오프 시리즈 의 극장판입니다만... '안병욱' 감독, 『라바 아일랜드 무비 :: The Larva Island Movie』입니다. # 1. 말로만 극장판이지 사실상 본편 에피소드들의 요약 편집본에 가깝습니다. 이미 를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지루할 수 있을 정도라 굳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좋다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죠. 물론 어차피 정주행 하신 분들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궁금해서라도 보실 테지만요. 주요 내용 대부분은 본편에서 통으로 가져오긴 합니다만, 그래도 말미에 아일랜드 이후 레드와 옐로우가 어디 정착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조금의 위안은 될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망망대해 한가운데 놓인 외딴섬이라 오리지널 시리즈 특유의 어두침침하고 꿉꿉하고 지..

Film/Animation 2020.07.31

어... 모르겠다 _ 사이좋게, 차지훈 감독

# 0. 포스터는 피에타Pietà 의 패러디로 보입니다. 흔히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끌어안고 슬피 우는 성모의 모습을 묘사한 기독교 예술의 테마 중 하나죠. 그런데... 피에타가 이 단편이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죠? '차지훈' 감독, 『사이좋게 :: Be nice to each other』입니다. # 1. 실사 영화에서는 '우연'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촬영하는 순간 감독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새가 한 마리 날아갈 수 있죠. 스탭이 가져온 소품 연필이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우연히 특정한 색깔일 수도 있구요. 경제적인 문제로 공간 섭외나 연출에 있어 대안이 없었을 수도 있고, 배역에 몰입한 배우가 내지른 즉흥적인 애드리브가 유야무야 영화에 쓰이기도 ..

Film/Animation 2020.07.29

스타일리스트의 매력 그리고 한계 _ 메기, 이옥섭 감독

# 0.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이옥섭' 감독, 『메기 :: Maggie』입니다. # 1. 교회의 십자가는 누군가의 바람에 의해 병원이 됩니다. 재개발지의 푸른 장막은 누군가의 사명감에 의해 해수욕장이 됩니다. 타인의 성기가 찍힌 X-ray는 누군가의 부끄러움에 의해 주인이 뒤바뀝니다. 병원 식구들의 병가는 누군가의 의심에 의해 섹스 스캔들을 면피하기 위한 꾀병이 됩니다. 펜던트의 사진은 누군가의 선입견에 의해 딸의 것으로 오해됩니다. 어린 소녀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의해 살인미수라는 오명을 쓰지만, 그녀 역시 친구가 아빠에게 떠밀려 건물에서 떨어진 것이라 근거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깎다 다쳤다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었지만 그의 배에서 나온 건 총알이었고, 사람을 믿어야 ..

Film/Comedy 2020.07.27

첫 타석 2루타 _ 미성년, 김윤석 감독

# 0. 강렬한 카리스마와 몰입도를 보여주는 '배우 김윤석'과는 대조적으로, '감독 김윤석'은 예술적 미감과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 듯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 긴 시간 동안 족발 들고 4885나 쫓아다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김윤석 감독, 『미성년 :: Another Child』입니다. # 1. 사람은 여섯. 아니, 일곱. '안영주', '김미희', '권주리', '김윤아', '권대원', '박서방'. 그리고 '못난이' 주요 인물 중 단 두명만이 미성년자이지만 일곱의 인격은 모두 각자 다른 이유에서 미숙합니다. 일방적인 가족의 해체와 폭력적인 재조립 과정 속에서 각 인물들은 자신의 미숙함을 외면하기도, 발견하기도, 인정하기도, 부정하기도, 변명하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치열한 정서적 교환 끝에 나름의..

Film/Drama 2020.07.18

너무 단순한 은유는 직설만 못하다 _ 그림자 도둑, 김희예 감독

# 0. 너무 단순한 은유는 직설만 못하다 라는 제가 방금 대충 만든 명제의 훌륭한 예라 할 법합니다. '김희예' 감독, 『그림자 도둑 :: Shadow Thief』입니다. # 1. '화창한 날씨, 화려한 마천루' 아래 행복한 '인형'이 등장하는 'TV 채용 광고'와, 그걸 보고 있는 어두컴컴하고 삭막한 '지하철' 속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비슷한 외모,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들은 외향과 대조되는 각기 다른 모양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옮겨지죠. 면접장에서 주인공은 열심히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채용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자의 모양에 의해 결정되게 됩니다. '규격화된 모양'에 맞춰 그림자를 억지로 '늘리고 조으고' 묶는 동안 주인공은 자신의 '한계'와 '..

Film/Animation 2020.07.13

그렇게 말랑하진 않았어 _ 무정, 정민지 / 조서정 / 최선민 / 최효정 감독

# 0. 저도 이별이란 걸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진짠데요. 아, 안 믿네. '정민지', '조서정', '최선민', '최효정' 감독, 『무정 :: Unfeeling 』입니다. # 1.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남자가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과 그 물건들에 겹쳐진 미련을 담아 버려 내는 순간을 그린 4분짜리 짧은 단편입니다. 만, 글쎄요. 영화를 본 후의 감상을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감흥은 없더군요. 아이템과 그림체만 존재할 뿐 감독이 포착한 세밀한 정서는 사실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별 직후의 감수성이라는 게 영화가 그리는 것처럼 그렇게 말랑말랑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 2. 오랜 연애 후 이별을 하게 되면 "온 세상이 너였다"라는 말이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대단히 노골적인 직설이었..

Film/Romance 2020.07.04

몰라, 알 수가 없어 _ 문영, 김소연 감독

# 0. 일단 드라마는 절대 아니구요. 차라리 미스터리 영화라고 보는 게 정확해 보입니다. 중간중간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만한 훈훈한 코미디 장면들도 몇 등장은 합니다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물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너무너무너무 많기 때문이죠. '김소연' 감독, 『문영 :: Moon young』입니다. # 1. 첫 번째 미스터리. 감독은 아는 욕이 씨발년아 밖에 없는 것인가? 두 번째 미스터리. '문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지, 못 듣는 건지,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를 감독은 대체 언제쯤 명확히 알려줄 생각이었을까? 세 번째 미스터리. 남자 친구에게 차이고 미친 듯이 절규하며 소리 지르던 모습을 생판 처음 보는 애한테 몰카로까지 찍힌..

Film/Drama 2020.06.25

B+ _ 기묘한 가족, 이민재 감독

# 0. '에드라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 '루벤 플레셔' 감독의 『좀비랜드』같은 클리셰를 비트는 호러 코미디에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스러운 캐릭터 구성과 '신정원' 감독의 『시실리 2km』식 코리안 컨츄리 병맛 코미디를 적당히 섞어 만든 영화입니다. 호러물의 클리셰를 비트는 부조리 코미디라는 게 특별히 독창적인 장르는 아닙니다만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범죄 스릴러 아니면 최루성 드라마 천지인 한국의 영화판에서라면 이런 이색적인 시도. 그 자체로 감사할 수 밖에 없죠. '이민재' 감독, 『기묘한 가족 :: THE ODD FAMILY : ZOMBIE ON SALE』입니다. # 1. 줄거리를 적당히 간추린다는 게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만 난이도를 떠나 줄거리를 말씀드리는 것 자..

Film/Comedy 2020.06.23

Σ(゚Д゚;) _ (OO), 오서로 감독

# 0. ┌──────┓ │ (OO) ≈≈ │ └──────┛ Σ(゚Д゚;) Σ(゚Д゚;) Σ(゚Д゚;) Σ(゚Д゚;) '오서로' 감독, 『(OO)』입니다. # 1. 말초적 감각 하나조차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언어'에게 보내는 '애니메이션'의 조롱입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콧가를 수차례 매만지게 만드는 온갖 느낌들과 그 순간 마다마다의 개인적인 기억들이 주마등이 되어 미친 듯한 템포로 관객 머릿속을 내달립니다. 강렬하면서 동시에 치밀히 배합된 색감과, 오브젝트들의 드라마틱한 움직임, 상태에 따라 섬세하게 구분된 표현의 질감과 음향의 활용이 컷마다의 고유한 감각과 대단한 밀착감으로 구현됩니다. 절대적 감각과, 상대적 느낌과, 주관적 기분을 쉴 새 없이 넘나 듭니다. 눈 깜짝..

Film/Animation 2020.06.20

천우희느님 _ 출중한 여자, 윤성호 / 박현진 / 백승빈 / 전효정 감독

# 0. 삶의 여러 단면을 논하는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청년 실업의 자해적 고통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2시간 30분짜리 막장 영화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 냉전 시대의 아픔과 인간성의 저력을 관조하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트』. 과학적 메시지를 다루는 방법론에 관한 고찰 『빙하를 따라서』까지. 최근 빈약한 지적 내구력의 한계를 시험케 하는 어렵고 복잡한 영화들을 연이어본 결과 결국 방전되고 말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달래줄 뇌의 전원을 내리고 볼 수 있는. 아니면 말고식 가벼운 웹드라마나 하나 찾아봐야겠네요. '윤성호', '박현진', '백승빈', '전효정' 감독, 『출중한 여자 :: Prominent Woman』입니다. # 1. 웹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단단한 ..

Series/Romance 2020.06.19

누군가의 한숨 _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장나리 감독

# 0. ... 야, 이 한심한 인간아 '장나리' 감독,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 I'm Sorry I'm Pathetic』입니다. # 1. 굽은 머리보다 더 움츠려 든 연필 소리. 심장을 멈춰 세우 듯 찢어지는 문열림. 등으로 보는 일그러진 표정. 날아와 박히는 경멸의 시선. 죄스러운 배고픔. 숨어드는 걸음. 매몰 찬 빈 그릇과, 공기마저 얼릴 듯 무거운 팔짱. 절벽이 되어버린 밥상머리 끝에서 씹어 삼키는 차고 넘칠듯한 질책들. 지난한 숙제를 마치기라도 한 듯 한심한 한숨과, 비루하게 추락하는 한심한 미래와, 그런 한심한 나에게 다시 한심한 인간이라 질책하는 비겁한 나. 2분. 하루에 720번, 일 년이면 262800번 반복되고 있을 누군가의 2분. 구겨진 듯 움츠려 바들바들 떨고 있을 수많은 누군..

Film/Animation 2020.06.14

낙선 ⅱ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낙선 ⅰ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 0. 정치인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풍자극이라는 거죠. 자고로 풍자극이라 함은 1.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권력층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2. 비꼼에 위트와 내 morgosound.tistory.com # 8. 앞선 글에서 거짓말이라는 아이템을 규정하고 변주해 만들어냈어야 할 내러티브가 통채로 붕괴되어 있다 말씀드렸는데요. 일관성의 근거가 될 플롯이 붕괴했다면 이야기로서의 짜임새와 연출의 완성도는 보나 마나겠죠. 얼마나 개떡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았을지 짚어볼까요? # 9. 저주에 걸린 첫날 라미란은 남편과의 아침 식사에서 자신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차량을 통해 이동하며 다시금 확인까지 했죠. 당연히 스케줄을 ..

Film/Comedy 2020.06.09

낙선 ⅰ _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 0. 정치인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풍자극이라는 거죠. 자고로 풍자극이라 함은 1.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권력층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 2. 비꼼에 위트와 내용이 있어야 하며 3. 매 순간마다 능청스러운 탈룰라각을 잡아놔야 합니다. 4.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디테일의 참신함과 5. 희극적 결말에 도달하는 동안의 페이소스까지 지켜진다면 더욱 훌륭하겠죠. 놀림감이 된 정치인들이 성질이 뻗혀 톰처럼 쫓아오는 동안 제리처럼 유유히 도망 다니는 감독의 재치로부터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치 풍자해 보겠답시고 관객 호응 유도나 하다 사라진 개콘 꼴이 되고 말겠죠. '장유정' 감독, 『정직한 후보 :: HONEST CAND..

Film/Comedy 2020.06.08

Starry starry night _ 별이 빛나는 밤에, 이종훈 감독

# 0.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단순하지만 힘 있는 몇 개의 선과 색이 관객의 마음속 밤하늘을 눈부신 별빛으로 가득 수놓습니다. '이종훈' 감독, 『별이 빛나는 밤에 :: The Starry Night』입니다. # 1. 별이 빛나는 밤. 풍성한 수염의 노인은 작은 반려견과 함께 익숙한 어딘가로 여행을 떠납니다. 음악을 듣고 바다를 보고 술을 마시고 거리를 내달리고. 바닷바람이 이끄는 쓸쓸한 밤의 해변에서 흩날리는 낙엽과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여인을 만납니다. 꽃내음과 강아지와 노을 산책과 스쿠터와 밤하늘을 사랑하는 그녀. 그녀는 오래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간 노인의 사랑입니다. # 2. 감독은 별이 가득 빛나는 밤을 올려다보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여러 색깔의 감수성들을 효과적으로..

Film/Animation 20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