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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프리허그 _ 겨울잠, 이진우 감독

그냥_ 2022. 3.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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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겨울인데 이상 고온이라고 합니다.

정작 주인공은 내내 춥고 배고픕니다.

 

 

 

 

 

 

 

 

'이진우' 감독,

『겨울잠 :: Winter sleep』입니다.

 

 

 

 

 

# 1.

 

남쪽 끝으로 가면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일이 잘 풀리느냐 그렇지 않으냐 이전에 이상한 말입니다. 남쪽 끝으로 가는 것과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정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고통을 이겨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역시 이상한 말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가 맞지 고통을 겪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식당 주방 한켠에 움츠려 밥을 먹습니다. 거리 한복판에 쪼그려 똥을 쌉니다. 하염없이 남쪽으로 향하던 구병은 대뜸 자전거를 팔려합니다. 파는 이유는 돌아갈 차비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멀쩡해 보이는 자전거를 사줄 곳은 없고, 고물상에라도 처분하려 하지만 고물상마저 없습니다.

 

남쪽으로 온 이유도 내려오는 방식의 이유도 얻은 것도 돌아가야 할 이유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과 행동은 모두 뒤틀려 있습니다. 그저 불안합니다. 그저 절망합니다. 부조리不條理하군요.

 

 

 

 

 

 

# 2.

 

술에 찌든 노인 '조송'입니다. 자전거를 사준다더니 되려 밥을 한 끼 먹고 가라 합니다. 조송은 동네 아이들과 할머니에게 자신의 아들이라 소개합니다. 구병은 다소 의아하지만 내색하진 않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집에 도착합니다. 노인은 집 안에서까지 아들이라 부릅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능청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따뜻해야 할 방바닥은 차갑습니다. 아버지랑 술 한잔은 해야지. 허겁지겁 밥을 먹는 구병에게 조송은 술을 권합니다. 대뜸 칼 한 자루를 쥐어줍니다. 사내 새끼가 칼 한 자루는 가지고 다녀야 한다 말합니다. 왕년에 어부였다는 조송은 조그마한 칼로 고래를 잡았노라 말합니다. 그러더니 대뜸 영지버섯을 쥐어줍니다. 한 손엔 영지버섯, 한 손엔 칼입니다.

 

조송이 형수라 부르는 사람의 다방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술을 들고 달아나는 조송. 뒤를 쫓던 구병과 형수는 쪼그려 앉습니다. "아버지! 소주 반 병만 드시래요!" 형수는 조송이 술에 깨고 나면 구병에게 줬던 고래 잡던 칼을 다시 찾을 거라며 칼과 털모자를 교환하자 말합니다. 이상 고온이라는 겨울의 하늘에선 눈이 내립니다. 다시 자전거 가게. 자전거를 사주지 않자 결국 자기 돈을 쥐어주는 조송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역 앞. "가끔 아버지 생각나면 찾아오고 그려." 근처에서 소주 세병을 사들고 온 구병. "내일부터 천천히 나눠서 아껴 드세요."

 

 

 

 

 

 

# 3.

 

논리적 모순 아래 깔린 짙은 회한과 허무함이 극을 지배합니다. 구병이 어떤 사람인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남쪽으로 간 건지 정말 남쪽으로 가면 일이 잘 될 거라 생각한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노인의 뒤를 따라간 건지 왜 돌아가려 하는 건지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돌아간 그가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조송이 어떤 사람인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왜 처음 보는 청년을 아들이라 부른 건지 진짜 아들이라 생각하는 건지 왜 칼을 쥐어준 건지 고래를 어떻게 잡았다는 건지 어부였긴 한 건지 영지버섯은 대체 왜 쥐어 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구병을 돌려보낸 후 술에 깨고 나면 아들이라 불렀던 청년을 기억이나 할는지. 내일부터 반 병씩 소주를 나눠 아껴 마실지 알 수 없습니다.

 

부조리한 전개에 대화도 상황도 사건도 인과도 바스러집니다. 모순이 낳은 것들이 허무하게 휘발하고 남은 자리엔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와 그 속에 담긴 정서만이 덩그러니 놓입니다. 맥락으로부터 독립된 선명한 위로입니다.

 

"가끔 아버지 생각나면 찾아오고 그려."

"내일부터 천천히 나눠서 아껴 드세요."

 

 

 

 

 

 

# 4.

 

구체적인 설정과 자연스러운 인과로 풀어나가는 드라마를 예상하신다면 이물감이 심하실 듯합니다. 그저 시공간의 이상함을 덤덤히 받아들인 채 정서에 취하듯 마음을 놓아둔다. 는 식으로 보면 편안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갈 거라면 조금 더 과감하게 심지어 과격하게 풀어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듭니다만, 흠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구병 역의 구교환은 관객의 호흡과 함께 가는 연기가 좋습니다. 순간순간 관객인 내 느낌을 배역이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듯한 감각이, 배우와 같은 순간을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이 좋습니다.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작품임에도 배우의 눈빛과 표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편안하달까요. 조송 역의 문창길은 전반적으로 어색한 감은 있습니다만 마지막 소주를 들고 오는 구병을 바라보는 표정만큼은 좋습니다.

 

프리허그의 개념을 영화한 작품인 것만 같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 뜬금없는 공간, 무관한 사연, 무의미한 맥락임에도 다소 기계적일 수도 있을 포옹이 그 자체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프리허그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작품의 서사가 딱 그러하죠. 처음 보는 구병을 와락 껴안아 버린 조송입니다. 프리허그의 매력은 껴안은 사람도 안긴 사람과 똑같은 체온, 똑같은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진우' 감독, <겨울잠>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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