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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여름바다라는 풍경화 _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조혜린 감독

그냥_ 2022. 10.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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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겨울바다 사진이 여름바다 그림 속으로 풍덩

 

 

 

 

 

 

 

 

조혜린 감독,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입니다.

 

 

 

 

 

# 1.

 

퀴어 코드의 로맨스 영화입니다. 대체로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주인공이 정체성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인정하거나 표현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도입에 등장하는 전 애인 수영의 청첩장과 같은 코드를 생각한다면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다만 보다 보면 뭐랄까요. 퀴어는 그냥 소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영화에서의 퀴어란 두려움에 못 이겨 마음속 깊이 끌어안고 침전해 있는 무언가로 대체되어도 별 지장이 없거든요. 심지어 사랑이라는 정서조차 그렇게까지 본질적인 것인가에는 다소 회의가 있습니다. 영화의 서사란 사랑을 북돋아 완성에 다다르는 과정과도 거리가 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론 퀴어 로맨스 영화라기보다는 성장 영화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주현은 주인공 혜리가 사랑하는 상대 이전에, 심정의 변화를 촉발하는 사건이자 철학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에 더 가까운 인물처럼 묘사됩니다.

 

 

 

 

 

 

# 2.

 

두 주인공은 대칭적인 모습입니다. 혜리는 밀어냅니다. 주현은 다가갑니다. 혜리는 걸어갑니다. 주현은 바이크를 탑니다. 혜리는 조심스럽고 심각하고 피곤합니다. 주현은 과감하고 담담하고 솔직합니다. 두 인물의 성격은 공간으로도 투사됩니다. 혜리의 공간은 제약됩니다. 가까이 벽면이 화면을 잘라먹어 영역을 제한케 한 후 그 안에 혜리를 집어넣어 방어적인 심리를 반복적으로 암시합니다. 주현은 그런 혜리의 동굴을 끊임없이 파고 들어와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죠.

 

일련의 대칭적 설정들은 차곡차곡 [무게감]으로 소집됩니다. 제목에서의 여름바다는 바다 가운데서도 가벼운 바다, 그 바다에 떠 있는 가벼움은 압도적인 솔직함 그리고 해방감입니다. 마지막 바다에서의 질감은 황홀합니다. 단순히 이쁘게 담는 것을 넘어 산란하는 빛의 이미지와, 주제의식에 닿아 있는 공간감, 가볍게 넘실대는 느낌을 주기 위한 흔들림과, 실루엣의 활용은 노련합니다.

 

결말의 바다만큼이나 혜리의 집으로 찾아온 주현이 머리를 말리지 않았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덜 말린 머리카락의 이미지는 엔딩의 바다에서 확장됩니다. 주현은 처음부터 늘 바다에 있는 인물인 것이죠. 혜리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데요. 물론 에스프레소는 설탕을 넣어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음료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모순을 암시하는 아이템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겁니다. 모순을 가진 혜리가 주현의 바다에 도달하는 이야기. 겨울바다에도 가라앉을 것만 같던 혜리가 주현과 함께 여름바다에 떠오르는 이야기랄까요.

 

 

 

 

 

 

# 3.

 

바다 외에 중추적인 은유를 꼽으라 한다면 역시나 [그림]과 [사진]을 이야기할 수 있겠죠. 감독은 사진에 피사체를 온전히 그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그리는 동안 자신이 노출되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부여합니다. 그림은 사진의 대척점으로서 일련의 두려움에 대한 극복을 의미한다 할 수 있을 테고, 각각은 혜리와 주현에게 일대일로 대응하고 있죠.

 

두 사람이 나보나 광장 인근 거리라는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건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현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그 순간의 교감을 이룰 수 없었을 테죠. 이처럼 그림은 무거운 걱정들을 덜어내고 교감에 도달하는 용기를 상징한다 봤을 때, 영화의 서사란 사진을 찍던 주인공이 그림에 도달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테고, 따라서 결말의 바다는 그 자체로 혜리가 온몸을 던져 완성한 한 폭의 그림이기도 한 셈입니다.

 

 

 

 

 

 

# 4.

 

결말의 바다는 훌륭한 공간이기는 하나 그 공간까지 인물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너무 노골적이고 투박하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 노을을 기가 막히게 쓴 영화라면 역시나 봉준호의 <마더>를 들 수 있을 텐데요. 엔딩 장면 관광버스 씬의 미술적 가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혜자를 그곳까지 끌어다 앉히는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헤어질 결심>의 바다 역시 마찬가지였죠. 영화 속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걸어간 끝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바다에 풍덩 빠져 있는 영화의 감동과, 감독이 직접 두 주인공의 손을 잡고 바다로 들어가는 영화의 감동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말미에 굳이 아쉬움을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몇몇의 공간과 표현이 작품의 가치를 넉넉히 지탱하는 데 성공한다는 덴 이견이 없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바다의 감동에 젖어 있는 채로, 혜리는 수연의 결혼식을 갈 수 있을까를 상상할 수 있다면 단편 영화가 줄 수 있는 여운으로는 충분히 훌륭합니다. 조혜린 감독,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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