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Drama

잔인한 거짓말 _ 블루해피니스, 이제훈 감독

그냥_ 2022. 1. 11. 06:30
728x90

 

 

# 0.

 

취업 준비 중인 '찬영'이 우연한 기회로 트레이더 친구를 만나 주식에 빠져들면서 생기는 변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제훈' 감독,

『블루 해피니스』입니다.

 

 

 

 

 

# 1.

 

찬영은 20대 취준생 일반을 대변합니다. 구체적 개인의 특별한 서사라기보다는 세대 및 경제 계층에 대한 코드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이후 글에선 이름 대신 '남자'라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인물이 처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도시 아래 비어있는 도로는 겉보기엔 화려해 보여도 속은 비어있는 인격의 공허함을 표현합니다. 보닛 너머 훔쳐보는 앵글은 비루한 현실을 은유합니다. 화려한 도시를 지나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차량을 구태여 정면에서 담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제자리에 멈춰서 있는 처지를 상징합니다.

 

차에서 내린 주인공은 계단을 내려갑니다. 카메라는 인물을 내려다봅니다. 지하방에서 정갈한 저녁 식사를 준비합니다. 냉장고 문에 애인 사진과 잡동사니가 보입니다. 덕지덕지 붙은 수많은 사진들과 높은 빌딩의 액자는 인물의 욕망과 야망을 투영합니다. 저녁을 차려 먹이고 회사 생활의 고충을 듣는 남자는 섬세하고 자상합니다. 남자의 본질이자, 감독이 이해하는 20대 일반의 선량한 기질입니다.

 

 

 

 

 

 

# 2.

 

주인공은 각기 다른 관점을 대변하는 세 인물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애인'과 '친구'와 '도련님'이죠.

 

남자에게 더 나은 생활이란 돈이 덜 들어가는 것이지만, 애인에게 더 나은 생활은 함께 있어 행복해졌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얼른 취업해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하지만, 애인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취업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합니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이고 사랑스럽지만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고 비루하죠. 애인의 바람이 본인의 꿈이 아니라 남자의 꿈을 이루었으면 한다는 점은, 그녀의 이상이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희생적임을 의미합니다.

 

애인은 카메라를 선물합니다. 카메라는 애인이 희망하는 꿈의 구체화 정도로 이해한다면 무리는 없을 겁니다. 남자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지만 정작 애인은 한 번도 찍지 않습니다. 되려 카메라로 찾은 대상은 트레이더 친구죠. 남자의 꿈은 돈과 성공으로 바뀌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친구는 수많은 여자들에 둘러싸여 등장합니다. 친구의 말에 귀 기울이는 여자들과의 관계는 묘사되지 않습니다. 관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머릿수와 갈구하는 자세가 중요할 뿐이죠. 친구는 남자와 여러모로 대조적입니다. 값비싼 양복을 빼입고 서서 내려다봅니다. 남자는 평상복을 입고 앉아 올려다보죠. 오프닝에서 인물을 내려찍는 카메라 앵글과 엮여, 영화 속 세계란 경제력에 따른 수직적 관계밖에 존재하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알려주는 정보에 카메라를 한편에 치우고 받아 적습니다. 일련의 시퀀스는 성공한 친구의 과시적 태도와, 남자의 열등감과 욕망과 조급함을 친절하게 묘사합니다.

 

도련님은 심화된 양극화에 따른 경제 계급화를 상징합니다. 앞선 두 캐릭터에 비해 다소 기능적인 단조로운 역이기는 합니다.

 

 

 

 

 

 

# 3.

 

세 인물은 각자 나름의 '선의'로 남자를 포위하고 힐난합니다.

 

애인은 존재에서부터 남자를 압박합니다. 꿈을 이뤄라는 말은 때론 다른 두 인물의 그 어떤 말보다 잔인합니다. 남자가 손을 베는 순간은 주식창에 한 눈 팔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자에게 먹일 요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는 것 역시 간과해선 곤란합니다.

 

친구는 조금 더 노골적입니다. "언제 돈 모아서 집 사고 차 살래?"라는 말이나, "명함이나 하나 줘."라는 말, "모범생처럼 살아서 잘 되는 세상이 아니에요."라는 말보다 "변한 게 하나도 없네."라는 말이 더 비수가 됩니다. 청춘에 박제해 둔 불변의 가치라는 것이 당사자에겐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죠.

 

도련님은 담백하고 단호합니다. 귀에 끼고 있는 에어 팟은 남자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음을, 철저히 일방적인 관계임을 뜻합니다. 소년은 남자의 행동을 지시하고 통제하고 판단합니다. 투는 공손하지만 태도는 압도적입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모으세요."라는 말은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과 그 보다 먼 절망감입니다.

 

 

 

 

 

 

# 4.

 

주식으로 돈을 잃은 남자는 애인에게 선물 받은 꿈을 팝니다. 돌아 누은 애인에게 말하는 "다 괜찮아질 거야.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 앞선 세 인물이 쏟아내는 그 어떤 말보다 더 잔인한 거짓말입니다.

 

애인이 보내 달라는 웃는 사진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 설레는 표정이었고, 그 설렘마저 단돈 60만 원에 팔려 나가고 없습니다. 값싼 꿈과 희망을 초라하게 만드는 9000만 원이라는 단위가 찍힌 유혹이 문자로 날아옵니다. 카메라 아래에 있던 남자는 눈 아래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내려다보는 사람이 된 것이기도 하지만, 고개가 꺾인 것이기도 합니다.

 

 

 

 

 

 

# 5.

 

전시적입니다. 우울한 행복 안에 갇혀버린 인격의 잔인한 현실을 캐릭터화 해 묘사합니다. 다만 '그래서'는 모호합니다. 좌절에 대한 현실적이고 섬세한 묘사는 성취라 해야겠으나, 그와 별개로 이미 알고 있는 좌절을 다시 확인하는 것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 한계라 해야 할 겁니다.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로 친다면 '소피'와의 마지막 밤 이후가 없는 영화랄까요. 뉴욕을 내달리는 '프란시스 할러데이'만 묘사될 뿐, 프란시스가 '프란시스 하'가 되는 이야기가 없는 작품이랄까요.

 

...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찾던 중 감독이 스타트업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네요. 영화의 메시지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해당 기사가 하나의 거대한 기만처럼 들리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물론 감독의 잘못은 아닙니다. 영화에 대한 평이 달라질 이유는 절대 될 수 없죠. 감독의 경제적 성공과 아이템이 반드시 합치되어야 한다는 건 유치한 억지 투정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아무리 치졸한 이유라 하더라도 씁쓸함을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애써 부정하는 것도 허무합니다.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펼쳐진 결말과 함께 비로소 영화가 완성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또 한번 씁쓸하기도 하고 말이죠. '이제훈' 감독, <블루 해피니스>였습니다.

 

 

개표인 실종 _ 반장선거, 박정민 감독

# 0. 분명 익숙한 냄새인데 말이죠. 이걸 어디서 맡았더라... '박정민' 감독, 『반장선거』입니다. # 1. 생각났습니다! 조일형 감독 작, #살아있다 의 냄새군요!! 감독 개인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스

morgosound.tistory.com

 

관찰과 연구 _ 재방송, 손석구 감독

# 0. 익숙치 않은 듯 불편해 보이는 양복. 물병을 하늘 높이 집어던지는 장난기. 짧게 멘 붉은색 백팩. 무더운 날의 오르막길. 거친 숨소리.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저 왔어요. 이모!" '손석구' 감독,

morgosound.tistory.com

 

초록빛 하루 _ 반디, 최희서 감독

# 0. 인내 끝에 숨어있음을 깨닫는 초록빛 하루 '최희서' 감독, 『반디』입니다. # 1. 공들여 담아낸 반딧불을 연탄불에 연결합니다. '소영'이 연탄불에 데이는 장면은 반딧불에 데이는 것과도 같

morgosound.tistory.com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