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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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너는 샐러드바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_ 전우치, 최동훈 감독

그냥_ 2022. 7.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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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뷔페 좋아하세요?

 

 

 

 

 

 

 

 

최동훈 감독,

『전우치 :: Woochi』입니다.

 

 

 

 

 

# 1.

 

뷔페도 식당인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맛이겠습니다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음식의 구성일 겁니다. 손님마다 입맛도 다 다르거니와 어차피 먹을 수 있는 양, 느낄 수 있는 맛은 한정적이니까요. 대부분의 고객들은 맛있고 값비싼 음식을 풍성하게 먹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음식을 조화롭고 편안하게 맛보길 원합니다. 제 아무리 산해진미라 하더라도 계~속 고기, 고기, 고기만 먹다 보면 얼마 못가 물리기 마련이죠.

 

서울시 중구 충무로 일대에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는 간판의 전문점을 운영해온 사장 최동훈 씨가 뷔페 창업에 도전합니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 이후 <도둑들>과 <암살>로 이어지는 대박 메뉴를 내리 개발하는 데 성공한 사장님은 자신의 취향과 손맛이 가득 담긴 뷔페의 세계로 고객을 초대합니다.

 

 

 

 

 

 

# 2.

 

영화, 아니 뷔페식당 <전우치>가 차려내고 있는 음식은 분명 다양하고 맛있습니다. 혹여 이 영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평가하신 분들이라 할지라도 요소요소에 배치된 오락적 장치들이 작동하지도 않는다 평하는 것은 억지라는 데 동의하실 겁니다. 요식업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백종원마냥, 한국형 케이퍼 무비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최동훈'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을 떼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제법 재미있는 오락 영화임에 틀림이 없죠.

 

작가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독보적인가는 이 작품에서 역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관객의 집중을 붙들어 매는 표피적인 말장난과, 서사를 맛깔나게 살리는 대화들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떡밥 및 복선, 도교적 관점에서의 동양 철학 본질을 은유하는 문답 모두 맛있습니다. 80년대 홍콩 영화가 생각날 법한 휘황 찬란 와이어 액션과, 이리저리 내달리는 스펙터클을 즐기는 카 체이싱, 정통 무협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나무 숲, 무용을 보는 듯 합이 맞아떨어지는 무투 액션과, 활과 칼과 부채와 창과 줄과 부적을 넘나들며 눈을 즐겁게 하는 무기 액션, 그래픽의 도움을 적절히 곁들인 화려한 폭파 액션 모두 한 영화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죠.

 

 

 

 

 

 

# 3.

 

해학과 능청을 정체성으로 삼는 새로운 히어로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는 것은 영화의 최대 의의일 겁니다. 초호화 배우진을 능수능란하게 연주했던 언제나의 작품들처럼 주변 캐릭터를 다듬는 데에도 소홀함은 없습니다. 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주조연뿐 아니라 염정아나 김효진, 이용녀 등의 캐릭터 역시 뇌리에 팍팍 꽂히는 맛은 역시 최동훈의 손맛이라 해야 하는 거겠죠.

 

차고 넘칠 정도로 검증된 베테랑 배우진이 시나리오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김윤석, 유해진, 백윤식, 김상호, 주진모, 송영창 등은 말할 나위가 없구요. 난해한 액션을 소화해야 했을 공정환과 선우선도 중반부를 견인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합니다. 임수정 역시 캐릭터의 깊이가 다소 부족한 탓에 손해를 보긴 했음에도 배우의 이름값 답게 넉넉히 극복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강동원의 영화죠. 감독이 어떤 세계관에서 어떤 식으로 작품을 풀어내는가와 별개로 히어로물인 이상 영화의 동력은 히어로의 간지에서 비롯되기 마련일 텐데요. 뻔하다면 뻔할 수도 있을 캐릭터임에도 배우와의 밀착감이 워낙 뛰어나 작품을 무사히 풀어내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 4.

 

이야기뿐 아니라 이야기에 장르적 재미를 불어넣는 과감한 플롯은 특별히 인상적입니다. 시간순으로 흘러가다 과거로 말아 넣고, 다시 시간순으로 전개되다 과거로 연결하는 플롯은 흥미롭습니다. 예언적이기도 하고 회귀적이기도 한 시간선뿐 아니라 공간선까지 마음껏 조작하는 일련의 구성은 중력을 거스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전우치처럼 영화에 압도적인 자유로움을 부여합니다.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의 영화를 넘어 작품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도술처럼 느껴지게 만든달까요. 도사 전우치가 그림 안팎을 넘나드는 것처럼 관객은 영화를 즐기는 내내 스크린 안팎을 쉴 새 없이 넘나드는 것만 같달까요.

 

감독 최동훈이 영화 <전우치>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 장르적 다양성은 그 자체로 한국형 히어로란 이런 느낌이라는 정체성으로 승화됩니다. 유사한 목표로 시도된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도달하지 못한 가히 독보적인 성취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테죠.

 

 

 

 

 

 

# 5.

 

그럼에도 이 작품은 관객과 비평가로부터 호불호를 함께 받았었는데요.

이유는 전문점만 꾸려온 사장님 아니랄까 봐 주메뉴만 잔뜩 준비해뒀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익숙지 않은 전우치 설화를 베이스로 한 이야기는 런타임 내에 풀어내기조차 버겁다는 듯 급격하게 전개됩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질적이라 느낄 도가적 세계관과 철학이 선문답에 올려져 난사됩니다.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사는 존재들이 무자비하게 등장했다가 무자비하게 퇴장합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과를 넘나드는 과격한 플롯이 뒤엉킨 상황 위로 떡밥인지 복선인지 개그인지 모를 표현들까지 모조리 한 접시에 올라탑니다.

 

갈비찜을 뜯고 있는 데 스테이크는 식어가고, 스테이크를 주워 먹는 사이 튀김 요리가 눅눅해지고 있어 조급한 꼴입니다. 고기는 물리는 데 입가심할만한 거 없나요? 라는 질문에, 오리 고기는 어떠세요? 양고기도 있는데요. 라는 대답만 계속 돌아옵니다. 뷔페를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값비싼 메뉴 앞에 줄을 섬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고 샐러드 등의 애피타이저와 김치 등의 밑반찬이 함께 구성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 텐데요. 이 영화에는 관객들이 쉬어갈 그런 소소한 반찬들의 자리에까지 모조리 주 메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영화를 즐긴 것과 별개로 작품의 풍성함에 설득되지 못한 일부의 관객들에겐 정신이 없거나 지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었을 테죠.

 

 

 

 

 

 

# 6.

 

영화가 개봉한 당시에나 오랜만에 다시 보는 지금에나 <전우치>는 참 아이러니한 작품입니다. 능숙하고 여유로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작품만큼은 감독의 애정과 의욕이 스크린 넘어 뚝뚝 흐르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 데요. 그런 애정의 깊이에 반해 유일하게 호불호를 타고 만 작품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죠. 감독에게 이 작품은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낸 해방이기도 했을 테지만 동시에 회한으로 남는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작품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2022년 여름. <외계+인 1부>가 개봉합니다. 예고편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느낀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 사장님 뷔페 재창업하시는구나. 라는 것이었구요. 다른 하나는 이번에도 샐러드 바는 없는 건가? 라는 것이었죠. 곧이어 마지막 청춘을 바친 영화라는 감독의 비장한 인터뷰를 읽으며 전우치의 방법론으로 성공을 증명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확인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충분한 샐러드가 없으면 힘들 텐데... 라는 걱정을 당시에도 했습니다만 글을 쓰는 지금까지 세간의 평은 안타깝게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듯하네요.

 

어쨌든 <외계+인>은 주 중으로 보긴 볼 생각입니다. 평이 좋지 않은 것과 별개로 너무 재미있는 영화를 많이 보여준 감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라도 예고편으로 예단하지 않고 지갑을 열 동기는 충분하니까요. 티켓팅을 해 놓고 오래 전 첫 번째 창업했던 뷔페 음식을 한번 먹어 봤습니다.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네요. 최동훈 감독, <전우치>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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