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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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개봉 99

조진웅 쇼 _ 퍼펙트 맨, 용수 감독

# 0. 명확한 증거도 없이 당사자가 부정하는 상황에서 작품에 '표절'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게 그리 보기 좋은 모습 같진 않습니다만, 사실 여하와는 별개로 이 작품이 관객으로 하여금 기시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거겠죠. 굳이 '올리비에르 나카슈', '에릭 톨레다노' 감독의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조폭 코미디물과 JK 식 공장제 영화의 승리 공식에 대한 기시감을 너무 많이 불러일으킵니다. '용수' 감독, 『퍼펙트 맨 :: Man of Men』입니다. # 1. 늘 그렇습니다. 훌륭한 성취를 거둔 외화 두어 편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다행스럽게도 감독은 해당 작품을 일절 알지 못합니다. 어차피 외국에 팔 것도 아니니 ..

Film/Comedy 2020.08.05

어... 모르겠다 _ 사이좋게, 차지훈 감독

# 0. 포스터는 피에타Pietà 의 패러디로 보입니다. 흔히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끌어안고 슬피 우는 성모의 모습을 묘사한 기독교 예술의 테마 중 하나죠. 그런데... 피에타가 이 단편이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죠? '차지훈' 감독, 『사이좋게 :: Be nice to each other』입니다. # 1. 실사 영화에서는 '우연'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촬영하는 순간 감독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새가 한 마리 날아갈 수 있죠. 스탭이 가져온 소품 연필이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우연히 특정한 색깔일 수도 있구요. 경제적인 문제로 공간 섭외나 연출에 있어 대안이 없었을 수도 있고, 배역에 몰입한 배우가 내지른 즉흥적인 애드리브가 유야무야 영화에 쓰이기도 ..

Film/Animation 2020.07.29

스타일리스트의 매력 그리고 한계 _ 메기, 이옥섭 감독

# 0.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이옥섭' 감독, 『메기 :: Maggie』입니다. # 1. 교회의 십자가는 누군가의 바람에 의해 병원이 됩니다. 재개발지의 푸른 장막은 누군가의 사명감에 의해 해수욕장이 됩니다. 타인의 성기가 찍힌 X-ray는 누군가의 부끄러움에 의해 주인이 뒤바뀝니다. 병원 식구들의 병가는 누군가의 의심에 의해 섹스 스캔들을 면피하기 위한 꾀병이 됩니다. 펜던트의 사진은 누군가의 선입견에 의해 딸의 것으로 오해됩니다. 어린 소녀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의해 살인미수라는 오명을 쓰지만, 그녀 역시 친구가 아빠에게 떠밀려 건물에서 떨어진 것이라 근거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깎다 다쳤다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었지만 그의 배에서 나온 건 총알이었고, 사람을 믿어야 ..

Film/Comedy 2020.07.27

첫 타석 2루타 _ 미성년, 김윤석 감독

# 0. 강렬한 카리스마와 몰입도를 보여주는 '배우 김윤석'과는 대조적으로, '감독 김윤석'은 예술적 미감과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 듯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 긴 시간 동안 족발 들고 4885나 쫓아다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김윤석 감독, 『미성년 :: Another Child』입니다. # 1. 사람은 여섯. 아니, 일곱. '안영주', '김미희', '권주리', '김윤아', '권대원', '박서방'. 그리고 '못난이' 주요 인물 중 단 두명만이 미성년자이지만 일곱의 인격은 모두 각자 다른 이유에서 미숙합니다. 일방적인 가족의 해체와 폭력적인 재조립 과정 속에서 각 인물들은 자신의 미숙함을 외면하기도, 발견하기도, 인정하기도, 부정하기도, 변명하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치열한 정서적 교환 끝에 나름의..

Film/Drama 2020.07.18

신선도만 인정 _ 분노, 키엣 르-반 감독

# 0. 베트남 영화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그린 파파야 향기』를 보고 싶어 찾아보려다 포기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베트남 영화와는 그동안 연이 없었는데요. 나름 기대가 큽니다. 베트남의 영화들은 또 어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줄까요? '키엣 르-반' 감독, 『분노 :: Furie, Hai Phuong』입니다. # 1.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신선하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시나리오는 부실합니다만 이색적인 아이템들과 접근법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겁습니다. 베트남하면 쉽게 떠올릴법한 원뿔형 삿갓 '논라Nón Lá'를 뒤로 을러멘 주인공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목이 집중됩니다. 강가에 면해 길게 펼쳐진 생동감 넘치는 시장의 전경과 다채로운 염료들로 염색된 옷가지들이 매달린 집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

Film/Action 2020.07.02

B+ _ 기묘한 가족, 이민재 감독

# 0. '에드라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 '루벤 플레셔' 감독의 『좀비랜드』같은 클리셰를 비트는 호러 코미디에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스러운 캐릭터 구성과 '신정원' 감독의 『시실리 2km』식 코리안 컨츄리 병맛 코미디를 적당히 섞어 만든 영화입니다. 호러물의 클리셰를 비트는 부조리 코미디라는 게 특별히 독창적인 장르는 아닙니다만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범죄 스릴러 아니면 최루성 드라마 천지인 한국의 영화판에서라면 이런 이색적인 시도. 그 자체로 감사할 수 밖에 없죠. '이민재' 감독, 『기묘한 가족 :: THE ODD FAMILY : ZOMBIE ON SALE』입니다. # 1. 줄거리를 적당히 간추린다는 게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만 난이도를 떠나 줄거리를 말씀드리는 것 자..

Film/Comedy 2020.06.23

과적 금지 _ 판소리 복서, 정혁기 감독

# 0. 병구가 돌린 전단지를 본 민지는 체육관을 찾아와 복싱의 다이어트 효과에 대해 문의합니다. 글쎄요. 다이어트는 날아갈 듯 날씬한 혜리보다 이 영화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요? '정혁기' 감독, 『판소리 복서 :: My punch-drunk boxer』입니다. # 1. 번개 같은 주먹! 병구 주먹! 천둥 같은 장단! 민지 장단! 예고편을 본 관객들은 판소리 복서 엄태구가 혜리의 장구 가락에 맞춰 흐느적흐느적 주먹을 휘두르는 걸 본 순간 끝났다 생각했을 겁니다. 아이템의 파괴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이 병신 같지만 멋있는 매력을 찰지게 풀어내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이다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의 주인공 병구가 의 김수현 같은 빙구미를 뽐낼 수만 있다면. 병구와 민지의 투샷이 미묘하게 사랑..

Film/Comedy 2020.05.24

글자를 아니까, 사는 기 더 재밌다 _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

# 0. 내 나이 팔십팔세 마음은 팔팔하다. 우리 사우가 장모님 글씨 차마네예 카이 마음이 또 팔팔해 즌다. 나는 박금분 할매믄서, 학생이다. 학생이다. '김재환' 감독, 『칠곡 가시나들 :: Granny Poetry Club』입니다. # 1. 마을에 한글 학교가 생깃다. 글자를 아니까, 사는 기 더 재밌다. # 2. 공부. 유촌댁 안윤선. 지금 이래 하마 한자라도 늘고 좋지. 원, 투, 쓰리, 포. 영어도 배우고 한번 해보자. # 3. 공부. 등개댁 곽두조. 80 너머가 공부할라카이 보고 도라서이 아차뿌고 눈 뜨만 이차분다. 아들 둘 딸 둘 다 키았는데 그 세월 쪼매 잘 아랐우면 초았을 거로. 우리 미느리가 공부한다고 자꼬 하라칸다. 시어마이 똑똑하라꼬 자꼬 하라칸다. 하라카는 기 고맙다. # 4. 나..

에스프레소 _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 0. 포스터만 봐도 어려운 영화입니다. 감독 이름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죠. 도스토예프스키든, 차이코프스키든, 로만 폴란스키든 어쩌고 저쩌고 스키 들어가면 대부분 엄청 대단하면서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 감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세상에나. 『이다』의 감독이었군요.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콜드 워 :: Cold War』입니다. # 1. 정서와 서사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때깔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패턴화 된 오브제들의 감각적인 리듬, 적재적소에 4:3 비 화면을 명확한 의도 하에 과감하게 잘라 들어가는 굵은 선, 깊은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여백 등의 이미지가 구현하는 심미성은 이번에도 역시나 감동적입니다. 흑백의 ..

Film/Romance 2020.05.05

세트 메뉴 _ 아폴로 11, 토드 더글라스 밀러 감독

# 0. 필연적으로 '데이먼 샤젤'의 『퍼스트 맨』과 함께 읽힐 수 밖에 없을 텐데요. 『퍼스트 맨』을 기억하며 작품을 보노라면 새삼스레 왜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로서 사랑받는지, 왜 영화가 영화로서 사랑받는지를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실제 상황과, 그것이 재연된 『퍼스트 맨』에서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교차할 때마다 전율이 입니다. 앤딩 크레디트를 보며 길게 할 이야기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아니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 지구라는 행성에 우연히 발생한 털 없는 원숭이가 공포이자 숭배이자 신앙이자 동경이었던 달로 날아가 발을 디뎠다. 라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명분의 정당성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토드 더글라스 밀러' 감독, 『아폴로 ..

새벽이 오리라 _ 체념 증후군의 기록, 존 햅터스 감독

# 0. 배경지식이 전무한 제게 이 다큐는 근래 가장 충격적인 영화로 기억될 듯합니다.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슨 이딴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의 고통을 폄하하거나 희화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세와 경과가 너무도 상식을 벗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존 햅터스', '크리스틴 사무엘슨' 감독, 『체념 증후군의 기록 :: Life Overtakes Me』입니다. # 1. 언젠가부터 나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작품을 보기도 전부터 자꾸만 앞질러 추측하게 된다는 것이죠. 『주홍색 연구』에서 달리는 마차 안의 '홈즈'는 근거도 없이 앞질러 선입견을 만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했는데요. 제가 딱 그 멍청이가 된 꼴이군요. 무슨 체념에 증후군까지 ..

Documentary/Social 2020.03.28

이 영화는 해로운 영화다 _ 6 언더그라운드, 마이클 베이 감독

# 0.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라는 걸 꼭 개연성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 걸까. 말이 좀 안 된다는 게 그렇게 큰 흠인 걸까. 입체적이면서 일관된 캐릭터와 풍부한 주제의식이란 게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 디테일이 꼭 살아 있어야만 하나. 화려하고 번쩍번쩍하면 적당히 좋은 거 아닐까. 세간의 평론가 놈들이 주입한 선입견에 휩싸여 있었던 건 아닐까. 머릿속에 '이동진'의 빨간 안경이란 마구니가 든 것은 아닐까. 갓동님께서 지금껏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는데 여태껏 된장찌개 맛이 나지 않는다고 혹평을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엔 의식적으로 개연성을 ㅈ까라 하고 영화를 봐보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갓동님의 눈높이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죠. '마이클 베이' 감... 아니 갓동님, 『6 언더그..

Film/Action 2020.03.24

느낌적인 느낌 _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 0. 눈. 일본. 달. 편지. 엄마. 딸. 사진. 여행. 고양이. 담배. 바텐더. 사랑. 이별. 처연하고 창백한 톤으로 서정성을 한껏 강조해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을 감성적이고 감각적이고 문학적인 묘사와 함께 관객과 교감하고 나누는 멜로드라마 영화. 코로나와 함께하는 차분하고 고요한 주말 오후의 오갱끼데쓰까군요. '임대형' 감독, 『윤희에게 :: Moonlit Winter』입니다. # 1. 보험을 깔고 갈까요. 영화 최고의 장점, 김희애가 나옵니다. 주연 배우가 다양한 상황에서의 구분된 정서를 섬세하게 다듬어 표현합니다. 막말로 티켓값은 배우 표정만으로도 거의 대부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김소혜, 성유빈의 싱그러움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게 합니다. 역시 젊은 게 좋아요. 주제도 선합니다. 시대적 아..

Film/Drama 2020.03.22

괴물과 마주할 수 있을까 _ 고스트 오브 슈거랜드, 바삼 타릭 감독

# 0.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 나름의 목적들 이를테면 이념이나 재력, 신념, 권력, 쾌락 따위들을 위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을 넘어버린 존재들과, 그 존재들을 증언해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을 가십거리 삼아 평가하고 재단하길 좋아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이런 무지막지한 괴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몸을 사립니다. 어떤 인물의 도덕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훼손되면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거론하는 사람의 도덕성이 시험되기 때문이죠. '바삼 타릭' 감독, 『고스트 오브 슈거랜드 :: Ghosts of Sugar Land』 입니다. # 1. 말로 풀어 놓자니 복잡하게 들리긴 합니다만, 사실 어려울 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

Documentary/Social 2020.03.16

라이온 킹 리포지드 _ 라이온 킹(2019), 존 파브로 감독

# 0. 한식을 모르는 사람이 한식당을 차립니다. 자동차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신제품을 만듭니다. 여권도 없는 사람이 해외여행 가이드를 나서고, 워크래프트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리마스터를 만듭니다. 결과야 뭐... 보나 마나 겠죠. '존 파브로' 감독, 『라이온 킹 :: The Lion King』입니다. # 1. 스스로 뭘 만드는 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일을 벌이면 이런 참사가 벌어집니다. 원작 시리즈에 대한 이해 이전에 [동물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세부 장르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기획한 영화입니다. 팬들에게 이 영화는 깐크래프트 리펀디드 만큼이나 기만적입니다. 핵 잡고 신캐릭을 내놓으란 요구에 2-2-2를 걸어 놓는 오버워치 만큼이나 기만적이죠. 다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존..

Film/Animation 2020.02.27

이런 문제가 있다 _ 3분간의 허그, 에베라르도 곤잘레스 감독

# 0. 늦은 밤 전화를 합니다. 다음날 해가 뜹니다. 약속된 장소에는 행사가 서서히 준비됩니다. 저 멀리 그리운 얼굴들이 보입니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마른 입을 다시고, 누군가는 소리쳐 부르기도 합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찰나와 같은 3분. 그만 돌아가야 한다는 행사 안내가 울립니다. 차마 놓지 못하는 손을 붙잡은 채 팔을 길게 뻗어 보지만, 그래도 돌아가야만 합니다. 행사는 끝났습니다. 해가 진 저녁. 빈 행사장만이 덩그러니 스크린에 남았습니다. '에베라르도 곤잘레스' 감독, 『3분간의 허그 :: A 3 Minute Hug』 입니다. # 1.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떨어져 지내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과 잠시 동안의 만남과 돌아서..

이런 위로도 있다 _ 내 몸이 사라졌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 0.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육중하게 침전되는 감각,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주제의식이 인상적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년 '나오펠'의 곤궁하고 허무한 삶의 여정, 해부학실을 탈출한 '손'의 위태롭고 불안한 모험이 분리된 서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서를 주고받는 화학적 결합에 다다릅니다.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불쾌감과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불쾌감을 교차적으로 매칭 하는 방식이 효과입니다. 비 내리는 저녁의 피자배달, 나무로 만든 옥상의 이글루, 돌고 돌아 몸 옆에 자리하는 손, 차갑고 위태롭게 서있는 타워 크레인의 모습들 마다마다 서정성이 상당합니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내 몸이 사라졌다 :: J'ai perdu mon corps』 입니다. # 1. '나오펠'의 삶은 보통의 드라마들처..

Film/Animation 2019.12.04

왜 때문에 우리는 _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

# 0. 소녀가 달립니다. 화려하면서도 순박한 무늬가 그려진 품이 넓은 치마를 두르고, 맑고 어린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둔탁한 발을 낡은 샌들에 얹고 달립니다. 숨 막히게 만드는 깨끗한 산등성이를 넘어 소녀는 힘차게 내달립니다.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 Lorena, La de Pies Ligeros』입니다. # 1. 마라톤에 대한 영화입니다만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다양한 음향 효과를 위해 영화를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소리의 활용이 펼쳐집니다. 날카롭게 찌르는 현악 연주가 숨 막힐 듯 깊게 드리워진 산세와 함께 관객의 이목을 끕니다. 힘차게 내달리는 소녀의 모습과 넓은 화각의 공중촬영 영상 뒤로 경건하고 극적인 현악 연..

용두사미 _ 높은 풀 속에서, 빈센조 나탈리 감독

# 0. 두 남녀가 차를 타고 인신매매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갑니다. 오빠는 햄버거를 혼자 맛있게 먹고 그 꼴이 뵈기 싫었던 임산부 동생은 토를 하죠. 동생의 헛구역질에 입맛이 떨어진 오빠는 차를 세우는데요. 때마침 찝찝하기 그지없는 풀떼기들 사이에서 웬 꼬마 아이의 "도움!" 소리가 들립니다. 오지랖이 발동한 임산부는 뱃속의 아이는 나 몰라라 하고 남의 아이를 구하겠다 말하는군요. 동생은 갓 구운 피자 옆에다 읽던 책을 살포시 내려놓고 오빠는 먹던 햄버거를 남깁니다. 꼬마의 미끼에 낚여 풀 숲에 갇히게 된 오누이는 결국 아이언드래곤에게 빨래질을 당한 박무석이 되죠. 네. 이 작품은 햄버거를 남기면 변사체가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 『높은 풀 속에서 :: in the Tall G..

Film/Horror 2019.10.12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_ 조커, 토드 필립스 감독

# 0.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수개월 전 예고편을 보고 난 후부터 생각했습니다. 죽인다. 예술이다. 기가 막히다. 여태까지 140여 편을 리뷰하는 동안 작품이 너무 좋아서 씬 별로 쪼개가며 돌려 봤던 작품은 알폰소 쿠아론의 와 박찬욱 감독의 뿐이었는데요. 이 영화는 앞선 두 작품만큼이나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 『조커 :: JOKER』 입니다. # 1. 이야기거리는 충분합니다. 팀 버튼이 정의한 유머와 품격의 검은색 조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정의한 혼돈과 공포의 보라색 조커와는 차별화된 불안과 절망의 토드 필립스식 주황색 조커를 영화 전반에 걸친 색감을 중심으로 비교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주요 장면마다 나오는 거울에 비친 아서와 그의 ..

Film/Thriller 2019.10.07

컨트리 뮤직 메들리 _ 하늘 높이,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 0. 경쾌한 컨트리 음악 같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현란하면서 푸근한 중저음의 기타 소리, 늘어난 테이프처럼 몸을 기대게 만드는 나무의자, 붉은빛과 노란빛이 연인처럼 뒤엉켜 펼쳐지는 노을, 희끗희끗한 덥수룩 수염의 다소 마초적인 할아버지의 느낌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자유로움과, 새들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평화로움과, 그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37분간 잔잔한 메들리처럼 흐릅니다.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하늘 높이 - 국경의 철새들 :: Birders』 입니다. # 1. 우리말 제목은 입니다만 원제는 입니다. Bird + er + s. 직역하자면 '새... 사람' 쯤 되려나요? 접미사 '-er'은 행위자를 의미합니다. manager, player, employer 등 대부분 ..

꼭. 이렇게. 어려워야만. 속이 후련했냐! _ 아니마,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0. 미술관에 갈 때가 있습니다. 친구 없는 찐따가 혼자 다니면서 쪽팔리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죠. 쥐뿔 아는 게 없더라도 온 바닥청소 다하고 다닐 것만 같은 롱코트와 와인색 스웨터에 뿔테 안경을 끼고 한 손엔 스마트폰, 한 손엔 전시 브로셔를 든 채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면 손쉽게 지적인 느낌의 쿨한 인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꿀팁이니 메모해 두세요. 요즘엔 워낙 갤러리도 많고 양질의 전시도 많다 보니 사진전이나 고전 미술, 조형예술, 행위예술 등 다양한 전시들이 걸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나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건 만만한 현대미술입니다. 현대미술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2/3 지점 즈음 후미진 곳에 영상을 무한 반복해둔 암실 같은 게 곧잘 있는데요. 그런 모퉁이진 곳..

Film/Drama 2019.09.24

블랙 코미디 _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 0. 첼시는 능청스럽게 '백인스러움'을 연기합니다. 여기에서의 '백인스러움'이란 무신경하고 단편적이며 자기 확신이 강하고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고 철없어 보일 정도로 낙관적이고 오지랖을 부리고 무례하게 따지고 드는, 학습된 더 훌륭한 백인으로서의 행동 양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 Hello, Privilege. It's Me, Chelsea.』입니다. # 1. 백인의 특권을 전격 해부 하겠다 말하는 동안 유색인종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는 존재 자체로 풍자적입니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도덕적 무장을 위한 위선을 꼬집습니다. 스스로 희화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모른척 뻔뻔하게 연기하는 '..

Documentary/Social 2019.09.22

야한 척 _ 오, 라모나!, 크리스티나 제이콥 감독

# 0. 『몽정기』 같은 영화입니다. 사춘기 언저리의 사랑... 이라는 말로 순화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춘들의 영화죠. 이런 류는 기본적으로 유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찌질할 수밖에 없고 민망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아무리 유치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귀여워야 합니다. 아무리 찌질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순수해야 하고 아무리 민망하더라도 그보다는 더 솔직해야 합니다. '크리스티나 제이콥' 감독, 『오, 라모나! :: Oh, Ramona!』 입니다. # 1. 누가 봐도 잘생기고 비율 좋은 남자 주인공이 찐따라 우기며 등장합니다. 수다스러운 동성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 맞은편에는 첫눈에 반한 퀸카가 자리하고 있죠. 결국 영화는 저 퀸카 '라모나'와 어떻게든 한번 자보려는 발버둥... 인가 싶었는데 어라? ..

Film/Comedy 2019.09.21

인형극의 매력 _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루이 르테리에 감독

# 0. '짐 헨슨', '프랭크 오즈' 감독의 영화 의 프리퀄입니다. 만 사실 관심 없으시죠? 1982년에 개봉한 양키 꼬꼬마들을 위한 판타지 인형극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오래된 원작 역시 넷플릭스에서 함께 서비스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를 보실 분들 중 99.9999%는 전작을 보지 않으셨다는 데 500원 걸겠습니다. '루이 르테리에' 감독,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 The Dark Crystal』 입니다. # 1. 어느 것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굳이 프리퀄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통상 감독이라면 '프리퀄'을 만들 바에야 '리메이크'를 하고 싶었을 텐데요. 40년 가까이 되어가는 원작을 리메이크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을 테니까요. 원작의 주제의식을 계..

Series/SF & Fantasy 2019.09.12

스튜디오 카탈로그 _ 겸손한 영웅, 스튜디오 포녹 단편선

# 0. 동심을 자극하는 상상력.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 동글동글한 작화. 수채화풍의 다채로운 색감. 이 모든 것들 위로 흘러내리듯 어루만지는 음악까지. 아! 이거 '미야자키 하야오'네요. 2000년 전후로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벼랑 위의 포뇨』를 지나오신 분들이라면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무런 배경 정보 없이도 지브리의 작품들과 풍경과 분위기를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단편선을 제작한 '포녹'의 직원들이 '지브리'에서 나온 멤버들이기 때문이죠. 한국 드라마 영화의 특징이 '특별한 상황에 놓인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가득 담긴 진지한 고찰'이라 한다면, 일본 드라마 영화는 '소소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하고 풍부한 상상력..

Film/Animation 2019.09.07

나디아 여행기 _ 러시아 인형처럼, 레슬리 헤들랜드 제작

# 0. 제목 속 러시아 인형은 아마도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를 말하는 거겠죠. 꺼무위키에서는 '어머니를 뜻하는 Мать와 작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ешка의 결합을 어원으로 하는 전통인형으로 다산과 다복, 부유함과 행운을 기원하는 러시아의 상징물'이라고 기술합니다만... 대부분 "그 왜, 오뚝이 같이 생겨 가지고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는 거"라고 하면 알아먹는 목각인형 말하는 게 맞습니다. '레슬리 헤들랜드', '나타샤 리온' 제작, 『러시아 인형처럼 :: Russian Doll』 입니다. # 1. 다복과 다산의 상징답게 인형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론 각각의 인형이 다음 인형을 낳는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만, 보기에 따라선 모母인형을 반으로 가르며 더 깊이 안으..

Series/SF & Fantasy 2019.09.04

본건 있어 가지고 _ 대만 TV 시리즈 괴기특급

# 0.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감독은 뭐하는 사람인지 이전에 존재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193분에 걸쳐 방향성 없는 이미지 과잉이 펼쳐집니다. 중2병 돋는 앵글에 뒤틀린 어미 같은 과장된 연기가 담깁니다. 구청에서 찍어낸 관광지 기념품 같은 싼마이 질감과, 스노우 어플 느낌의 뽀샤시 필터와,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싸이월드 감성 흑백처리가 애저녁에 죽은 기괴함을 살려보려 인공호흡을 합니다. 감독 자신조차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듯합니다. 어디선가 본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카피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대만 TV쇼 넷플릭스 시리즈, 『괴기특급 :: Til Death Do Us..

Series/Thriller 2019.08.30

귀차니즘 ⅱ _ 시크릿 옵세션, 피터 설리반 감독

귀차니즘 ⅰ _ 시크릿 옵세션, 피터 설리반 감독 # 0. 관객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장르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주제에 친화적이지도, 공급자 친화적이지도, 심지어 돈줄인 제작자들에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엽기적일 정도로 감독에게 morgosound.tistory.com # 7. '페이지' 형사는 딸을 실종으로 잃은 인물로 소개되는데요. 이 설정이 서사에 기여하는 바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습니다. 딸이 실종된 이유에 대한 설명도, 형사가 하필 이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한 설득도 전혀 없습니다. 딸을 유괴한 범인이 알고 보니 제니퍼의 가짜 남편과 동일인물이라거나, 러셀이 딸 실종사건의 주요 참고인이라거나, 실종사건과 제니퍼 사건의 유사성이 있어 기시감이 사명감을 자극한다거나, 제니퍼가..

Film/Thriller 2019.07.27

귀차니즘 ⅰ _ 시크릿 옵세션, 피터 설리반 감독

# 0. 관객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장르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주제에 친화적이지도, 공급자 친화적이지도, 심지어 돈줄인 제작자들에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엽기적일 정도로 감독에게만 친화적입니다. 모든 캐릭터는 감독의 게으름에 복종합니다. 모든 장치들은 감독의 편의에 복무합니다. 모든 서사는 무책임하게 방치됩니다. 이따위 시나리오로 투자를 받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자본주의의 신이 감독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이자 관객에게 내린 최악의 형벌입니다. 관객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습니다. 장르적 재미란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전달할까라는 고민 역시 전무하죠. 감독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영화를 못 만드는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성취는 기념비적이라기에..

Film/Thriller 2019.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