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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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개봉 99

사장님, 스릴러 1인분 추가요 _ 침입자, 손원평 감독

# 0. 주인공은 보통 두 명입니다. 멜로라면 20대를 캐스팅하겠지만 중량감도 조금 필요한 스릴러에선 30~40대 배우를 섭외하는 게 정석이죠. 한 명은 영화 내내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잡으러 다닐 테구요. 나머지 한 명은 영화 내내 도망 다닐 겁니다. 둘 중 한 명은 놀래키는 역할, 다른 한 명은 놀라는 역할일 텐데요. 도망가는 쪽이 놀랄 수도 있고 쫓기는 쪽이 놀랄 수도 있습니다. 요 정도는 감독의 재량이죠. '손원평' 감독, 『침입자 :: intruder』입니다. # 1. 도망가는 애는 싸움을 겁나 잘하든 돈이 겁나 많든 머리가 겁나 좋든 쪽수가 겁나 많든 아니면 아싸리 만능약이 있든. 뭐가 되었든 특별한 능력이 있어 저게 말이 돼? 싶은 난관들을 아주 손쉽게 돌파합니다. 쫓아가는 ..

Film/Thriller 2021.06.25

직업병 _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

# 0. 문소리 감독은 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치열한 현실과 페이소스를 묘사합니다. 김윤석 감독은 을 통해 배우의 시선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을 풍부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정진영 감독 역시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 을 통해 배우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정체성 갈등을 전개합니다. 배우, 특히 배테랑 배우가 영화를 만들면 첫 작품에서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정진영' 감독, 『사라진 시간 :: Me and Me』입니다. # 1. 영화 초반 이영은 세 인격에 빙의됩니다. 돌아가신 수혁의 어머니와 코미디언 이주일, 레슬러 역도산이죠. 얼핏 세 인물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백종렬 감독의 처럼 저녁이면 랜덤 하게 찾아오는 각기 다른 인격의 예시인..

Film/Drama 2021.06.23

위령제 _ 후쿠오카, 장률 감독

# 0.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장률' 감독, 『후쿠오카 :: Fukuoka』입니다. # 1. '제문'의 헌책방입니다. 켜켜이 쌓인 헌책은 오랜 시간에 걸친 누적의 산물입니다. 책방은 축적된 기억의 공간이자 관념의 공간입니다. 환청이 들립니다. 이름 모를 남자의 목소리입니다. 모든 정보는 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있지만 남자의 목소리만큼은 순간 휘발되어 사라지는 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문이 전화를 걸어 해효의 소식을 묻는 동안 소담은 책방 깊숙한 곳에 숨겨진 하얀색 을 꺼내 듭니다. 등의 형상은 책방에 있는 것이라기엔 이질적입니다. 밝고 선명하며 장식 없이 둥근 모양입니다. 완전하고 원형적이며 순수합니다. 소담은 묻습니다. "아저씨, 이런 거 좋아해요?" 제문과 소담이 20년 넘게 연락하지 않..

Film/Drama 2021.06.21

이스라엘 캐슬 _ 피아니스트의 비밀, 이타이 탈 감독

# 0. 우리나라가 너희 나라보다 작을 수는 있어도 우리나라 역시 위대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만들고 세계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 김연아와 박지성의 오른발과 왼발이 있는 나라라고.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이타이 탈' 감독, 『피아니스트의 비밀 :: God of the Piano』입니다. # 1. 음악에 인생 갈아 넣은 피아니스트 '아낫'은 네지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은 히나타였습니다. 졸렬잎 마을 호카게들과는 달리 공과 사가 확실한 예술학교 교장 아빠는 끝내 딸을 인정하지 않았죠. 아낫은 한을 풀기 위해 민머리 남편을 낚아 2세를 통한 대리전을 계획합니다. 임신 중에도 피아노를 놓지 않을 정도로 부푼 기대로 아이를 낳았건만, 저런. 아기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군요. 하지만..

Film/Drama 2021.06.09

주인공만 3명 _ 조안, 김지산 / 유정수 감독

# 0. 이젠 제법 익숙한 소셜 미디어 까는 영화입니다. '김지산', '유정수' 감독, 『조안 :: Joan』입니다. # 1. 일반적으로 떠올릴 법한 소셜 미디어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소집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낸 단편입니다. 제프 올롭스키의 나, 츠노 메구미의 와 유사한 문제의식 위로 불쾌하고 섬뜩한 미스터리 호러의 장르적 재미를 살짝 더한 작품 정도로 이해하시면 적당하겠군요. 영화에는 총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안과, 소개팅남, 그리고 이름 모를 내레이터죠. 이야기는 조안이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데이팅 어플을 통해 새로운 남자와 소개팅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과정을 소셜 미디어의 의인화로서 내레이터가 전개하는 구성이죠. 각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대변합니다. '조안'..

Film/Thriller 2021.05.26

통제력의 상실 _ 리틀 조,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 0. 꽃가루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연인과 꽃구경하는 대신 고고하고 시크한 싱글 라이프를 택한 이유죠. 애인 사귈 능력은 되냐구요? 그게 중요한가요? 누가 너랑 사귀겠냐구요? 손님, 싸울래요?!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리틀 조 :: Little Joe』입니다. # 1. 굳이 말하자면 공포 스릴러 영화... 이긴 한데요. 솔직히 무섭다기보다는 '찝찝한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각기 다른 세 층위의 정서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 중첩되어 있는데, 그 실체는 구체적 공포보다는 일련의 과정이 낳게 될 미래에 대한 잠재적 공포에 닿아있기 때문이죠. 가장 표면의 테마라 한다면, 역시 유전자 조작 기술과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로 인한 리스크가 될 테구요. 그다음은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강요된 판단과 ..

Film/Thriller 2021.05.10

없다 _ 화이트 라이, 요나 루이스 / 캘빈 토마스 감독

# 0. 거짓말에 관한 영화입니다. 심리 드라마라는 거죠. '요나 루이스', '캘빈 토마스' 감독, 『화이트 라이 :: White Lie』입니다. # 1. 점점 더 깊은 거짓말의 수렁에 빠져드는 주인공 '케이티'의 심리상태를 추적합니다.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주인공의 헐벗은 모습과 특정 장면에서의 인물 배치, 음영의 활용 정도를 제외하면 '극'으로서 조작된 문학적 메타포는 절제되어 있습니다. 살갗이 틀 정도로 건조하고 냉정하게 주인공의 발 뒤를 물듯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언제가 될진 알 수 없지만 머지않아 터질 거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는 시한폭탄. 그 폭탄을 두 손에 꼭 쥔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주인공의 불안과 인지부조화를 직선적으로 쫓아가는 작품이죠. # 2. 심리 드라마의 평가는 대체로 주인공과..

Film/Drama 2021.04.22

수동 숨쉬기 _ 최후의 호흡, 리처드 다 코스타 / 알렉스 파킨슨 감독

# 0. 북해 해저에 고립된 잠수부 크리스 레몬스의 사고와, 그를 구조하기 위한 동료들의 고군분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리처드 다 코스타', '알렉스 파킨슨' 감독, 『최후의 호흡 :: Last Breath』입니다. # 1. 잠수 지원선 '토파즈'가 거친 북해의 격랑에 떠밀립니다. 챔버와 잠수부 사이에 연결된 케이블이 끊어지고 맙니다. 산소 공급은 중단되었고 수면으로 올라올 수도 없고 올라와서도 안 되는 상황. 5분여 밖엔 버티지 못할 산소통 하나에 의지해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깊은 바닷속에서, 크리스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작품은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1시간 여 까지는, 크리스의 약혼녀와 같은 팀 잠수사 데이브 유아사, 던컨 올콕을 비롯한 동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전개됩..

철창 안의 새 _ 엘리사와 마르셀라,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 0.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녀들을 싫어한 걸까. 그녀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사랑한 걸까.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엘리사와 마르셀라 :: Elisa y Marcela』입니다. # 1.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멜로보다는 에 더 가까울 영화입니다. '엘리사'와 '마르셀라'의 사랑이 쌓여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두 사람이 시대의 폭력을 피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떠도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더 많이 포착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20세기 초, '다양성의 가치'를 '종교적 미덕'이 폭력적으로 압도하던 시대.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치러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다룹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라는 점입니다. 가 아니라는 점이죠...

Film/Drama 2021.04.11

1달러 79센트 _ 러브 송 포 라타샤, 소피아 날리 앨리슨 감독

# 0. 아카데미가 한 달도 남지 않았네요. 이전 같으면 노미네이트 된 작품들을 챙겨보려다 티켓값에 허리가 휘거나 심지어 개봉조차 하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코로나로 인해 영화판 헤게모니가 멀티플렉스에서 OTT로 넘어간 덕에(?)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보다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이번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 중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작품만 해도 두 자리 수가 훌쩍 넘어가죠. 개꿀. 극한의 반골기질 덕에 남들이 호들갑 떨면 괜히 고까워 외면하기 일쑤입니다만 이상하게 또 이런 건 혹 해서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역시 찐따의 취향이란 건 이렇게나 종잡을 수 없죠. 나 같은 런타임 오지게 길고 대충 봐도 겁나 무거워 보이는 작품들에..

Documentary/Social 2021.04.01

유쾌하게 조롱당할 수 밖에 _ 디어스킨, 쿠엔틴 두피유 감독

# 0. "조르주는 전 재산을 털어 100% 사슴가죽 재킷을 구매한다. 덤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감독 행세를 하던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을 입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재킷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 이 설명을 읽고 어떻게 안 볼 수 있겠어요. '쿠엔틴 두피유' 감독, 『디어스킨 :: Le daim』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괴랄한 소개 그대로입니다. '조르주'라는 남자가 순도 100% 사슴 가죽 재킷 하나에 전재산을 꼬라박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의 털북숭이 호구를 낚은 사기꾼은 등쳐먹은 게 영 찝찝했던지 덤으로 캠코더를 하나 선물하죠. 사슴 재킷을 입고 신난 호구는 바에서 술을 마시는 데 웬 창녀가 직업이 뭐냐 묻자 영화감독이라 구라를 칩니다. 의자에 걸쳐둔 사슴 가죽과 복화술..

Film/Comedy 2021.03.02

나는 아니겠지 _ 아름다운 나라, 이시카와 케이 감독

# 0. "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 " 아, 그게 말이죠. 여기만 고치면 되는 게 아니라서요. " " 아... 그럼 다시 붙여야겠네, 그치? "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마지막 다섯 번째 단편입니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 『아름다운 나라 :: 美しい国』입니다. # 1. 반전주의 작품입니다. 과거 군국주의 시대에 대한 교훈을 잊고, 점차 전쟁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게 된 10년 후 미래를 상정합니다. 사실 상 전쟁 수행이 가능한 정식 군대가 된 자위대가 전쟁을 치르게 되다 못해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집해 전쟁터로 밀어 넣는 세상이죠.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전쟁을 부추기는..

Film/Drama 2021.02.02

먹어서 응원하자? _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후지야마 아키요 감독

# 0.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이번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한편을 꼽아야 한다면 전 이 작품을 고르겠습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네 번째 단편입니다. '후지야마 아키요' 감독,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 その空気は見えない』입니다. # 1.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인해 대기가 오염된 세상입니다. 더 이상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지하로 피신합니다. 엄마 '히토미'와 함께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벙커에서 살게 된 어린아이 '미즈키'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다른 모든 점을 차치하고. 대놓고 원전과 방사능을 거론한 영화를, 그것도 아직 아베 내각이던 시절에, 그것도 그렇게나 보수적인 일본 영화계에서 만들어냈다는 게 조금 놀랍기는 합니다. 타게팅을 외국 영화제 쪽..

Film/Drama 2021.01.30

흐린 기억속의 그대 _ 데이터, 츠노 메구미 감독

# 0.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다른 단편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내달리는 작품들이라 한다면, 이 작품은 배우 '스기사키 하나'와 함께 천천히 산책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말인즉 5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의 세 번째 작품으로서 안성맞춤이라는 뜻이죠.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세 번째 단편입니다. '츠노 메구미' 감독, 『데이터 :: DATA』입니다. # 1. 교복을 입은 딸이 도시락을 싸는 동안 아빠는 출근을 준비합니다. 아빠의 후리가케는 가다랑어 맛, 아니 김계란 맛, 아니 다시 가다랑어 맛입니다. 딸은 '모에'라는 사람과 아빠의 저녁 약속을 묻고, 아빠는 딸에게 셋이서 밥을 먹는 게 어떠냐 제안합니다. 종소리. 작게 보이는 여자의 사진에 가벼운 합장을 올린 후..

Film/Drama 2021.01.29

약속된 유토피아 _ 장난꾸러기 동맹,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

# 0. 원래부터 유서깊은 아이템이였습니다만, 갓세돌이 알파고로부터 1승을 따냇던 이후 더더욱 우후죽순 생겨난 AI 시대 절망편을 그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두 번째 단편입니다.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 『장난꾸러기 동맹 :: いたずら同盟』입니다. # 1. 오프닝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듯, 감시사회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따라다니며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것뿐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고 교정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른, 고성능 AI 시스템이군요. 대체로 이와 같은 아이템을 다루는 작품의 경우, 불특정 다수의 구성원으로서 번잡한 도시인을 감시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보편적입니다만, '키노시타 유스케' 감독은 그 대상을 학교를 다니는 어린아이들..

Film/Drama 2021.01.28

에피타이저 _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 0. 을 보고 난 후 뜬금없이 옴니버스 영화에 뽐이 왔네요. 적당한 영화가 어디 없을까 하며 OTT를 뒤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플랜 75 :: Plan 75』입니다. # 1.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에는 [찬성] 다른 하나에는 [반대]라는 글귀가 적혀있군요. 감독은 처음엔 반대의 의자에 앉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 관객을 설득합니다. 그런가 싶어 의자에 앉았더니 다시 찬성의 의자에 앉는 것이 옳지 않겠냐며 설득합니다. 갸우뚱하며 의자를 바꿔 앉았더니 감독은 다시금 반대의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합니다. 관객은 짧은 런타임 안에서 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

Film/Drama 2021.01.24

우희에게 _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임오정 감독

# 0. 연락 드럽게 안 하는 우희가 개 구하러 담 넘는 영화입니다.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중 세 번째 단편, 입니다. '임오정' 감독,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 Call If You Need Me』입니다. # 1. 세 단편 중 가장 이질적입니다. 강동완 감독의 이 연극, 김한라 감독의 이 동화라 한다면 임오정 감독의 영화는 에세이 쪽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작가의 통제하에 있는 조직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한 두 작품에 비해 이 영화는 훨씬 일상성이 강조된 구체적인 서사와 표현으로 전개됩니다. 앞선 두 편에서의 피크닉은 각각 캠핑장과 울릉도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려집니다만, 이 작품에선 독특하게도 그 역할을 [인물]이 대신합니다. 영신이죠. 그녀는 그녀가 가진 풍부한..

Film/Drama 2021.01.15

오그리 토그리 _ 대풍감, 김한라 감독

# 0.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나온 모솔 남자가 '여고 생활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면... 이런 비슷한 게 나오지 않을까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중 두 번째 단편, 입니다. '김한라' 감독, 『대풍감 :: The Silver Lining』입니다. # 1. 내러티브를 이해하는 게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대풍감'이라는 지역 명소에 얽힌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그곳을 찾아가는 밝고 건강한 청년들의 여행기라는 이미지를 엮은 후, 순풍 불면 쭉쭉 나아갈 수 있다 뭐 이런 류의 응원 메시지라는 뼈대 위에, 굳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설정의 집 나간 아빠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열린 문으로 나가는 벌레 등의 메타포를 집어넣어 요리조리 적당히 만들면 아이 따뜻해. 뭐 그런 거..

Film/Drama 2021.01.13

전봇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 _ 돌아오는 길엔, 강동완 감독

# 0.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옴니버스 영화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처음엔 세편을 묶어 하나의 글로 써볼까 했습니다만 '일상을 벗어나 관계와 삶을 돌아본다'는 느슨한 테마만 공유할 뿐 각 작품이 추구하는 바와 결이 전혀 다르다 느꼈기에 따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나눠 쓰게 되었네요. '강동완' 감독, 『돌아오는 길엔 :: On the Way Back』입니다. # 1. 앞만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입니다. 네 사람은 영화 시작부터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어느 누구의 것 하나 원만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가족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외면하는 가운데, 자신의 말이 전달되지 않는 것에는 또 상처 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키워드는 단절입니다. 캠핑장에 도착한 ..

Film/Drama 2021.01.12

티타임 ⅲ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morgosound.tistory.com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 morgosound.tistory.com # 30. 은 교황과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작동하는 '논리의 공간'입니다. 은 자연인으로서의 삶의 여정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심리적 공간'..

Film/Drama 2021.01.03

티타임 ⅱ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morgosound.tistory.com # 17. 차의 맛과 향이 충분히 우러나왔다면 이젠 마실 때입니다. 두 교황의 상반된 자기 철학에 대한 강경한 주장과 역설적인 입장이 충돌하는, '본론'이 이어집니다.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교황은 '베르골료' 추기경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철학적 대척점에서 자신을 비판한다 생각되는 '베르골료' 추기경에 대해, 교황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교황은 권위의 힘을 빌어 쏘아붙이듯 질문하고, 추기경은 ..

Film/Drama 2021.01.02

티타임 ⅰ _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 0. 일 년 내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커피를 많이 마시곤 합니다만, 손발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 한정으로는 따뜻한 차를 조금 더 자주 즐기곤 합니다. 찬장 가득 쟁여둔 티백을 하나 꺼내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두툼한 머그잔에 우려낸 후, 입이 델라 조심스레 홀짝이며 마시고 또 마시는 것만 한 소확행도 없죠. 이 영화는 마치 한잔의 차와 같은 작품입니다.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며 정갈한 영화입니다만, 동시에 손이 데일 듯 뜨거운 에너지가 담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감상하는 동안에도 충분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만, 다 마시고 나면 입안을 가득 메우는 향기처럼 길고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새겨진 아름다운 찻잔 속에서 논리의 창과 철학의 방패가 번득입니..

Film/Drama 2021.01.01

아담 샌들러 홈커밍 _ 머더 미스터리, 카일 뉴어첵 감독

# 0. 아담 샌들러 + 제니퍼 애니스턴입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말장난 코미디물이라는 거죠. '카일 뉴어첵' 감독, 『머더 미스터리 :: Murder Mystery』입니다. # 1. 말장난 코미디이자 대리만족 포르노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경제력을 가진 부호들 한복판에 떨어진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평범한 중산층 커플'이 그들 수준의 부를 맘껏 누리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즐기는 영화죠. 여기서 멈추면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부러움과 질투심, 열패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만 남게 될테니 끝나기 전에 현실로 돌아와 으쓱할 수 있도록 부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한방 먹이며 자존감을 회복할 겁니다. 그 한방이라는 것은 언제나 돈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역설하는 훈계질로 귀결될 가능성이 클테죠. # 2. 세부적인 방..

Film/Comedy 2020.11.15

아이 착해 _ 클라우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 0. 매년 한두 편씩은 꼬박꼬박 나오는 겨울겨울 한 분위기의 편안편안하고 선량선량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철딱서니 없는 금수저 '제스퍼'의 개과천선이라는 개인 서사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신화적 서사를 적절히 엮어낸 순진무구한 동화죠. 안정적인 이야기와 편안한 전개,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선량한 주제의식. 네 축의 든든한 기반 위에 펼쳐지는 풍부한 영상 구성과 장엄하면서도 섬세한 음악을 즐기는. 전형적인 디즈니식 성공 모델을 차용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클라우스 :: La leyenda de Klaus』입니다. # 1. 장난감 만드는 목수의 이름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익숙합니다. 의심을 확신으로 키우는 풍성한 흰 수염의 배불뚝이 외모. 주인공이 드나드는 굴뚝과, 뒤에..

Film/Animation 2020.11.14

나의 의미 _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에드 퍼킨스 감독

# 0.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알렉스'. 쌍둥이 형제의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마커스'. 알렉스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어 합니다. 마커스는 잊고 싶은 기억을 덮어두고 싶어 합니다. 오래도록 미뤄왔던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숨겨진 유년기를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사건의 실체를 알고 보면 감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반전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글을 읽기 앞서 영화를 먼저 보실 것을 권합니다. '에드 퍼킨스' 감독,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 Tell Me Who I Am』입니다. # 1. 당사자에겐 외람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모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시합니다. 설마 하니 알렉스 마커스 형제 부모의 비도덕..

고오급 화면보호기 _ 무빙 아트, 루이 슈워츠버그 제작

# 0. 정적인 분위기의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입니다. '루이 슈워츠버그' 제작, 『무빙 아트 :: Moving Art』입니다. # 1. 회차에 따라 시즌에 따라, 대양이나 꽃, 숲, 폭포와 같은 특정한 자연물을 중심으로도 아이슬란드, 아프리카, 훗카이도와 같은 지역으로도 앙코르와트나 코사무이, 마추핏추와 같은 유적이나 문화권으로도 구성됩니다만 그래봐야 작품에 대한 감독의 개입은 구성물을 느슨하게 엮어내는 테마, 그뿐입니다. 기껏해야 오프닝 귀퉁이에 남겨둔 한마디 문장이 전부입니다. 피사체의 미려한 모습을 담아내는 풍성한 구도입니다. 현장음을 최대한 선명하게 담아내는 가운데 이를 효과적으로 조력하는 음악입니다. 고요하고 장엄한 분위기만이 존재합니다. 심장의 박동을 최대한 늦추고, 호흡을 최대한 깊게 만드..

엉성 _ 어멍, 고훈 감독

# 0. 뭘 하고 싶은 영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암에 걸린 엄마가 등장하긴 합니다. 대립관계의 아들도 등장합니다. 제주 문화도 등장은 하죠. 하지만 평생 물질하며 가정을 건사한 제주 해녀의 생애를 진중하게 조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구요. 엄마와 아들의 갈등과 교감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를 만든 것도 아닙니다. 눈 딱 감고 화끈하게 제주 홍보물을 만든 것도 아니죠. '고훈' 감독, 『어멍 :: Eomung』입니다. # 1. 이 영화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숙자'뿐이죠. 나머지 모두는 그녀의 설정을 보강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아들 '율'은 한심해 보이기 위한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수집해 기워놓은 인물입니다. 이 인물의 인격과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가운데 마치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불효자와 같은 방식..

Film/Drama 2020.09.21

멀리 _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감독

# 0. 빨리 말고, 먼저 말고, 잘 말고, 그저 멀리. 멀리멀리. 지희 씨의 노래는 멀리멀리. '현진식' 감독,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 Free My Soul, Free My Song』입니다. # 1. 기타리스트 '김지희'씨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기타와 사랑에 빠진 스물넷의 소녀. '정성하'와 '앤디 맥키'를 동경하는 새내기 기타리스트. 아직은 겁도 많지만 엄마의 뒷모습을 마음으로 연주하는 멋진 딸. 늘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무대 위에서라면 강단 있게 곡을 완주하는 아티스트. 열 마디 말 대신 음악과 밝은 웃음으로 소통하는 그녀는 지적 장애인입니다. # 2. 쓸데없이 부자연스러운 비극이나 연출된 희극 없이 담담히 흘러가는 맛이 좋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소 느리기도 하고 때론..

Documentary/Art 2020.09.17

다름을 이야기하는 틀린 영화 _ 존의 컨택트, 매튜 킬립 감독

# 0.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는 상식을, 다름과 틀림을 혼용하는 건 틀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머나먼 우주 너머 다른 존재들과의 접촉을 꿈꾸는 '존'은 분명 평범과는 거리가 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틀린'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튜 킬립' 감독, 『존의 컨택트 :: John Was Trying to Contact Aliens』입니다. # 1. 목표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뒤따르는 부나 명예, 인정, 성취, 흔적 따위의 결과물들 역시 중요한 동기가 되곤 하죠. 하지만 '존'의 목표에는 이와 같은 부산물 혹은 불순물이 없습니다. 그의 삶은 형식논리적인 면에서 부나 명예는커녕 최소한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행동으로 점철됩..

정의란 무엇인가 _ 오버 데어, 장민승 감독

# 0.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아시나요. 저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 책과 『완벽에 대한 반론』에, 왠지 제목이 비슷한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까지 한꺼번에 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세 권 모두 절반정도 읽다 덮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책장에 꽂아두면 제법 폼이 나는 책들이라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까운 친구들은 아니니까요. 두껍고 묵직한 덕에 북앤드로도 쏠쏠합니다. 하지만 이글에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의는 '센델' 교수의 Justice가 아닙니다. Definition이죠. 지금 낚시하는 거냐구요? 맞는데요? 너 이자식 이과냐구요? 그것도 맞는데요? '장민승' 감독, 『오버 데어 :: over there』입니다. # 1. 오..

Documentary/Art 202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