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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의 매력 _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루이 르테리에 감독

그냥_ 2019. 9. 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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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짐 헨슨', '프랭크 오즈' 감독의 영화 <다크 크리스탈(1982)>의 프리퀄입니다.

 

만 사실 관심 없으시죠? 1982년에 개봉한 양키 꼬꼬마들을 위한 판타지 인형극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오래된 원작 역시 넷플릭스에서 함께 서비스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를 보실 분들 중 99.9999%는 전작을 보지 않으셨다는 데 500원 걸겠습니다.

 

 

 

 

 

 

 

 

'루이 르테리에' 감독,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 The Dark Crystal』 입니다.

 

 

 



# 1.

 

어느 것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굳이 프리퀄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통상 감독이라면 '프리퀄'을 만들 바에야 '리메이크'를 하고 싶었을 텐데요. 40년 가까이 되어가는 원작을 리메이크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을 테니까요.

 

 

원작의 주제의식을 계승하면서 서사를 재해석하겠다! 옛 향수를 가진 올드팬들과 새롭게 세계관을 만나게 될 관객 모두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겠다! 40여 년간 잠자던 대서사가 다시 깨어난다! 더빙한 배우들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포스터에 땋!! <트렌스포터>와 <인크레더블 헐크>를 제작한 '루이 르테리에' 감독 제작 땋땋!!!

 

"더 이상의 판타지는 없다! -영화 비평 매거진 '드토보도 모탄'-"

"반지의 제왕 게 섯거랏!"

"엄마! 다크 크리스탈 꼭 보고 싶어요!"

"여보, 올 추석엔 아버님 댁에 다크 크리스탈 놔 드려야겠어요!"

 

 

... 이런 거 하고 싶지 않았겠느냔 거죠. 이쪽이 여러모로 제작하기에도 장사하기에도 용이했을 텐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감독과 제작진은 프리퀄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왜 때문일까요?

 

 

 

 

 

 

# 2.

 

프리퀄을 제작한다는 것은 82년작을 '이미 완벽하고 완전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영화감독들이 굳이 '빅터 플레밍'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시리즈,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을 리메이크하지 않는 건 그들의 서사가 지금 통용되지 않을 만큼 낡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너무도 탁월해 리메이크할 여지가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듯 말이죠. 이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콧대 높은 창작자들이 원작에 보낼 수 있는 존중의 최대치입니다.

 

제작진은 82년의 전작에 '프리퀄'이란 형식으로 찬사를 보냅니다. 제작진이 전작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은 없을 겁니다. 제작진이 시리즈의 덕후라는 것보다 더 작품의 퀄리티를 보장해 줄 방법 역시 없죠.

 

프리퀄을 만들기로 함과 동시에 감독은 큰 숙제를 안게 됩니다. 필연적으로 82년작을 나중에 이어 보게 될 뉴비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기술력으로 짓눌러 원작을 폄하당하게 해선 안됩니다. 그렇다고 30년도 더 된 낡은 기법을 고스란히 가져다 지금 시대에 재현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겠죠. 따라서 이 드라마는 이전 작품의 문법들을 영화의 주로 삼아 계승하면서 동시에 화려한 현대적인 시각 연출 기술들을 보조적으로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됩니다.

 

그리고 제작진은 이 어려운 미션을 성공합니다. 훌륭합니다. '첫 달 무료 넷플릭스 뽕 뽑는 방법' 같은 수많은 포스트들에서 이 드라마는 한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 3.

 

현대 영화의 그래픽은 '현실감'을 최고의 가치로 칩니다. 디즈니에서 리메이크한 '존 패브로'의 <라이온 킹>이나 '가이 리치'의 <알라딘>, '앤디 서키스'의 <모글리> 같은 실사 영화 프로젝트들은 이런 일련의 기조를 대변한다 할 수 있죠.

 

반면 이 드라마는 인형극답게 '현실감'이 아닌 '현장감'을 지향합니다. 인형으로 묘사된 '스켁시스'와 '겜플링' 등은 결코 '현실감' 있는 존재가 아닐뿐더러 애초에 현실감 있는 존재로 그릴 생각 조차 없습니다. 표정이 없는 데 더 말해 뭐하나요. 대신 표정을 제한적으로 구현할 수밖에 없는 인형들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인형극 특유의 과장된 움직임들과 고유의 디테일한 질감이 압도적인 '현장감'을 제공합니다. 1화까지만 해도 되려 어색하고 조악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인형극이 2화, 3화 넘어가면서부터 유의미한 몰입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능한 모든 연출은 인형극으로 표현한다는 전제 위에 작동됩니다. CG로 오브젝트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가상의 구도를 잡는 것과, 실물을 만들어 놓고 실제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 사이에 아직은 메우는 것이 요원해 보이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득 '독창성'이란 '새로움'보다 '희소성'에 더 연동되어 있는 가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가 선보이는 인형극은 새로운 장르이기는커녕 소위 한물간 낡은 장르입니다만, 그런 낡음을 메우고도 남을만한 퀄리티를 확보하고 나니 되려 참신해 보일 지경입니다.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를 보면서 느끼는 정서를 다른 작품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한 대체제가 떠오르지는 않는군요. 거 보세요. 『기묘한 이야기』고 나발이고 이거 봐야 된다니까요?

 

 

 

 

 

 

# 4.

 

그렇다고 단순히 1980년대의 인형극을 재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감독은 절제되면서 동시에 풍부한 현대적 연출을 통해 고전적 인형극 이상의 트렌디한 결과물을 도출합니다. 7개의 겜플링 씨족이 살고 있는 각기 다른 환경의 풍부한 세계관은 섬세한 그래픽 효과 덕입니다. 여자 겜플링이나 사막을 나는 가오리(?) 같은 비행하는 요소들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녹여낸 것도 현대적인 기술 덕입니다. 달리는 마차와 같이, 인형극의 제한된 물리적 환경을 넘어서는 속도감을 구현해낸 것도, 적절한 광원 효과를 통해 극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도, 실제 인형을 촬영하면서도 미세하게 표정을 조정해 감성의 영역을 얹어 낸 것도 모두 지금 시대 연출의 힘입니다.

 

다만, 앞서 누차 말씀드린 대로 이 모든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형극을 '더 인형극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관객이 인형극을 더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만 적용됩니다. 제작진은 『다크 크리스탈』이라는 작품을 재해석하는 매 순간마다 원작 영화와, 인형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존중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 5.

 

새대가리 파충류 인형에 다 큰 어른들이 무서움을 느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실 겁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리안'의 절망에 같이 가슴 아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용기를 잃지 마라 말하는 아버지의 마지막에 엄숙함을 느끼실 겁니다. '디트'의 순수함과 헌신, '브레아'의 총명함에 사랑스러움을 느끼실 겁니다. '올모드라'의 결단에 비장함을, '헙'의 유쾌함과 '로어'의 애교에 감동을 느끼실 겁니다.

 

'마더 오드라'와 '아처'의 대화에서 오랜 우정을 다룬 드라마를 느끼실 겁니다. '리안' 부자와 '브레아' 모녀 각각의 갈등과 교감에서 가족 드라마를 즐기실 겁니다. 듀얼 블레이드를 든 '리안'과 친구들의 마지막 결전에서 액션의 쾌감을 보게 되실 거고, 땅 속 동굴에 펼쳐진 문명을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세상 시원한 스릴을, 눈으로 뒤덮인 마을과 숲 속 마을을 넘나드는 동안 유쾌한 어드벤처를, 쏟아져 내려오는 거미떼에 오싹한 호러를, 세뇌된 겜블링들의 초점 잃은 표정과 입을 꿰맨 노예들의 모습에서는 그로테스크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호러? 그로테스크? 그건 좀 싫으시다구요?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풍부함과는 별개로 일련의 정서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자극적으로 구현되어 '불편'해지는 부분들은 또 없거든요. 솔직히 마지막화까지 보고 난 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형극이라는 장르가 아이들만을 위한 유치한 장르가 아니라는 걸 말이죠.

 

 

 

 

 

 

# 6.

 

솔직히 참신한 서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애초에 82년에 만들어진 영화의 프리퀄을 이야기하며 '서사가 낡았다' 평하는 건 가혹한 걸 겁니다. 고전적이라고 해야죠. 태초에 신적인 존재였던 것이 '스켁시스'와 '미스틱'으로 분화되었다는 설정은 『디아블로』의 세계관도 살짝 연상되구요, 『드래곤 볼』의 신과 피콜로의 관계와도 비슷합니다. 대자연과 하나 된 존재들이나 정령과 같은 이미지들은 『반지의 제왕』과 같은 유서 깊은 판타지들을 더 말랑말랑하게 매만져 놓은 듯한 느낌도 들구요. 이처럼 이젠 클리셰로 느껴지는 익숙한 무언가들의 오리지널리티를 목격하는 기분이 미묘합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익숙한 설정이나 세계관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덕에 설정을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으실 거란 점입니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늘려놓은 서사와 세계관이 아니라는 점도 훌륭합니다. 10편에 걸친 각 화가 모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독립된 밀도 높은 서사를 가집니다. 메인 서사와는 무관한, 대충 각 씨족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런타임을 때우는 식의 연출은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10시간에 걸친 드라마를 보면서도 지루해 스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내력이 엉망진창인 제가 그렇게 느꼈다면 이건 대단한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죠.

 

 

 

 

 

 

# 7.

 

판타지물을 좋아하신다면 이 드라마는 반드시 보시라 말하겠습니다.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이 드라마는 충분히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화려하고 유려한 시각적 연출을 좋아하신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드리겠습니다. 장중한 음악에 곁들여진 비장한 대서사를 좋아하신다면 역시 이 드라마를 추천드리겠습니다. 높은 몰입도의 이야기나 완성도 높은 캐릭터들의 모험, 호러와 공포를 좋아하신다면 이 드라마는 어떠신가 권하겠습니다. 네. 그냥 어지간하면 다들 보세요. 안 보면 뭐다? 바보! '루이 르테리에' 감독,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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