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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Social

블랙 코미디 _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그냥_ 2019. 9.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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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첼시는 능청스럽게 '백인스러움'을 연기합니다. 여기에서의 '백인스러움'이란 무신경하고 단편적이며 자기 확신이 강하고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고 철없어 보일 정도로 낙관적이고 오지랖을 부리고 무례하게 따지고 드는, 학습된 더 훌륭한 백인으로서의 행동 양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

Hello, Privilege. It's Me, Chelsea.』입니다.

 

 

 

 

 

# 1.

 

백인의 특권을 전격 해부 하겠다 말하는 동안 유색인종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는 존재 자체로 풍자적입니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도덕적 무장을 위한 위선을 꼬집습니다. 스스로 희화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모른척 뻔뻔하게 연기하는 '백인스러움'과, 진지한 표정으로 울분을 토하는 유색인종 인터뷰이들의 신랄한 비판이 대조적입니다. 코미디언 첼시 핸들러를 인터뷰어로 내세운 것은 역시 최고의 선택이죠.

 

날 선 사회적 성찰이란 건빵 사이사이로 유쾌한 풍자라는 별사탕을 빼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보는 듯 특유의 리듬이 이목을 끕니다. 역시 이런게 진짜 풍자고, 진짜 블랙 코미디고, 진짜 B들의 농담이고, 진짜 코미디언이죠.

 

 

 

 

 

 

# 2.

 

인종차별을 이야기할 때면 습관처럼 유색인종을 찾아가 묻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냐',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냐', '무슨 일을 겪었냐',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인종차별은 어디까지나 백인들의 생각이며, 백인들의 이야기고, 백인들의 역사이며, 백인들의 문제라는 걸 서두에서부터 환기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폭행죄는 폭행범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음주운전은 어디까지나 음주운전자의 문제죠.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 있었으며,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저질렀느냐가 주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는 해야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해자에게 적합한 책임을 묻기 위한 보조적인 일일 수밖에 없죠. 문제는 가해자의 탓이고, 해결 역시 가해자의 몫임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에 있어서 만큼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차별받는 피해자들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피해자들의 상황과 피해자들의 입장을 듣는 동안 가해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 3.

 

남들 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감독은 꾸역꾸역 질문을 되감고 또 되감으며 돌아갑니다. 서두에서 이 문제는 백인들의 문제라는 걸 환기한 감독은 다시 한번 더 질문을 수정합니다.

 

인종차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묻는 건 제게 마다가스카르 전통음식을 해내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리를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이전에 마다가스카르 전통음식이 무엇이냐 이전에, 마다가스카르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데 저더러 뭘 어쩌란 건가요. 이 문제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직 문제가 존재한다는 인식부터 충분히 공유하고 있지 못한 시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것 자체가 공염불입니다.

 

 

 

 

 

 

# 4.

 

첼시는 상당 시간을 백인들, 그중에서도 인종 차별 문제에 배타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데 할애하는데요. 백인들의 대답은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인종차별과 관련된 문제를 대결로 받아들입니다. 첼시가 몰아붙일 때마다 강한 적개심을 내보입니다. 올바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 충돌의 문제로 이해합니다.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봅니다. 상대가 따가는 만큼 자신들은 잃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발짝 한 발짝 물러설 때마다 낭떠러지에 가까워진다 믿습니다.

 

타석에 서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3루에서 태어나 백인 부모가 쳐준 뜬 공 플라이에 홈 베이스를 밟으며 자신의 성공적 무용담을 풀어놓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 역시 덕아웃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역시 짙게 묻어납니다. 그동안 해왔던 3루에서 내달린 홈 베이스로의 전력질주가 부정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인터뷰이들을 관통합니다. 자신의 삶과 노력과 정체성이 모조리 부정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게 당연합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절박하게 방어하고 있습니다.

 

유달리 유색인종에게 더 가혹한 경찰의 태도, 이를테면 불심검문이나 과잉 진압과 같은 부정할 수 없는 근거 앞에서 차마 백인에게 특권이 있다 말하지는 못하고 흑인들에게 '비특권'이 있긴 한 것 같다 말하는 장면은 역설적입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풍자적 코미디를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모순을 견뎌내야만 하는 멘탈리티가 이해되는 지점도 없잖아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5.

 

하지만 백인 기득권층의 비겁한 자기모순과는 별개로, 진짜 특권이란 걸 누려보지 못한 백인들도 존재합니다. 흑인들과 함께 사는 저소득층 커뮤니티에서 성장한 백인들은 자신들 역시 흑인들과 함께 부대끼며 비슷한 기회에서 비슷한 평가를 받으며 살아왔다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죠. 자 그럼 백인의 특권은 없어지는 걸까요? 감독은 자신이 해부해 보고자 하는 이 '백인의 특권'이란 놈의 정체를 다시금 고민합니다.

 

감독은 백인의 특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발동되는 것은 아님을 주장합니다. 무언가 행동을 취할 때 선택적으로 작동되는 것이죠. '케빈 하트'와 '첼시 핸들러'가 성공적인 코미디언이 된다라는 잘한 행동을 하기 위해 건너야 하는 난관의 두께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녀의 전 남자 친구 '타이션'과 '첼시 핸들러'는 비슷한 유년기의 쓰레기와 같은 일탈을 해왔지만 '타이션'이 14년 동안 지옥 같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녀는 사랑받는 코미디언이 되었죠.

 

결국 인터뷰의 결말은 다시금 이 '백인의 특권'이란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로 돌아갑니다. '전격 해부'해 보겠다는 다큐멘터리가 해부는커녕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전격 해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문제가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는 선으로 끝난다는 게 문제의 한계를 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명확히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전격 해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인식의 공유가 중요하다 말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 6.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종차별은 우리에겐 강 건너 불이긴 합니다. 욕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론 니그로나 깜둥이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 화들짝 놀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우린 흑인들을 노예로 부린 적이 없는데 말이죠.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노예제와 누적된 폭력에 있어 우리가 책임의식을 공유할 지점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차라리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라면 또 모를까.

 

까놓고 양키 지들도 우리의 식민지배 역사에 쥐뿔 관심 없잖아요? 물론 세계사적 소양을 바탕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공감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만, 그걸 넘어 무슨 명예 백인들도 아니고 자신의 정체성을 백인에 싱크로를 맞추고 흑인들에 대한 부채의식까지 공유하고 있는 황인종 한국인들을 보면 자신들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 뽕에 취해있는 동남아인들의 한심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이 다큐멘터리는 비단 인종 차별을 넘어선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과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린 어떻게 우리의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가 되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문제의 출발은 인식의 공유에서 시작되고, 그 인식의 공유가 얼마나 탄탄하게 뿌리내리는가가 해결의 추진력을 결정한다는 것 말이죠. 특히나 요즘은 확인된 사실에 대한 공통된 인식의 공유가 더 절실해진 가짜 뉴스의 시대이기도 하니까요.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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