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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신선도만 인정 _ 분노, 키엣 르-반 감독

그냥_ 2020. 7.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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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베트남 영화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그린 파파야 향기』를 보고 싶어 찾아보려다 포기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베트남 영화와는 그동안 연이 없었는데요. 나름 기대가 큽니다. 베트남의 영화들은 또 어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줄까요?

 

 

 

 

 

 

 

 

'키엣 르-반' 감독,

『분노 :: Furie, Hai Phuong』입니다.

 

 

 

 

 

# 1.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신선하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시나리오는 부실합니다만 이색적인 아이템들과 접근법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겁습니다. 베트남하면 쉽게 떠올릴법한 원뿔형 삿갓 '논라Nón Lá'를 뒤로 을러멘 주인공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목이 집중됩니다. 강가에 면해 길게 펼쳐진 생동감 넘치는 시장의 전경과 다채로운 염료들로 염색된 옷가지들이 매달린 집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영화가 시작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베트남 특유의 맛깔스러운 향신료 냄새가 스크린을 넘어 흘러내리는 듯하죠.

 

 

 

 

 

 

# 2.

 

총기 대신 중식도가 휘날리고 재떨이 대신 잘 익은 열대 과일이 뚝배기를 부수는 액션이 즐겁습니다. 번화한 도심 속을 내달리는 값비싼 자동차 대신 강을 질주하는 통통배와 대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스쿠터의 액션 역시 즐겁습니다. 홍콩식 무협 액션과 현대적인 실전 액션의 양쪽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는 듯한 애매모호한 연출이 나름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 냅니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는 보랏빛 사이공은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분노의 도시를 효과적으로 묘사합니다.

 

 

 

 

 

 

# 3.

 

이야기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적어도 경험적으론 시종일관 흥미진진할뿐더러 그 이전에 무엇보다도 웃깁니다. 비하의 뜻이 아니라 마치 전혀 만져본 적 없는 처음 접한 선물을 손 위에 가지고 노는 것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보는 동안의 흥분된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좋습니다. 여기까지는요.

 

 

 

 

 

 

# 4.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서사는 단순합니다. 납치된 딸을 엄마가 구하러 가는 동안 악당들을 도륙하는 액션물이죠.

 

『아저씨』나 『테이큰』처럼 상남자 스타일의 마초가 추격자인 경우엔 사람을 갈아내는 학살잼을 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고 『킥 애스』나 『악녀』처럼 여리여리한 주인공이 추격자인 경우엔 갭모에의 반전 매력을 즐기는 쪽으로 방향이 설정됩니다. 당연히 이 영화는 후자가 되겠죠.

 

 

 

 

 

 

# 5.

 

액션 쾌감을 즐기는 장르 특성상 보통 영화 1/3 정도를 차지하게 되는 배경 이야기들은 특별히 거창하거나 대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당히 영화를 보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구색만 갖춰내도 나쁘지 않습니다. '존 윅'을 빡치게 하는 데 강아지 한 마리면 충분하듯 말이죠.

 

이 영화의 문제는 이 특별할 필요 없이 적당히 말만 되면 되는 일관된 배경이라는 걸 만드는 데 어설펐다는 점입니다.

 

 

 

 

 

 

# 6.

 

일단 대부분의 설정들의 의도가 너무 단편적이고 또 노골적입니다. 특히 주인공 캐릭터는 온갖 설정으로 뒤덮인 누더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주인공이 싸움을 잘해야 액션이 만들어지니 주인공의 아빠는 무술 사범이 되어야 한다는 식입니다. 납치당한 후 구출해야 할 아이가 있어야 하니 사생아를 하나 낳아야 하고, 사생아를 가져야 하니 술집 창부로 일하게끔 만든다는 식입니다. 도와줄 사람이 없어야 하니 가족과 의절할 만큼의 일탈을 해야 하고, 마지막 안전한 신파적 결론을 내기 위해서 무뚝뚝한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입니다.

 

 

 

 

 

 

# 7.

 

보트 타고 튄 납치범들은 아이를 다시 버스에 옮겨 실은 후 빤스런을 치는 데요. 주변 상인들이 그 차량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우기는 순간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나 귀를 의심하게 됩니다. 인신매매를 위한 아이들을 기차 화물칸에 태웠다고 우기는 순간 인내심이 끊어지는 소리가 어떤 건지 알게 됩니다. 베트남에선 범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상식인 걸까요.

 

이런 어설프다 말하기도 민망한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한 이유 역시 너무 뻔합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영화의 배경을 옮기면서 주인공도 데려가야 하다 보니 주변 상인들이 알려줬다고 대충 뭉개는 선택을 한 거죠. 어디선가 감명받은 열차 지붕과 칸 내를 오가는 액션 시퀀스를 소화하려 하다 보니 아이들을 열차에 태울 필요가 있었던 거구요. 죽은 아빠의 예토 전생에 힘입어 태보 하는 조혜련 닮은 최종 보스를 무찌른 주인공이, 막판에 무술로 졌다고 할 수는 없다 보니 영화 내내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총기 액션으로 대충 마무리 하자는 식입니다. 조악하죠.

 

 

 

 

 

 

# 8.

 

감독의 편의적 의도에 맞춰 설정이 누더기처럼 조립된다는 말은 역으로 의도가 없는 설정들은 전혀 회수되지 않은 채 휘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시작 고리대금업과 귀금속을 저당 맡기려는 장면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빌린 돈을 갚지 않아 주인공에게 다리를 다치게 되는 빌런의 동생과 관련된 설정 역시 휘발됩니다. 납치된 아이들이 한둘이 아닌 탓에 <엄마의 업보로 인한 납치와 추격, 그리고 복수와 반성>이라는 단단한 인과가 바스러지고 나면 딸은 엄마와 상관없이 그저 인신매매범들에게 잘못 걸린 운 나쁜 아이가 되고 말죠.

 

 

 

 

 

 

# 9.

 

액션의 구성에 있어서도 아쉬움은 있습니다. 어깨에 구멍까지 뚫린 빼빼 마른 미모의 여배우가 무술 좀 배웠다고 숱한 장정들을 떼로 날려버린다는 건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악녀』나 『미옥』과 같은 영화들이 총기 액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건 여성의 근력이라는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난 다대일 액션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죠. 정 무술 액션을 만들고 싶었다면 차라리 진짜 운동 빡세게 한 배우를 제대로 케스팅을 하던가, 그럴 수 없었다면 무술이 아니라 칼을 쓰는 쪽으로 풀던가. 무슨 내공 타령하는 『동방불패』도 아니고. 2020년에 이런 식은 좀 곤란하죠.

 

 

 

 

 

 

# 10.

 

그 외의 부차적인 사족을 조금 더 달아보자면 제목 값을 하기 위해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주인공이 영화 내내 너무 화가 나 있다는 점도 작품을 쓸데없이 무겁게 만드는 단점입니다. 위기상황마다 죽은 아빠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예토 전생해 버프를 준다는 식의 연출은 너무도 시대착오적이고, 화만 내던 주인공이 갑자기 전혀 불필요한 순간에 너무 많은 드라마적 감정을 쏟아낸다는 것 역시 영화와 관객이 따로 노는 대목입니다.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처럼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버겁다는 점도 (영화의 잘못은 아닙니다만) 관람을 힘들게 하는 요소임에는 분명합니다.

 

 

 

 

 

 

# 11.

 

음... 글을 쓰다 보니 너무 매몰차게 깐 느낌이 없잖아 있어 민망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종합적으로는 제작 여건을 감안하면 썩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가슴 뛰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액션! 황홀한 심미적 미장센! 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는 호쾌한 물량전! 눈문을 뚝뚝 흘리게 만드는 깊은 페이소스!! 이런 거 기대하지 마시구요. 익숙한 미국이나 유럽, 동북아 영화 이외에 독특한 문화권의 오락 영화를 한편 가볍게 즐겨볼까? 접근하신다면 신선한 재미를 맛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키엣 르-반' 감독, 『분노』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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