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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SF & Fantasy

나디아 여행기 _ 러시아 인형처럼, 레슬리 헤들랜드 제작

그냥_ 2019. 9. 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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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제목 속 러시아 인형은 아마도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를 말하는 거겠죠. 꺼무위키에서는 '어머니를 뜻하는 Мать와 작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ешка의 결합을 어원으로 하는 전통인형으로 다산과 다복, 부유함과 행운을 기원하는 러시아의 상징물'이라고 기술합니다만... 대부분 "그 왜, 오뚝이 같이 생겨 가지고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는 거"라고 하면 알아먹는 목각인형 말하는 게 맞습니다.

 

 

 

 

 

 

 

 

'레슬리 헤들랜드', '나타샤 리온' 제작,

『러시아 인형처럼 :: Russian Doll』 입니다.

 

 

 

 

 

# 1.

 

다복과 다산의 상징답게 인형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론 각각의 인형이 다음 인형을 낳는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만, 보기에 따라선 모母인형을 반으로 가르며 더 깊이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구조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루프물의 구조를 가진 이 드라마의 제목이 다른 것도 아닌 『러시아 인형처럼_Russian Doll』인 건 어쩌면 큰 힌트일 수도 있겠군요.

 

루프물에서 '동일한 경험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건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경험이 동일해야 동일한 시간에 갇힌다는 설정에 몰입하기에도 편리하고 특정 시간에 혼자 놓인다는 고립 공포도 강화되고 또 탈출하기 위한 일관성 있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루프물에 대한 수요가 애초에 "그때 그 순간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걸"이라는 누구나 가질만한 후회의 감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일 겁니다.

 

반면 이 시리즈는 일반적인 루프물의 법칙을 위반합니다. 루프가 반복될 때마다 환경이 달라지거든요. 전의 시간으로는 돌아가지만 물건이 사라지거나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져버립니다. 독특한 설정 덕에 드라마는 굉장한 시공간적 입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크로와상의 단면처럼 납작한 시간이 겹겹이 겹쳐지는 여타 루프물들과는 달리 동일한 시간 축 위에서 벌어진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각각 독립된 조건 위에서 벌어진 독립된 사건이라는 볼륨이 두터운 루프가 중첩되는 상황을 목격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 2.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작품을 한 인물,

아마도 나디아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시간이 반복될 때마다 번거로울 수 있는 주변 사물들이 사라지다 마지막엔 파티가 통째로 사라지는데요. 이를 무의식의 영역,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 바라본 거죠. 코미디 드라마의 꼴을 띄고는 있지만 사실은 대단히 프로이트적인 심리 드라마일지도 모르겠군요.

 

주인공의 외모는 추측에 확신을 더합니다. 여타 인물들은 주변 환경과 동화되는 외향을 하고 있습니다만 주인공 나디아만은 환경과 최대한 분리된 존재로 바라보게끔 유도되어 있거든요. 물론 '나타샤 리온'이 원래부터 개성적인 외모의 배우이긴 합니다만 머리의 색감이나 복장의 스타일은 분명 의도된 것이라 봐야 합니다. 쪼그만한 체구에 몸뚱이만 한 새빨간 붉은 곱슬머리의 주인공은 도시의 내부인이 아니라 도시를 방황하고 표류하는 객체처럼 느껴집니다.

 

 

 

 

 

 

# 3.

 

루프의 시작은 파티입니다. 술과 마약과 음악과 춤이 가득한 공간이죠. 나디아의 표면입니다. 하강하는 이미지의 계단을 통해 표면으로부터 더 깊은 내적 공간으로 내려가려 하죠. 하지만 계단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루프는 그녀의 움직임을 철저히 방해합니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선 무의식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거죠.  주인공은 창문을 넘어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갑니다. 그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디아가 심연으로 다가가는 걸 막던 루프도 '비상계단'은 막지 못합니다.

 

파티 중인 겉껍질을 한번 벗어던지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잠든 늦은 도시의 밤거리가 펼쳐집니다. 이곳은 조금 더 솔직하고 차분한 심리 공간입니다. 오래 키우던 고양이를 잃었고 그 고양이를 간절히 찾는다는 건 원래 가지고 있어야 할 어떤 정서 혹은 기억의 편린을 상실했다는 것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죠. 노숙자의 존재는 불확실한 삶에 대한 불안함으로 볼 수 있을 텐데요, 노숙자의 손에 이끌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간 곳에 마약 딜러가 있다는 건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루프를 반복할 때마다 주인공은 이 하강의 이미지를 수차례 반복하며 더 정제된 환경에서 더 깊은 곳으로 거슬러 내려갑니다.

 

주인공의 직업이 게임 프로그래머라는 것 또한 흥미롭습니다. 게임은 가상의 공간이죠. 게임 속 캐릭터는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모험을 떠납니다. 미션이 클리어 되고 나면 다시 이전의 기억과 상관없이 새로운 익숙한 모험을 떠나야 하죠. 주인공이 마치 가상의 게임 속 npc마냥 더 큰 위계의 상황(이를 테면 잠든 나디아의 머릿속) 안을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걸까요?

 

 

 

 

 

 

# 4.

 

여기까지가 설정이자 배경이라면 서사가 발동하게 되는 근거는 루프를 함께 인지하는 남자, '앨런'의 존재입니다.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강박증이 있고 루프를 인지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여자 친구에게 차여야 하는 이 불쌍한 남자의 존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주인공의 내면에 침입한 외부의 존재일 수도 있구요, 아니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격일 수도 있겠죠. 개인적으론 전자였다면 그가 조금 더 주도적인 행동을 취했을 것 같으니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데요. 그렇다면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두 인물이 서로 다른 차원으로 분화되는 건 그동안 소통하던 다중의 인격이 완전히 분화되어버린 순간을 묘사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5.

 

물론 이 모든 이야기가 몽땅 헛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무난한 초현실적인 루프물이고 거울이고 뭐고 없애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걸 수도 있죠. 작가의 의도는 직접 인터뷰라도 하지 않는 한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긴 합니다. 그러니 이 리뷰의 의의는 '이딴 식으로 드라마를 보는 피곤한 인간도 있구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네요. 그럴싸한 떡밥은 무진장 던져놓은 듯한데. 앞으로의 시즌에서 어떻게 수습해 나갈지 궁금해지는군요. '레슬리 헤들랜드', '나타샤 리온' 제작, <러시아 인형처럼>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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